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구조 미국화하라”
  • 김재일 경제부차장 ()
  • 승인 1990.1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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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압력 새 국면 … 근본적 정책변화 요구

통상과 관련, 미국이 한국에 대해 무차별 공격을 가해오고 있다. 얼핏 조선 말기 대포를 앞세워 통상을 강요했던 미국군함 제너럴 셔만호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최근 미 상공회의소가 한국 통상관계자와의 간담회에서 국내의 과소비 억제운동을 문제삼고, 미국상품 광고시간 확보를 위해 텔레비전 방영시간 연장까지 요구하자 재계와 소비자단체들은 “해도 너무 한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민간단체의 운동을 관제운동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우리 국민에 대한 모독이며 국내 관행과 제도까지 문제삼는 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내정간섭이라는 것이다.

지난해와 올해 봄 미국은 우선협상대상국(PFC) 지정에서 한국을 제외해 한미통산 관계는 순조로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지난 5월 소비자 단체를 중심으로 과소비추방 운동이 일어나자 양국 통상관계는 굳어지기 시작했다. 미국은 6,7월 중 브래디 재무장관, 베이커 국무장관 등 주요 인사를 한국에 파견, 과소비 억제운동에 대한 시정을 요청했다. 그때만 해도 정부는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10월말 크리스토퍼 미 무역대표부 대표보와, 존스턴 상무부 차관보가 방한, 과소비 억제에 대해 노골적인 불만을 표출하면서 사정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11월초 서울에서 열린 한미금융 정책회의에서는 은행 · 증권 · 외환 분야의 광범위한 업무개방은 물론 국내 금리의 자유화를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정부의 ‘부실 정책’도 한몫 거들어

그뿐만 아니라 미국측은 국내 언론도 싸잡아 비난하고 있다. ‘검약이 미덕’인 우리 의식구조를 이해하지 못하고 과소비에 관한 언론의 보도를 정부의 배후조종을 받은 언론켐페인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이다.

지금의 통상압력은 과거와 비교하면 몇가지 중요한 차이점을 보인다. 예전에는 수입규제 · 관세· 환율 문제를 뭉뚱그려 협상했으나 지금은 정해진 때가 없이 한사람씩 건너와서 각 분야를 따로 떼어 협상하자며 압력을 가한다. 따라서 미국과의 협상이 일년내내 계속되고 있다. 좀더 중요한 변화는 과거에는 미국 기업이 미국 정부를 통해 상품교역에 관련된 규제를 풀라고 압력을 가했으나 지금은 한국에 진출한 미국 기업의 한국내 상관행에 대한 불만을 미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문제삼는다는 점이다.

통상전문가들은 이러한 형태의 압력을 중요한 추세로 파악하고 있다. 미국 기업의 한국내 활동에 장애가 되는 시장관행을 제거, 한국 시장구조를 미국화하려는 새로운 차원의 통상압력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는 시장을 개방하기만 하면 됐으나 이제는 관련 국내법과 제도를 바꿔야 한다. 미국이 예전에는 국내 제도의 존재가치와 필요를 인정화되 “관세를 내려라, 수입규제를 완화하라”고 그 정도를 문제삼았으나 지금은 “보조금 제도가 잘못이니 없애라, 외국기업에 대한 차별대우를 없애라”하는 등 근본적 정책변화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한국에 대해 통상압력의 마지막 단계인 구조조정을 요구하기 시작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양국의 경제 자체가 달라 도저히 협의가 안되는 부문의 문제 해결을 위해 법, 관행, 그리고 국민적 가치까지 바꾸도록 하는 성격의 압력을 행사한다는 말이다. 한 예로 미 · 일 구조조정협의를 들 수 있다. 미국은 환율의 급격한 조정에도 불구하고 대일 무역적자가 줄어들지 않자 지난해부터 일본내 경제구조의 조정을 요구, 1년 가까운 협상 끝에 지난 6월 몇 가지 약속을 받아냈다. 대규모 소매점을 설치하도록 허용하고 국내외의 가격차 해소 조처를 취하며 택지공급을 확대한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양국의 구조조정협의 과정에서 미국은 “일본 토지제도가 잘못돼 동경 땅값이 상승하니 절대 농지로 묶인 땅을 풀라”는 요구까지 했다고 한다.

미국의 통상압력 강화와 관련, 우리 정부의 책임도 크다는 지적이 많다. 미국 포드사로부터 수입한 ‘세이블’ 구매행위 정도는 그대로 놔두면 될 것을, 수입차 소유자에 대해 세무조사를 하는 등 ‘호들갑을 떨어’ 별 실효도 못 거두면서 미국의 신경만 곤두서게 했다는 것이다.

한미통상마찰을 해결하는 방법은 서로간의 오해를 푸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가 개방의 필요성에 대해 민간과 진지하게 논의를 계속해 개방을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대외경제연구원의 김정수 박사는 말한다. 미국이 협상하자고 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그들의 불만이 무엇인지를 물어 대처하는 것이 국익에 훨씬 유리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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