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조선-냉전, 동아-공존, 한겨레-수정주의
  • 우정제 기자 ()
  • 승인 1990.12.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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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영무씨, 3개월 일간지 이념적 위상 조명… “틀에 꿰맞춘 부당한 논리” 반론도

한국언론연구원은 지나달 23일 ‘독일통일에 있어서 언론의 역할’을 검토하고 우리 언론의 통일지향적 보도방안을 모색하는 세미나를 가졌다. 언론회관에서 열린 이 세미나에는 옛 동서독의 언론학자 2명이 초청돼 주제발표에 나섰는데, “옛 서독의 텔레비전이 통독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는 것이 그 요지였다. 서독의 텔레비전이 동독관련 보도를 제약없이 내보낼 수 있었고, 동독인의 90%가 이를 시청함으로써 동독 지배체제의 붕괴를 가속화했다는 주장이다(발표1. 옛 서독 마인즈 대학 게어하르트 담프만 교수. 발표2. 옛 동독 칼마르크스 대학 볼프강 크라인베흐터 교수).

분단극복을 위한 효율적인 방안의 하나로서 텔레비전 방송의 위력이야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겠으나 이날 발표된 呂永茂씨(<동아일보> 안보통일문제연구소 부실장)의 논문 ‘한국언론의 통일문제 보도와 역할’은 국내 3개 일간지의 남북대화 보도를 구체적으로 비교 · 검증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여씨는 <조선> <동아> <한겨레> 등 세 신문의 2차고위급회담 보도사례를 분석, 세 신문의 이념적 위상을 각기 ‘냉전 · 공존 · 수정주의’ 논리로 구분했다.

그의 이같은 분석틀은 지난 10월 발표된 전남대 김민환 · 김원태 두 교수의 논문 ‘1차 남북총리회담의 보도사례 분석’에서 빌어온 것이다(관훈클럽 · 한국언론학회 주최 최병우 기자 기념 심포지엄). 두 교수에 따르면, “<조선일보>의 ‘냉전적’ 공존논리는 북에 대한 철저한 불신에 뿌리를 두고 있다.” 또 ‘한국 보수언론의 제1골간’인 <동아> <조선> 두 신문은 “동질의 인식을 갖고 있으면서도 <동아>가 대북감정과 적대의식을 <조선>보다 세련되게 우회적으로 표현한” 반면 “<한겨레>는 북한 당국과 언론의 입장주장 행동 등을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조화적이었다”고 파악했다.

이와 같은 인식을 기초로 여씨는 2차회담의 몇가지 공통된 사안에 대한 사설 논조를 비교, 세 신문의 이념적 스펙트럼을 오른쪽 <표>에서 보듯 1차회담시와 동일한 선상에서 분류했다. 먼저 <동아일보>는 ‘남북정상회담의 신화’(90.10.29)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불가침선언과 남북정상회담 개최보다 국내정치의 안정이 시급하다고 역설하고 보장책없는 불가침선언이 깨질 경우 감수해야 할 재난을 경고했다. 또 ‘통일지상주의의 逆理’(90.10.23)에서는 문익환 목사의 ‘감상적 통일론’을 비판하며 낭만적 통일지상론에 경종을 울렸다.

 

담담하게 객관적으로 관찰해 보도해야

같은 쟁점에 관해 <조선일보>는 <동아일보>보다 사흘 앞서 부정적 논평을 했다. ‘남북정상회담에 연연하지 말라’(90.10.20) ‘남북관계 정석은 없다 (90.10.28)의 두 사설에서 조기정상회담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불가침선언에 숨긴 함정’(90.10.28)을 경고했다. 두 신문은 공통적으로 불가침선언과 정상회담 개최에 대한 북측의도와 한국측의 대북 유화자세를 비판 또는 경계했으나 논조의 강도에서는 <조선>이 더 경계적이었다. 이에 비해 <한겨레>는 ‘평양회담에 거는 새로운 기대’(90.10.17)에서 남북 대표들이 서로의 일방적 이익을 앞세우지 말고 통일의 지상과제를 성취하는 데 최선을 다해줄 것을 당부했다. 또한 정부 당국의 ‘불가침선언 수용태세에 기대한다’(90.10.30)며 방북인사의 추가석방을 촉구했다.

2차회담을 취재하고 돌아온 기자의 방북인상기에서도 세 신문은 약간씩 대북인식의 차이를 보였다. <한겨레> 최학태 기자의 ‘평양을 다녀와서’(90.10.21~24)는 <동아일보>의 ‘평양은 지금’(민병욱 특파원 90.10.20~21)이나 조선의 ‘평양 3박4일’(오태진 기자 90.10.20~24)과는 달리 남북한을 등거리 관찰자의 시각에서 보고 있다.

그런데 대표일행과 동행한 기자들의 방북기에는 “냉전이데올로기 취향의 구절이 비교적 많았다”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때로 “밤송이 같은 가시와 빈정거리는 듯한 표현”이 섞여 있는 까닭을 여씨는 제도적 방북경로를 거쳐 따라간 취재였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비슷한 시기에 독자적 방북경로를 택한 기자나 인사의 글에서는 상대적으로 담담한 객관적 관찰이 돋보였다. <중앙일보> 이찬삼 특파원(90.9.18부터 16회)과 서독 킬 대학 전연수 교수(조선. 90.9.22부터 5회)의 방북기가 그 예이다. 이들은 “동족으로서의 애정과 이해심을 바탕으로 북한사회를 보았기 때문에 그들 체제를 비판한 부분에서도 저항감이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씨는 앞으로 한국언론의 북한사회 보도가 이같은 접근법을 따르면 좋을 것이라고 제시했다.

 

6공 들어 보도의 이념적 공간 확장

그는 이제까지 통일문제 보도의 문제점으로 △성급한 추측 · 과장보도 △본질보다 낙수와 가십에 대한 관심 등을 지적하면서 이같은 과잉 · 선정주의 보도관행이 국민에게 섣불리 통일지상주의 환상을 심어 언론에 대한 불신을 조장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밖의 통일문제에 관한 객관적 사실보도의 요건으로 △북한자료의 개방 확대 △남북기자교류의 조속한 추진 △국가보안법 개정 △‘북한 및 공산권 국가에 대한 보도요강’ 철폐 등을 주장했다.

이날 토론자로 나선 愼鏞碩 <조선일보> 논설위원은 크게 ‘냉전 · 공존 · 수정주의’의 세 논리로 논지를 전개한 여씨의 논문을 반박했다. 신씨는 “그같은 인식틀에 대해서는 이미 관훈클럽 심포지엄에서 이의를 제기한 바 있다. 기존틀을 먼저 설정한 뒤 사설의 전체 흐름은 도외시 하고 한두 문장을 뽑아 그 틀에 맞추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일례로 자신이 쓴 ‘북대표를 맞는 온당한 시각’(90.9.4)의 경우 회담의 본질을 흐리는 지엽 · 선정보도를 지양하고 성숙한 국민적 자세를 촉구한 내용이었음에도 “결론 몇줄을 들어내 보수적 냉전논리로 몰아붙인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반론에 대해 여씨는 “보수 중도 진보 극우 등의 논조는 어느 나라 언론에나 다 있고, 또 필요한 일”임을 강조하면서 “다양한 논조의 공존을 통해 균형과 조화가 유지된다고 본다. 따라서 <조선일보>가 보수논리를 고수하며 우리의 자유와 체제를 옹호하는 것은 좋은 일이라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이날 역시 토론자로 나선 崔禎鎬 교수(연세대 신방과)는 통일지상주의의 위험성에 주목하면서 “오늘의 언론은 통일지상주의를 선동할 수도, 진정시킬 수도 있으되 그 열기를 진정시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독일의 통일은 서독 통일정책의 성공이 아니라 비통일정책, 즉 평화정책(동방정책)의 결실이었음을 환기시키면서 “독일은 통일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통일을 얻었다”는 역설적 논리로 ‘환상적 통일론’을 경고했다.

해방 이후 5공까지 크게 보아 ‘보도억제책’으로 불려온 역대정권의 통일관련 언론정책은 6공 들어 통일정책의 변화와 함께 차츰 보도의 이념적 공간을 확장하고 있다. 특히 최근의 남북대화와 남북교류를 계기로 언론의 남북문제 보도에 관한 논의가 활기를 띠고 있으은 매우 반가운 현상이다. 이같은 논의가 계속 진지하게 전개될 때 감시 · 계도라는 언론의 역할뿐 아니라 당국의 통일관련 언론정책 입안에도 유용한 지표가 되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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