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픔’이 몰고온 蘇 연방개편
  • 본ㆍ김호균 통신원 ()
  • 승인 1990.12.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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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회의 ‘고르비 案‘ 승인, 국가연합체제 예고… 각 공화국 경제체제 선택 자유 얻을 듯

소련의 ‘우울한 겨울’은 또다시 시작 되는가. 매년 겨울이면 찾아오곤 했던 소련의 식량난이 또다시 세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런 가운데 경제개혁의 가속화와 연방체제 개편을 위한 움직임도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지난 10월말의 ‘감자파동’으로 대표되는 수확부진은 당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면서 이제 노동력 동원이 힘들어졌다는 데 그 원인이 있다. 과거에는 수확기에 당의 명령이 있으면 기업소장은 공장문을 닫고라도 노동자들을 들판에 내보내야 했는데 지금은 당이 그러한 명령을 내릴 처지에 있지 못하다.

  그나마 수확된 식량은 소비자들에게 도달하기 전에 암시장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소련의 생필품 부족은 이미 고르바초프 이전부터 유명했으며 이는 부패한 당간부와 마피아가 결탁, 공생하는 기반이었다. 브레즈네프 전 서기장의 사위는 그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식량부족이 적절히 통제된 상태에서 유지되었기 때문에 배고픔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페레스트로이카가 진행되면서 갈수록 입지가 좁아진 보수적 당간부층은 식량부족을 의도적으로 조장하면서 한편으로는 개인적으로 치부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불안을 조성, 개혁을 저지하려하고 있다. 말하자면 현재의 식량난은 구체제가 남긴 유산 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보수파와 개혁파의 권력투쟁의 표현이다. 특히 금년들어 그 어느해보다도 극심한 양상을 띠는 것은 공산당의 실권과 몰락해가는 보수파의 사보타지에 기인하는 것이다.

  경제난이 심해지면서 연방공화국들의 주권선언도 가속화되고 있다. 이는 민족문제라기보다는 오히려 사회경제체제 선택의 문제임이 드러나고 있다. 따라서 새로운 연방의 성립은 경제개혁과 불가분의 관계 속에서 진행될 수밖에 없음이 분명해지고 있다.

  가장 일찍 독립을 선언했고 새 연방조약에 서명하지 않겠다고 거듭 선언하고 있는 발트 3국에서는 고르바초프의 민주적 사회주의에 대한 지지가 3%에 지나지 않으며 압도적인 다수가 ‘스웨덴식 사회주의’나 자본주의를 지지하고 있다. 라트비아공화국의 경우 라트비아인은 전체 인구의 절반이 약간 넘는데, 연방탈퇴에 대한 정항이 거의 없다는 사실에서 볼 때 대부분의 러시아계 주민이 연방탈퇴를 지지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들이 공화국의 독립에서 기대하는 바는 경제발전과 함께 생필품이 풍족해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발트 3국의 연방탈퇴는 이들의 일방적인 선언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주권선언 당시 희망했던 서방의 승인과 경제원조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경제사정은 오히려 악화돼왔던 것이다.

  한때 러시아공화국에 우유와 고기를 공급하기도 했던 리쿠아니아는 자체적으로 조직한 세관의 주요 업무가 식량수출을 방지하는 것일 정도로 심각한 식량난에 시달리고 있다. 이 과정에서 민족전선이 분화되고 있고 연방과의 관계를 놓고 란스베르기스 대통령과 프룬스키에네 총리 사이에 의견 차이가 나타나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리투아니아공화국에 불리할 것이므로 결국 새 연방조약 협상에 참여하면서 비로소 연방탈퇴 여부도 해결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소련 연방의 장래와 관련해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공화국은 러시아공화국이다. 그러나 러시아공화국의 독자노선 움직임도 그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지난 11월1일 독자적인 ‘500일 계획’ 추진을 선언한지 3주일만에 이반 실라예프 총리는 “연방 정부의 지원이 없으면 계획의 실현이 불가능하다”고 고백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12월2일 러시아 인민대표자대회는 경제개혁의 가장 큰 쟁점 가운데 하나인 사유지 허용 문제를 놓고 옐친 안에 근본적인 제한을 가했다. 토지에 대한 사유는 허용하되 이 토지를 파는 것은 소유한 지 10년 후에, 그것도 ‘국가에게만’ 팔 수 있도록 결정한 것이다. 이 결정은 토지의 국유원칙하에서 농민에게 연구사용권을 인정하려는 고르바초프 안과 내용이 있어 차이가 없다.

 

새 연방에는 자본주의공화국도 포함

  경제개혁에서 아직 해결되지 않은 큰 문제는 국영기업을 어떻게 ‘탈국유화’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연방탈퇴에 적극적인 발트 3국은 이 문제에서도 가장 급진적이다. 리투아니아공화국은 국영기업 주식의 30%를 무상배분하고 나머지는 경매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고르바초프와 옐친 사이에도 국영기업을 주식회사로 전환시킨다는 점을 제외하면 많은 차이가 있다. 주식을 무상, 또는 유상분배할 것인지, 이 주식의 자유거래를 허용할 것인지에 관해 아직 합의를 보지 못하고 있는데 지금까지의 추세로는 시간이 흐를수록 고르바초프에게 불리할 것으로 보인다. 금년 가을은 소련내 정치세력 판도에 있어서 보수파와 고르바초프의 중앙파 연합이 중앙파와 옐친의 급진개혁파 사이의 동맹으로 대체되는 시기였다. 이 과정에서 중앙파는 점차 급진화하는 경향을 보였고 또한 급진개혁파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화되는 경향을 보였는데, 이는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딜레마이다. 고르바초프는 지금까지 전권을 행사하던 공산당 권력의 약화를 겨냥한 자신의 페레스트로이카가 성공할수록 서기장으로서 자신이 서있는 권력기반을 침식해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공산당을 대체할 인민권력을 수립하는 것은 인민 자체가 구체제 아래서 수동적이고 궁색하게 성장해왔기 때문에 대단히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에 직면하게 되었다. 또한 과도기 상황에서 나타나는 극단주의적이고 국수주의적인 경향에 대처하기 위해 불가피했던 보수파에 대한 양보가 인민에게는 개혁이 너무 더딘 것으로 받아들여졌고 이에 따라 개혁의 주도권은 옐친으로서도 고르바초프를 정면 공격하기에는 아직 역부족일 뿐만 아니라 보수파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고르바초프와 옐친의 동맹은 시대적 요구인 셈이고 위기극복을 위한 협력의 필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4일 소련최고회의는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연방정부 개편안을 압도적 표차로 승인했다. 이 개편안에 따른 연방평의회의 격상은 이제 소련 연방을 국가연합체제로 개편하는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것임을 예고하는 조치라 할 수 있다. 연방의 권한을 둘러싸고 쟁점이 있긴 하지만 지금까지의 추세로 볼 때 몇가지 점은 확인할 수 있다. 새 연방조약안에 제시되고 있듯이 각 공화국에 체제 선택의 자유가 주어질 것이므로 새 연방에는 사회주의공화국뿐만 아니라 자본주의공화국도 포함될 것이다. 이들 서로 다른 체제를 가지는 공화국들을 이어주는 끈은 연방공화국간의 공동시장이 된다. 둘째로 각 공화국이 연방에 귀속하는 정도가 달라진다. 다수의 공화국은 보다 많은 권한을 연방에 이양할 것인데 반해 발트 3국이나 그루지아공화국은 훨씬 작은 권한을 이양할 것으로 보인다. 끝으로 러시아공화국이나 우크라이나공화국처럼 연방 참가 공화국이 다민족 공화국일 경우 그 자체가 자치구들의 연방이 되거나 여러 공화국으로 분할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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