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범·순찰 ‘본업’에만 전념
  • 김당 기자 ()
  • 승인 1990.12.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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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제파출소 경관들의 ‘전쟁선포’ 그 이후/“차량 보강돼 기동력 생겼으면”

‘범죄와의 전쟁’을 최전방에서 치르고 있는 국립경찰은 12월1일로 전쟁선포 50일째를 맞이했다. 경찰 내부에서도 ‘80일 전쟁’(10월13~12월31일)이라고 부르는 민생치안 비상사태 속에서 특히 제1선의 ‘말단 소총수’역을 자임하는 파출소 경찰관들이 겪는 ‘전쟁의 실상’은 어떤 것일까. 한 파출소를 통해 그 실상을 살펴보았다.

11월28일 지하철 3호선 홍제역 입구 홍제파출소. 경찰모자를 본뜬 전형적인 2층짜리 파출소 건물인데 서울시내 여느 파출소처럼 얼굴에는 온통 철망으로 ‘베일’을 쓰고 있다. 안으로 드니 벽면 한쪽에 걸린 흑판에 적힌 ‘중요 이행사항’과 ‘범죄와 폭력과의 80일 전쟁’이라는 글귀가 맨처음 눈에 띈다. 그밖에 눈길을 끄는 것은 파출소장이 앉아 있는 책상 뒤켠에 있는 무기고 문에 붙은 영점 표적지인데 이 모든 것들이, 겉으로는 평온하기 그지없지만, 실제로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한다.


10월 이후 순찰함 22개나 늘어

소내 근무자는 파출소장 허광섭 경사(51)와 백창휘 순경(29)뿐이고 다른 당번 근무자 6명은 모두 순찰 근무중이다. 경찰의 민생치안 대책이 지 · 파출소 순찰 중심으로 바뀐 것은 지난 4월. 3월26일에 순경 출신의 전 치안본부장 안응모씨가 내무부장관을 맡고서 4월10일 이른바 C3체제가 출범하고 난 뒤부터이다.

안장관은 3월29일 ‘내무장관 특별지시 1호’를 시달, “경찰서 및 경찰국 중심의 인력과 장비운영을 일선 지 · 파 중심으로 전환할 것”을 지시했다. 안장관은 이를 위해 파출소 근무자를 경비동원을 비롯한 일체의 ‘잡무’에서 해방시켜 ‘본업’인 방범순찰업무만을 맡도록 했다. 안장관은 아울러 파출소 경찰관이 예방순찰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24시간 당 · 비번제를 엄격히 구분해서 확실히 실행할 것을 지시했다.

C3체제(112신고 즉용체제)는 지휘 통제 통신을 뜻하는 영문 머릿글자를 따서 붙인 이름으로 지난 4월10일 서울시경은 기존의 방범순찰차 2백대를 5백20대로 대폭 확충, 이를 시내 5백77개 파출소에 소속시켜 24시간 관할구역을 순찰하도록 했다.

홍제파출소의 관할구역을 야트막한 고은산을 중심으로 한 홍제1동 전체와 홍제2동 일부. 면적은 1.04㎢, 세대수는 4천7백여가구, 인구는 2만1천5백여명이다. 파출소 근무자는 소장과 112순찰차 운전요원 3명을 포함 모두 17명. 여느 파출소와 마찬가지로 갑부 7명 을부 6명으로 24시간 맞교대하는 2부제 근무를 시행하고 있다.

이들이 24시간 동안 순찰하는 순찰선과 순찰함을 보면 도보순찰은 3개선에 30개, 오토바이순찰은 2개선에 20개, 112순찰차의 차량순찰은 1개선에 10개 등으로 모두 6개선에 60개나 된다. 4월10일 C3체제 출범 이전에만 해도 불과 16개이던 것이 22개나 늘어 38개가 되고, 10월13일 ‘전쟁 선포’ 이후에 다시 22개 늘어 60개가 된 것. 이처럼 순찰함이 늘고 순찰업무가 강화됨에 따라 11월1일 경찰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이곳에 배치된 햇병아리 순경들은 아직 업무에 익숙치 못해 “순찰함 찾기를 보물찾기 하듯이 한다”는 게 소장의 지적이다.

이처럼 파출소는 예방순찰 업무가 강화된 것 말고도 C3체제 출범과 ‘전쟁’ 선포를 계기로 크게 바뀌었다. 우선 4월 이전에는 하루 4명씩 2교대하던 것이 5명 2교대로, 11월에는 6~7명 2교대로 바뀌었다. 이곳에도 11월3일 신임순경이 2명 증원되었다. “이것저것 해보다 공무원하는 게 보람이 있을 것 같아 경찰에 입문했다”는 신경렬 순경(26)은 정부의 갑작스런 증원계획(90년부터 3년간 해마다 1만명씩 채용)에 따라 기본교육기간(24주)을 8주만에 떼고 11월1일 중앙경찰학교를 졸업한 ‘조산 순경’이다.

사람이 바뀌는데 걸치는 ‘옷’이 바뀌지 않을 수 없다. C3체제 운영에 필수적인 컴퓨터말고도 팩시밀리와 수사반이 가지고 다니는 감식가방도 새로 들어왔다. 개인 휴대장비도 가스총과 경찰봉 그리고 수갑이 고작이던 것이 지금은 권총 가스총 무전기 수갑으로 바뀌었다. ‘전쟁 선포’ 이후 경찰봉은 거추장스러운 장비가 되어 소내의 벽에 걸린 장식품 신세로 전락한 것도 상징적인 변화이다.

그러나 가장 큰 변화는 일체의 ‘잡무’가 없어지고 ‘당 · 비번제의 확행’으로 순찰업무에만 전념할 수 있다는 것. 밤 8시30분쯤에 감독순시차 들른 민경환 경정(서대문서 보안과장)에 따르면 “이렇게 딱 떨어지는 비번제는 경찰 30년에 처음이자 건국 이래 처음”이고 “젊었을 때 이 정도 근무면 경찰 할 만할 것”이라고 진단한다. 시경 형사기동대에서 3년 근무하다 홍제파출소로 온 김종호 순경(28)도 “당 · 비번제가 확실히 유지되니 사기가 오른 것은 사실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김순경에 따르면 순찰을 열심히 하니 범죄예방 효과가 있고 범죄 발생 건수가 줄어드니 근무가 편해진 것은 사실이나 경찰 ‘할 맛’은 범죄를 수사하고 범인을 검거하는 데 있는데 하루종일 뱅뱅 돌기만 해서 그점이 아쉽다는 것. 아울러 구태의연한 도보순찰 방식을 기동성있는 오토바이 및 차량순찰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는 게 김순경의 생각이다.

 

“지나친 감독순시에 주눅든다”

과도한 감독순시도 이들이 털어놓는 고충중의 하나이다. 본서는 물론 시경 치안본부 등에서 수시로 불시에 들이닥쳐 5분만 순찰업무 교대를 게을리 해도 불호령이 떨어지는 통에 분위기가 살벌하다는 것. 전에는 경찰학교 전술학과 사격조교로 근무했다는 6년경력의 정의화 순경(36)은 “소장님도 빠짐없이 하루에 3번씩 순찰하고 1주일에 고작 이틀 그것도 밤에 귀가하는 형편이어서 이틀에 한번꼴로 푹 쉬는 우리들이야 미안하기 짝이 없지만 하루에 평균 3회씩 들이닥치는 감독순시로 주눅이 든다”고 한다. 또 다른 순경은 “순찰차 운전요원처럼 3부제로 근무하면 더 바랄 게 없겠다”는 말로 고달픔을 우회적으로 밝힌다.

실제로 우리나라 경찰 구조는 피라미드식이지만 시국치안과 민생치안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쫓으면서 근무는 역피라미드식으로 운영되는 관행을 갖게 되었다. 그 대표적 보기는 계급이 높을수록 ‘집에 안들어가기’를 솔선수범으로 여기는 것. 이를테면 홍제파출소 직원들은 이틀에 한번 꼴로 귀가하는데 소장은 주2회, 서대문경찰서장은 주1회, 서울시경국장은 월1회씩 집에 들어가고 경찰총수인 치안본부장은 아예 ‘가출’을 해 버렸다는 것. 이처럼 ‘몸으로 때우는’ 솔선수범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모르지만 이것이 경찰의 고달픈 현실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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