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이 내각제 거론할 수도”
  • 서명숙 기자 ()
  • 승인 1990.12.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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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潤煥 총무 “14총선 후 개헌 가능성” 발언 파문…평민 ‘회의ㆍ긍정’ 엇갈려

 “14대총선 결과에 따라서 내각제개헌은 아직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집권 민자당의 핵심 당직자 입에서 터져나온 이 발언을 놓고 정가가 다시 조심스레 긴장하고 있다.

  내각제에 관한 한 “국민이 원하지 않는다면 13대든 14대든 개헌은 않겠다” 는 김영삼 대표최고위원의 ‘승전보’가 전해지고 나서 한달만에 나타난 정국의 반전 움직임이기 때문이다. 충격발언의 진원지는 5ㆍ6공에 걸쳐 대통령의 ‘킹 메이커’로 불려온 김윤환 민자당 총무.

  11월28일 김총무는 연세대생들과의 간담회에서 3김퇴진의 세대교체 발언과 함께 “14대총선 결과에 따라서는 내각제개헌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며 내각제 논의 부활을 강하게 시사한 것이다. 물론 이 발언은 국정감사와 지자제협상 등 굵직한 현안에 묻혀 한갓 가십 정도로 간단히 처리됐고, 문제의 발언 직후 김영삼 대표의 질책성 전화를 받은 김총무 스스로가 진화에 앞장섬으로써 일단은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다.

  그러나 정가에서는 김총무의 연세대 발언을 준비없이 우연히 터져나온 일과성 해프닝으로 보지 않고 있다. 김총무의 TK그룹내의 비중과 위치 그리고 노대통령과의 관계로 비춰볼 때 이는 민자당내 민정ㆍ공화계의 시각, 나아가 노대통령의 의중까지 드러낸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왜 김총무는 내각제각서파문 이후 어렵사리 봉합된 민자당을 다시 들쑤셔놓을지도 모르는 중대 발언을 한 것일까.

  당사자인 김총무는 “평소 잘 아는 교수가 와서 학생 1백여명 정도가 참여하는 간담회에서 여당 총무로서 잠깐 이야기해줄 수 없겠느냐고 청하길래 아무 준비없이 참석했다”며 간담회 참석 자체가 우연한 일이라고 해명한다. 그러나 “아무 준비없이”를 강조하면서도 “평소 생각을 이야기했을 뿐”이라고 단서를 달아, 그날의 발언이 단순한 ‘실수’가 아닌 ‘소신’임을 인정하고 있다.

  그날의 발언은 크게 두 갈래로 나눠진다. 한 갈래는 민자당의 대권후보와 관련, △새로운 정치환경에서 새 사람을 만들어내야 한다 △밖에서 옹립할 수도 있다 △현재의 지도자 중에서 나올 수 있다 등 여러 선택이 있을 수 있지만 어떤 경우든 14대총선후 경선을 통해야 한다고 밝힌 것이다. 다른 한 갈래는 문제가 된 내각제 부활 가능성 시사이다. 즉 현시점에서 정치권이 풀어야 할 과제로 △군인 정치세대의 종식 △3김 퇴진 △비TK세력의 차기집권 등 3가지를 제시하고 이를 위해서는 내각제가 가장 바람직하며 14대 총선 결과에 따라서는 아직도 가능성이 있다고 대답한 대목이다.

  여기에서 주목을 끄는 것은 ‘내각제 논의’의 개진 시기를 ‘14대총선 직후’로 상정하고 있으며 특히 ‘총선결과에 따라서’ 라는 가정법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계 “혼란만 가중하는 개헌 없을 것”

  김총무가 14대총선을 분기점으로 파악하는 것은 14대총선 결과에 따라서는 ‘야당이 먼저 내각제를 원하는’ 구도가 창출될 수도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김총무가 진단하는 평민당의 대권구도는 ‘일단 14대총선 향방을 보자는 것’으로 요약된다. 그는 “총선에서 평민당의 세력분포가 지금처럼 호남권에 그치는 현상유지 수준에 머물거나, 지금보다 오히려 축소될 경우 야당쪽에서 무리없이 내각제를 수용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따라서 “14대총선이 나타내는 세력분포 결과에 따라 물갈이나 세대교체 등 향후 모든 정치변화의 틀이 결정될 것”이라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이를 확대해석하면 92년 상반기 총선 직후 대선가지 7개월여동안 대권구도를 포함, 그 이해관계와 선택에 따라 다시 한번 정치판이 들썩이는 제2의 정계개편이 가능하다는 논리다.

  김총무 발언은 민자당내에 갖가지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공화계는 내각제에 어느 정파보다도 ‘소신’을 갖고 있는 만큼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공화계는 3당 합당의 내각제 합의가 창당전당대회에서 채택된 민자당의 당헌과 정강에 번듯이 ‘살아 있음’을 잊지 않고 있다. 공화계 중진 ㄱ의원은 “김대표최고위원의 내각제 포기 발언은 자신의 의견을 마치 민자당 전체 의견인 것처럼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고 일축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계의 입장은 전혀 다르다. 최근 민주계는 평소 김대표와 가까운 민정계의 鄭順德 사무총장이 기용된 이후 민정계 일부도 흡수하는 데 성공했다고 확대해석, ‘총재 조기경선’ 주장도 불사하는 등 대통령제를 전재로 한 당권과 대권후보 장악에 열을 올려왔다. 최근 민주계가 김대중 평민당 총재의 국회연설을 입을 모아 극찬한 것도 김총재의 위상제고를 통한 YS-DJ 대권후보 구도를 굳히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YS의 측근인 ㅎ의원은 김총무가 시사한 14대총선 이후 내각제를 둘러싼 정계개편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즉 “내각제를 걸고 이번 총선을 치르더라도 국민의 지지를 충분히 확인할 만한 의석을 확보하지 못하는 한 혼란만 야기된다.  더욱이 총선 직후 거의 막바로 대선을 치러야 하는데 개헌 여부가 논의되면 혼란이 가중될 것이므로 사실상 개헌은 무리”라는 것이다. 내각제개헌 불가를 강변하는 민주계측 논리의 저변에는 국회등원 조건으로 내각제 포기를 강력하게 주장해온 평민당이 방향선회를 하진 않으리라는 ‘확신’이 깔려있다. 그러나 공화계의 한 인사는 “평민당이 주장하는 개헌불가 입장은 인위적으로 3당통합을 한 13대 국회는 개헌을 논의할 자격이 없다는 데 포인트를 둔 것일 뿐” 이라면서 “이 인위적인 통합의 시효가 끝날 14대 국회에 이르면 평민당측에서 충분히 내각제를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민주계의 판단을 일축하고 있다.

 

‘대권모험’ 피해 내각제로 실속 차릴수도

  평민당측은 일단 공식적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핵심 당직자 가운데 ‘14대총선에선 논의가 가능하다’는 점만은 수긍하는 인사가 없지 않다. 김총재 자신이 여러 차례에 걸쳐 “국민이 동의하지 않는 내각제개헌은 불가능하다”고 언급했을 뿐, 내각제 자체가 근본적으로 불가하다는 입장은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평민당의 한 중진의원은 민자당이 내각제개헌을 공약으로 내걸고 14대총선에서 과반수를 얻을 경우 내각제개헌을 ‘고려’하겠다고 여러 차례 강조한 김대중 총재의 발언을 상기시키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두가지 장애가 따른다. 하나는 민자당이 YS진영과의 합의를 이뤄내 내각제개헌 공약을 내걸 수 있느냐 하는 점과, 평민당의 ‘고려’가 과연 확실한 언질이 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김윤환 총무도 “51%의 지지만 있어도 내각제를 수용하겠다는 확실한 보장을 평민당으로부터 받아내지 않는 한 민자당이 14대총선에 내각제를 공약으로 걸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결국 내각제로 갈 가능성은 14대총선 결과를 통해 평민당 스스로가 대권장악의 역부족을 읽고 ‘내각제’로 실속을 차려야겠다는 판단을 내려야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김총재의 한 측근인사도 “평민당이 14대총선에서 여전히 호남지역당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할 때는 기자들이 추측해온 형태로 갈 수 밖에 없지 않느냐”며 총선결과를 통한 내각제 선회 가능성을 간접 시인하고 있다. 즉 개헌과정에서 민자당으로 하여금 내각제를 발의하도록 하고 흡사 ‘당하는 형태로’, 마지못해 내각제를 수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김총재로서는 불투명한 대선의 모험보다 내각제하에서의 확실한 위상정립을 통해 실속을 차리면서 평생 멍에로 짊어져온 지역감정의 고리를 푸는 계기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사나리오 역시 14대총선 결과가 김총재로 하여금 대권의 꿈을 확실히 포기하게 할 만큼 평민당이 계속 ‘호남당’으로 머물거나, 혹은 지지 축소로 나타나는 경우라는 가정 아래서만 유효하다. 또 평민당 일각에서는 김총재가 그 어느때보다도 유리하게 조성된 조건하에서 오랜 대권의 꿈을 그리 쉽게 포기하겠느냐 하는 회의론이 완강하게 제기된다. 최근 ‘범야권 통합신당’ 추진 움직임은 지자제와 총선에서 지역성을 극복하고 대권의 꿈을 좀더 구체화하기 위한 시도인 만큼 평민당의 내각제수용 가능성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또 내각제를 ‘장기집권 음모’로 보는 재야의 비판과 대통령제를 선호하는 국민정치를 어떻게 설득하느냐 하는 ‘부담’도 결코 쉽게 털어내지 못하리라는 지적도 있다. 내각제의 가장 큰 이점으로 거론되고 있는 지역감정 극복만 하더라도 DJ가 여러 차례 공언한 부통령제의 도입으로 돌파구를 얼마든지 열 수 있다는 반론도 있다. 더 근본적 장애요인은 이번에 문제가 된 “비TK세력의 집권과 지역감정 극복”을 내세운 발언자체가 TK핵심세력의 입에서 터져나온 점, 따라서 이 발언의 순수성에 대한 평민당의 회의다.

  어쨌든 14대총선의 불은 공천권을 둘러싸고 내년초부터 당겨질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김총무의 예견대로라면 이 총선은 차기 대권구도의 내용과 직결된 것인 만큼 민자ㆍ평민당은 사력을 다한 혈투를 벌일 수밖에 없다. 그 결과에 따라 내각제개헌 논의는 또 다시 온 나라를 뜨겁게 달구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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