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위원회 李寬 위원장 “미래, 교육개혁에 달렸다”
  • 박준웅 편집부장대우 ()
  • 승인 1990.12.06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현재를 조명하기 위해 종전에는 과거를 연구했다. 그러나 시간의 거울을 한바퀴 돌려 미래를 조망한다면 현재에 관한 보다 귀중한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 미래를 내다보며 대비하는 예지를 갖춘 개인과 사회, 국가가 번영과 융성을 누린 것은 역사의 교훈이기도 하다. 대통령자문기구로 작년 6월 출범한 ‘21세기위원회’는 불과 9년 남짓 앞으로 다가온 ‘신세기’에 있어 한국의 위상과 진로를 모색하는 ‘미래탐험’의 역할을 맡고 있다. 우리의 후손들이 좀 더 풍요롭고 높은 질의 삶을 누리며 조국을 세계에서 존경받는 나라로 키워갈 방안은 무엇인가. 21세기위원회 李寬 (60) 위원장은 “미래지향적 국민의식을 고취하며 나아가 미래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여 국가역량을 집결하는 데 위원회의 목적이 있다”고 설명한다.

인천 출신으로 53년 서울공대 기계과를 졸업하고 영국 리버풀 대학원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딴 그는 88년 과기처장관직을 맡기 전까지 울산대 총장 등을 역임하며 20년 가까이 대학 교육에 몸담아왔다. 소년시절 바이올린과 그림에 솜씨를 보였다는 그는 과기처장관 시절 음악회에 자주 가는 장관으로 유명했고, 지금도 틈을 내 손자들을 데리고 현대미술관을 찾는 멋쟁이 할아버지이다. 환갑이 지났는데도 50대 초반의 건강을 유지하고 있는 그는 자신을 포함하여 모든 위원이 “다음 세대를 내다보는 일이기 때문에 우리가 잘못하면 조상으로서 후손에 불명예가 된다는 생각에 사명감을 갖고 일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 21세기위원회에 대해 생소하게 느끼는 국민도 많은데 우선 소개를 좀 해주십시요.

정부조직법에 따라 대통령 직속 자문기관으로 만들어졌습니다. 5년 한시조직으로 만들어져서 94년 5월에 최종보고서를 제출하고 임무를 마치게 됩니다. 4개 분과가 있는데 제1분과가 통일 · 국가위상, 제2분과가 경제 · 복지, 제3분과가 과학 · 기술, 제4분과가 사회 · 문화입니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36명의 위원으로 구성돼 있고 70%가 40대입니다. 다른 자문기관의 경우 원로 중심으로 구성돼 있지만 우리는 한창 일할 나이인 40대로 구성돼 있는 점이 특징입니다.

● 외국에도 이런 기관이 있습니까.

정부 공식기관으로는 흔하지 않습니다. 일본의 경우 21세기를 바라보면서 바람직한 사회를 이루자는 간담회를 작년 11월 가졌습니다. 그러나 이는 법적인 기구가 아니라 수상 밑에 있는 비공식 자문팀입니다. 다른 나라에도 민간차원의 21세기위원회는 여러 개가 있지만 국가적 차원에서 마련된 것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러 나라에서 우리 위원회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카터 대통령도 에너지자문위원회 같은 것을 설치한 바 있지만 종합적인 위원회는 아니었습니다. 대만의 경우 ‘2000년' 보고서를 제출하고 있습니다.

● 그동안의 활동상황이나 실적은 무엇입니까.

작년 6월부터 연말까지는 5년 동안 어떻게 일을 추진할 것인가에 대해 6개 분야로 나누어 집중적으로 연구했습니다. 금년부터 내년 중반까지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점을 파헤치는 일에 주력하려고 합니다. 저희는 전문가와 일반국민을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작년부터 많은 전문가와 함께 ‘토론의 과정’을 거치고 있습니다. 36명의 위원들은 전체 전문가들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대신해서 일하는 것입니다. 또 작년부터 계속 공청회를 개최해, 각 지역 주민의 발표와 토론을 통해 여러 가지 견해를 듣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서울 부산 광주에서 지역분들 중심으로 토론회를 열었고, 금년에는 좀더 구체적인데에 초점을 맞춰 ‘삶의 질’ ‘민족화합’ ‘국가이념’이란 주제로 대전 강원도 제주도 지역에서 공청회를 가졌습니다. 또 대통령에게 분과별 간담회를 건의했습니다. 금년에는 대통령과 4차례의 간담회를 가질 예정입니다. 대통령자문기관으로서 미래에 대한 대통령의 판단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 저희 위원회의 일차적 기능입니다.

● 앞으로 9년 후면 21세기가 되는데 그때의 한국 모습을 전망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현재 저희는 2020년을 목표로 잡고 있습니다. 이는 잠정적인 목표입니다. 문화나 사회는 수십년 앞을 내다봐야 할 것입니다. 경제는 지금 위험한 고비에 있다고 생각되는데 과학기술의 뒷받침 여부가 해결의 핵심입니다. 그동안 과학기술의 기반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선진국으로 진입하기에는 아직 기반이 취약합니다. 이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과제이고 앞으로의 10년은 중요한 시기가 될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저는 국민의 역량을 믿지만 낙관만 해서는 안되는 일이지요. 우리뿐 아니라 세계 대부분의 나라가 계량적 시각에서 떠나 ‘삶의 질’에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경제개발도 유 · 무형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기여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위원회 연구의 핵심입니다. 경제나 정치, 과학기술이나 사회문화 모두가 거기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입니다. 모든 정책은 단선적이고 좁은 시각을 극복해야 합니다. 역사를 의식하고 역사의 흐름 속에서 현재의 위치를 보고 미래를 전망해야 좀더 나은 10년이 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의 10년은 전환기가 될 것입니다.

● 삶의 질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물질적 삶의 풍요에 비례해서 인간소외 · 비인간화 · 정신황폐가 문제되고 있습니다. 정신 문화도 함께 성장 · 발전해야 되지 않습니까.

우리나라는 가난에서 탈출해가는 과정에서 서양문화에 밀려 자기것도 찾지 못하는 현상을 보여왔습니다. 특히 현재의 교육제도는 물질만능을 조장하는 제도라고 봅니다. ‘삶의 질’ 향상은 사회구조의 근본적인 전환을 요하는 문제이지요.

● 최근 일어난 범죄의 상황을 보면 미래에 대해 비관적인 생각을 넘어 절망적이라는 느낌마저 갖게 되는데 인간성 · 도덕성 회복과 관련해 우리 사회의 미래를 어떻게 보십니까.

우리나라 문화는 유교와 불교의 바탕 위에 형성되었습니다. 그것이 19세기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했지요. 이에 따라 가치관이란 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사회가 거의 진공과 혼돈 상태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일차적으로 모든 가정에서의 ‘인간화 과정’이 제대로 되었던들 이러한 상태까지는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만 5세가 되면 생사의 문제가지 판단한다고 합니다. 이 5년 사이에 거의 모든 것이 형성됩니다. 따라서 가정에서의 취학 전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문제는 입시 위주의 교육제도입니다. 지금 일본도 입시 위주 교육을 탈피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산업을 위한 인재양성 차원이 아니라 내면적으로 붕괴된 사회를 구제하기 위해서라는 시작에서 교육제도의 근본적 개혁을 이루어야 합니다. 현재는 기능적인 목적만을 위해 교육이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교육이라고 표현하기도 힘든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위원회의 사회 · 문화분과에서 인간관계를 다루고 있습니다. 현재의 문제가 상당부분 교육에 의해 생긴 것이기 때문에 교육에 의해 해결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물질문명의 발달과 함께 환경파괴가 가장 큰 문제로 등장하고 있는데요.

정책이 역사적 · 종합적 시각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은 특히 공해문제에 가장 잘 적용됩니다. 가령 에너지문제와 공해문제를 동시에 고려하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정책이 나올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정책이 종합적으로, 범부처적으로 마련돼야 합니다. 비근한 예로 ‘국가간 기상변동에 관한 국제회의’에 우리나라는 기상대를 창구로 삼고 있는데, 이는 부총리가 담당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환경문제가 해결됩니다. 국토건설계획도 건설부만으로는 안됩니다.

● 통일에 대해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우리도 더 민주화돼야 하겠지만 아직 북한에는 여행의 자유도 없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통일이 된다는 것은 문제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이 기본적인 자유를 향유할 수 있는 단계가 돼야 할 것입니다. 독일의 경우를 보면 금년에 50조원 정도의 통일비용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독일은 세계적인 알부자인데도 내년에는 재정부담이 훨씬 커질 것이라고 합니다. 국민의 세금부담도 늘어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제 막 채권국으로 넘어가느냐 마느냐 하는 단계에 와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경제부담이 커지면 안정을 유지하기 힘들어지지요. 북쪽의 경제사정은 대단히 어렵습니다. 이런 단계에서 합쳤을 때 동유럽의 경우처럼 민족의 대이동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어요. 그래서 내년에는 정치 경제 과학기술 문화 등 종합적으로 통일문제를 바라보는 작업을 할 계획입니다. 통일은 낭만적인 대상이 아니라 국가의 역사와 미래의 큰 갈림길입니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지요.

● 우리나라는 모든 분야에서 수도권 집중이 심각한데 중앙과 지방 그리고 지역간의 균형적 발전이 시급하지 않습니까.

제가 보기에도 이 시점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수도권의 고밀화와 지방의 영세화입니다. 서울을 제외한 나머지 지방은 완전히 진공상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제가 전문가는 아니지만, 이는 중안집권제라는 특수한 정치문화적 배경이 그 원인이며 이를 어떻게 탈피하느냐가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21세기위원회는 이를 가장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 그와 관련하여 망국병이라는 지역감정을 해소하기 위한 위원회의 대책은 무엇입니까.

제주도에서 ‘민족화합’을 주제로 공청회를 가진 것도 그 방안을 찾자는 뜻에서였습니다. 지난 6개월 동안 서울 부산 광주에서도 그 지방의 다양한 색깔의 목소리를 가진 사람들과 토론을 가졌습니다. 지역감정과 같은 갈등은 전국민이 오랜 세월 노력을 기울여서 풀어야 할 문제입니다. 저는 대학에 있으면서 우리나라 초중고등학교 선생님을 지역적으로 섞자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경상남도 교육회장을 3년 했는데, 접촉대상이 주로 초중고 교사였습니다. 자라나는 아리들이 그 지역 선생님 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 않는가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물론 그 지방의 전통을 유지한다는 장점도 있지만 지역갈등 측면에서 볼 때 단점이 많습니다.

● 이 위원회는 대통령 직속인데 대통령이나 정부여당이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 아니냐, 국민에게 근거없는 희망을 안겨주었다가 실망만 주는 것이 아니냐 하는 견해도 있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이 있고 근거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원래 저희 임기는 3년이었는데 5년으로 바뀌었습니다. 임기가 는 이유는 그러한 시각을 불식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최종보고서를 차기 대통령에게 낸다는 것이 저희로 하여금 정치적으로 엄정중립을 견지하면서 연구하도록 만듭니다. 만약 대통령 주변에서 우리를 이용하려 했다면 위원회는 벌써 깨져버렸을지도 모릅니다. 간섭이 있다면 그만둘 것입니다. 저야 이제 여야에 환심살 일을 할 나이도 아닙니다. 대통령과 간담회를 할 때 대통령이 듣기 거북한 이야기도 서슴지 않고 합니다. 정책에 대한 비판, 큰 사건에 대해 신랄히 비판합니다.

● 앞으로 과제를 풀어나가는 데 있어서 사회과학적 접근이 더욱 필요하다고 생각하느데 공학박사인 자연과학도로서 21세기위원회 위원장의 적임자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20여년을 대학의 책임자로 교육계에 몸담아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제 전공을 교육학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특히 고등교육 분야의 논문을 많이 발표했고 개인적으로도 과학기술사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대학총장을 마치고 과학기술사에 대한 책도 쓰고 후진양성을 하려 했는데 정부각료가 돼 그렇게 못했습니다. 저는 항상 역사 속에서 생각하기 때문에 사회과학이냐 자연과학아냐 하는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울산대학에서는 과학기술사를 강의했습니다. 과학기술처에 있을 때는 국민을 대신해 가장 멀리 미래를 내다보는 것이 임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저를 아는 사람들은 걸맞는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제가 모든 것을 다 해결할 수는 없지만 누구보다도 미래를 내다보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 한국의 미래는 어디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국민의 능력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정치적 색채는 계속 달라질 수 있지만 국민의 능력과 의지 여하에 따라서 미래가 좌우될 것입니다. 민족의 장래에 대한 거의 종교적인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 미래를 바라보기 위해서는 꿈과 비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우리 국민은 어떻습니까.

우리 국민은 라틴민족과 유사점을 갖고 있습니다. 다혈질이고 성질이 급합니다. 차분히 앉아서 생각하는 스타일이 아닙니다. 차분히 앉아야 비전이 생깁니다. 사회 전체가 좀더 차분한 분위기로 가야 합니다. 흔히 사람들은 영국이 경제적으로 망한 나라라고 말하는데 그런 영국도 미래에 대해서는 엄청나게 투자합니다. 호킹 박사도 영국과 같은 환경에서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