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새 출발’에 수심이 그득
  • 파리 진철수 유럽지국장 ()
  • 승인 1990.1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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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개국 정상 참가 안보협력회의 ‘질서확립’ 새 장 열어 … 각국 난제는 산더미

“우리나라는 아주 변했습니다. 다시는 옛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세계를 향해 문호를 개방했으며, 세계는 이에 응해 우리에게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지난주 파리에서 열린 유럽안보협력회의(CSCE)에서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한 말이다. 누구나 아는 이야기인데도, 소련의 변화뿐 아니라 동유럽의 극적 변화를 가져오는 데 큰 역할을 한 사람의 말이기 때문에 더욱 실감이 난다.

알바니아를 제외한 전유럽 32개국과 미국 캐나다의 수뇌들이 모인 이번 CSCE 정상회의는 바로 이러한 변화를 확인하고 동·서냉전이 끝난 뒤의 새 질서를 모색하자는 거창한 의도를 가지고 열렸다.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대통령 표현대로 “한 시대의 종말과 희망찬 새 출발을 확인하는” 모임이었다.

 

“유럽에 의미심장한 변화”

그런 의미에서 이번 파리정상회의는 나폴레옹전쟁이 끝난 후 유럽 질서의 확립을 위해 열렸던 1815년의 빈회의에 비유되기도 하지만, 미테랑은 “이 자리에는 승자도 패자도 없으며 한결같이 위신이 당당한 34개의 나라가 모여 있다”고 과거와의 차이점을 강조하고, “우리는 전쟁이나 유혈혁명을 거치지 않고 유럽의 모습이 의미심장한 변화를 일으키는 것을 역사상 처음으로 목격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빈회의 때는 일반 국민의 의사와 관계없이 지도자들이 유럽지도를 마음대로 고쳤지만, 지금은 지도자 따로, 국민 따로 있는게 아니라 민주적 절차에 의해 국민의사가 반영되고 있다면서 동유럽의 정치개혁을 찬양했다.

19일 정상회의가 시작되기 바로 전에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16개국과 바르샤바 조약기구 6개국은 재래식 무기를 대폭 줄이는 군축협정에 조인했으며, 아울러 “이제 적대관계는 끝났으며 우호관계를 엮어나가자”는 내용의 파리헌장을 채택했다.

그러나 CSCE를 발전시켜서 공동안전보장기구를 만들어 나토 및 바르샤바조약기구와 대체하자는 소련과 일부 동유럽 국가의 구상은 실현되지 않았다. 공동안전보장기구 실현은 당분간은 가망이 없다는 게 서방측의 관측이다.

그 주된 이유는 미국의 태도에 있다. 미국은 나토를 통해 유럽에서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입장에 있었다. 그러나 지금 냉전이 끝남에 따라 나토의 존재가치는 애매해지고 있는 실정이며 이에 따라 미국은 유럽의 장래에 관한 결정에 있어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 새로운 체제나 기구를 모색해야 될 입장에 있다.

미국은 유럽에 새로운 체제가 생겨 그 밑에서는 종전처럼 큰 역할을 못하게 될 가능성을 내다보며 고민하고 있다는게 유럽 신문들의 견해이다. 미국이 CSCE의 안보기구화에 관심이 적은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한 체제에서는 전통적으로 서유럽 국가들에게 끼쳐온 미국의 영향력이 소련의 존재 때문에 희석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토를 재정립할 필요는 있으나 나토를 필요없는 것으로 처리해서는 안된다”고 최근 〈워싱턴포스트〉 사설이 주장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미국의 입장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신문은 CSCE가 분쟁해결이나 안보문제에서는 아직 뚜렷한 업적이 없으며, 주로 인권신장 문제에서만 공적을 쌓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공동안보기구 실현에 미국이 ‘걸림돌’

사실 CSCE는 그동안 상설 사무기구도 없이 떠돌이로 운영되어왔다. 이번 파리회의를 계기로 CSCE의 상설기구화는 상당한 진전을 보였다. 규모는 작지만 사무국이 체코슬로바키아의 수도 프라하에 설치될 것이며, 매년 외무장관 회의가 개최될 것이다. 또한 분쟁방지센터를 개설키로 되어 있다. 정상회의도 2년에 한번씩 열기로 합의되었다.

한편 자유선거를 보장하는 참관기구도 설치될 예정이다. 앞으로 CSCE를 소수민족 문제·환경문제 등도 다루는 기구로 발전시키자는 의견도 제시되었다.

원래 CSCE 정상회의는 냉전이 한창이던 1975년에 헬싱키에서 열린 것이 처음이고 이번 파리회의가 두 번째다. 헬싱키선언의 초점은 냉전에 따른 분열과 대립을 완화하자는 데 있었다. 헬싱키선언은 전후 유럽의 질서를 인정하고, 국경의 변경은 평화적 타결에 의해서만 이루어진다고 했으며(이 부분은 소련권의 결속을 다지려는 브레즈네프 독트린에 장단을 맞춘 셈이었다), 정치적 · 경제적 활력을 증폭시키며 인권상황을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그후 동유럽 각국의 반체제인사들은 공산정권의 인권침해에 항거하기 위해 헬싱키선언의 준수를 내세우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헬싱키그룹’이라 하면 인권침해 상황을 모니터하는 반체제적 인사들을 지칭하는 데 흔히 쓰여왔다.

한편, 소련에서 이탈하여 독립하고자 노력하고 있는 발트 3국은 CSCE의 회원으로 참석하겠다고 신청했으나 거절당했다. 미국 등 몇몇 서방측 국가들은 동정적이었으나, 고르바초프의 입지를 약화시킬 염려가 있는 조치는 삼가자는 다른 서방국가들의 주장이 관철되었기 때문이다.

 

밝은 구석없는 유럽의 얼굴

전체적으로 볼 때, 냉전은 끝났으며 유럽에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줄었다고 해서 CSCE 참가자들이 축하무드에 빠지기에는 유럽 내외에 난제들이 아직도 산적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조지 부시 미국대통령은 페르시아만 사태를 적극적으로 토론에 끌어들였다. “우리들이 유럽에서 성공을 이룩하는 데 지침이 되어온 원칙에는 지리적인 한계가 없습니다. 이 원칙들이 페르시아만에서는 난폭하게 유린당했습니다. 만약 유럽과 북미대륙에서 이 원칙들이 존중되어야 한다면, 그것은 전 세계 어디서나 존중되어야 합니다”라고 그는 역설했다.

부시와 제임스 베이커 미 국무장관은 파리회의를 계기로 고르바초프 등 여러 참석자들과 개별 접촉을 갖고, 이라크에 대해 군사행동을 취해도 좋다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를 얻어내는 데 협조해달라는 교섭을 활발히 전개했다.

한편 부시는 이번 회의에서 유럽은 지금 ‘미지의 바다’에 들어서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면서 앞으로 인종간의 갈등, 민족차별, 특히 유대인 차별의 대두 등에 대처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나라별로 보아도 유럽의 현황은 별로 밝은 구석이 없다. 영국에서 유럽통합에 신중론을 펴오다가 당내 발발을 산 대처 총리가 당수 자리에 대한 도전을 받고 약 11년간 지켜온 총리직을 스스로 사임한 것을 비롯하여, 소련에서는 경제사정의 악화와 러시아공화국 등의 독자적인 경제개혁 추진에서 오는 혼란이 겹쳐 과연 고르바초프의 위치가 안전할 것인지 염려스러울 지경이다.

프랑스에서는 10만명의 경찰병력이 배치된 때문인지 회담장 주변의 경호와 치안에는 이상이 없었으나, 회담 개막날인 19일 미셀 로카르 총리가 하원에서 야당의 불신임 공세를 받았다가 몇표차로 불신임을 간신히 모면하는 홍역을 치렀을 뿐 아니라, 최근 고교생들이 학교시설의 개선 등을 요구하며 전국적인 시위를 벌이는 등 사회당 정권이 “위기에 처해 있다”는 평(우파〈르프앵〉지)이 나올 정도이다.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등 동유럽국가들은 시장경제로 이행하는 경제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실업 · 물자부족 등 심각한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그뿐 아니라 소련 불가리아 루마니아에서는 아직도 정치적인 민주화가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시민들이 많기 때문에 불안정한 상태이다.

 

독일 콜 총리만 느긋

동 · 서냉전이 사라질 전망이 서고, 독일 통일이 예상 외로 빨리 이루어지게 되자 이제 평화로운 시대가 오려나보다 하는 안도와 기대가 한때 유럽을 감싸던 것을 사실이다. 그것은 잠시뿐,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그러한 안일한 생각은 무산돼버렸다.

이렇게 전반적인 상황은 어두운 편이지만, 지금 유럽의 주요 지도자 중에는 유달리 속이 편안해보이는 인물이 하나 았다. 그는 다름아닌 헬무트 콜 독일총리이다. 12월초에 거행될 선거에서 그가 이끄는 기민당이 야당인 사민당을 눌러 대승하리라는 전망이 여론조사 등에서 너무나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그는 선거유세 중에 사회당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을 하지 않을 정도로 느긋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서독에서 경제기적을 이룩한 원동력은 국민의 근면성이었다면서 앞으로도 열심히 일하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식으로 일종의 훈시만 하고 다니는데도 청중은 열광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통일의 덕택인 것이다.

선거가 끝나 예상대로 콜 총리가 통일독일 전체의 총리가 된 다음에도 독일은 당분간 구동독과의 경제적 · 사회적 융합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길게보면 유럽 최강의 경제력을 가질 독일의 향방과 처신이 유럽 전체에 끼칠 영향이 점점 커질 것만은 틀림없다.

 

파리헌장 요지

민주주의 · 평화 · 통합의 새로운 시대

유럽에서 대립과 분단의 시대는 끝났다. 앞으로 우리의 관계는 상호존중과 협력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선언한다.

△인권 · 민주주의 · 법치: 우리는 유일한 정치체제로서 민주주의를 구축하고 강화할 책임과 의무를 갖는다. 인권과 기본적 자유는 법으로 보장된다. 소수민족의 종족 · 문화 · 언어 · 종교적 동질성을 존중한다.

△경제적 자유와 책임: 자유와 정치적 다원주의는 시장경제의 발전에 필수적인 요소이다. 시장경제로의 이행은 중요하며 이는 번영을 공유할 수 있게 한다.

△참가국간의 우호관계: 유엔헌장 및 헬싱키 최종 문서에 기초해 모든 국가의 영토보전, 정치적 독립에 대한 군사적 위협과 그 행사를 금지한다.

△안전보장: 유럽재래식전력(CFE) 감축협정의 조인을 환영한다. 새로운 신뢰구축조처(CBM)의 채택을 승인한다.

△통합: ‘독일문제의 최종 해결에 관한 조약’에 만족을 표명한다. 독일통일은 유럽이 항구적인 통합된 질서로 나아가는 데 중요한 공헌을 했다.

△CSCE와 세계: 참가국들의 운명은 다른 국가들의 운명과 결부돼 있다. 유엔을 지지하며 유엔의 국제평화유지 역할이 강화되기를 강력히 희망한다.

 

장래에 대한 지침

CSCE의 모든 원칙 · 조항의 완전한 이행뿐 아니라 균형되고 포괄적인 협력관계의 발전을 위해 노력할 것을 결의한다.

△인권 : 1991년 11월4~15일 오슬로에서 인권에 관한 전문가회의를 개최한다. 소수민족문제에 관한 전문가회의를 91년 7월1~19일 제네바에서 개최한다.

△안전보장 : 92년의 헬싱키 재검토회의 때까지 CFE 차기협상 및 상호신뢰구축에 관한 협의를 완료하도록 노력한다. 화학무기의 포괄적 금지조약을 조기에 타결하며 CSCE회원국이 우선적으로 이 조약에 조인한다.

△경제협력 : 시장경제에 기초한 경제협력은 참가국 상호관계의 중요한 요소이며 번영된 통일유럽을 건설하는 데 유효하다.

△환경 : 환경파괴에 관한 정보교환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유럽환경기구(EEA)의 설립을 환영한다.

 

CSCE의 새로운 구조와 제도

다음 정상회의는 92년 헬싱키에서 열리는 재검토회의와 함께 열며 그뒤 재검토회의와 같은 장소에서 2년마다 정례화한다. 이사회로서의 외무장관회의는 1년에 한번 이상 열며 첫 회의는 91년 베를린에서 갖는다. 사무국(프라하), 분쟁방지센터(빈), 자유선거감시기구(바르샤바)를 둔다. 참가국들의 의회의원으로 구성되는 CSCE 의회의 창설을 모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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