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통신 달구는 찬반 공방
  • 성우제 기자 ()
  • 승인 1995.03.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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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갈린 평가 속 비판론 우세 … 해당 신문 기자도 가세

이승만 전 대통령의 공과 과에 대한 토론으로 컴퓨터통신이 한창 열을 뿜고 있다. 제목도 아예 ‘이승만과 나라 세우기’로 정한 컴퓨터 통신 토론 광장에서는 이승만에 대한 역사의 평가를 놓고 치열한 공방전이 펼쳐지고 있다. 최근 들어 하이텔과 천리안의 토론 광장에서는 ‘이승만과 나라 세우기’가 가장 많은 토론 횟수를 기록했으며, 특히 하이텔에는 이승만 기획 기사를 쓰고 있는 <조선일보> 기자까지 가세해 활기를 더하고 있다. <이승만과 나라 세우기> 전시회 개막 이틀 후인 2월7일에 개설된 하이텔의 토론 광장에는 20일 동안 2백여 명이 참여해 3백50여 건의 의견을 올려놓았다. 토론 참가자들이 비교적 젊은 세대여서 국민 전체의 여론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여기서 개진되는 의견들은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평가와 감정을 간접적으로나마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하이텔의 토론 광장에서는 이승만에 대한 평가가 정반대로 엇갈린다. 그러나 숫적으로는 우열이 확연히 구분된다. ‘그를 건국의 아버지로 평가하자’는 긍정적 의견은 <조선일보> 기자의 것을 포함해 50여건에 머무르고 있다. 또 이승만에 대해 높은 평가를 내리는 진영에서는 신동찬씨가 30건 가까이 의견을 올려 반대편과 고군분투하다시피 했다. 신씨는 “이 전대통령의 공이 6이라면 과는 4라고 생각한다”고 전제한 뒤 광복 이후 그의 업적을 △남한만의 단독 정부를 당시 해방 정국의 어느 정치인보다 먼저 구상해 미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관철한 점 △17연대 반란사건을 계기로 철저히 숙군을 단행하여 6 · 25때 한국군이 흔들리지 않게 한 점 △한민당 위주 지주 계급의 경제 기반을 침식하여 산업자본주의 토대를 닦은 점을 들고 있다. 그는 또 “누가 집권하더라도 친일파 등용은 불가피했다”고 주장해 토론의 열기를 높였다.

 

“공적이 더 많다”에 “민족 정기 흐트렸다”

 참여자 중 다수를 차지하는 ‘이승만 비판론자’들의 의견은 일제 강점기에서부터 4 · 19혁명에 이르기까지 이승만의 과를 네 가지로 분류해 제시하고 있다. △과연 이승만이 만주 벌판과 상해 뒷골목에서 추위 · 굶주림과 싸우며 활동한 ‘독립 투사들’과 동등한 대열에 오를 수 있는가 하는 점 △단독 정부를 수립해 한반도의 분단을 가져왔다는 점 △친일파 청산은커녕 오히려 그들을 요직에 등용해 민족 정기를 바로 잡지 못한 점 △초대 대통령으로서 이 땅에 ‘독재의 씨앗’을 뿌려놓았다는 점을 들고 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찬양 캠페인은 명백히 반사회적이라고 규정한 신동일씨는 “이승만은 4 · 19혁명에 의해 이미 정리된 인물이며, 대한민국은 헌법 전문에 4 · 19혁명 정신을 계승한다고 선언함으로써 이승만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일단락지었다”고 주장했다.

 비판적 입장에 선 토론자들은 이승만의 실책 가운데서도 반민특위를 해체하면서 친일파를 제거하지 못한 점을 가장 큰 것으로 꼽고 있다. 이현식씨는 “친일파를 엄중히 처단하지 않아 민족 정기를 바로잡지 못했고, 심지어 일본 육사를 나오고 만주군 장교로서 독립군 잡는 일을 업으로 했던 자가 나중에 대통령까지 하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스스로 물러난 것이 아니라 쫓겨난 사람을 우리가 국부라고 생각해야 하는가”라고 반문하고 있다.

 중학생부터 40대까지 참여하는 컴퓨터통신의 ‘이승만 토론’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일본의 침탈과 전쟁, 독재로 얼룩진 한국 현대사에 대해 이승만이라는 인물이 중심이 되어 ‘거대한 토론’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예술을 하는 사람으로서 정치에는 별 관심이 없다고 밝힌 김한밀씨는, 이승만 재평가에 대해 이렇게 우려했다.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것은 신문 기사가 아닙니다. 이승만 복권운동과 <조선일보>, 그리고 예술의 전당에 걸려있는 거대한 포스터, 사람들의 히스테리컬한 반응, 이런 것들이 오히려 중요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도 신문 기사에 대해서는 기억을 못할 것입니다. 내가 거리에서 보았던 그 깃발처럼 사람들의 뇌리에는 한국 현대사가 어느 세력에 의해 왜곡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묘한 감정만이 나부끼게 될 겁니다”.

成宇濟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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