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력 ‘수입病’깊다
  • 장영희 기자 ()
  • 승인 1990.1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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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인난 심화, 제조 · 건설업 등에 동남아인 불법취업 급증

의류제조업을 하는 ㄷ실업 ㄱ사장은 얼마전 필리핀인 2명을 고용했다. 사람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여서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ㄴ사장에게서 정보를 얻어 서울 이태원에 있는 ㅇ여관에 몇차례 전화를 걸었다. 여관주인으로부터 “지금은 없지만 곧 연락해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기다린지 며칠이 지나 ‘낭보’가 날아들었다. ㄱ사장은 대기중인 동남아인 5명 중 2명을 골라 밀린 여관비 5만원을 대신 지불하고 공장으로 데려왔다.

 ㄱ사장의 사례에서 보듯 외국인 불법취업이 성행하고 있다. 필리핀 파키스탄 태국 방글라데시 말레이시아 이란등지에서 관광객으로 위장한 외국인 근로자들이 대거 일자리를 찾아 입국하고 있는 것이다. 저개발국 근로자들의 불법취업은 제조업 건설업 광업 등에서의 심각한 구인난과 맞물려 더욱 번져갈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3개월짜리 관광비자로 들어와 서울 변두리의 허름한 여관이나 합숙소에서 5~10명씩 집단적으로 기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중에는 취업정보망을 가지고 조직적인 취업활동을 벌이고 있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길거리를 배회하다 여비마저 떨어져 오도가도 못하는 형편이다. 서울 이태원의 ㄷ여관 주인은 “하숙비 밀리는 것은 고사하고 끼니도 못때우는 외국인들이 딱해 이들을 구하러오는 사람들에게 10여차례 소개를 해준 일이 있다”고 밝히면서 지난해부터 필리핀 파키스탄 태국인 등이 묵어가는 일이 부쩍 많아졌다고 전한다.

 

외국인 소개하는 브로커도 늘어나

 또 한편으로는 기능공이 없어 조업을 못하고 있다면서 외국인이 묵게 되면 전화를 달라고 연락처를 놓고가는 사람도 늘고 있다고 이 여관주인은 말한다. 콘덴서를 주로 만드는 ㄴ전자의 한 관계자는 “버스를 대절해 공업고등학교를 찾아다니고 구인광고를 계속 붙여도 근로자 구하기가 막막하여 우선 급한 김에 동남아인을 데려왔다”면서 불법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일자리를 구하는 외국인이 많이 들어오자 이들을 기업체나 건설현장에 소개하는 브로커도 늘어나고 있다. 이태원 ㅅ모텔 주인은 “자기 동족을 싼값에 팔아먹는 인신매매범  같은 브로커들이 가끔 찾아온다”고 밝히면서 직접 찾아오지 않더라도 어떻게 알았는지 전화로 연락해 바깥에서 만나는 것까지 포함하면 브로커 숫자는 상당한 정도에 이를 것이라고 말한다. 외국인 불법취업자의 대부분은 힘이 많이 들고 임금도 적은 제조업 생산현장이나 건설공사판에서 막일을 하고 있다. 이들은 고용업체에서 임대한 연립주택이나 여관 등에 기거하면서 식사는 근처 식당에서 해결하고 있다. 월 평균임금은 작년만 해도 국내 근로자의 70% 수준에도 못미쳤으나 최근 인력난이 가중되면서 거의 1백%에 달하며 월 3번달러 수준에서 4백달러로 크게 올랐다. 이같은 수준은 국내에서는 저임에 속하지만 이들에게는 본국에 송금하여 가족을 부양하고도 남는 액수라는 것이다.

 젊은이들의 힘들고 지저분하고 위험한 일, 즉 3D(Difficult, Dirty, Dangerous) 기피현상은 외국인들의 불법취업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공고나 전문대 졸업생은커녕 30~40대의 단순기능공조차도 구하기 어렵습니다.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대거 빠져나간 인력공백을 외국인들이 메워주는 셈이죠.”한 중소기업인의 이 말에서 우리 사회에 불법취업이 크게 늘어날 수 있는 허점이 드러난다. 게다가 이 외국인들은 복지후생을 크게 요구하지 않고 열심히 일하기 때문에 만족해 하는 경영인이 많다는 얘기도 들린다. 비교적 싼 임금에 비해 생산성이 높고 노사마찰 등 껄끄러운 일을 피해나갈 수 있다는 점도 한몫 거든다.

 법무부는 8월말 현재 외국인 입국자수를 1백75만7천5백여명으로 밝히고 있다. 이들 가운데 3개월 이상의 장기 체류자는 4만8천명 가량. 고용비자를 갖고 들어와 합법적으로 일하고 있는 외국인수는 2천2백여명에 이르고 있다. 불법취업자도 증가하고 있는데 현재는 1천5백여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동안 불법취업활동을 하다 적발된 외국인은 7백여명에 달한다.

 그중 필리핀 파키스탄인이 4백여명이고 인도 방글라데시인이 40여명이다. 일본(1만5천명)에 비해서는 그 수가 적지만 꾸준히 늘어나고 있어 문제다.

 외국인 고용이 불법이고 보니 법망을 피해가려는 기업인들의 묘수도 백출하고 있다. 도금업을 하고 있는 한 중소기업인은 “중국이나 베트남의 한국인2세를 기술연수 명목으로 데려와 일을 시킬 작정” 이라고 말한다. 이들을 관광비자로 데려와 법정체류시한이 될 때마다 재입국 절차를 밟아 연장하는 형식으로 부족인력을 충당하겠다는 것이다. 구로공단에는 중국교포와 베트남 한국인2세들이 3~4백명 고용되어 있는 것으로 안다고 이 관계자는 귀띔해주었다.

 또 섬유업계는 해외 현지공장 인력을 국내에서 활용하는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 A물산은 미얀마 현지법인의 기능인력을 6개월 연수생으로 초청, 국내공장에 미싱보조와 잡역직으로 투입할 계획이다. 이를 불법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궁여지책이다.

 실제로 제조업이나 건설현장의 구인난은 매우 심각하다. 한국수출산업공단(구로공단)의 경우 근로자수는 절정기인 87년의 7만4천4백66명(2백60개 업체)에 비해 올 6월말 현재 5만8천7백56명(2백53개)으로 크게 줄었다. 마산수출자유지역에서도 절정기인 89년(3만6천4백11명) 이후 1만5천6백56명의 근로자가 빠져나갔다. 이렇게 인력수급에 비상이 걸리자 동종기업간에 빼오기 경쟁이 붙어 노동시장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다.

 

취업허용 건의에 정부 불허방침 고수

 대기업에 비해 중소기업의 구인난은 더욱 딱하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최근 2백42개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바에 따르면 대상업체의 95.6%가 인력부족을 느끼고 있다고 응답했다. 중소기업들은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공장을 아예 해외로 이전하려는 ‘신판 엑서더스’를 시도하고 있다. 공장자동화 추진으로 어려움을 타개해보려고 안간힘도 써보지만 이것도 중규모 이상의 기업에 해당하는 것이고 소규모 기업은 엄두도 못낸다. 부족인원을 채울 수 없어 일부라인 폐쇄, 생산량 감축으로 중소기업은 가동률을 낮출 수밖에 없다.

 구인난이 심화되자 외국인근로자 취업을 허용해달라는 재계의 건의가 공식 · 비공식경로를 통해 잇따르고 있다. 올해초 신도시건설사업으로 인력이 크게 달린 건설업계가 외국인 수입을 허용해달라고 건의한 것을 시발로 8월30일에는 전자 · 도금 등 업종에서 동남아의 싼 노동력을 수입하게 해달라고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를 통해 정부에 요청했다. 이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강경하다. 노동부와 법무부는 부족한 인원을 충당할 수 있다는 긍정적 효과보다는 내국인 실업, 사회 문화적 갈등 초래 등 부정적 측면이 더 크다고 보고 불허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전문지식 및 기술기능을 가진 사람을 제외하고는 현행 방침대로 외국근로자의 취업을 제한하겠다는 것이다. 올해 9천명, 내년 4만6천명, 92년 10만3천명의 건설인력 부족은 근로조건 개선, 공동직업훈련원 설치에 의한 기능인력 공급확대, 기계화 및 표준화의 지원, 건설인력에 대한 특혜부여 등으로 충당할 방침이다.

 학계에서도 외국인노동력 수입허용은 득보다 실이 많다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한국노동연구원 朴英凡 연구위원은 “산업구조는 자본 · 기술집약적으로 변화하고 성장은 둔화되어 고용흡수력이 떨어지는 반면 생산인구의 중 · 장년화와 여성 경제활동인구의 확대 등으로 경제활동 참여욕구는 커질 전망이다. 따라서 외국노동력의 유입은 70년대 서구처럼 실업문제를 심각하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또 외국노동력의 수입은 근로조건이 열악한 산업을 유지시킴으로써 경제구조를 조정하고 기업의 생산성을 제고하려는 노력을 저해하는 부작용을 가져올 것이라고 전망한다.

 노동부 李萬浩 고용대책과장도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에서 후진국들은 노동력의 자유로운 이동을 주장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우리노동시장의 임금상승에 따라 노동력 수출보다 수입이 더욱 증가해 불리하다”며 노동력 개방이 어렵다고 밝힌다. 외국의 경우 대만이 최근 제한적으로 노동력 수입을 허용했을 뿐 미국 일본 독일 싱가포르 등 대부분의 국가가 외국인취업 규제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외국인노동력 수입의 물꼬를 트는 것은 국내여건으로 보아 적절하지 않다는 주장에 많은 이들이 동감하고 있다. 그러나 제조업체나 건설현장의 심각한 구인난은 시급히 해결해야할 과제다. 이렇게 된 데는 산업인력 수급을 제대로 못맞춘 정부의 정책에 책임이 크다. 인력수급에 불균형을 가져온 요인의 하나로 당국은 영화 <구로아리랑>과 텔레비전 르포 <벌집> 등을 지목한 바 있다. 그 내용이 근로자들의 공단기피 현상을 불렀다는 식의 저급한 원인분석에 정부가 머문다면 인력난은 치유되기 어렵다. 기업들도 자체 인력양성을 기피하고 스카우트라는 소극적 대처만 계속해나간다면 노동시장의 불안은 구조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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