씀씀이 헤픈 국민의 돈
  • 박중환 정치부 차장 ()
  • 승인 1990.12.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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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국잡이’ 행정에 각 부처 손발 안맞아 예산 물쓰듯

10개월간 1천85억 낭비…생색 안나는 사업엔 인색

  당신의 돈을 누군가가 유익하게 쓰겠다는 이유로 반강제로 거두어들인후 제멋대로 남용했다고 한다면 이를 좌시하겠는가. 그러나 국민 개개인이 낸 세금으로 짜여진 국가예산을 정부가 낭비해도 국회에서 잠시 시끄러울 뿐 별 탈이 없다. 한국국민이 예산에 대해 너그러운 탓인지, 아니면 국가라는 거대한 조직체가 갖고 있는 ‘합법’이란 힘에 짓눌려서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난해 8월초부터 올해 6월말까지 10개월 동안, 정부가 잘못 거둬들였거나 잘못 쓴 돈이 무려 1천84억8천만원에 이른다는 사실이다.

  이 금액은 자그마치 서울시내에 국민학교 교실 4천3백40개를 지을 수 있는 액수이다. 이런 액수도 감사원의 국회보고를 통해서야 드러난 것이다. 李文玉 감사관이 폭로했듯이, 감사원의 조사라는 것도 한계가 있으니 실제로는 2천억원을 웃도는 수치가 아니겠는냐고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당신이 낸 세금이 어떻게 낭비되었는지 그 ‘낭비현장’을 직접 찾아볼 필요가 았다.

  경부고속도로에서 하행을 계속하다가 대구시에 가까워지면 시커먼 강줄기가 한동안 나타난다. 금호강이다. 11월 갈수기의 금호강은 강이 아니라 온갖 쓰레기와 오폐수가 가득찬 시궁창이다. 강변 곳곳에는 고기의 주검들이 썩으면서 악취를 내뿜고, ‘죽음의 물’이 괴어 있는 웅덩이에서는 물고기들이 희끗한 배를 드러내놓은 채 헐떡거린다.

  이 ‘죽음의 물줄기’는 대구 고령 창녕 삼랑진 물금을 지나 부산 앞바다로 이어진다. 금호강은 영남의 ‘젖줄’이라 불리는 낙동강의 상류이다. 상류의 물줄기가 오염돼 죽는 바람에 하류인 낙동강도 반죽음을 당할 수밖에 없다. 낙동강은 1천만 영남사람들의 젖줄이 이미 아니다.

  건설부는 1천50억원의 예산을 투입하여 금호강의 물을 맑게 하기 위한 ‘기발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 사업은 금호강 상류에 있는 영천댐에서 50여㎞ 떨어진 임하댐의 깨끗한 물을 1초에 3톤씩 영천댐으로 끌어와 이를 금호강 하류로 다시 흘려보냄으로써 ‘죽음의 강물’을 희석시키는 것이다. 다시말하면 ‘완전히 죽은 물’에 맑은 물을 섞어 ‘반쯤 죽은’상태로 만드는 공식인 셈이다. 그러면 금호강은 다소 깨끗해질 것이다. 그러나 하류의 낙동강은 맑은 물이 조금 더 섞이긴 하겠으나 ‘그물이 그 물’일 것이다. 경북 안동군에 있는 임하댐은 올 연말 완공될 예정이며, 문제의 공사는 내년 7월 착공예정으로 설계가 한창 진행되고 있다. 이 공사는 임하댐 상류 1,2㎞ 지점의 약산부락 뒤 고지대로 물을 퍼올린 뒤 영천댐까지 흘려보내기 위해, 산악지역 33㎞에는 지름 3.5m짜리의 땅밑 물길을 건설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공사비가 엄청날 뿐 아니라 준공 후에도 물을 계속 퍼올려야 하기 때문에 한해 시설유지에만도 80여억원의 예산을 쏟아부어야 할 형편이다.

 

첫 단추 잘못 끼워 엄청난 낭비

  건설부 댐계획과 ㅂ계장은 “금호강 수질 개선방안을 다각도로 검토한 끝에 결정한 것”이라며 “금호강의 수질악화를 가중시키는 것은 상류에 있는 영천댐의 물을 포항지역의 각종 용수로 모두 사용하기 때문이다. 갈수기가 되면 흘러내려오는 물이 없으므로 상류의 수량확보가 시급하다”고 이 공사의 타당성을 설명한다. 그의 주장은 일면 옳다. 어떤 강이든 어느정도의 강물이 흘러야만 自淨 작용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애당초 포항공업단지를 조성하면서 장기적인 안목에서 용수확보계획을 세우지 않았고 금호강은 죽든 말든 영천댐의 물만 있으면 된다는 발상을 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름 밝히기를 거부한 수자원개발공사의 한 관계자는 “포항지역의 용지 용수 등 각종 공공수요를 촉발하는 포항제철의 규모를 미리 적절하게 억제해 광양 제2제철소를 보다 빨리 착공했더라면, 임하댐에서 물을 끌어올 필요도 없었을 것이고 영호남의 균형개발에도 도움을 주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임하댐의 물을 끌어온다 해도 포항지역 용수난은 계속돼 머지않아 그 물을 금호강으로 흘려보내기 어렵게 될지 모른다”고 내다봤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운 데서 비롯된 결과에서 보듯 정부의 모든 사업은 계획단계에서 잘못되면 잇따라 불필요한 곳에 예산을 투입할 수밖에 없게 된다. 예산은 이러한 구조적 문제로 남용되는 경우가 많다. 근원적인 수질개선도 아닌 공사에 막대한 국민의 돈을 쏟아붓는 반면, 긴요한데도 당장 생색이 나지 않는 사업에는 지나치게 인색한 나머지 오히려 엄청난 예산낭비를 자초하기도 한다. 이 경우가 바로 한강홍수통제 사업 예산이다. 한강상류에는 24곳에 수위관측소가 있다. 그중 20곳은 매년 강바닥의 변화 등에 따라 달라지는 홍수량을 조사해 두어야만 집중호우시 효과적으로 홍수량을 조절할 수 있다. 그런데도 건설부 산하 기관인 한강홍수통제소가 조사하고 있는 곳은 한강 인도교와 남한강의 여주교 두곳뿐이다. 지난 여름 대홍수 때의 막대한 피해는 홍수량 조절실패가 불러들인 인재였다는 지적도 여기서 나온 것이다. 한강홍수통제소 관계자는 이에 대해 “예산을 반영해주지 않는데 어떻게 합니까”라고 볼멘소리를 한다. 한곳 조사하는 데 드는 돈은 8백만원. 20곳을 모두 해도 1억6천만원에 불과함. 지난 11월18일 국회에서 의결된 올 2차추경예산중 지난 여름 수해복구비로 쓰일 재해 대책예비비 1천8백10억원에 비하면 이 금액은 하잖은 것이다. 오히려 홍수량 조사를 정확히 해 주해를 줄였다면, 막대한 추경예산을 편성하지 않아도 됐을지 모른다. 그나마 내년 예산에 이 조사비를 포함해서 모두 2억5천만원을 요구했으나 대폭 삭감돼 고작 5천만원만 반영됐다는 것이다. 이런데도 지난 국정감사 때 건설부는 의원들에게 항구적인 재해대책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수문관측 및 홍수예경보 시설개선’을 역점사항으로 보고했다. 감사를 하는 의원들도 고개만 끄떡이고 넘어갔다.

 

계획도 없이 국고지원 요청

  예산의 낭비가 중앙정부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서울시가 1백억원에 가까운 예산을 들여 지난 83년 12월 착공, 당초 계획보다 2년 뒤인 88년 6월 완공한 난지도 쓰레기처리공장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난지도의 쓰레기더미 앞 2만7천여평에 들어선 공장이 그 현장이다. 이 공장은 시운전을 한 결과, 정상가동이 불가능한 것으로 밝혀져 방치돼 있다. 이 공장을 뜯어내는 데만 4억원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 공장은 설계 및 시공 일괄방식(덩키방식)으로 계약ㆍ시공하여, 그 책임을 놓고 서울시와 시공업체인 현대건설 사이에 소송이 진행중이다. 재판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서울시 건설행정과 예산집행이 얼마나 주먹구구식인가를 알 수 있다.

  예산의 비효율적인 운용은 관련 부처가 여럿인 사업의 경우 더욱 극명하게 나타난다. 대전 대덕연구단지는 21세기를 선도할 ‘한국의 실리콘 밸리’를 조성한다는 거창한 계획아래 지난 73년 12월 이후 17년간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이 단지는 88년까지 부지조성과 기반시설을 마치고 올 연말 입주를 완료할 계획이었으나 2년을 늦춰야 했다. 입주기관이 늘어나는 등 당초 계획대로 맞춰나가기 어려운 면도 있었지만, 단지조성에 참여한 기관들이 ‘자기 팔 자기 흔들기’식 예산 운용도 한몫을 했다고 감사원 가사는 지적한다.

  이 사업에 참여한 기관은 7개. 부지조성과 진입도로 건설은 토지개발공사가, 간선도로 건설은 건설부가, 지방도로와 용수시설은 대전시가, 전력은 한전이, 통신시설은 통신공사가, 학교시설은 문교부가, 그리고 단지관리는 과학기술처가 각각 맡고 있다. 한국행정의 병폐인 부처ㆍ기관간의 높고 두터운 벽이 이곳에서도 여실히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면 단지내 간선로를 건설하는 건설부는 도로밑에 매설될 상ㆍ하수도 전력 통신 등의 시설계획을 마련하지 않은 채 2차선 도로포장 공사를 종결처리하려해 이들 시설공사를 어렵게 만드는가 하면, 대전시는 상수도 투자계획을 세우지도 않은 상태에서 1백26억원의 국고지원을 요청하는 등 중구난방이었다는 것이다.

  그 와중에 93년 이곳의 국제무역박람회 개최가 확정되자 지난 7월10일 盧泰愚 대통령은 92년말까지의 완공을 지시했다. 이때부터 조기조성위원회를 만들어 총리가 임석한 관련 부처 회의를 갖는 등 부산을 떨고 있다. 지난해 연말까지 무려 7천2백5억원을 들인 ‘21세기를 선도할’ 첨단과학단지 건설사업이 이처럼 손발이 맞지 않은 채 추진되고 있다.

  이밖에도 예산을 물쓰듯이하는 사례는 수두룩하다. 토지개발공사는 분당ㆍ평촌신도시 조성사업을 하면서 한쪽에서 버리는 흙을 다른 현장에서 사용하도록 되어 있는데도 4억3천만원의 예산을 겹치기로 받아냈다. 국방부 조달본부는 대외군사판매에 의한 정산잔액 1천3백만여달러를 즉시 세입조치해야 하는데도 그중 2백25만달러는 무이자로, 나머지는 연리 6%로 각각 미국은행에 예치했다.

  세금은 나라살림의 밑천이니 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예산심의를 얼렁뚱땅 해치우는 정치인에게는 표를 찍지 않는 방법밖에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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