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잠을 며칠 설친들 어떤가
  • 정도언 (서울의대 교수 · 정신과) ()
  • 승인 1990.1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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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제 남용하다간 ‘생병’ 얻을 수도

잠만 안오면 수면제를 복용하려는 사람이 많다. ‘불면증치료=수면제’의 등식을 믿으려는 분들이다. 비단 일반인뿐 아니라 의료진 중에도 ‘불면증 치료는 주로 수면제’라는 신념을 가지고 환자를 보는 분들이 있다. 필자의 수면클리닉에서의 경험으로는 3~4년간 끄떡없이 수면제를 장복하면서도 이를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는 환자들이 많았다. 과연 불면증 1차 치료는 수면제처방이며 수면제 장복은 안전한 일인가.

 소위 불면증이라 함은 진단에 의한 특정한 병의 이름이 아니고 단지 잠을 이루기 힘든 증상이 있다는 뜻이다. 그러한 증상을 나타내는 원인질환은 과장하지 않아도 1백가지가 넘는다. 그중 대표적인 것만 나열하면 지속적 정신생리성 불면증, 정신질환에 따라 나타나는 불면증, 수면 · 각성주기의 장애에 따른 불면증상, 신체적 이상이나 중추신경 이상으로 나타나는 불면증상, 각종 약물복용 후 나타나는 불면증 등이 있다. 원인을 알아야 근본적인 치료가 될 것이라는 것은 상식적 이야기이다. 왜 수면제남용이라는 현상이 일어나는가. 잠을 못잔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하루 이틀은 낭만적일 수도 있겠으나 그 이상 계속 잠을 잘 못자게 되면 예민한 사람은 일대 위기로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심한 경우 해결책으로 자살을 생각하기도 한다. 잠을 못자면 불안해지고 짜증나고 몸도 피곤해진다.

오늘밤도 잠들기 힘들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과 오늘은 꼭 잠을 잘자야겠다는 각오가 합쳐진 복잡한 기분으로 또다시 찾아오는 밤을 맞이하게 된다. 이때 한 알의 작은 알약으로 그 태산같은 고민을 해결할 수 있다면 얼마나 근사하겠는가. 바로 여기에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흔히 주변에 신경쓸 일이 있어 며칠 정도 잠을 설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종류의 불면증상은 신경쓰지 않으면 저절로 해결되는 문제이다. 그렇지만 수면제를 먹다가 ‘약중독’이 걱정되어 수면제를 갑자기 끊으면 금단증상으로 불면증상이 나타나 병을 자초하는 꼴이 된다. 이때 울며 겨자먹기로 잠자기 위해 계속 수면제를 복용하게 되면 결국 약으로부터 몸과 마음이 독립하기 힘든 의존상태에 이르게 된다.

 해결방법은 무엇인가 우선 ‘매일 잠을 푹 잘자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일주일에 하루 이틀 잠자리가 편하지 않았다고 큰일날 까닭은 전혀 없다. 괜히 불면증에 걸릴까 불안해 하면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리는 식으로 자율신경이 흥분해 잠들기 힘들어진다. ‘드디어 걱정하던 대로 잠 못자는 병에 걸렸구나!’ 하고 느끼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잠자기는 영 틀려 버린다. 그러니 어쩌다가 잠이 안오는 날에는 차라리 잠잘 것을 포기하는 마음의 자세가 되어야 오히려 쉽게 잠이 들게 된다. 잠은 절대로 노력해서 오는 것이 아니고 때가 되어야 찾아오는 생리적 현상이다.

 만약 일주일에 3~4일씩 계속 잠이 안오는 경우에는 어떻게 하나. 한마디로 수면장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원인을 알고 치료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가장 흔한 불면증유형인 지속적 정신생리성 불면증(불안해서 잠이 안오고 잠이 안와서 더 불안해지는 악순환의 되풀이가 원인인 불면증)의 경우 수면제치료만이 능사가 아니다. 불안의 원인을 다루는 정신치료나 바이오피드백과 같은 자율신경이완훈련이 근본적인 치료방법이다. 신체질환이나 정신질환에 따른 불면증상의 경우 그 원인이 되는 질환을 치료하면 불면증상도 더불어 해결되는 수가 많다. 잠이 안온다고 섣불리 무조건 수면제를 복용하면 약물의존이 되거나, 불면의 원인이 되는 병을 키울 수도 있고 건강을 크게 해칠 수도 있다.

 해외여행을 통해 바깥세계에 대한 견문을 넓히는 것도 좋겠지만 자신의 수면세계에 대해서도 좀더 관심을 가지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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