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략논리의 모순 공존 사상으로 격파
  • 김현숙 차장대우 ()
  • 승인 1995.01.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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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평론가 박용구씨의 일본론 <어깨동무라야 살아남는다>



 국외자가 일본을 이해한다는 것은 석가모니의 진실과 만나는 것처럼 어렵다는 말이 있다. 특히 지난 1세기 동안 예측불허의 변신을 거듭해온 일본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 것이다. 한 출판인은 해방 공간에서 우리가 놓쳐버린 것을 두 가지로 요약하는데, 그것은 바로 ‘공산주의와 일본에 대해 알 기회’이다. 지난 1년간 한국 독서계를 강타한 ‘일본 읽기 바람’이 민족주의의 상품화에 치우쳤던 것은 그러한 공백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1월 중순 지식산업사가 출판하는 <어깨동무라야 살아남는다>에는 식민지인으로 출생한 한 한국인 청년이 동북아 국가의 일원으로서 80년 생애를 통해 관찰한 일본이 담겨 있다.

화이·신국 사상은 파멸의 씨앗
 10년간 일본론을 준비해온 박용구씨(80·예술 평론가)는 “전기의 역사에 대해 확실한 인식을 갖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밝힌다. 그에 따르면 인류 역사는 전기와 후기로 갈리는데, 일본이 패망한 1945년이 후기 원년이라는 것이다.

 ‘한·중·일의 문명사적 담론’이라는 부제가 달린 이 저술은 기본적으로 과학과 역사에 대한 의문에서부터 출발한다. 그가 보기에 과학자가 주도하는 역사는 기록 게임의 속임수이다. 지구와 인간 집단을 운명 공동체로 인식하는 길만이 인류가 살아남는 길이라고 보는 그에게, 중국의 화이사상과 일본의 신국사상은 기록 게임의 근원이요, 파멸과 불행의 씨앗이다.

 그는 <어깨동무라야 살아남는다> 앞부분에서 대륙과 한반도와 일본의 개벽 신화의 동질성을 파악하는 데 진력하고 있다. 이는 한자문화권의 유대를 숙명으로 파악하는 역사 인식과 ‘우리들이 영어문화권에 편입되어야 할 이유가 없다’는 현실 인식에서 비롯한 것이다. 동아시아 세 나라의 미각적 근친성과 한자의 뿌리인 갑골문자에 대한 연구는 이 분야 연구의 한 성취가 될 만하다. 특히 <일본서기>의 개벽 신화가 시작부터 대륙을 본뜨고 단군신화를 변형하는 과장을 상세히 밝혀낸 이면에는 ‘같은 종족인데 무슨 반일이냐’는 속뜻이 숨어 있어 후일 친일 논란을 벌일 여지를 남기고 있다.

 그러나 그는 ‘피로 연결되는 것이 종족이고 언어로 갈라지는 것이 민족’이라는 생각을 감추지 않는다. 일본인들로 하여금 그들의 뿌리가 반도와 대륙에 있다는 사실을 깨우치게 하려는 데 더 큰 뜻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저술하는 과장에서 한국 학자의 글을 배제하고 일본의 전적만을 인용한 것도 저자가 일본 지식인을 가장 중요한 독자로 겨냥해서이다. 그가 유일하게 채택한 한국인의 저술은 이영희씨의 <만엽집>뿐인데, 이는 ‘이영희씨가 씨족과 종족이 민족으로 갈라지는 지점에서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가장 큰 울림을 갖는 대목은 일본이 탈아(脫亞)와 흥아(興亞)의 모순을 격파하는 대목이다. 그는 ‘역사 인식에서 이적(夷狄)에 대한 복권 없이 동아시아의 바른 역사는 없다’는 결론을 가지고 중국이 끊임없이 자신을 선민화해온 사실을 비판하지만, 그것을 매우 위험하다고 여기는 것 같지는 않다.

 이에 반해 이 저술의 곳곳에는 신국사상에 대한 경계와 경고가 잠복해 있다. 그가 일본인의 아이덴티티를 호색과 호전으로 규정할 뿐 아니라, 탈아와 흥아 그리고 ‘아시아는 하나’라는 이중 모순을 낳으면서 침략 논리를 가속화한 배경에 신국사상의 그림자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가 보기에 신국사상은 중화사상의 변형이요, 민족 우월주의의 시신인 것이다.

 그러나 일본 지식인이 모두 신국의 주민은 아니라고 말하는 데서 이 책의 묘미는 살아난다. 저자는 신국사상이 침략 논리의 이력서에 놓이는 시점을 전후하여 탁월한 일본인 두 명을 발탁하는데, 포로가 된 조선의 선비를 스승 삼아 유교적 질서로 도쿠가와 막부 2백60년을 평화와 번영으로 이끈 후지와라 세이카와, 궁궐 안에 총독부 청사를 짓고 광화문을 헐어버리는 만행을 붓 한 자루로 저지하려 했던 야나기 무데요시이다.

동아시아의 살 길은 어개동무뿐
 저자는 일본 유학의 조(祖)로 추앙받는 세이카와 정유재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 선비 강항(姜沆)과의 만남을 통해 ‘문화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진리를 확인할 뿐 아니라, 세이카가 침략적인 민족주의를 넘어서서 공자가 추구한 인의 질서를 얼마나 열망했는가를 말한다. 또한 저자는 “개방과 세계화를 부르짖는 요즘 야나기가 남긴 말은 음미할 만하다”고 강조한다. 야나기는 “조선에 살며 조선을 말하는 사람들 중에 아직 헌 같은 인물이 없다”고 했다. 헌은 일본에 귀화한 영국 작가로서 세계에 밀본 문화를 알렸고, 일본인이 노벨 문학상은 타는 데 결정적 공헌을 한 사람이다.

 박씨는 강 항-세이카의 드라마를 또 다른 한·일 지식인 커플들(김옥균-후쿠사와 유기치, 이 상-다자이 오사무)과 병렬해 놓고 있는데, 전자가 아름다운 여운을 남기는 데 견주어 후자는 배반과 패배, 자학의 드라마로 읽는다(79쪽 상자 기사 참조).

 슈펭글러가 ‘서양 문명은 죽었다’고 말할 때의 서양 문명이나, 토인비가 ‘신은 죽었다’고 말할 때의 신은 기독교적 일신교를 가리킨다. 흔히 기독교가 일구워낸 서양 문명에는 관용이 없다고 한다. 박씨는 “서양이 날짐승·길버러지와 함께 사는 동양의 노장 철학에 공명하는 날 인류는 역사의 후기를 열어갈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광복 50주년을 맞은 한국이 편견과 배타의 체질을 청산하고, 일본이 서양 지향성을 점검함으로써 후기 역사는 상생의 역사를 열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가 우려하는 대로 2000년대 중반쯤 유럽연합(EU)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손을 잡는 ‘신황화론’이 재현되면 동아시아가 살아남을 길은 어깨동무뿐일 것이다. 金賢淑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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