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렁뚱땅 예산심의 국민 돈이 샌다
  • 박중환 정치부차장 ()
  • 승인 1990.12.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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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성’도 정부 일방적 결정…국회 전문기관 설치 시급

국정감사 첫날(11월26일) 과천 제2정부종합청사 경제기획원에 마련된 국회 경제과학위원회 감사장. 이날 감사는 李承潤 경제기획원장관의 업무보고에 이어 여야 의원들의 정책질의로 시작됐다. 하오 5시께 文熹甲 의원(민자당)이 야당의 긴축예산편성 주장을 반박하면서 정부의 재정정책에 관해 여야간에 논쟁이 벌어졌다. (주)泰榮의 민간방송 대주주 선정을 둘러싸고 공방전 또는 일회성 폭로질의로 일관했던 이번 국정감사의 어수선한 분위기와는 대조를 보였다. 

 

  문의원: 현 재정여건은 물가안정이 가장 시급한 80년대초와는 달리 환경보호, 사회간접시설 확충, 농어촌 지원 등에 대한 투자가 요구되고 있다. 이런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재정규모를 歲入 범위까지 넓혀 운용해야 한다. 

  이장관: 같은 생각이다. 대규모 歲計 잉여금이 생겨 세금을 초과징수하고 있다는 오해가 생기고 있다. 세입을 가능한 한 모두 재정기능에 투자함으로써 거둔 세금으로 국민이 필요로 하는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재정 본연의 역할을 회복시키겠다.

  金台植 의원(평민당): 고속성장보다는 안정적인 균형성장으로의 정책선회가 필요하다. 6공은 ‘큰 정부’로서의 관주도 정책을 수행하려한다. 물가불안을 걱정하면서도 팽창예산을 짠 것이 그 증거이다. 국민 총생산액(GNP)에 대한 내년도 예산비중이 정부측에선 15% 수준이라고 하지만, 21개 특별회계와 36개 기금을 포함하면 국가재정의 비중이 25% 수준인 것으로 보고 있다.

  이장관: 예산의 증가율이 몇년새 높았던 것은 사실이다. 지난 80년대 긴축됐던 재정을 정상화시키는 과정으로 봐야 한다. 조세 부담률을 보면 83년 18.6%, 88년 17.9%이며 90년 전망치는 18.8%이다. 과거 10년간 거의 변화가 없다. GNP에 대한 일반회계 비율은 83년 21.1%, 88년 17.6%이며 90년과 91년은 각각 15%와 14.6%로 전망하고 있다. 각종 특별회계와 기금을 포함한 통합예산(국가재정)의 GNP 비중도 83년 21.1%, 88년 17.7%이며 90년 전망치는 17.6%이다. 외국과 비교하면 87년 미국의 통합예산 비중이 23.8%, 84년 프랑스는 45.2%, 87년 서독은 30.2%였다.

  문의원: 자금흐름의 왜곡으로 내년에 있을 지방자치제 선거와 관련해 향락산업이 더욱 번창할 듯한데, 그 대책은 무엇인가.

  김의원: 지자제선거로 인플레가 될 요인은 있다. 그러나 광역ㆍ기초 등 모든 지자제 선거비용을 4조~5조원으로 보고 있다는데, 이를 민주화를 하는 데 드는 비용으로 감수해야 한다. 해외부문에서 1백억달러의 흑자를 냈을 경우에도 7조원의 통화팽창요인은 생기지 않는가. 국제통화기금(IMF)의 충고대로 팽창예산을 축소, 지자제 실시에 따른 민주화의 비용을 흡수해야 한다.

  이장관: 4조~5조원은 총통화증가액의 50%를 넘는 방대한 것이다. 지자제를 연기 하자는 것이 아니라 물가에 그만큼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김의원: 76년 南悳祐 경제팀 이후 정책은 비교우위론을 기조로 이뤄져왔다. 우루과이라운드로 심각한 위기에 빠져 있는 농촌문제에 대해 소홀한 것은 여전히 농업을 다른 산업보다 하위에 두기 때문이 아닌가.

  이장관: 농촌과 지역간 불균형 해소를 위해 노력하고 있고, 이번 예산안에도 그런 정부의 의지가 반영되어 있다. 추곡수매값을 대폭 올렸으면 좋겠으나 예산은 농민을 포함한 모든 국민이 내는 세금으로 짜는 만큼 국가적인 차원에서 효율적으로 이용돼야 한다.

  예산은 ‘정부의 정책의지를 돈으로 표시한 것’이라고 일컽어진다. 내년도 일반회계 본예산안 총 27조1천2백억원을 예로 들면, 도로 항만 등 사회간접시설 확충, 과학기술 향상, 지방재정 및 교육지원 등에 투자액이 많이 늘었다. 정부의 내년 정책은 이 부문에 중점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도표 ‘역점 부문별 예산’ 참조). 앞서 경과위 감사에서 보인 이부총리와 김ㆍ문 두 의원간의 논쟁은 이처럼 정부의 예산규모에 관해 여야가 지닌 상이한 견해와 대립의 단면을 들춰조이고 있다. 이런 논쟁은 일견 부질없어 보일지 모르나 결코 그렇지가 않다. 여야 의원들이 정부측의 자료에 맞설 만큼의 정확한 분석자료를 근거로 예산을 장기간 심사, 토론한 끝에 예산을 의결되어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친 예산이어야만 국민적 합의를 얻었다고 볼 수 있다. 崔 洸 교수(한국외국어대ㆍ재정학)는 “미국의회 예산국(CBO)은 정부가 예산을 편성하는 동안, 의회 나름대로 세금을 얼마나 거둘 수 있고 어떤 기조로 예산을 짜야 할지를 분석한다. 정부 예산안이 국회로 넘어오면 여야 의원들은 제각기 예산국의 자료를 활용해 정부측과 토론하고 절충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심의한다”고 설명한다.

 

겉핥기에도 빠듯한 국회 일정

  한국의 예산은 정부의 일방적인 편성과 국회의 수박겉핥기식 감사 심의로 얼렁뚱땅 해치우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의 예산편성지침을 다음 회계연도 시작 16개월 전에 시달돼, 8개월 동안 정부가 예산을 편성해 의회에 이송하면 나머지 8개월 동안 의회가 이를 심의한다. 한국은 9개월 전에 시달돼 6개월 동안 편성된 뒤 3개월 동안 심의한다(그림 ‘예산편성ㆍ심의과정’ 참조). 지난 64~88년 사이 실제 국회가 예산을 심의한 날짜는 그보다 훨씬 적다. 한 상임위원회(이하 상임위)가 심사한 평균일수는 1.9~10.1일간이며, 심사대상 부처별로는 0.6~3.9일간에 불과하다. 또 예결위 심사 기간은 8~23일간이었다(도표 ‘예산안건 심사 일수’ 참조). 우리의 경우 이런 빠듯한 일정으로 방대한 정부예산을 제대로 심사한다는 것은 아예 기대할 수도 없는 처지다. 특히 올해와 같이 잇단 휴회로 정기국회가 30여일로 단축된 경우 예산심의는 곁핥기에도 빠듯한 일정이다. 미국과 한국을 단순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따를지 모르나, 두나라가 권력 형태상 대통령제와 상임위 중심의 국회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미국 예산제도의 일별은 우리에게 타산지석이 될 법하다.

  한국정부의 예산편성에서 맨처음 드러나는 문제점은 매년 5월말 각 부처가 경제기획원에 제출하는 예산요구액에서 나타난다. 지난 6월중순 정부가 발표한 내년도 전 부처의 요구액은 올해 예산액의 2배인 33조7천억원이었다. 지난해에는 전년에 비해 무려 2배반인 1백59%의 증액을 요구했다. 실현 가능성도 없는 예산을 마구 요청하면 경제기획원은 막판에 거의 일방적으로 부처별로 액수를 잘라낸다. 이 때문에 사업의 우선순위는 무시되기 일쑤이다. 과학기술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연구기기 구입이 시급해 예산을 요청했는데 경제기획원에서 일괄적으로 삭감하는 바람에 차질을 빚게 됐다”고 푸념하고 있다.

 

사업 우선순위 무시되기 일쑤

  辛海龍 국회예결위 입법조사관(경제학 박사)은 ‘한국재정지출의 공공선택적 분석’이란 제목의 논문에서 “66년~88년까지 재정규모가 연평균 24.5%씩 증가하고 있는데도 예산편성이 정부의 독주로 결정되고 있다”고 지적, “일반국민과 기업의 의사가 반영되는 공공선택의 폭을 넓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또 “관료들이 소속 부처의 권한과 위신을 높이기 위해 예산을 다른 부처보다 더 많이 따내놓고보자는 타성이 있는 한 효율적인 편성은 어렵다”고 지적한다.

  정부의 예산편성보다 더 심각한 것이 국회의 예산심의이다. 예산이 ‘정부의 정책의지를 돈으로 표시한 것’이라는 말을 뒤집어 설명하면, ‘예산에 반영되지 않은 정책은 없다’는 말과도 통한다. 예산의 감사와 심의만 제대로 하면 정부의 정책도 제대로 되기 마련이다.

  현행 제도로는 국회의 심의기간을 배로 연장해도 예산심의를 제대로 할 수 없다는데 문제가 있다. 방대한 정부예산을 의원 개개인이 분석, 잘못된 편성 또는 집행 사례를 찾아내 효율적으로 보완시키기에는 한계가 있다. 의원 한사람에게 딸린 인력은 모두 4명. 이중 수행비서관, 여사무원, 차량운전사 등 3명은 사실상 정책보좌 역할을 하기 어려워 고작해야 보좌관 한명뿐이다. 상임위는 16~28명의 의원이 소속돼 있는데, 한 상임위의 전문인력은 6~7명이다. 전문위원 1명, 입법심의관 2명, 입법조사관 2명, 직원 1~2명으로 이들의 역할은 회의운영을 돕는 데 그친다. 더욱 한심한 것은 의원 50명으로 구성되는 예결위의 전문 인력이 6명뿐이라는 사실이다.

  예산심의에 필요한 광범위한 일을 의원과 보좌관 1명의 두사람이 모두 처리해야 한다. 그나마 여당의원은 정부로부터 제공받는 각종 정보와 자료를 바탕으로 소속 당의 정책실 차원에서 지원을 받을 수 있으나, 야당의 경우는 이마저 어려운 실정이다. 이때문에 지난 국정감사 전에 평민당은 국민의 고발을 접수하는 창구를 만들었고, 몇몇 의원은 자기 호주머니를 털어 신문에 ‘고발접수’ 광고를 내기도 했다.

  미국의회는 이러한 기능을 산하 예산국에 맡겨 운영하고 있다. 1974년 설립된 예산국은 예산분석부, 재정분석부, 조세분석부, 천연자원 및 상업부, 인력 및 지역개발부, 국가안보부 등 6개부를 두고, 모두 2백60명의 전문인력을 갖추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석ㆍ박사학위를 갖고 있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라고 신해룡 입법조사관은 말한다.

  의회에 속해 있지만 독립된 초당적 기구인 예산국의 기능을 살펴보면 흥미롭다. 업무시간의 41%를 각종 사업의 타당성 등을 분석하는 데 보내고, 26%는 제안된 프로젝트 법안의 추진시 향후 5년간 원가계산에, 20%는 제안된 프로그램 법안의 원가계간에, 나머지 13%는 계류중인 법안에 대한 예산의 영향을 평가해 회계적인 분석과 대안자료를 만들어 의원들에게 제공한다.

  미국의 실태와 비교해보면, 한국국회의 예산심의가 결국 부실할 수밖에 없다는 당연론이 나온다. 그러나 제도적 보완이 선행 된다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국회 회기(제47조) 예산심의(제54조) 등의 헌법사항은 국회 단독으로 고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국회운영상의 문제점은 국회법을 스스로 고쳐 예산을 효율적으로 심의할 수가 있다. 현행 국회법상 예산결산ㆍ심의에 가장 심각한 문제점은 상임위와 예결위가 애써 심사를 해도, 막판에 예결위의 계수조정소위서 여야간의 정치흥정으로 수정되기 일쑤이고, 이런 관행을 합법화 시켜놓은 것이다.

  이때문에 정기국회 폐회일이 다가오면 여야가 예산액의 삭감폭을 놓고 실랑이를 벌이지만, 66년 이후 예산을 1% 이상 삭감한 햇수는 고작 6년에 불과했다. 그것도 3.3% 삭감한 것이 가장 높다(도표 ‘정부예산안의 수정 비율과 확정예산액’ 참조). 각 정파의 간사 몇몇이 모여 비공개로 운영하는 계수조정소위의 관행이 계속되는 한 ‘국회가 의결한 예산=흥정의 산물’이라는 비난을 면키는 어려울 듯하다.

 

국회 의결 예산=정치흥정 산물

  《시사저널》은 지난 11월중 13대국회 전반기에 예결위에 소속됐던 여야의원 50명을 상대로 ‘국회 예산심의에 관한 의견’을 취합했다. 그결과 응답한 34명의 의원 중 절대 다수인 30명이 국회의 예산결산ㆍ심의에 불만을 갖고 개선돼야 한다고 답했다. 이들 30명 중 15명은 ‘현행 제도와 운영방식 모두를 대폭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도표 ‘의견조사 ①’ 참조). 응답한 의원의 소속 정파를 보면 민자당이 22명(민정계 14명, 민주계 6명, 공화계 2명), 평민당 10명, 민주당 1명 무응답 1명으로 그 비율이 비교적 원내의석 비율과 비슷했다. 정계ㆍ학계 등에서 거론되어온 국회 예산심의제도의 개선방안을 요약한 6개 항목에 대해 찬ㆍ반 의견을 물은 결과, 26명(응답자의 77%)이 현행 특별위원회인 예결위를 상임위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28명(82%)은 연중 예결위를 열어 예산편성시 그때그때 심의할 수 있게 해야 하고, 31명(91%)이 정치공세에 그치는 국정감사는 제도적으로 개선돼야 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30명(88%)은 한국국회에도 미국의회의 예산국과 같은 전문보좌기구가 있어야 하고, 28명(82%)는 대통령 직속기관인 감사원의 예산심사 기능을 국회로 이관시켜 심의 기능을 강화시켜야 한다는 데 찬성했다. 마지막으로 28명(82%)이 미국 일부 주에서 실시하는 정보공개법(SUNSHINE)을 도입, 국회가 항시 예산자료를 열람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데 지지를 표했다(도표 ‘의견조사 ③’ 참조). ‘예산심의를 하는 데 가장 큰 애로 셋만 지적해달라’는 질문에 대해 ‘여야가 예산심의를 정치적 흥정대상으로 삼는 풍조 때문’이란 응답이 23개(68%)로 가장 많았다(도표 ‘의견조사 ②’ 참조). 이밖에 소수의견으로 ‘예결위 위원을 자주 교체해 전문성을 갖추기 어렵다’ ‘예산회계에 관한 특례법을 개폐하고 각종 기금을 실질적으로 심사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국정감사를 한 뒤, 당해 연도 예산결산과 다음해 예산심의를 동시에 하는 것은 순서가 잘못된 것이다. 예산결산을 한 뒤 그 자료를 갖고 국정감사를
하고, 여기에서 얻은 자료를 근거로 마지막에 예산심의를 해야 한다’ ‘여야 간사들의 횡포가 너무 심하다’ 등으로 나왔다.

  이 조사 결과를 보면, 여야를 막론하고 거의가 현행 예결제도와 운영방식은 개선돼야 한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 개선방안은 심의기간을 늘이고, 의원을 보좌해줄 수 있도록 국회내에 초당적인 전문기관을 설치하는 일이 시급하며, 예산심의가 정파의 흥청거리가 되지 않도록 제도적인 장치와 운영의 묘를 기해야 한다는 것 등으로 압축할 수 있다.

  ‘예산에 반영되지 않는 정부의 정책은 없다’라는 말은 국회가 예산심의를 제대로 하면 정부의 정책이 흐트러질 수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국회의 예산심의는 나라살림의 마지막 보루이다. 그 보루의 곳곳이 무너져 구멍이 뚫린 채 방치되고 만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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