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국정감사를 두려워하랴
  • 조용준 기자 ()
  • 승인 1990.12.20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재탕ㆍ삼탕 추궁 많고 지적된 비리도 고쳐지지 않아

국회법 개정하고 감사원을 입법부 산하로 옮겨야

  국정감사에 구멍이 뚫려 있다. 16년만에 부활, 시행 3년째를 맞은 국정감사가 해를 거듭할수록 본래의 목적과 기능에서 일탈해 ‘정치권의 놀음’ 내지는 한갓 일과성 연례행사로 그치고 있다.

  “같은 동료 의원이지만 그들이 감사장에서 질의하는 것을 보면 녹음기를 틀어놓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한건만 있으면 그걸 가는 데마다 울궈먹는다. 똑같은 이야기 가지고 본부감사에서도 한시간, 하급기관에서도 한시간… 미칠 노릇은 그 내용을 다른 의원이 또 질의한다는 점이다. 미국쌀도입 문제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국회 상임위서 이미 세 번씩이나 다뤘던 내용이다. 그런데도 언론이 받아주니까 또 꺼내 아까운 시간만 낭비하고 있다. 이러니 수박 겉핥기요, 녹슨 칼들고 춤추고 솜방망이만 휘두른다는 말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농수산위 ㅂ의원ㆍ민자당).

  “이번 국정감사를 통해 여당의원은 정치인이라기보다 정치 월급쟁이라는 사실을 절감했다. 의원 스스로 권리를 포기하고 현실에 안주하려 한다. 국정감사가 무엇인가. 행정부를 비판하고 견제하라는 것인데 어째서 여당의원이라고 행정부와 같은 편이 될 수 있나. 여당의원이 행정부 관료와 자기를 동일시하니까 행정부의 시녀라는 소리나 듣는 것이다. 이번 국정감사서 뭔가 좀 이야기하려 했더니 여기저기서 ‘협조’를 부탁한다는 말이 들어오더라. 말이 좋아 협조이지 거의 명령조로 발언을 제한하는 분위기였다”(건설위 ㄱ의원ㆍ민자당). 

  국정감사의 문제점은 크게 두가지로 나눌 수 있다. 제도 자체의 문제점이 그 하나이고 감사를 하는 국회의원과 그에 임하는 행정부 관료의 태도가 그 두 번째이다.

 

함량미달 질문 헤아릴 수 없을 정도

  의원이 자질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은 지난 88년 국정감사 이래 매년 지적돼온 사항이지만 금년에도 역시 마찬가지였고 그 종류 또한 매우 다양하다. 수준 미달의 질문, 또는 토막 질문의 경우는 너무나 비일비재해서 손꼽을 수조차 없을 정도이고 △야당 의원들이 질문할 내용을 여당 의원들이 그 정도만 완화시킨 채 장시간 동안 앞서 질의, 예봉을 꺾어놓는 김빼기 작정의 경우 △정책질의는 뒷전인 채 민원 해결을 목적으로 하는 압력성 발언만을 늘어놓는 경우 △상임위에서 여러번 다뤘던 사항을 재탕, 삼탕하는 경우 △텔레비전 중계나 신문 보도만을 의식, 마감 시간에 맞춰 질문만 장황하게 늘어놓고 답변은 듣는둥 마는둥 심지어는 아예 감사장에서 떠나는 경우 △보좌관들이 작성해준 질의서를 사전에 한번도 검토하지 않아 실수를 연발하는 경우 등 불성실한 감사의 표본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번 국정감사기간에 어느 상임위에서나 공통현상으로 나타났지만, 특히 지난 3일 문공위에서 참고인으로 나온 태여(주)의 尹世榮 회장에 대한 민자당 崔在旭 의원과 평민당 趙洪奎 의원의 질문은 여당의 김빼기 작전과 ‘수준 미달’을 한데 묶어놓은 전형적인 예다. 이날 최의원은 태영(주)과 관련된 모든 ‘說’을 무려 1시간40분 동안 늘어놔 다른 질문자의 예기를 완전히 꺾어놓았다. 조의원의 질문과 윤사장의 답변을 일부 옮겨본다.

문: 선경 최회장과 인간관계가 깊은가.

답: 인사도 아직 없는 상태이다.

문: 노태우 대통령과 인간관계가 있는가.

답: 전혀 없다.

  물론 태영(주)의 배후에는 선경그룹이 있다는 항간의 소문 때문에 나온 질문이었겠지만, 조의원의 질문은 마땅히 태영(주)의 윤사장과 선경의 최회장이 구체적으로 어떤 관계인가를 먼저 밝힌 다음, 차근차근 그 배후를 추궁했어야 했다.

  농림수산위에 속해 있는 鄭東星 체육부장관의 경우는 감사장을 이권청탁장으로 활용한 대표적 예라 할 수 있다. 정장관은 감사 마지막 날인 3일 농수산부 본부 감사에서 감사 시작 전에 ‘한국 마사회의 체육청소년부 관장’ ‘축산업협동조합과 축산진흥기금’이란 유인물 2장을 해당 의원들에게 직접 나눠준 뒤 농수산부 축산국장을 불러 무려 40분 동안 질책을 했다. 이날 정장관이 축산국장을 불러 질책한 배경은 이번 정부조직법 개편을 틈타 체육부가 농수산부 관할의 한국마사회를 직접 관장하겠다고 나섰지만 농수산부의 반발이 거셀 뿐만 아니라 그중에서도 특히 축산국장의 ‘소신’이 완강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이날 정장관은 감사라기보다는 막대한 이권이 걸려 있는 마사회를 체육부로 가져오기 위한 로비와 ‘두통거리’인 축산국장을 ‘손봐주기 위해’ 감사장에 나온 셈이다. 그러나 이날 정장관의 로비는 같은 민자당 소속의원들마저 비난하고 나서는 데다 축산국장도 “그대로는 못내놓는다”고 버티는 바람에 별무소득으로 끝나고 말았다.

 

鄭東星 장관은 노골적으로 이권청탁

  의원들의 감사태도보다도 근본적으로 중요한 문제는 매년 똑같은 상임위에서 똑같은 문제가 작년과 별 차이도 없이 반복돼 거론된다는 점이다. 각 상임위에서 매년 같은 애기가 되풀이된다는 사실은 감사장에서의 호된 질책에도 불구하고 지엽적인 사항을 제외한 근본적인 문제들은 전혀 시정되지도 않고 있고, 행정부 스스로 시정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의원들도 감사 이후에는 어떻게 시정되고 있는지 눈여겨보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라 할 수 있다. 국회의원들은 한 건 건수를 잡아 언론에 이름이 대서특필만 되면 된다고 여기는 ‘한건주의’에, 각 행정부는 감사기간만 무사히 넘기면 된다는 ‘무사안일주의’에 빠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해 감사 직후 민정당에서 작성한 <89 국정감사 총평>을 살펴보면 행정부의 문제점으로 △진실을 감추려는 식의 저자세로 소신이 결여된 모습을 보였다 △감사를 일과성 요식행위로 여겨 현장만 모면하면 된다는 식의 자세를 노정시키는 등 안이한 태도를 보였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처럼 전년도 국정감사에서 지적을 받은 사항이 올 감사에서 조금도 시정되지 않은채 되풀이 지적된 예는 무수히 많다. 금년도 재무위감사의 경우를 한 예로 살펴보자.

  “30개 재벌에 대한 여신 총액은 35조9천억원으로 은행 총여신의 39.2%다. 세계 어느나라에 또 이같은 편중여신이 있는지 韓銀 총재는 밝히고 시정대책을 말해보라” (88년 감사ㆍ평민당 洪英基 의원).

  “전체 한은특융 1조7천2백21억원 중 19.7%에 불과한 3천3백90억원만 회수하고 그것도 연리 8%의 유동성자금으로 회수해 되돌려주는 등 사실상 특융의 회수를 유보하고 있다” (89년 감사ㆍ평민당 金台植 의원).

  “한은특융 1조7천2백억원 중 10월말 현재 회수실적은 3천7백62억원에 불과하다. 지난해 국감 때 한은 총재가 특융 조기회수 방침을 밝혔는데도 이처럼 회수 실적이 저조한 것은 어떤 의혹이 있는 것 아니냐” (90년 감사ㆍ민자당 金德龍 의원).

  지난 3년간 한국은행에 대한 감사내용을 살펴보면 한국은행은 여신과 특융을 통해 재벌들에게 상당한 특혜를 주었다는 사실을 매번 지적받았고, 또한 한은총재가 특융을 회수하겠다는 약속을 해놓고도 이를 어겼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이는 한국은행이 국정감사를 한낱 연례행사쯤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재무위의원들은 매년 ‘공염불’만 외우고 있는 셈이다. 김덕룡 의원은 지난해 감사에서 “지난 임시국회 때 한국은행이 재무부의 허가없이 30대 재벌기업의 부동산 보유현황을 밝혔다고 재무부가 펄쩍 뛰더니 얼마 후 한은 관계자가 사실상 좌천인 해외전보 명령을 받았다”고 지적한 바 았다.

  행정위의 서울시 감사도 마찬가지다.

  “78년 서울시가 아산사회복지재단(이사장 정주영)에 강동구 풍납동 시유지 5만4천평을 당시 시가인 평당 40만원이 아닌 평당 10만원씩 수의계약으로 매각해 1백62억5천만원의 이익을 보게 한 근거가 무엇이냐”(88년 감사ㆍ민주당 金佑錫 의원).

  “서울시 건설관리국은 88년부터 89년 사이 설계용역 24건 (용역비 67억7천5백40만원)이 100% 특정업체와 수의계약했으며 이 설계용역비의 30% 내지 40%는 관계 공무원에 대한 로비자금으로 사용되고 있다” (89년 감사ㆍ민주당 徐淸源 의원).

  “서울시가 87년부터 90년 사이에 지목 변경을 한 총면적 1천9백88만평 (2천6백43건)중 특정기업 민간인을 위해 전답 임야를 대지로 변경해준 것이 7백10건, 4백만평으로 밝혀졌다. 특혜성 형질 변경과 그린벨트내 건축 등 승인허가와 관련한 의혹을 밝혀라” (90년 감사ㆍ평민당 朴實 의원).

  서울시에 대한 감사에서 매년 빠지지 않는 항목이 △각종 공사의 수의계약 △예비비 변칙지출 △재벌에 대한 특혜 등 각종 의혹과 비리에 관한 내용이다. 사실 위의 3가지 예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내년의 감사에서도 위와 비슷한 종류의 질문은 또 나올 것이고 그 때마다 서울시장의 판에 박힌 답변 역시 뒤따를 것이다.

 

3당합당 뒤 자성의 목소리 사라져

  물론 국정감사는 없는 것보다는 낫다. 아니 꼭 필요한 제도이다. 그러나 모든 감사가 매년 이런 양상으로만 끝난다면 정치의 선진화는 물론 총체적 난국에 대한 치유 역시 아직도 멀었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지난해만 해도 국정감사가 끝난 뒤 이런 식으로 감사를 진행할 수는 없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정치권에서 많이 나왔던 것이 사실이다. 당시 민정당 朴逡圭 대표위원도 현행 감사가 내실을 기하지 못하고 있다는 전제하에 국정감사ㆍ조사제도의 연구를 위한 위원회를 국회내에 구성할 것을 제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자성 움직임은 곧 3당합당과 함께 사라져버렸다.

  “오죽했으면 문공위에서 제발로 걸어나가 이슈없는 상공위를 택했겠는가. 수출 잘되게 하자는 데는 여야가 없으니까 말이다. 그런데도 한참 추궁을 하다 문득 아 참 내가 여당의원이지 생각하고 실소를 금치 못한다”는 상공위 소속 민자당 ㄱ의원의 말은 금년도 감사에서 왜 행정부 관료가 목소리를 높이고 자료제출에 극히 불성실한지, 왜 정치권에서 국정감사 제도에 대한 개선의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민자당의 朴泰權 의원(민주계)은 “우선 국정감사법의 시행세칙을 만드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모법이 있으면 시행령이 있어야 하는데 세칙이 없으니 질문의 재탕, 삼탕을 막을 길이 없고 국정감사인지 단순한 대정부 질문인지 분간이 안간다. 이대로는 20일이 아니라 한달을 감사해도 진전이 없을 것이다”는 주장이다. 사실 국정감사가 시작된 지 3년이 되도록 시행세칙이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정치권 모두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평민당의 趙淳昇 의원은 “전문인력의 고용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의원들의 세비를 올려 전문인력을 더 고용할 수 있도록 한다든지 각 상임위별로 세무사 학자 변호사 등 관계 전문가를 필요에 따라 고용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에선 국정조사에 한 의원이 40만달러까지 사용할 수 있다. 그러다보니 의원 한사람이 평균 16명 정도의 전문인력을 고용한다. 정책보좌관 중 2~3명은 적어도 대학의 부교수급 이상이다. 그러니 행정부의 비리가 다 드러날 수밖에 없다. 미국 대학에서는 국회에서 이런 인턴쉽을 거치지 않으면 교수로 진급하지 못한다. 또 우수한 학생들도 1년씩 국회에서 시간제로 일을 한다. 당연히 학점으로 인정된다. 이 경우 굉장히 명예로운 일로 인정되기 때문에 경쟁이 치열하다. 우리나라도 이같은 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 조의원의 지적이다.

  국정조사권의 발동이 어렵다는 것과 상임위 활동에 치명적인 약점이 된다.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이 발의할 수 있는 국정 조사권은 그러나 재적 과반수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되기 때문에 여당이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는 한 ‘있으나마나’한 제도이다. 대다수 선진국의 경우 국정조사권이 수시로 발동되고 상임위 및 소위원회 중심활동이 연중무휴로 계속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국회법의 개정이 시급하다. 국정감사를 지금처럼 20일내에 몰아 하는 한 ‘백화점식 지적’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시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감사원이 입법부가 아닌 행정부에 속해 있다는 모순이다. 감사원이 대통령 직속기구로 존재하는 한 국정감사의 완벽한 기능은 기대 할 수 없다. 조준승 의원은 “감사원이 왜 행정부에 속해 있어야 하는지 참으로 답답한 일” 이라고 지적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