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양 가족 “숨막혀 못살겠다”
  • 김선엽 기자 ()
  • 승인 1990.1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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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경 기관원 노골적으로 감시 … “우리한테 자수시켜라” 공로다툼 치열

“너무 신경쓰이고 긴장돼서 … 하루하루 생명이 단축되고 있는 것 같아요.”

지난 10월4일 국군보안사령부의 민간인사찰 사실을 폭로한 후 은신중인 尹錫洋씨(24)의 셋째 누나 好順씨(32?서울 은평구 갈현동)는 이렇게 가족의 심경을 전했다. 쫓기고 있는 동생에 대한 걱정만도 벅찬데 가족을 조여오는 감시의 눈길 때문에 숨막히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미행을 말할 것도 없구요. 보안사다 시경이다 하면서 집으로 갑자기 들이닥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직장에까지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해대요. 집 근처에는 몇 대의 차가 번갈아가며 나타나 대기하고 있구요. 그래도 전 혼자 몸이니 괜잖아요. 결혼한 언니들은 당국에서 형부는 물론 먼 시댁식구들까지 찾아가 괴롭히는 바람에 마음고생이 이만저만 심한 게 아니에요.” 호순씨는 식구들이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윤석양씨 가족에 대한 본격적인 감시가 시작된 것은 윤이병이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인권위원회 사무실에서 양심선언을 하고 종적을 감추면서부터인 것으로 추정된다. 부모가 모두 작고하고 2남3녀중 두 언니가 출가해 실질적 가장인 호순씨가 미행당하고 있음을 처음 확인한 것도 이즈음이다. “석양이 문제를 의논하기 위해 만난 석양이 친구들과 큰 언니를 차에 태우고 가다 차선변경을 위해 급히 깜박이를 켜고 좌회전을 했는데 뒤에 오던 차가 똑같이 차선을 급변경 하더라구요. 이상해서 다시 한번 비슷한 시도를 해봤지요. 역시 따라오더군요. 미행한다는 것을 굳이 숨기려 하지 않는 눈치였어요.”

그후 윤석양씨의 형 鍾烈(29)씨와 호순씨가 함께 사는 갈현동 집 주변에 상주 감시원이 배치됐다. 이들이 주로 자리하고 있는 곳은 동네 문방구, 세탁소, 건너편 집앞, 대로변 등. 감시기관이 동원하는 차량도 스텔라 포니 르망 봉고 등 다양하며 일단 차량번호가 언론사나 외부에 알려지면 그 차량은 다시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호순씨는 자신이 기록해놓은 차량번호만도 8개나 된다고 귀띔했다. 그뿐만 아니라 오전 8시에 출근하는 호순씨를 직장(강서구 공항동)까지 따라와 호순씨의 차 바로 뒤에 버젓이 주차해놓았다가 오후 9시 귀가길 ‘호위’도 빼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누라 간수 똑바로 해라”

“이제 일상적인 일이 돼버리긴 했지만 아직도 어두운 밤길을 달리는 도중 뒤에서 자동차 불빛이 비치면 소름이 끼쳐요. 퇴근할 때 교통정체를 피해 행주대교-서오능길을 이용하는데, 그 길이 군사도로라 좁고 차도 뜸하거든요. 국민대생 생매장위협사건을 떠올리면 그 사람들이 무슨 일인들 못하랴 싶어 무서워요.”

호순씨는 뒤에서 쫓아오는 차가 기분 나빠 속력을 내다가 마주오던 차와 정면충돌할 뻔한 적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얼마나 놀라고 화가 나던지 … 마음을 진정하려고 시장에 들렀다 집으로 갔더니 그 차는 이미 집 입구 골목 앞에 서 있더군요. 일부러 제 차를 그 차 앞에 주차하고 따졌어요. 더 이상 날 괴롭히지 말고 당신들이 아예 내 동생을 찾아오라구요. 그랬더니 천연덕스럽게 사람 잘못 봤다고 잡아떼더군요.“

호순씨는 ”집에 있을 때도 창을 열거나 밖으로 나가면 동네 아저씨나 아주머니 같은 차림새의 사람이 서 있다 사라지곤 한다.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감시원 같아 숨이 막힌다“고 호소했다. 이 때문에 밤에는 동생 대신 자신이 잡혀가는 악몽에 시달리며 보안사 서빙고분실에서 부동자세로 의자에 앉아 있는 자신의 모습(윤석양씨가 서빙고분실에서의 자기모습을 수기 첫머리에 묘사한 바 있다)을 상상하게 된다는 것이다. 지병 때문에 집에서 요양중인 석렬씨도 각 기관으로부터 걸려오는 전화와 낯선 방문객들한테 시달려 병세가 악화돼 한달 동안 다른 곳에 머물렀을 정도. 석렬씨는 ”지난 7일엔 국방부에서 왔다며 두사람이 초인종도 누르지 않은 채 문을 열고 들어서길래 놀라 밀어냈더니 욕을 하고 돌아갔다“고 말한다. 이들이 전화나 면담을 통해 일관되게 요구하는 것은 윤석양씨에게 자수하도록 권유하라는 것과 만약 자수할 경우엔 필히 자기들에게 제일 먼저 연락해달라는 내용. 호순씨는 이에 대해 ”사안의 본질이나 가족들의 괴로움은 전혀 안중에 없고 각 기관끼리 공로차지 경쟁을 벌이는 것 같아 어이가 없다“면서 다음과 같은 얘기를 전해준다. ”대개 시경 보안사 수방사 치안본부 등에서 연락이 많이 오는데 한번은 이리경찰서 김모 경사가 전화를 부탁하는 메모를 사무실에 남겨놓았더군요.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 전화를 했더니 꼭 자기들한테 자수시키라는 거예요.“

큰 누나 錫禮씨(42?강동구 천호동)는 더 막심한 정신적 고통을 당하고 있다. 감시의 강도는 본가에 사는 호순씨에 비해 세다고 할 수 없지만 기관원들이 남편(42?은행원)의 직장에 나타나 사생활을 들추며 협조를 부탁하는가 하면 먼 시댁식구를 찾아간 적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석례씨가 지난 10월13일 보라매공원에서 열린 ‘보안사 불법사찰 규탄 및 군정청산을 위한 국민대회’에 참석, ‘국민에게 드리는 호소문’을 낭독한 뒤에는 남편이 ”마누라 간수 똑바로 하라“는 ‘핀잔’까지 들었다는 것이다.

둘째 누나 桂順씨(36?인천 간석동)도 사정은 비슷하다. ㅎ그룹 계열사에 근무하는 남편에게 간간이 압력이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감시의 손길은 사촌형, 고모 등 평소 별 내왕이 없던 친척들에게까지 뻗쳐 있다고 한다. 윤석양씨의 수첩에 이들의 연락처가 적혀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고 가족들은 추측하고 있다.

윤석양씨의 친구라는 이유로 윤씨가 탈영한 지 일주일 뒤인 9월30일 보안사에 끌려갔다 풀려난 趙源哉(한국외국어대 4학년)도 ”요즘은 뜸해졌지만 여전히 기관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가끔씩 자취방(동대문구 이문동) 주변에 나타난다“고 전한다. 그는 이어 ”혁노맹 가족들이 석양이의 도피처를 제공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인지 그쪽에도 감시원이 배치됐다고 들었다. 가족을 비롯한 주변인들에 대한 노골적인 감시는 심리적인 부담을 줌으로써 불화를 야기하고 석양이에게 심정적 동조를 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야비한 처사“라고 비난했다.

 

“동생에게 자수 권유할 생각 없다”

그러나 윤석양씨가 자수하거나 잡히지 않는 한 이들이 감시망에서 벗어나기는 힘들다. ‘윤석양 이병을 위한 변호인단’ 중 한명인 朴仁濟 변호사는 “그와 같은 감시행위가 명백한 수사권의 남용으로 인정될 경우 담당자를 징계하도록 요구하고 국가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도 있지만 한계가 애매해 현실적으로 법적용이 어렵다”고 밝혔다. 유?무죄 여부를 떠나 윤이병이 지명수배된 상황이라 현재로선 가족들이 이를 감수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설명이다. KNCC 인권위원회 金英周 사무국장도 “뻔히 알면서도 우리가 자체적으로 가족의 괴로움을 덜어줄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안타까울 뿐”이라고 말한다. KNCC가 민간단체인 만큼 무기는 여론뿐인데, 보안사의 불법적 사찰행태가 폭로됐을 때도 꿈쩍하지 않은 6공화국 정권이 이런 문제를 여론화한다고 해서 도덕적 책임감을 느끼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호순씨는 지금과 같은 상황이 장기화되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고, 생각하기도 싫다면서도 “동생에게 자수를 권유할 마음은 추호도 없다”고 말한다. 법률적 전문지식은 없지만, 동생이 강요에 의해 보안사에서 프락치 노릇을 했고 그런 행위를 더 이상 하지 않으려고 양심선언한 것이 결코 죄가 될 수 없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호순씨는 “석양이의 무죄가 입증돼 설날 전에 꼭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 간절한 소망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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