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거인 시라크 “한국 놓칠 수 없다”
  • 김춘옥 실용뉴스부장 ()
  • 승인 1990.1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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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창간 1주년 초청 방한 … 서울 · 파리 ‘결연’에 합의

자크 시라크 파리시장의 4박5일간의 서울 체류기간(18일~22일)은 그가 이전부터 갖고 있던 한국에 대한 ‘지극히 긍정적 이미지’를 확인하는 시간일 뿐이었다. 이 노련한 정치인은 창간 1주년을 맞은 《시사저널》의 초청을 받아 도착하는 날부터 “한국은 머지않아 7천만 인구를 가진 하나의 한국, 또 열강의 하나가 될 것이다”“한국의 오랜 문화와 훌륭한 문명을 모르고는 세계를 알 수 없다”라고 강조함으로써 많은 사람들로부터 호감을 얻었다.

 대통령결선후보자(88년), 두번에 걸친 총리(74~76년, 86~88년), 3선시장이라는 경력과 그 경력에 맞는 규모의 수행원을 대동하고 서울에 나타난 이 ‘유력한 차기 프랑스대통령’은 퐁피두 대통령이 붙여줬다는 ‘불도저’라는 별명에 걸맞게 지칠 줄 모르고 끊임없이 주위 사람들을 긴장시켰다(비공식 방문임에도 수행원은 4명의 시청직원 · 동양학 전문가 · 기자 · 경호원 등 8명. 보통 사람보다 2배도 더 큰 소리로, 그것도 단어 하나하나에 힘을 주어 말함으로써. 거대한 신체(190m, 90kg)와 “배우처럼 잘생긴” 얼굴(박준규 국회의장의 평가)로 표정과 제스처를 끊임없이 움직이고 바꾸어가면서. 그보다는 한국문화에 대한 넓은 지식과 국제정세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능력을 갖춘 데다 정치인다운 배포로 자신의 치적을 유머를 곁들여 늘어놓음으로써.

 

5천년 문화유산에 감탄

 도착하던 날 저녁. 한정식 맨 마지막에 나오는 밥 한그릇을 다 비우고 일행 가운데 한명이 건네준 밥 한사발을 더 들면서 이 58세의 정열적인 정치인은 “일본어를 마스터하는데는 13년, 중국어는 15년, 한국어는 18년이나 걸린다고 하는데 왜 그런가?”라고 물었다.

 국립박물관을 방문하기 직전에는 “한국 도자기는 중국이나 일본 것보다 훌륭한데 그 제조기술이 전해지지 않은 것이 유감”이라고 말해 동행했던 〈르 피가로〉신문 부편집인이 “한국에 대한 지나친 아첨성 발언이 아닌가”하며 눈총을 보내기도 했다. 그는 벌써 오래전부터 중국과 일본문화를 공부하다가 “한국의 찬란한 문화를 접하게 됐다”면서 동행한 파리 3대학 동양학부장 주와요 교수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퍼부어댔다.

 “소련과 동유럽 사태로 비롯된 세계변화에 신중해야 한다”“방위비와 제3세계 지원금을 내야 할 내일의 일본은 오늘의 일본과는 다를것이다”“세계는 미국을 중심으로 방위체계를 구축해야 한다”“1990년 세계에서 가장 박력있는 지역은 유럽과 아시아이다” 등의 내용으로 엮어진 ‘유럽과 아시아’라는 제목의 19일의 특별강연과 질의응답에서도(강연요지 74~75면 참조) 시라크 시장은 노련한 정치인임을 보여주었다. 프랑스를 잘 아는 외교관 · 교수 · 학생 · 기자 등은 그에게 나름대로 뼈있는 질문을 해댔다. “한국이 프랑스에서 배울 것이 더 많은데 동등한 문화교류가 가능하겠는가?”(김호기 국립과학관장) “한국이 프랑스로부터 에어버스를 샀을 때 프랑스는 왜 지불방법에 편의를 제공하지 않았느냐”(현대투자자문 · 신용균 박사)는 다소 시비섞인 질문에 그는 “양국이 모두 훌륭한 문화국으로 배울 점이 많다”“앞으로 그런 경우에는 은행보증을 알선하겠다”고 받아넘겼다.

 ‘정치인 시라크’의 방한 하일라이트는 19일 저녁 신라호텔 마로니에룸에서 열렸던 시사포럼(《시사저널》의 정기 토론 모임) 회원과의 대화. 1시간40분 동안이나 계속된 질의 응답을 통해 시라크 시장은 “여야 정치인들을 완전히 매료”(이종찬 민자의원의 평)시켰다. “프랑스는 독일통일을 두려워하지 않느냐”는 김광일 의원(민주)의 질문에 “독일통일은 ‘자유’라는 우리(서구)의 가치의 승리일 뿐 아니라 동독 재건에 서독이 무려 5백억달러를 투입해야 하므로 독일 산업의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므로 프랑스로서는 우려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미테랑 사회당 대통령과의 동거정치(86~88년)의 경험을 묻는 남재희 의원(민사)의 질문에 그는 “정부는 의회 다수당(자신이 속했던)의 결정대로 움직였고 당시 대통령이 어떻게 했는가는 이 자리에 참석한 대사(드라포르텔 프랑스대사)가 식욕을 잃을까봐 말하지 않겠으나 당시의 총리가(시라크) 정치를 아주 잘해서 동거정부는 좋은 결과를 가져다 주었다”고 말해 참석자 모두의 폭소와 박수를 받기도 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전망을 인용하면서 미래의 한국경제에 낙관론을 편 시라크 시장에게 이부영   전민련 사무총장이 “경제발전과 정치체제(권위주의적 또는 민주주의적)는 함수관계가 있느냐”고 묻자 시장경제체제 신봉자인 시라크 시장은 “잘 모르겠다. 현재 한국경제성장률이 5년전보다 낮아진 것은 국제상황이 수출을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한국 · 프랑스 교역에 특히 신경

 다른 한편, 중국에만 신경을 쓰느라 60년대 일본이 경제발전을 하는 동안 일본에 수출할 기회를 갖지 못했으나 한국만은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는 프랑스의 의중이 시라크 시장의 방한기간에도 드러났다. 노태우 대통령을 예방했을 때 프랑스 공화국연합당(RPR) 총재이기도 한 시라크 시장은 “일본의 ‘신간센’보다 낫다고 확신하는 프랑스의 고속전철(TGV)을 한국이 도입한다면 유럽인들이 심리적으로 한국을 파트너로 생각할 것” 이라는 우회적인 방법으로 서울~부산 고속전철 건설에 프랑스가 꼭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을 피력했다. 요컨대 시라크 시장은 유럽은 앞으로 ‘대서양에서 우랄산맥까지의 위대한 유럽’이 될 것이고 그 주도권은 프랑스가 갖게 될 것이므로 한국은 프랑스와의 교역에 적극적이어야 한다는 논리를 방한기간 내내 펼친 것이다.

 77년 파리시장으로 취임한 이래 여섯차례에 걸친 방한 초청(4차례는 서울시장이, 두번은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때)을 모두 거절했던 이 ‘콧대높은’프랑스 정치인이 《시사저널》의 초청을 수락한 것은 “민주화의 길로 들어선 한국을 방문해도 좋겠다”는 판단과 그의 개인적 정치스케줄(다음 대통령선거는 95년)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라고(그러나 모택동 시절에도 시라크는 중국을 방문했다).

 짧은 방한기간 동안 시라크 시장은 대통령 · 국무총리 · 국회의장으로부터 오찬대접을 받았고, 가는 곳마다 한반도 통일에 관해 의견을 나눴다. 또 “일본 여성보다 훨씬 아름다운 한국 여성”의 미소에 홀딱 반했으며 생전 처음 명예박사학위도 받았다.

 그러나 그의 이번 비공식 방한의 가장 큰 결실은 무엇보다도 서울시와 파리 시가 우호협력도시의 결연에 원칙적으로 합의를 한 것. 이같은 결과는 도착 첫날 열렸던 《시사저널》1주년 기념 만찬에 고건 시장이 통역까지 대동하고 시라크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하고 실무진들은 캉텡 국제국장을 따로 불러내는 등의 ‘작전’을 편 결과이다.

 판문점 방문 때 못다 본 땅굴과, 농촌과, 경주의 고분(시라크의 취미는 중국의 고분연구이다)을 둘러보기 위해 반드시 한국을 다시 찾겠다는 시라크 시장의 개인적 희망이 서울 · 파리 결연에 따라 늦어도 내년 겨울쯤에는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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