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기업에 고급두뇌 몰린다
  • 김방희 기자 ()
  • 승인 1990.12.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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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높고 개인발전 기회 많아 인기… “국내기업 근무조건 열악한 탓” 지적도

고급인력이 외국인회사로 몰리고 있다. 국내 대기업의 공채경쟁률이 평균 10대 1 정도인데 반해 웬만한 외국인기업의 경쟁률은 1백대 1을 오르내리는 형편이다. 외국기업의 수익성이 악화됨에 따라 한때 주춤했던 외국인기업 선호경향이 다시 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전면적인 개방화 추세에 따른 외국인투자기업의 증가와 그들의 적극적인 유치전략이 고급인력의 취업동기와 맞아떨어진 결과다.

외국인투자기업은 83년 정부가 외자도입법을 개정하여 투자허가절차를 간소화해주고 조세감면 혜택을 주자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하여 올해 10월 현재 2천27개로 집계되고 있다. 투자금액은 63억달러로 추산되고 종업원만도 42만명에 달한다. 87년 이후 노동쟁의가 빈번해지고 채산성이 악화되자 철수를 하는 회사가 늘어나고, 직접투자가 줄어들고 있기는 하지만 지점이 늘어나고 있어 외국인회사는 전체적으로는 증가하는 추세이다. 외국인회사들은 고급인력의 중요성을 인식해서 “졸업시즌이 되면 ‘스카우트’를 하러 좋은 대학으로 달려간다”고 회사관계자들은 말하고 있다.

하지만 고급인력이 외국인회사를 선호하는 이유는 달라지고 있다. 전처럼 단순히 ‘좋은 보수와 근무조건’만이 아니라 다양한 동기 때문에 외국인회사를 찾아간다는 것이 최근에 입사한 이들의 설명이다.

 

‘남녀차별 적을 것’이란 생각에 선택

올해 고려대 영어교육과를 졸업한 柳成夏(26)씨는 자신의 첫직장으로 한국IBM을 선택했다. “보수나 근무조건이 좋고 국내 대기업과 같은 안정성도 갖추었기 때문”이었다. 첨단산업에 종사한다는 점과 사원연수를 외국으로 보내준다는 점도 고려했다. 한국IBM과 같은 다국적제조기업의 국내법인들은 그동안 ‘고급인력’이 변함없이 선호해왔다. 많은 이익을 남기고 있으며 오래전에 진출하여 해당분야에서 안정적 지위를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입사한 지 1년이 다 되어가는 그는 “보수가 국내업체와 큰 차이가 없다는 점을 제외하면 기대했던 것과 큰 차이가 없다”고 만족스러워 한다.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씨티은행에 입사한 吳性珠(女 · 29)씨의 동기는 약간 다르다. 그녀가 외국인은행으로 진로를 정한 것은 “남녀차별이 적을 것”이란 생각에서였다. 외국금융사의 국내지점에 여성 고급인력이 많이 몰려드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물론 보수나 근무환경이 좋다는 것도 매력적인 조건의 하나이다. 입사한 지 5년만에 차장이 된 그녀는 “국내기업에 들어갔을 경우와 비교해볼 때 당시의 선택이 옳았다”고 믿고 있다.

작년에 서울대 대학원 경영학과를 졸업한 李大成(28)씨는 앤더슨컨설팅사라는 낯선 외국인회사에 들어갔다. 이 회사는 국내에 갓 진출한 경영정보관련 컨설팅회사다. 그는 “자기성장의 기회가 많을 것 같아 선택했다”면서, 회사측이 적극적으로 나온 것도 입사를 망설이지 않게 된 이유 중의 하나라고 얘기한다. 서비스시장 개방과 더불어 쏟아져들어오고 있는 컨설팅사 회계법인 광고대행사 PR대행사 등은 아직 영업이나 이익규모가 적은 편이다. 하지만 인력에 대해서는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그는 입사하고 나서 사원 대다수가 일류대출신인 데다가 석사학위 이상의 학력을 가지고 있는 데 놀랐다고 귀띔해준다.

이외에도 ‘고급스러운’ 분위기라든가 ‘자기일만 하면 되는’ 풍토가 마음에 들어서 외국인회사를 지원했다는 사람도 많다. 고급인력의 다양한 욕구를 외국인회사들이 충족시켜주고 있다는 얘기다. 전반적인 사회풍토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외국인회사에 다닌다는 것에 대한 ‘심리적 저항감’이 눈에 띄게 줄었다는 것이다. 외국인은행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 여성은 몇년 전만 하더라도 “당신 어느나라 사람이냐”는 비아냥거림을 흔히 들었는데 요새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고급인력이 외국인회사에 몰리고 있는 현상에 대해서 우려하는 목소리와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고급인력이 외국인회사에 집중되는 것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시각이다. 외국인회사에 있게 되면 어떻든 외국인이나 외국자본의 이익에 봉사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외국인회사의 건전하지 못한 분위기를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노사분쟁을 겪고 있는 웨스트팩은행의 노조 부위원장인 정수이(29)씨는 “자기 일만 하면 된다는 식의 개인주의적인 습성에 젖어들게 되는 것 같다”고 토로한다.

이에 대해 金植鉉 교수(서울대 · 경영학)는 우려할 만한 것이 아니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어차피 기업의 국제화가 피할 수 없는 추세이고 보면 외국인회사에 들어가서 더 나은 기술이나 관리기법을 습득하면 득이 된다는 것이다. 그는 아직 외국인회사에서 국내업체로 옮기기가 어렵긴 하지만 곧 가능해질 것이라고 예상한다.

이렇게 엇갈린 평가 속에서도 고급인력이 외국인회사를 선호하는 경향이 곧 국내 기업의 결점을 지적하는 것이란 주장은 설득력있게 들린다. 보수나 근무조건뿐만 아니라 성차별, 자기성장의 기회 부여 등의 측면에서 국내기업이 아직 미흡한 수준이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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