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과 아시아는 역동의 땅”
  • 김춘옥 실용뉴스부장 옮김 ()
  • 승인 1990.1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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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시라크 특별강연 요지 /판문점은 ‘역사의 숙명’ 아니다

아시아 주요국가의 하나인 한국에서 ‘세계의 급속한 변화’에 관해 대화를 나누게 된 것은 저로서는 영광이자 큰 기쁨입니다. 이같은 기회는 한국 밖으로까지 그 이름을 떨치고 있는 《시사저널》의 창간 1주년을 기념해서 崔元榮 발행인과 朴權相 주필이 제공해주셨습니다.

 한국과 프랑스 두 나라 사이의 직접적인 문제에 관해 언급하기 전에 제가 파악하고 있는 국제상황의 구도를 될 수 있는 한 간결하게 그려보고자 합니다. 북반부에서 최근 일어난 가장 중요한 사건은 공산주의 이데올로기가 소련식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와 함께 붕괴했다는 것입니다. 바르샤바조약은 사실상 파기됐습니다. 붉은 군대는 짐을 싸들고 소련으로 돌아갔습니다. 반세기 동안이나 분단됐던 독일은 단 11개월만에 통일과 권리를 되찾았습니다. 요컨대 새로운 유럽이 소련체제의 폐허를 딛고 탄생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 모든 요소들은 드골 장군이 꿈꾸었던 위대한 유럽을 실현시킬 수 있게 해줄 것입니다. 유럽공동체 12개국뿐만 아니라 동유럽의 새로운 민주주의 국가나 중립국이나 비동맹국들을 다 포용하는 유럽, 연방제도와 민주제도의 체제를 갖는 유럽 말입니다.

 

소련과의 관계. 신중해야

 제 두번째 견해는 이같은 목표를 과거와 같은 오류에 빠지지 않고 실현시키는 데 관한 것입니다. 현대화되고 강력한 소련이 10년 또는 20년 안에 유럽과 아시아 인접국에 대해 헤게모니 차원의 야심을 갖지 않는다고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중해야 합니다. 우선 우리의 경제적 지원방법에서 신중해야 합니다. 우리가 비난해왔고, 그 스스로는 실패한 체제를 구제해준다든가 연장시키는 일은 우리가 할 일이 아닙니다. 반대로 진정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 전환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안보문제에 있어서도 신중해야 합니다. 현대화됐고 다시 균형을 잡은 대서양동맹은 계속 존속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같은 신중이 현상유지나 ‘요지부동’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끝으로 대서양동맹 구축을 상상해봅니다. 소련군의 위협이 사라지고, 독일이 통일되고, 미군의 대부분이 필연적으로 철수하게 되는 상황 등은 대서양 연안 국가의 관계에 큰 변화를 가져다줄 것입니다. 저는 미국이 새로운 유럽의 친구이자 동맹국으로 남아야 한다는 점을 적극 지지합니다. 새로운 동반자 관계라는 테두리 안에서 말입니다.

 유럽은 그 형태가 어떻든간에 남 · 북관계의 벅찬문제를 해결하는 데 직접 참여해야 합니다. 제2의 소련혁명은 세계체계 전반에 걸친 급속한 변화의 한 부분일 뿐입니다. 또 다른 대혁명은 구체적으로는 남반부와 관련돼 있습니다. 세가지 측면에서 그렇습니다. 지구상의 인구분포가 부유한 북반부 (10억 인)와 가난한 남반부(현재 40억, 20년후 인구는 1백억)의 어마어마한 불균형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국수주의 · 원색주의와 부의 불균형은 모든 종류의 극단주의가 횡행하는 장으로 이용되어 경제적 긴장을 강화시켜주고 있습니다. 또 다수의 제3세계 국가가 대량학살 무기인 화학무기 핵무기 탄도무기를 보유하는 군사화 경향도 우려됩니다.

 유럽에서 거대한 혁명이 일어나고 있는 시점에서 페르시아만 위기가 발생했다는 사실은 이같은 테두리 안에서 조명해야 합니다. 페르시아만 위기 상황은 그 자체가 근본적으로 구체적인 조치들이 필요한 지극히 단순한 것입니다. 한 국가가 다른 국가를 힘으로 종속시킨다는 사실은 인정할 수 없습니다. 세계 공동체 전체는 이 점에 동의합니다. 또한 민간인을 인질로 만든다든가 인간을 희생양으로 이용한다는 사실도 인정할 수 없습니다.

 페르시아만 사태는 중동의 소동만은 아닙니다. 이 문제는 만약 우리가 경계하지 않는다면 추후 남 · 북대결로 치달을 위험을 안고 있는 대규모 위기의 첫번째인 것입니다. 우리가 북반부 국가간의 새로운 국제질서 확립을 원한다면 남반부에 대한 새로운 정책으로 그 질서를 보완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세계적 변화를 살펴보았으므로 저는 지금부터 아시아와 유럽관계를 직접적으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950년 프랑스는 북한의 침략에 대응하려는 한국을 방위하기 위해 유엔의 호소에 따라 다른 15개 국가와 함께 기꺼이 호응했습니다. 그러나 1990년의 변모한 한국은 여러분의 에너지와 여러분의 지혜의 결과입니다. 여러분들 자신의 노력의 결과일 뿐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한반도를 통일하기 위해 펼치는 노력을 항상 주의깊게 지켜보아왔습니다. 베를린장벽과 마찬가지로 판문점도 역사의 숙명으로 간주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지난 30여년 동안 북한의 동향에 엄숙하고 단호하게 대처해왔습니다. 여러분은 1988년 가상 세계적인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여러 사회주의 국가가 그 후 한국과 외교관계를 갖게 됐으며 소련은 얼마 전 한국을 승인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한국의 현재 위치를 증명해주는 성공사례들입니다. 동시에 한국은 여러가지 평화적 통일안을 제안했습니다. 드디어 북한의 총리가 지난 9월에 이곳 방문을 수락함으로써 사실상 한국을 승인했습니다. 그후 총리들의 만남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한반도의 기류가 완화됨을 환영합니다. 저는 한국을 국민화합의 길로 이끌어가기 위한 노태우 대통령의 노력에 프랑스가 기여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또 프랑스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회원국자격으로 한국의 유엔가입을 전적으로 지지해주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통일문제는 명백한 한국민의 문제이지만 대서양조약의 테두리 안에서 통일을 이룩한 독일의 전철대로 한국도 현재의 동맹국과 자유세계의 일원으로 남아 있으면서 통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유럽과 아시아의 관계에 대해서 사람들은 상업적 측면에만 매달리고 있습니다. 이 점을 저는 유감이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관계는 경제적 분야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정치적 · 전략적 성격도 갖고 있습니다. 저는 유럽국가들이 아시아를 경쟁자로만 보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한국이 이룩한 결과에 경탄할 뿐입니다. 이같은 경제적 발전이 민주주의의 진행까지 동반할 때 우리는 두 배로 성공을 축하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성공은 프랑스 기업체들에게 생산성과 상업적 박력을 강화시켜주는 촉진제가 되어야 합니다. 이제는 균형을 찾고 도전을 해야 합니다. 상업적 경쟁이 아무리 치열하다 하더라도 신의만 있다면 그것은 정치적 적대감으로 악화되지 않습니다. 게임의 룰은 존중돼야 하며, 몇가지 오해를 없애는 것이 필수적이라 봅니다.

 

한 · 프랑스 정상급 협의체제 구성 지지

 저는 한국과 유럽이 좀더 긴밀한 관계를 확립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바랍니다. 한국의 유엔가입을 프랑스가 지지한 점, 동유럽 국가들과의 접촉에 유리한 프랑스가 이 국가들과 한국의 외교관계 성립을 촉진시키는 역할을 한 점을 환기하고자 합니다.

 서유럽과 아시아 · 태평양 지역은 1990년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두 지역입니다. 이같은 역동성은 내일의 국제균형의 기초가 될 것입니다. 자유민주국가들간의 상호관계를 강화하려는 우리의 시도는 논리적 바탕을 가지고 있습니다. 동북아의 한국, 유럽의 프랑스는 이같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으며 나아가야 합니다.

 전통적 동맹국인 미국에 등을 돌린다는 것은 프랑스에게도 한국에게도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 동맹관계는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프랑스와 한국의 안보를 강화시키는 전략적 관계를 맺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 점에서 한국과 프랑스는 지난 7월에 군사협력협정을 체결했는데, 저는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봅니다.

 프랑스와 한국은 각자의 역할과 잠재력에 합당한 특혜적 관계를 맺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저는 우리의 정치적 대화가 계속해서 강화되기를 바라며 정상급의 정기적인 협의체제를 구성하는 것을 지지합니다. 우리들은 스스로 운명을 조종하며 외부로부터의 모든 지배를 거부함으로써 국가독립을 유지하겠다는 동일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전자 교통 통신으로 구성되는 21세기의 주요산업에서 완벽하고 첨단적인 국가산업을 소유하겠다는 확고한 약속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한국은 원한다면 프랑스와 유럽의 극동지역 파트너가 될 수 있습니다. 한국은 신생산업국의 맨 앞에 서서 아시아의 축 속에서 균형요소를 구성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한국에 기술을 이전하고 제3국들과의 공동행동에 의거하여 신뢰의 파트너 관계를 구축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저는 오늘날 프랑스 기업인들이 한국의 두가지 계획에 제출한 내용의 질을 그 증거로 제시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프랑스의 초고속 열차(TGV) 체계가 완벽하게 알맞다고 생각되는 서울~부산의 고속전철과 프랑스가 앞서가고 있는 해양 순찰함의 문제입니다.

 저는 프랑스가 남태평양 지역에도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 크게 애착을 갖고 있습니다. 남태평양 지역에서 프랑스의 존재는 안정과 발전의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프랑스령 폴리네시아, 월리스와 퓨두나 제도, 뉴칼레도니아의 주민들은 선진국과 맞먹는 생활수준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 지역에서, 특히 피지 · 사모아 또는 쿠크제도에서 프랑스가 협력정치를 폄으로써 그렇습니다.

 거대한 바다, 태평양은 부를 만들어주고 미래를 만들어주는 개방과 교역의 전통을 가능하게 하므로 프랑스와 한국간에 가장 결실이 큰 협력의 장이 될 수 있습니다. 남태평양이 전략적으로 바뀌지 말아야 한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몇몇 국가의 야심을 유발하거나 탐욕을 부리게할 수도 있는 정책은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한국과 프랑스 더 넓게는 유럽과 아시아는 인류에 많은 기여를 한 오래된 문명지역입니다. 그러나 서로를 알지 못하면 어떤 일도 지속적으로 할 수 없습니다. 저는 한국에서의 프랑스 문화와 과학에 대한 관심이 어떤가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좀더 앞으로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어쨌든 프랑스는 극동의 문화를, 특히 한국의 문화를 더 잘 소개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서로가 풍요로워질것입니다. 좀더 산문적으로 말하자면 모든 접근과 모든 협력이 지속적으로 수행돼야 할 것입니다.

 한국과 프랑스는 19세기 중반에 서로를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초기관계는 일본에 의한 점령으로 곧 중단됐습니다. 그 후 냉전은 미국 친구들로 하여금 한국 안보의 큰 부분을 책임지도록 했습니다. 오늘날 유럽에서는 냉전의 마지막 후유증이 사라졌습니다. 저는 한국민들을 위해서 아시아에서도 냉전의 후유증이 사라지기를 바랍니다. 새로운 국제적 상황은 우리에게 직접적이고 긴밀한 관계를 맺을 기회를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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