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엔 국경없다
  • 정리ㆍ김 당 기자 ()
  • 승인 1990.12.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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앰네스티 인터내셔널 창시자 피터 베넨슨씨

 “당신이 어느 때건 신문을 펴보면 세계 도처에서 자신의 견해나 신앙 때문에 투옥당하고 고문당하고 처형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을 것이다…” 라는 서두로 시작되는 기사가 영국의 <옵저버>지에 실린 것은 1961년 5월28일이었다. 며칠 내로 이 기사는 유럽 여러 나라의 주요 언론에 전재되고 양심수를 구출하자는 필자 피터 베넨슨(Peter Benenson)씨의 견해에 열렬한 지지를 표하는 수천통의 편지가 신문사로 쇄도하게 된다. 이리하여 탄생한 조직, 몇사람의 주머니를 털어 우표값을 충당해야 했던 이 단체가 오늘날 전세계에 70여만명의 회원을 둔 거대한 인권기구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우리나라에서는 ‘국제사면위원회’로 부름)로 발전하게 될 줄은 그 기사의 필자도 짐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당시 40대 초반의 패기만만했던 변호사. 명문교 이튼 스쿨에 재학중일 때부터 스페인 내전으로 버려진 바스크족 고아를 돕는 활동을 펼쳤을 정도로 조숙했던 인권운동가 피터 베넨슨씨를 앰네스티 한국조절위원회 캠페인담당관 조효제(31· 대구 조효제치과 원장)씨가 만나보았다.

  ≪시사저널≫은 세계인권선언기념일을 맞이하여 지난 11월말 런던에서 열린 앰네스티 국제회의에 참석한 조씨에게 인터뷰를 의뢰했었다(때는 11월말. 장소는 런던의 앰네스티 국제사무국. 지난날 앰네스티가 그토록 열심히 석방운동을 펼쳤던 70년대 한국의 대표적 양심수. 김지하 시인의 포스터가 아직도 붙어 있는 사무실에서).

 

● 올해 일흔이신데도 정정하게 보입니다. 현재 앰네스티에서는 어떤 직책을 맡고 계시는지요. 그리고 다른 활동도 하고 계십니까?

  앰네스티에서는 60년대말까지 책임자로 일했고, 그 이후로는 공식적인 직책없이 자유롭게 참여하고 있습니다. 특히 고문폐지운동에 깊이 관여해왔습니다. ‘국제법조인협회’(ICJ)의 창립이사였고 현재는 ‘고문폐지 크리스찬 행동기구’의 의장직을 맡고 있습니다. 전세계가 ‘고문없는 세상’이 되는 것을 보는 게 제 소원입니다.

● 12월10일은 세계인권선언 기념일입니다. 또한 내년이면 앰네스티 인터내셔날 창립 30주년이 됩니다. 앰네스티의 창시자로서 지난 30년간의 인권동향을 회고해보신다면.

  지난 30년간 인권운동 분야의 가장 큰 변화라면 바로 사람들이 인권과 양심수라는 개념에 친숙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엔 언론자유니 종교의 자유니 하는 말이 교양있는 사람들에게도 때때론 거부감을 주곤 했지요. 이제 고문은 어떠한 경우에도 용납될 수 없다는 공감대가 이루어졌다고 봅니다. 고문은 핵무기나 독가스 못지 않은 인류의 公敵입니다. 우리는 서기 2000년까지 전세계에서 고문을 철폐시키고자 합니다. 또한 당시에 비해 다당제를 시행하는 민주국가가 많이 늘어난 것도 희망적인 징표입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지역에서의 진전은 상당히 고무적입니다.

● 발족 당시 일화 중 기억나는게 있다면.

  당시엔 아무도 ‘편지쓰기를 통한 시민운동’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방식을 회의적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떻습니까. 비단 인권분야뿐 아니라 시민운동 전분야에서 편지쓰기가 보편화되지 않았습니까. 우리 운동 덕택에 영국 체신청이 먹고 산다는 말도 있습니다.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체코의 버램 대주교가 석방되어 로마공항에 도착했을 때입니다. 그의 도착 일성인즉 “앰네스티의 편지에 크나큰 빚을 졌다. 지금부터 앰네스티라는 거대한 초에 불을 당기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광경이 텔레비전을 통해 전세계에 방영되었던 일을 한번 상상해 보세요. 당시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남의 나라 인권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내정간섭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계인권선언에 포함된 인간의 권리는 보편적이고 국영을 뛰어넘는, 다시 말해 문제가 생기면 다른 어떤 나라도 개입하고 관여할 수 있는 것이라는 확신을 전세계인에게 심어왔다고 봅니다.

● 그간 앰네스티 자체의 변화라면?

  상상도 못할 발전을 한 게 사실입니다. 세계적으로 4천여개의 크고 작은 그룹들이 수많은 양심수를 맡아서 활동하고 있고, 양심수를 조사ㆍ선정하는 과정도 고도로 전문화되었습니다. 기술적으로도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창설 당시엔 20개 신문에 우리 소식을 싣게 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지금은 ‘긴급구명활동망’을 통해 전보 전화 텔렉스 팩시밀리 위성통신까지도 동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변하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기본원칙입니다. 고문의 극단적인 형태인 사형을 철폐하는 것이 우리 목적에 추가되긴 했습니다만 양심수의 석방, 정치범의 공정한 재판, 고문의 폐지 등 기본목표는 불변입니다.

● 앰네스티가 일부 지식층, 저명인사 등 여론주도층으로 이루어진 인권 사교클럽이라는 지적도 있지 않습니까?

  현재 이 기구의 회원구성현황을 보면 그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아실 것입니다. 우리는 풀뿌리 민주주의식의 대중기반, 대중참여운동을 지향합니다. 그러나 앰네스티 운동의 초기과정에서는 저명인사, 지식인의 참여가 굉장히 중요한 관건이었습니다. 슈바이처, 사하로프 박사, 피카소 등 수많은 명사들이 우리 단체를 도왔습니다. 그러나 이런 특별한 인물에 우리 활동의 초점을 맞추어온 것은 아닙니다.

● 인권이라는 개념 자체가 경제ㆍ사회적 발전 이후에나 생각할 수 있는 것이고 ‘선진국이 제3세계에 부과하고 싶어하는 가치’라는 비판도 있는데.

  아시다시피 세계인권선언의 내용에는 경제ㆍ사회ㆍ정치적 인권 개념이 다 들어 있습니다. 경제ㆍ사회적 권리는 그것들의 발전과 더불어 추구되어야 하는 것이므로 문제가 없겠지요. 그러나 정치적 권리를 다른 분야의 발전과 연계시켜 생각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 못합니다. 예를 들어 뉴기니 같은 나라는 대다수 국민이 문맹이지만 주민이 지도자를 선출하고 통치과정에 참여하는 민주제도를 잘 발전시켜오지 않았습니까.

● 영국인으로서 자국의 인권상황은 어떻다고 진단하십니까.

  대처 총리가 사임해서 앞으로 좀 나아질 거라고 봅니다(웃음). 사실 대처 총리는 외국 특히 동유럽쪽의 인권에는 관심이 많으면서 국내 인권문제 예컨데, 저소득층, 소수인종, 북아일랜드 인권문제에는 입을 다물어왔다는 비판이 많았지요. 60년대 창설당시에는 영국의 식민지에서 발생하는 인권문제를 너무 많이 거론해서 정부당국으로부터 유형무형의 탄압을 쾌나 자주 받았습니다. 그래서 런던본부를 스위스 같은 중립국으로 옮기자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습니다.

● 동유럽의 개혁, 냉전체제 종식과 같은 일련의 세계 흐름은 인권분야에 어떤 영향을 줄 것 같습니까. 최근 유럽안보협력회의(CSCE)가 채택한 파리헌장에도 인권이 핵심 의제로 다루어졌던데.

  냉전체제가 무너지면 자동적으로 인권에 대한 억압상태도 풀리리라고 기대하는 건 지나친 낙관입니다. 오히려 양블럭체제하에서 긴장상태에 있던 국가간 관계가 이완되면서 다른 나라의 내부적 문제에 무관심해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인권침해를 감시하는 상호 역학관계에 진공상태가 생길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역설적이지만 냉전시대엔 각 진영이 사로 ‘경쟁적으로’ 인권문제를 제기하고 상대방을 비난했었기 때문에 인권의 감시망이 오히려 잘 가동되던 측면도 있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인권에의 관심약화를 염려하고 있습니다.

● 최근에는 중국의 천안문 학살사건ㆍ티베트 분규ㆍ스리랑카 사태ㆍ미얀마 사태ㆍ한국의 상황 등 유난히 아시아권 국가들의 인권문제가 초점이 되고 있는데.

  그런점도 있지만 남미나 동유럽의 이권침해도 여태가지 심각했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합니다. 사실 앰네스티는 그간 유럽국가와 역사적 연관이나 이해관계가 있는 나라에 많을 관심을 기울여왔습니다. 그러나 아시아권이 세계적으로 중요하게 되고 그곳에서 인권문제가 새롭게 부각되면서 우리의 관심도 아시아권 국가들에 점점 더 다가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권이란 하루아침에 얻어지는 것도 아니며 개별적 침해사례를 해결한다고 보장되는 것도 아닙니다. 이점에서 우리는 제3세계권, 특히 아시아권 국가에 대해 인권교육의 중요성을 재삼 강조하고자 합니다. 똑같이 민주화운동이 일어나도 교육의 바탕이 있었던 나라와 없었던 나라의 결과가 다르게 나타나는 사례를 기억하시겠지요.

● 최근 한국에서는 범죄 빈발로 치안상태가 나빠지면서 급기야 대통령이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런 사회 분위기에서 피의자의 인권을 말하는 것은 비웃음을 사기 딱 좋은 이야기 같습니다. 게다가 사형폐지와 같은 애기는 말도 꺼내기 힘들 만큼 분위기가 험악해졌는데.

  우리가 범죄자에게 관대하자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공정한 재판을 강조하고 범죄자에게도 인간으로서 갖는 최소한의 권리가 았다는 사실을 강조함으로써 오히려 궁극적으로 그 사회의 인격적 가치를 높일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극악한 범죄를 저지르면 마땅히 처형돼야 한다’는 식의 사고 자체가 사실은 그 사회내의 폭력성을 부추기고 범죄의 온상을 조장하기 쉽다고 봅니다. 누구나 고문은 어떤 경우에도 허용되어선 안된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고문의 가장 잔인한 형태인 사형 또한 용인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 가치의 존엄, 보편성을 획득하기 위해선 인권교육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란 점을 강조해서 말씀드립니다.

● “한국이 그래도 민주화를 향해 나아가는 나라이고 현재 과도기적 상황을 겪고 있는데 앰네스티가 왜 그렇게 과도하게 간섭하는가”하는 비판도 있고, 또 “북한에 대해선 왜 입을 다물고 있는가”하는 지적도 있는데 그점에 대해 어찌 생각하십니까.

  사춘기에 겪는 열병에 대해 지나치게 가혹하다는 말씀인가요(웃음). 물론 성년에 도달하는 나이가 되면 행동에도 좀 더 책임이 따른다고 말씀드릴 수도 있겠지요. 우리 기구가 개별 사례 중심으로 활동하고 인권 침해를 거론할 때 정치적 고려를 배제하는 것도 한가지 설명이 되겠습니다. 북한에 대해서는 정보, 특히 인권상황에 대한 정보를 얻기가 너무나 힘들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군요. 물론 정보수집이 어렵더라도 최선의 노력을 해왔는가 하는 지적은 겸손하게 받아들이겠습니다. 부족한 정보이지만 우리가 얻을 수 있었던 모든 정보는 연례보고서 등에서 자세히 다루어왔다는 것을 상기시켜 드리고 싶습니다.

● 앰네스티에서 임수경양 문규현 신부 등을 양심수로 선정한 근거는 무엇입니까. 아울러 실정법을 어겼다는 점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당연히 양심수입니다. 세계인권선언에도 명백히 표현되어 있듯이 인간에겐 양심대로 행동할 자유가 있습니다. 이것은 국제적 규준이기도 합니다. 그들이 마약밀수를 했습니까, 간첩행위를 했습니까, 만일 국내실정법이 국제인권법적 규준과 다르다면 그 실정법이 잘못된 것입니다. 더구나 한국정부는 최근 국제인권규약에 정식으로 가입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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