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과 형평, 둘 다 잡으려면
  • 류종구 (한양대교수 · 경제학) ()
  • 승인 1990.1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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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큰 문제 중의 하나는 성장과 형평을 어떻게 조화시키며 또한 어떻게 하면 양자를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느냐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거의 모든 계층의 국민이 인식을 같이 하여 지속적인 성장과 형평을 이룬 배분을 동시에 바라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국민이 어떠한 성장과 형평을 진정으로 원하고 있으며 추구하고자 하는지에 대해서 국민적 합의가 없다는 것이다.

 어떠한 내용의 성장이 요청되느냐에 대해서는 대체적인 합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의 경제발전 초기에 나타났던 강제적인 자본축적과 값싼 노동력을 통한 물량위주의 성장은 그 한계점에 도달하였다. 따라서 이제는 국제경쟁력을 가지기 위해서 기술축적과 품질개량을 통한 성장잠재력의 배양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는 데 국민적인 합의가 모아지는 것 같다.

 그러나 형평에 대한 합의는 불분명하다. 최근 몇년간의 노사문제를 둘러싼 진통을 보더라도, 이 문제에 관해 국민적인 합의가 아직 없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임금협상과정에 나타난 노 · 사간의 주장을 보면, 노 · 사 모두 배분의 형평을 주장하고 있으나, 양쪽이 주장하고 있는 ‘형평’의 개념은 명확하지 않다. 각자가 주장하는 형평이 초기자본주의사회의 수직적인 형평인지, 또는 한국적인 형평이 있다면 그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여기에 대해서 누구하나 뚜렷이 문제를 제기하거나 심도있게 논의해보지도 않았다. 다시 말하면, 우리나라에는 형평이라는 단어는 있으나 그 방향과 지침에 대해서는 국민적인 합의가 전혀 없는 상황이다.

 

평등한 분배는 성장과 함께 추구되어

 성장과 형평은 조화될 수 없는 것일까. 이 문제에 대해서는 후생경제학의 주창자라고 할 수 있는 피구(A.C.Pigou)의 견해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피구는 “어떤 한 사회의 국민소득 중 가난한 자에게 귀속되는 평균소득분이 크면 클수록 그 사회의 경제적 후생은 증대할 것”이라고 하였다 이와 같은 생각방식에 따르면 국민소득이 완전히 균등하게 배분되는 것이 바람직한 상태가 된다.

 그러나, 이같은 평등분배에 대해서 강한 반대도 있다. 반론의 유력한 근거는 평등분배가 생산의 증가를 저해하리라는 것, 즉 분배가 평등화된다면 사람들은 일하려는 자극을 가질 수 없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자기의 능력과 창의에 의해서 획득한 것은 자기의 소유로 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열심히 일하려고 하며, 그 결과 사회의 생산량도 증대할 것이라고 한다. 또한 소득을 평등히 한다면 자본축적이 감소될 것이라고 한다. 축적된 자본에서 소득이 얻어지기 때문에 사람들은 보다 열심히 저축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가능성은 충분히 생각할 수 있다. 따라서, 피구도 무조건적으로 평등분배가 바람직한 것이 아니고 ‘생산이 감소하지 않는 한’이라는 전제조건 아래 성장과 형평의 조화를 강조하였다. 즉, 성장과 형평은 동시적으로 추구되어야 하며 독립적으로 강조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피구의 생각은 우리나라가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좌표를 제시해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면, 이제 성장과 형평을 어떻게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느냐 하는 방법론적인 문제를 생각해보자. 최근 정부의 정책변수에 의한 성장과 형평의 동시적 추구가 가능하다는 연구가 국내외적으로 많이 발표되고 있다. 이와 같은 연구들이 타당하다고 한다면 정책변수들을 보다 명료하게 이해하기 위해, 형평이라는 용어가 가장 많이 쓰이는 소득분배를 생각해 보자.

 

요체는 국민적 합의에 기초한 정책

 소득의 분배는 세가지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먼저 소득의 원천인 각 요소소득은 그들의 시장가격 즉 임금률, 이자율, 이윤율 등을 통해서 결정된다. 둘째로 정부의 재정 및 금융정책은 각 요소들의 실질소득을 좌우한다. 마지막으로 정부의 재정 복지지출은 소득의 재분배에 많은 영향을 준다. 따라서 소득분배의 개선을 위해서는 이들 세부분 모두에서 국민적 합의에 바탕을 둔 정책이 개발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경제정책의 수립 및 집행과정을 개관하면 이제는 이상의 세 과정 중에서 정부의 정책이, 그리고 국민적인 합의(임금률의 경우 노 · 사간의 합의)가 과연 성장과 분배를 조화시키는 방향으로 이루어져 왔는지를 놓고 심도있게 논의해야 할 시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경제정책은 실험실의 실험대상물이 아니다. 그것은 확고한 국민적 합의의 바탕 위에서 지속적으로 추구해 나가야 할 목표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국민적인 합의가 먼저이고 경제정책은 그 바탕 위에서 수립되어져야 한다.

 이와 같이 중요한 국민적 합의도출을 위한 심도있는 토론에 우리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시간과 인내를 투자하였는지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선진국에로의 길목에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경제정책에 대한 국민적 합의와 선택이다. 이것이 없는, 즉 성장과 형평에 대한 확고한 방향과 합의가 없는 방법론적인 경제정책 개발은 무의미하며 그 경제정책은 사회불안만 가중시킬 뿐이다. 이를 위해서, 특히 형평에 관한 시각의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 모두 인내를 가지고 심도있는 논의에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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