지방자치 원년의 원초적 지방색
  • 문정우.오민수 기자 ()
  • 승인 1995.01.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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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경남·호남 현지 취재/민자·민주 모두 “내 당에선 공천=당선”

지난 대통령 선거 때 부산·경남과 호남 유권자들은 각각 자기 지역 출신인 김영삼 후보와 김대중 후보에게 몰표를 주었다. 그러면 6개월 앞으로 다가온 지방자치 선거에서는 어떤 현상이 벌어질 것인가.

 정가에서는 양상이 지난 대통령 선거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관측한다. 무엇보다도 그동안 정치권은 이같은 원시적인 지역 분할 구도를 깨기보다는 거기에 의존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왔다. ‘적지’에서 여야의 지구당은 거의 모두 부실 지구당이나 사고 지구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더구나 지난 12·23 개각에서는 호남 인사가 거의 등용되지 않았다. 정부·여당이면서 호남 지역을 포기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민자당이나 민주당이 사람과 조직을 키우지 않았기 때문에 유권자들은 선택할 여지가 없게 됐다.

지방선거 본뜻 퇴색
 그렇기 때문에 이 지역에서는 지방 선거의 본뜻이 퇴색하고 있는 실정이다. 후보자들은 중앙당과 지구당위원장만 바라보며 뛰고 있는 양상이다. 공천은 곧 당선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 지역에서는 벌써 선거 아닌 선거가 치러지고 있다. 입도선매니 매관매직이니 하는 소리도 들려온다. 중앙 정치의 폐해가 이제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지방자치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시사저널>은 지방자치 선거의 첫 번째 현장 기획으로 부산·경남과 호남 지역을 점검해 보았다.

 정가에서는 벌써 오래 전부터 ‘부산 앞바다에 손가락이 둥둥 떠다닌다’는 우스갯소리가 나돌았다. 부산 시민들이 김영삼 대통령에게 실망해 투표한 손가락을 잘라버렸다는 것이다. 실제로 부산에 가면 김영삼 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사람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개인택시 운전기사 김영환씨(50)는 “승객의 80% 정도는 김영삼 대통령을 비난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자갈치 시장에서 만난 상인 한 사람은 “김대통령이 부산을 위해 한 일이 뭐가 있느냐”고 반문한다. 그러면서 그는 “서울에서 남산 경관을 해친다며 멀쩡한 아파트를 폭파하는 것을 보면서 말할 수 없는 비애를 느꼈다”고도 애기했다. 도시가 팽창할 데가 없어서 산꼭대기마다 집이 올라앉아 있고, 지금도 계속 언덕배기마다 고층 아파트를 짓고 있는 부산의 실정과 비교해서 하는 말이다.

 지난해 최형우 전 내무부장관은 부산의 이같은 열악한 주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경남 일부 지역을 부산에 편입하는 방안을 내놓았다가 경남 지역 민주계 실세들의 반발로 철회한 바도 있다. 그 때 김대통령이 적극 개입해 해결하지 못한 것을 부산 시민들은 매우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는 듯하다. 실제로 최근 여권에서는 부산 지역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해 보고 김영삼 정부에 대한 지지율이 상상 외로 낮아 크게 놀랐다는 애기도 있다. 김대통령이 세간의 비난 여론을 무릅쓰고 삼성자동차를 부산에 유치하도록 한 것은 이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산에서 이변이 일어날 가능성은 매우 적은 것 같다. 부산 시민은 불만이 높아도 그것을 분출할 만한 통로가 없다. 민주당 부산 지구당 16개 중 7개가 사고 지구당이고 나머지도 거의 조직 가동이 중단된 상태이다. 부산의 재야와 시민단체 일부에서는 노무현 민주당 최고위원을 시장 후보로 내세워 현 정부에 따끔한 맛을 보여주자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반 시민의 호응은 높지 않은 편이다. 민자당 부산시지부 황덕일 사무차장은 “김대통령에 대한 부산 시민의 비난은 애정에서 비롯된 것이지 표로 연결될 성질의 것은 아니다”라고 자신한다.

부산은 민주계실세들의 각축장
 따라서 부산의 지방자치 선거는 시민 정서와는 상관 없이 민주계 실세들의 각축장이 될 전망이다. 민자당 부산시장 후보 중 선두 주자는 박관용 전 청와대비서실장이다. 그는 대통령을 보필하기 위해 3선인 의원 직까지 버린 상황이다. 12·23 개각에서 통일 부총리로 나가지 않고 청와대 특보에 머무르자 그의 부산시장 출마 가능성은 한층 높아졌다.

 그밖에 거론되는 인사는 민자당 문정수 사무총장, 최형우 의원, 민정계인 김정수 의원이다. 특히 문총장은 부산시장 후보가 박관용 특보로 기울고 있는 시점에서도 아직 강한 미련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총장은 오래 전부터 부산시장을 염두에 두고 공을 들여와 지역에서의 지명도가 박특보보다 높은 편이다. 지역 인사 중에서는 우병택 시의회 의장이 부산 아시안게임 유치 활동을 실적으로 내세우면서 밑바닥 여론 조성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12개 구청장 후보 선정에는 지역구 위원장들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할 듯싶다. 부산시의회의 유일한 야당 의원인 이송학 의원(무소속)은 “전문성보다는 지구당위원장에 대한 충성도가 공천을 좌우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런 식이라면 선거를 치르지 않는 게 나을지 모른다”라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는 중앙 정치의 왜곡된 구조가 유권자를 제쳐놓고 지구당위원장이 단체장을 결정하는 모순을 낳는다고 말한다.

 부산 지역에는 정치권 실세 외에도 숨어 있는 실세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대통령이 야당 지도자로서 어려움을 겪을 때부터 군사 정권의 탄압 위험을 무릅쓰고 물심 양면으로 도왔던 사람들이다. 부산 지역의 숨은 실세로는 몇몇 목사와 기업인이 거론되고 있는데, 그들을 대상으로 한 후보들의 로비도 맹렬히 전개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도지사와 23개 시장·군수 자리가 걸려 있는 경남 지역의 경우 후보자들의 움직임이 부산보다는 훨씬 활발한 편이다. 민자당 경남지사 후보 자리는 현 김혁규 지사나 민주계 실세가 차지할 공산이 크다. 지방 행정에 처음 경영 개념을 도입한 김지사에 대한 지역 평판은 좋은 편이다. 민주계이기도 한 그는 중국 산동성과 계약을 맺고 공단 부지를 50만평 조성해 경남 지역 기업인의 투자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그리고 주식회사 경남무역을 설립해 무역 업무 능력이 없는 지역 중소기업을 돕고 있다. 현지에서는 새로운 민선 지사가 올 경우 김지사가 벌여놓은 사업들이 물거품이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분위기이다.

문턱 닳는 김홍조옹 자택
 경남 출신 민주계 실세로는 황낙주 국회의장, 김봉조 경남도지부장, 강삼재 의원, 홍인길 청와대 총무수석을 꼽을 수 있다. 이 중에서는 김지부장과 강의원이 경남지사 후보로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알려졌다. 그밖에 민정계인 하순봉·신상익 의원과, 서울올림픽때 체육부 차관을 지낸 최일홍 전 지사가 자천 타천으로 물망에 오르고 있다. 경남 지역 시장과 군수에 출마할 뜻이 있는 인사들은 각자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후보들과 연을 맺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모습이다. 몇 군데 지역에서는 민주계 실세들이 각각 다른 사람을 밀고 있어 미묘한 갈등을 빚고 있기도 하가. 김대통령의 고향인 거제에서는 김봉조 지부장이 전직 군수 출신인 ㅇ씨를, 홍인길 수석은 친인척인 다른 지역의 현직 군수 ㅅ씨를 강력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후보들이 연을 쫓아 뛰다 보니 웃지 못할 일들도 벌어진다. 김대통령의 부친인 김홍조옹의 마산 집에는 요즘 부쩍 방문객의 발길이 잦아졌다고 한다. 김옹에게 얼굴을 알리기 위해서이다. 지역의 몇몇 인사는 김옹을 아예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자기가 김대통령 일가와 특수한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지나치게 강조해 주위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경남에서는 민자당 후보가 당선을 낙관하지 못할 지역이 있다. 공단이 들어서 있는 울산과 창원이다. 이곳 유권자의 상당수는 외지인이며 젊은 층이다. 특히 울산에서는 현대의 움직임이 주목된다. 현 정부와 현대의 관계는 아직 매끄럽지 못하다. 현대가 어떻게 나올지도 이 지역에서는 관심거리이다.

 호남 지역은 어떤가, 현 정치권에서는 호남에서 다시 황색 바람이 불어오리라는 데 이견을 다는 사람이 거의 없다. 한 민주당 중진 의원이 지적한 대로 이곳에서 김대중은 ‘만병통치약’이다. 비록 기형적인 정치 현실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현상은 김대중씨가 정계를 은퇴한 뒤에도 변함없이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내년 지방자치 선거를 둘러싼 이 지역을 관심은, 과연 누가 민주당 공천을 따내느냐에 집약되어 있다. 상대적으로 하마평에 오르내리는 여권 인사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이 없다. 당선할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적어도 전남·광주권에서는 그렇다.

광주 공항은 정치 지망생으로 북적
 오는 6월27일 4대 지방자치 선거는 사실상 한국의 정치 지형을 뒤흔들러 놓을 것이다. 규모가 작다뿐이지, 지방마다 새로운 권력이 등장하리라는 예상이다. 그러나 호남에서는 일반적인 선거 논리가 통하지 않는다. 호남에서는 지방의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서 ‘당내 공천 경쟁과, 몸과 돈을 소진하는 선거전’이라는 두 번의 통과 의례가 필요치 않다. 민주당 공천이 당선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민주당 공천을 따내는 방법은 무엇인가. 현재까지는 확실하게 정해진 길이 없다. 아직 민주당이 이렇다 할 공천 기준을 세우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설령 공천 기준을 마련했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민주당의 선거 전 전당대회 개최가 불투명하기 때문에 섣불리 몸을 움직일 수도 없다. 따라서 현재 호남권에서 시장이나 군수 자리를 노리는 사람들은 아직까지는 드러내놓고 행동하지 않는다. 다만 공천에 영향력을 행사할만한 쪽에 여기저기 선을 대놓고 얼굴 알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요즘 국회의원들이 지역구 행차가 눈에 띄게 잦아졌다. 그리고 지역구 의원이 연말 의정보고대회에 최고의원 등 당내 주요 인사를 대동한다 싶으면 사람들이 몰리는 곳을 몸으로 실감할 수 있다. 광주 공항이 정치 지망생들로 북적거릴 지경이다. 그러나 아직 돈이 움직이지 않는 것 같다. 출마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언제 돈을 풀고 언제 공천 경쟁에 뛰어들어야 할지 시기만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다.” 한 재야 출신 전라남도 도의회 의원의 말이다.

 호남권의 지방자치 선거 열기가 서서히 달아 오르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지는 않았다. 과열 징후가 보이는 것도 아니다. 호남 지역 민주당 당직자 대부분이 현재 상황을 ‘물밑 경합’이라고 표현한다. 다른 사람보다 먼저 신분이 드러나면, 사방에서 공격당하리라고 계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의 후보 공천 시기가 임박해지면 상황은 돌변할 것이다. 공천이 곧 당선인 현실에서 출마 희망자들은 민주당 공천을 따내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호남 공천길‘은 동교동으로 통한다?
 실제로 광주시에는 구청장 물망에 오르내리는 한 관료 출신 인사가, 민주당 지역구 의원들에게 상당한 돈을 뿌렸다는 소문이 돌았었다. 소문이 돌자 관련 지역구 의원들이 펄쩍 뛰었고, 조사한 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이 때문에 광주 지역 민주당 관계자들은 “마땅한 후보를 구하지 못하고 있는 여당이, 그 후보가 우리 당으로 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 역정보를 퍼뜨린 게 아니냐”며 화살을 민자당에게 돌리는 촌극이 벌어졌다.

 그러나 문제는 앞으로 호남권 후보 공천 과정에서 이와 유사한 사례가 얼마든지 발생할 개연성이 있다는 점이다. 민주당 내에서도 ‘공천 장사’를 염려하는 여론이 매우 높다. 현재 민주당에서 내년 지방자치 선거 후보 공천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세력은, 대부분 현역 의원인 지구당위원장과 동교동을 비롯한 민주당내 지도부이다. 물론 일차적으로는 지역 정서를 대변하는 지구당위원장에게 상당한 권한을 부여하겠지만, 아무도 ‘동교동의 영향력’을 부인하지 않는 실정이다.

 사실 지구당위원장들조차 자신의 정치 생명에 관한 한 동교동을 쳐다봐야 할 처지이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공천 과정에서 가장 입김이 센 쪽은 동교동이다. 물론 호남에도 비주류가 있고, 중앙당의 계보 정치가 그대로 통용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역시 그곳은 동교동의 아성이다. 4대 지방자치 선거 중에서도 특히 구청장·시장·군수 등 기초 단체장 공천은 지구당위원장의 이해와 동교동을 비롯한 중앙당의 이해가 밎부딪치는 지점이다. 그리고 요즘 호남권에서 떠도는 ‘공천 장사’ 애기도 바로 이 기초 단체장 후보 공천과 관련되어 있다.

 이는 지구당위원장들과 지역 기반이 겹치기 마련인 기초 단체장의 특성 때문에 필연으로 발생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현역 의원들이 보기에는 기초 단체장에 누가 앉는가에 따라 앞으로 자신의 정치 영향력이 좌우된다. 따라서 지구당위원정들은 기초 단체장 자리에 능력과 경력에 상관없이 자기 사람을 앉히려 들게 마련이고, 지구당위원장의 눈 밖에 벗어난 인사들은 어쩔 수 없이 ‘다른 통로’를 찾아나서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가장 확실한 선이라고 꼽는 통로가 바로 동교동이다.

 현재 호남권에서 주로 거론되는 동교동 인사는 민주당 권노갑 최고위원과 김대중 아·태재단 이사장의 아들인 목포지구당 김홍일 위원장이다. 특히 권노갑 최고위원의 경우 호남 지역에서는 자신의 정치 야망을 추구하는 스타일이라기 보다는 김대중 이사장의 충직한 대리인이라는 인식이 퍼져 있어서 꽤 신망을 얻고 있다. 스스로 김대중 이사장의 그림자임을 자부하는 권최고의 정치 행태상, 호남권 정치 지망생들에게는 ‘동교동에 선을 대려면 권최고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 일종의 불문율로 자리잡고 있다고 한다. 그러지 않았다가는 오히려 화를 자초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공천시기가 가까울수록 돈 뿌려질 가능성
 물론 국고 보조금으로 당을 운영하는 요즘에는 예전처럼 공천 과정에서 엄청난 돈이 뿌려지리라고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금융실명제에서 법망을 피해가며 공천과 돈을 맞바꾸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호남권에서는 매관매직 형태가 변하고 있다. 즉 공천을 희망하는 재력가가 목돈을 갖다 바치는 식이 아니라, 특별 당비 등의 형식을 빌려서 지구당 운영비를 합법적이고 상시적으로 떠맡는 식이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지역에서 뛰는 사람들 애기다.

 호남 지역 언론에서는 기초 단체장 경쟁률이 약 4~5 대 1쯤 되리라고 예상한다. 그리고 대다수가 민주당 공천을 희망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경쟁률은 사실상 민주당내 공천 경쟁률과 비슷하다. 이들을 대강 분류하면, △지구당위원장 측근 인사 △도의회 의원 △전·현직 관료 △재력가 △민주당 당직자 △서울에서 성공한 사업가로 나뉜다. 이들이 지금 사방팔방으로 뛰고 있는 것이다. 특히 지역 연고가 없는 희망자들은 서울에서 동교동과 직거래하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아직은 대다수가 관망하면서 양다리 걸치기를 하고 있지만, 공천 시기가 다가올수록 돈이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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