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보수파 이념 새무장
  • 남문희 기자 ()
  • 승인 1990.12.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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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中全會 앞두고 ‘냉전 시각’ 부활, 개혁파에 공세 강화

중국에 ‘신보수주의’라는 새로운 사조가 급격히 대두하고 있다. 최근 중국의 언론 및 이념분야에서 등장하고 있는 이 신보수주의는 7中全會를 앞두고 당내 개혁파와의 투쟁에 몰두하고 있는 보수파의 견해를 대변하는 이론으로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신보수주의는 기존의 전통적 사회주의론(당의 지도성, 사회주의, 마르크스 · 레닌주의, 인민민주독재 등 4개의 기본원칙 고수)을 천안문 사태와 소련 · 동유럽의 개혁이라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재해석한 이론이다. 민주화운동에 비판적이며, 국제정세를 국가 대 국가의 힘의 대결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주요한 특징이다.
일본에서 발행되는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11월22일자)에 의하면, 이 신보수주의 이론의 대표적 인물은 중국사회과학원 연구원인 何新 등 과거 홍위병세대의 일부 이론가들이다. 하신은 천안문 사태 이후 중국 보수파의 대부로 등장한 국가고문위원회 주임 陳雲의 측근으로, 그의 대내외정책 구상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8월21일자 ≪북경주보≫는 중국 국내외 정세에 대한 하신의 견해를 전체 48면의 지면 중 24면에 걸쳐 게재해, 그의 견해가 현재 권력을 잡고 있는 진운 등 당내 보수파의 입장을 가장 정확하게 대변하고 있음을 보여준 바 있다.

하신 등 홍위병 세대들은 문혁 당시 ‘조직되지 않은 대중운동’이 초래한 혼란과 파괴를 목격하면서 대중에 대한 불신감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이 불신감이 천안문 사태와 소련 · 동유럽 사태에 대한 이들의 인식의 바탕을 이루는 한 요소가 되고 있다.

천안문 사태에 대해 그는 “미국 등 외국세력과 결탁한 일부세력의 선동을 대중이 맹목적으로 추종하여 일어난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소련 및 동유럽의 변혁에 대해서는 “대중의 힘에 의한 것이 아니라 미국 및 소련, 서유럽을 중심으로 한 권력정치의 대중조작에 의한 것”으로 분석한다. ‘탈냉전체제’라 부르는 현재의 국제정세에 대해 그는 “대국들의 국익추구와 세력균형의 원리가 기본적으로 관철되고 있다”면서 중국이 이러한 ‘대국 중심의 권력정치’에 대항하려면 “항상 국익을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같은 국익우선의 주장 때문에 일부에서는 하신의 이론을 ‘신국가주의’라고 부르기도 한다.

11월23일자 <인민일보> 사설은 사상 및 언론분야에 파고드는 이같은 신보수주의적 사고의 일단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조직간부는 진정으로 사회주의 이론을 학습하자’는 제하의 이 사설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천안문사태와 소련 · 동유럽 사태의 배경에 대한 분석 부분이다. 사설은 사회주의 변화를 “서방측 적대세력의 ‘평화적 전복전략’에 의한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천안문 사태는 “국내적으로는 부르조아 계급 자유화 운동”으로, 국제적으로는 “제국주의의 ‘평화적 전복’전략과 그것에 반대하는 사회주의의 격렬한 투쟁이었다”고 분석하고 있다. 대중운동의 영향력을 부정하고 국제관계를 국가간의 권력정치관계로 보는 신보수주의적 관점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한때 자취를 감추었던 ‘제국주의’라는 용어가 다시 등장하고 있는 점도 흥미롭다.

최근 중국의 언론계 및 이념분야에서 급격하게 나타나고 있는 이같은 보수화 경향은 현재 7중전회를 둘러싸고 전개되는 당내의 개혁파와 보수파간의 권력다툼에도 미묘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가장 초점이 되고 있는 것은 당내 개혁파의 선두주자인 李瑞環의 거취문제. 지난 10월31일자 <요미우리> 신문은 북경발 현지보도를 통해 “최근 사상 및 선전분야를 담당하고 있는 당정치국 상무위원 이서환의 영향력이 크게 저하되고, 천안문 사건에서 재등장한 보수파 이론가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 11월13일자 홍콩의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지에 따르면, 최근 이서환은 중국지도부가 “앞으로 있을 경제건설과 함께 사회주의적 정신문명의 건설도 강력히 추진할 것”이라고 말하는 등 평소의 입장과는 다른 내용의 발언을 했던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 또한 그의 발언권 약화를 반영하고 있는 대목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같은 언론 및 이데올로기 분야에서의 보수파의 입장 강화는 현재 중국의 각 세력이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경제정책의 방향정립에는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그것은 개혁 · 개방 이전의 폐쇄경제체제로의 복귀를 의미하는가.

 

첨단기술 도입으로 개혁 방안 모색

현재로서는 그럴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지난 10여년간 추진돼온 개혁 · 개방정책은 이미 중국 경제에 돌이킬 수 없는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이다. 하신도 개혁개방정책은 적극적으로 추진해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정책은 조자양과 그의 정책 브레인인 王建 등이 지난 88년 1월에 주장한 ‘국제경제 대순환론’ 및 ‘연해경제 발전전략’ 등에 의거해서는 안된다고 밝힌다. 조자양 등의 노선을 따르다보면 중국은 선진국에서 이전된 노동집약적 산업의 처리장으로 변모해, 선진국 경제에 종속돼버린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대외개방에 있어서 당장은 무리일지라도, 정보산업을 중심으로 한 첨단기술의 도입을 기본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익에 손해가 되는 경제교류는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수파 이론가들이 경제개혁 · 개방정책을 중시하고 있음은 다른 곳에서도 확인된다. 홍콩에서 발행되는 <파이스턴 이코노믹 리뷰>지(11월20일자)는 최근 중국의 보수파 이론가들 사이에 진운을 등소평과 함께 지난 10여년간의 개혁 · 개방정책의 ‘공동의 건설자’로 재해석하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보도했다. “자유주의자들이 사회주의의 개념을 재규정함으로써 급진적 경제정책을 밀고나갔듯이 보수파들도 경제개혁을 ‘진운사상’으로 재규정함으로써 유리한 고지에 서고자 한다”는 것이다. 물론 보수파의 경제정책에 대한 개혁파의 비판, 중앙권력을 강화하고자 하는 그들의 움직임에 대한 지방 省정부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결국 보수파가 기본적으로 경제개혁 · 개방의 필요성을 부정하지 못하는 한 기존의 정책기조는 꾸준히 지속될 것이다. 단지 앞으로 있을 7중전회에서 보수파의 경제정책이 채택되면, 시장경제라는 ‘새’를 가두고 있는 계획경제라는 ‘새장’의 크기가 다소 작아질 것이라는 점은 예상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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