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봉사단’산실 미국 “이제는 도움 받을 때”
  • 워싱턴 · 이석렬특파원 ()
  • 승인 1990.11.01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가나 · 체코인 보스턴에서 ‘부랑자 보호’ 등 활동

최근 미국에 평화봉사단 역유입현상이 나타나 화제가 되고 있다. 1961년 케네디 대통령이 만든 후 지금까지 전세계 95개국에 13만명의 미국 젊은이들이 파견돼 그 나라 사람과 같이 먹고 살면서 생활수준 향상을 위해 땀 흘리는 것을 목표로 삼은 평화봉사단이 한 세대가 지나게 되면서 이번에는 외국에서 미국에 봉사단이 찾아오고 있는 것이다.

 비록 시험삼아 시도되었다고는 하지만 올 여름 보스턴에서 두명의 외국인이 참가한 외국봉사자국제계획(FVIP)은 그런대로 성공했다는 평을 들었다. 이 계획을 마련한 트레이시 매티유(26 · 여)씨는 앞으로 2년 내에 해마다 1백명의 외국봉사대원을 데려와 미국 50개주에 2명씩 배치하여 항구적인 사업으로서의 봉사활동을 펴나갈 구체적인 방안을 세우고 있다.

 서아프리카 베닌에서 2년 동안 평화봉사단원으로 일하고 미국에 돌아온 매티유씨는 등잔 밑이 어둡다는 격으로 “막상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 미국 안에 널려 있다는 사실을 알고 역평화봉사단을 만들어 주로 도시빈민층을 상대로 도움의 손길을 뻗쳐나가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평화봉사단 초대 단장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된 사전트 슈라이버  평화상을 타기도 한 그는 우선 시험적으로 고향인 보스턴에서 가나인과 체코슬로바키아인 두사람을 택해 두달 동안 도심 빈민촌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일을 맡겼다.

 남부 가나의 환티부족의 추장 대를 이을 찰스 허친슨(29)씨는 자기 나라에서 고등학교생물교사로 재직중인데 중 · 고등학교 때 평화봉사단원에게서 영어를 배워 어차피 빛을지고 있는 판에 “미국을 속속들이 이해하고 가나의 실상을 미국인에게 제대로 알리자면 아무래도 이런 기회밖에 없을 것 같아 자원했다”고 말했다.

 민주화물결 덕분에 미국 평화봉사단으로서 처음으로 입국이 허용된 체코슬로바키아인 에스터 보졸메니요바(24 · 여)씨는 말한다. “영어도 더 배울 겸 자본주의 나라의 밝은 면뿐만 아니라 그늘진 곳을 제대로 아는 것이 우리나라를 위해 일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판단해서 택한 일이다. 그러나 도시빈민층의 어려운 형편은 상상 밖이었고 특히 청소년 문제는 거의 절망적이었다. 부랑자(집없는 사람)가 많은 것이 미국의 가장 심각한 사회문제로 보였다. 체코에도 이런 현상이 생길까봐 겁난다. 체코에는 집시들이 있긴 하나 여기서는 길가다가 하루에도 대여섯명씩 구걸하는 사람과 마주칠 정도니까…. 도대체 왜 이런 꼴이 빚어지고 있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자원봉사의 경험이 없는 공산주의사회에서 민주적인 나라로 탈바꿈하고 있는 체코에 돌아가서 “미국과 교환계획으로 이런 사업을 펼쳐나가는 것이 꿈”이라고 말한 보졸메니요바씨. 미국까지의 왕복여비는 그녀가 속해 있는 전국학생연합회가 대준 것이라고 한다.

 이 두 봉사자는 외국봉사자국제계획이 정한 일정에 따라 보스턴 시내 부랑자들에게 무료숙소 알선, 급식 제공, 청소년 보호 · 교육, 무의무탁한 노인시설 방문 및 심부름과 동네청소를 담당했다.

 보스턴시 청소년담당관 리자 울리치씨는 이들이 짧은 기간이지만 큰 일을 해냈다고 칭찬했다. “빈민 청소년들에게 활기를 불어넣어주고 외국에 대한 산 지식을 심어주어 고맙다”는 것이다.

 벌써부터 많은 사람들이 지원을 자청하고 나섰다고 한다. 저명한 경제학자 존 케네드  갈브레이드 교수를 비롯해서 케네디 전대통령의 조카이자 기업가인 마이클 케네디씨, 전 평화봉사단 총재였고 지금은 노르웨이 대사로 있는 로레트 밀러 루프 여사, 그밖에 몇몇 상 · 하원 의원 등이 후원자 명단에 올라 있다.

 외국인 봉사자는 왕복여비를 자기가 대야하고 미국 안에서의 최소한도의 생활비는 외국봉사자국제계획이 부담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어 앞으로 큰 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프리카 정글보다 나을 게 없는 현실

 가톨릭 신자인 매티유씨는 사립 명문 가운데 하나인 조지타운대학을 나온 사람이다. 베닌에서 원주민들의 식수문제를 해결하는 일을 하며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지만 신변에  아무런 위험을 느낀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모든 것이 앞서 있다는 미국은 해만 지면 대도시가 죽은 듯 조용해지고 집집마다 문을 이중삼중으로 잠그고도 신변보호를 위해 엽총 따위로 무장을 하고 살아야 하는 ‘무서운 세상’으로 변해 아프리카 정글보다 더 나을 게 없는 슬픈 현실이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했는지 모른다.

 평화봉사단이 생긴 지 5년만에 ‘역평화봉사단’을 만들어 국내에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도록 하자는 의견이 대두돼 한때 검토대상이 된 적은 있었으나 의회의 승인이 나지 않아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넘버 원 아메리카’의 체면에 걸맞지 않는 무슨 궁색한 소리냐하는 자존심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하지만 지금은 형편이 크게 다르다. 지난 수년 사이 세계 제일의 채권국이었던 미국이 남의 돈을 꾸어쓰는 신세가 되어 꼴이 말이 아니다. 그러니 사회복지에 쓸 돈이 줄어들고 따라서 정부보조금을 타서 겨우 지탱해온 불우한 사람들이 집세조차 감당할 길이 없어 거리로 나앉아야 할 판이다.

 “서로 이해의 폭을 넓히고 미국이 지니고 있는 어려운 사회적 조건을 향상시키는 일을 펼쳐나가기위해 ‘역평화봉사단’을 만들게 되었다”는 것이 매티유씨의 본심이요, 동기다. “그저 시험삼아 해본일이 결국 큰 공사가 되어가고 있다”고 그녀는 파란 눈을 더욱 반짝거렸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