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알 낳는 거위’를 찾아라
  • 오윤현 기자 (noma@sisapress.com)
  • 승인 2006.04.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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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국적 제약사, 신약 개발에 골몰…흡입형 당뇨 치료제·암 예방 백신 곧 출시

 
미국 시카고에 있는 존 헨콕 센터는 98층으로, 시카고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다. 그곳 스카이라운지에서 굽어보면, 바다처럼 드넓은 미시간 호(湖)와 도시 구석구석이 훤히 보인다. 4월9~12일 열린 ‘바이오 2006’이 행사 장소로 존 헨콕 센터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시카고 매코믹 플레이스 컨벤션 센터)을 선택하고, ‘모든 게 여기 있다(It's all here)’를 표어로 삼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어쩌면 주최측은 존 헨콕 센터 스카이라운지에서 내려다보이는 도시처럼, 바이오에 관한 최신 정보를 낱낱이 보여주고 싶었는지 모른다.  

행사는 1천1백개 바이오 업체와 연구소 등이 참여해 대성황이었다. 한국도 부스를 만들어 ‘바이오 코리아’를 홍보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세상을 놀라게 할 만한 정보나 뉴스는 없었다. 그나마 위안을 준 것은 제약 산업과 신약 관련 정보들이었다. 화이자·머크·에보트 같은 다국적 제약사들은 전시장 안에 부스를 차려놓고, 고위 임원을 파견해 임상 중이거나 최근 출시된 신약에 관한 자료를 공개했다. 그 가운데 몇 가지 내용을 소개한다. 

‘황금 거위’를 찾아서/화이자의 피터 코아 연구개발 총괄 부사장은 ‘넘버 스리(3)’ 고위층이다. 그는 하나의 신약을 개발하는 데 “12~15년이 걸리고, 약 5억 달러가 들어간다”라고 말했다. 성공 확률도 지극히 낮다. 만 가지 물질에서 한 가지 신약을 겨우 찾아낼까 말까 할 정도이다. 그 바람에 때때로 프로젝트를 빨리 중단하는 것이 주요 과제가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약사들이 신약 개발에 목숨을 거는 이유는 단 하나, 블록버스터 신약을 찾기 위해서다. 

 화이자는 그동안 리피토(고지혈증 치료제)나 비아그라(발기부전 치료제)처럼 황금알을 낳는 블록버스터 신약을 적지 않게 찾아냈다. 지금도 고지혈증 리피토는 한 해에 12억 달러를 벌어들인다(2004년 기준). 그렇지만 대부분의 신약은 특허 만료 기간이 지나거나 타사들이 뒤따라 비슷한 효능의 약들을 개발하면서 평범한 거위로 전락한다. 신분이 바뀌면 그 제품의 매출은 보통 60% 이상 감소한다.

 
 ‘손해’를 극복하는 방법은 따로 없다. 또 다른 ‘황금 거위’를 찾아내는 것뿐이다. 문제는 그 일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유성은 생체기능조절물질개발사업단장에 따르면, 10년 전에는 10억 달러를 투자하면 적어도 3.3건 신약을 개발했다. 그러나 2003년에 그 수는 0.3개로 줄었다. 다국적 제약사들이 가만히 앉아 손해를 볼 리 없었다. 그들은 우회적인 방법을 택했다. 바이오 벤처 업체나 작은 제약사가 개발한 기술을 라이선싱해서 신약을 개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라이선싱 제품에서 더 많은 이익 창출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세계 매출 50대 약품 중 17개(매출액 기준 35%)가 라이선싱 제품일 정도였다(2003년). 화이자는 2004년 전체 매출액의 34%를 라이선싱 제품에서 창출했다. 로슈의 경우 지금 상태로 가면 2009년에 예상 매출액(2백97억 달러)의 50%를 라이선싱 제품이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화이자의 피터 코아 부사장은 “한국의 바이오 벤처 기업에도 관심이 적지 않다”라고 말했다. 그는 올해 안에 한국을 방문해 라이선싱이 가능한 물질이나 기술을 직접 찾을 예정이다.

 인슐린 흡입기, 황금알 낳을까/곧 출시될 당뇨병 치료제 엑수베라(Exubera)도 라이선싱을 통해 찾아낸 신약이다.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당뇨병은 1형·2형이 있다. 1형은 인슐린 분비량이 체질적으로 부족한 형이며, 2형은 인슐린 분비가 다소 부족한 형을 뜻한다. 특히 위험한 유형은 20세 이하에서 주로 발생하는 1형이다. 이 질환에 노출된 환자는 인슐린 주사 없이 거의 살 수가 없다. 

 그동안 1형 당뇨병 환자들은 인슐린 주사로 합병증을 예방하고, 수명을 연장해 왔다. 거기에는 늘 고통이 따랐다. 매일 주사 바늘로 살을 찔러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엑수베라 덕에 ‘따끔한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었다.

엑수베라는 흡입형 인슐린 치료제로, 블리스터에 파우더 형태의 인슐린을 넣고 흔든 다음 들이마시기만 하면 된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3년여에 걸쳐 엑수베라의 효능과 안전성을 점검한 뒤, 지난해 말 사용을 승인했다. 화이자의 이소라 과장(의약부)은 “엑수베라가 전세계 당뇨병 환자 1억9천4백만명의 고통을 덜어줄 것이다”라고 말했다.

 항암제 수텐트(Sutent:한국 이름은 수텐)도 화이자가 야심을 갖고 출시하는 신약이다. 그동안 항암제는 진화를 거듭했고, 그 결과 ‘표적 치료’라는 놀라운 지점에 도달했다. 글리벡같이 암세포만 공격하는 치료제 덕에 치료 효과는 올라가고, 부작용과 후유증은 훨씬 줄어든 것이다.

 
수텐은 표적 치료 기능에, 암세포 주변 신생 혈관 생성을 방해하는 기능까지 겸비하고 있다. 즉 암세포를 공격하면서, 암세포로 공급되는 신생 혈관을 막아 괴사율을 높인다. 수텐은 신장암과 희귀 암으로 알려진 위장관기저종양에 뛰어난 힘을 발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텐을 임상 시험 중인 방영주 교수(서울대 의대)는 “향후 10년간 수텐 같은 표적 치료제가 항암제의 주류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기적’의 백신이 될 것인가/MSD(미국 머크)의 수많은 연구원들도 황금 거위를 만들어내려 애쓰고 있다. 지난 10여 년간 MSD는 수십 가지 신약을 개발했으며, 지난 1995년에는 무려 17 가지 신약을 출시했다. 현재 MSD의 연구 개발을 진두 지휘하고 있는 ‘두뇌’는 한국계로 알려진 피터 김.

그는 <시사저널> 서면 인터뷰를 통해 MSD가 지난 한 해 동안 2백20억 달러 매출을 올렸고, 그 가운데 38억 달러를 연구개발비(R&D)로 투자했다고 말했다(인터뷰 기사 참조). 그 가운데 가장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분야는 백신. 그 결과물이 올해 선보일 예정인 자궁경부암 백신(Gadasil)이다.  

2005년 5월, 미국 질병통제센터(CDC)는 미국에서 풍진의 위협이 사라졌다고 공식 선언했다. 풍진 백신 덕이다. 자궁경부암도 이제 풍진 신세가 될 가능성이 높다. 자궁경부암 백신은 매우 효과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 2년간 MSD 연구진은 이 백신이 자궁경부암 발병 원인인 인체유두종바이러스(HPV) 16형과 18형을 완전 차단한다는 사실을 거듭 확인했다. 특히 성 관계가 없는 소녀들에게 주사했을 때 효과는 더욱 뚜렷했다.

쏟아져 들어오는 신약, 신약들

가다실의 임상은 미국·영국 등 13개국에서 진행되었고, 시험자는 16~26세 여성 1만2천명이었다(한국에서는 현재 진행 중이다). MSD 자료에 따르면, 그 결과는 놀라웠다. 가다실 투여군에서 HPV 16형·18형으로 인한 자궁경부암 환자가 단 한 명도 나타나지 않았다. 반면 대조군에서는 무려 스물한 건이나 관찰되었다.

MSD의 데이비트 안스티스 아시아태평양휴먼헬스 지사장은 “백신은 공공 보건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의약품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그 예로 풍진과 소아마비 소멸을 들었다. 자궁경부암 환자도 그 수가 크게 줄 것으로 예견했다.  

MSD는 소아 복합백신 프로콰드(Proquad:홍역·유행성 이하선염·풍진 백신에 수두 백신이 포함된 것)와 로타 바이러스 백신, 대상 포진으로 인한 통증을 예방하는 백신에 대한 승인을 미국 식품의약국에 요청해 놓은 상태이다. 그러나 가다실이 황금알을 낳을지는 미지수이다. GSK에서 비슷한 효과를 나타내는 자궁경부암 백신을 출시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둘째가라면 서러운 신약들/그 외에도 올해 국내에 선보일 신약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간염 치료제 바라클루드(Baraclude)가 눈에 띈다. BMS가 생산하는 바라클루드는 B형 간염 바이러스가 복제를 못하도록 방해한다. 게다가 다른 간염 치료제에 비해 내성 발현력이 낮아 더 효과적이다. 베링거 인겔하임의 아그레녹스(Aggrenox)도 ‘획기적인 신약’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뇌졸중 발생 뒤 흔히 나타나는 재협착을 예방한다. 일명 뇌졸중 2차 예방약. 현재 전세계에서 2천억원 이상 매출을 올리고 있다.

화이자의 카듀엣(Caduet)도 환자들에게 환영받을 가능성이 높다. 이 약은 쉽게 얘기하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처방되는 노바스크(고혈압 치료제)와 콜레스테롤 저하제 리피토의 복합제라 할 수 있다. 심혈관 질환 발병을 걱정하는 고혈압 환자에게 주로 처방될 예정이다. 

로슈의 타세바(Tarceva)는 전이형 비소세포성 폐암 치료제이다. 화학 요법으로 치료했음에도 별로 차도가 없는 환자에게 처방되는데, 상피세포 성장 인자와 관련 있는 효소의 성장을 막아 암 확산을 지연시킨다. 지난 3월 엘러간이 출시한 안구건조증 치료제 레스타시스도 수많은 환자를 기쁘게 할 전망이다. 면역 관련 T세포 염증을 감소시키고, 눈물 분비를 촉진해 안구 표면을 정상으로 회복시키는 구실을 한다.  

겨우 60여 년 전만 해도 모든 질병에 대한 약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의사들조차 암 치료나 장기 이식 같은 간절한 목표가 영영 이루어질 수 없다고 믿었다. 1930년대 의사들은 환자에게 처방할 수 있는 약이 열두 가지 정도였다. 그러나 의학자들과 다국적 제약사들의 고생 덕에 이제 의사들은 2천 가지 이상의 약을 처방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 덕에 환자들은 고통으로부터 멀리 도망칠 수 있었다. 다음에는 또 어떤 신약이 나올지, 지금도 수많은 난치병 환자들이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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