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의 우울한 겨울
  • 편집국 ()
  • 승인 1990.1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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柳陽洙 전 사우디주재 대사 순방 9일의 기록

 다음은 원로 외교관 柳陽洙씨(전駐사우디대사)가 본 ‘오늘의 소련’이다. 유씨는 소련학술원 산하 극동문제연구소 초청으로 지난달 10일부터 9일간 소련을 순방하면서 ‘모스크바의 우울한 겨울’을 체감했다. <편집자>

 “김일성 주석은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 소련공산당 중앙위원 바자노프 박사는 유창한 한국말로, 그것도 자신있는 어조로 말했다. 그는 이어 “김정일은 정권을 승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래 가지는 못할 것입니다”라면서 북한정권의 앞날을 점쳤다. “소련내에서는 연일 공산주의를 비판하는 소리가 높습니다.” 부인이 옆에서 거든다.

 그의 부인 나탈리 박사 역시 동아시아 문제 전문가이다. 남편보다 더 유창한 한국말이다. 그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주재 소련 총영사관에서 7년간이나 근무한 경력이 있는 미국통이기도 하다. 부부가 모두 잘 알려진 아시아 전문가로, 많은 저서를 갖고 있다.

 부인은 얼마 전 신문에서 “북한에 대한 소련의 경제원조는 실패했다”고 논평한 일이 있는데 북한의 한 고위관리가 부인이 속해 있는 연구소를 찾아와 항의하더라는 것이다. 연구소장은 그 견해는 개인의 것이 아니고 연구소의 견해라면서 항의를 일축하였는데, 북한 책임자는 “북한은 소련으로부터 경제원조를 받은 일이 없으며 전부 대가를 지불했다”고 강변하더라는 것. 오늘의 북한과 소련관계의 단면을 말해주는 이야기처럼 들렸다.

 소련 방문 이틀째인 11일 저녁 소련 공산당 중앙국무부의 한국과장인 티카쳉코를 만났다. 한국전쟁 휴전 후 평양주재 소련대사관에서 5년을 근무한 그는 87년까지도 김일성 주석과 자주 만난 인물이다. 부인이 한국사람이라는 그는 중급 정도의 한국말을 했다.

 그는 한ㆍ소수교는 당에서 적극 추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소련 외무부는 관료주의적이고 보수적인 속성 때문에 수교에 소극적이었으나 당에서 강력하게 밀었다는 것이다.

 12일에는 소련 어업부 코트리알 장관을 만나 그로부터 한국 정부가 제시한 어업협정안을 검토중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는 한국과의 어업협력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소련의 연안어장 개방은 반대한다. 한국과는 어획물의 처리가공 공장 및 생산품의 판매, 대형ㆍ중형 선박의 수리시설과 반자동화시설 등 분야에서 합작운영하는 것을 원한다. 한ㆍ소 합작회사를 만들어 제3의 국제어장에서 공동조업하는 것과 어선을 건조하는 데 한국의 차관을 기대한다.”

 한편 소련 학술원 산하 소련경제연구소의 부소장인 밀네어 박사는 오늘의 소련경제를 1950년대 초반의 한국경제와 비슷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는 소련은 전체적으로 시장경제로 향하고 있으며 소유권, 세제, 정부의 권한, 은행과 금융제도, 분배제도, 중소기업에 대한 혜택 등의 법제화를 서두르고 있다고 말했다.

 13일 오전 한국내에서도 이메모(IMEMO)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학술원 산하 ‘세계경제 및 국제관계 연구소’를 방문했다. 소장 말티노프 교수는 우선 소련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있으며 사회 전체가 허탈과 불안한 상태에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모든 도시에서 사람들이 무엇이든지 살 수만 있으면 마구 사들이려 한다고 했다. 감자가 출하되면 한사람이 50kg이나 1백kg씩 사들인다는 것이었다. 임금의 상승으로 국민들이 돈은 많이 가지고 있으나 물자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다. 금년에 개인소득은 16~18%가 증가했으나 생산 증가는 제로라고 했다. 증가한 것은 주류(알콜)뿐으로 8%가 증가했다.

 그는 민주화에는 높은 문화수준과 정치적 전통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민주화는 먼 앞날을 위해서는 좋으나 현재는 그로 인한 심한 갈등과 고통을 겪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13일 낮에 만난 소련학술원 산하 동양문제연구소의 카피차 교수는 “우리는 여러분의 역사ㆍ문화 그리고 모든 것을 다 잘 알고 있다”고 마치 위압하듯 말했다. 남북한 문제와 관련, 그는 김일성을 동독의 호네커로 생각하는 것은 오해이며, 독일식으로 통일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10~20년내에 월남식으로 공산통일되는 것도 자기는 원치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했다. 남북 어느편이건 전쟁을 일으킬 수 없도록 4강이 공동으로 보장하면 될 게 아니냐고 했다. 그리고 남북한은 연방제를 하면 될 것이라고 했다. 또 자기는 개인적으로 민주화ㆍ평등화ㆍ생활수준 향상ㆍ민족분규해결 등을 희망하며 모든 군대를 없앨 수도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면서 미군철수를 거듭 강조했다. 평화주의자라는 이야기다.

 그는 남북한간 신뢰구축과 관련, “어느쪽이 더 현명하느냐가 문제다. 남한이 더 현명하다. 현명한 자가 먼저 행동해야 한다. 만일 일본과 한국간에 분쟁이 생긴다면 소련은 한국을 지원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반도 통일 문제는 서둘지 말고 현명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말과 함께 “외교적인 협상이 중요하다. 만일 협상 도중 잘못된 일이 있으면 즉시 고쳐야 한다. 북측이 불가침조약을 체결하자고 하면 체결하면 된다. 구속자를 석방하라면 곧 석방하면 되고, 군대를 삭감하자고 하면 곧 삭감하면 된다. 상호접촉을 반복해야하고 협상을 시작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렇다면 소련의 북한에 대한 군사지원은 어떻게 된 것인지, 또 근년에 북한에 MIG-23을 주로 하는 최신예 전투기를 공급한 것은 어떻게 된 것인지 질문하자, 그는 84년 김일성 주석의 소련방문 때 미사일 기술공여 요청을 소련은 거부하였으며 그후 군사원조는 사실상 크게 축소되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전투기 등의 공여는 외화가 필요해 판매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같으면 폭동 일어났을 것”

 극동문제연구소의 티타렝코 박사도 남북한이 서로의 현실을 인정하고, 상호불가침조약과 군사력불사용조약을 체결해야 하며, 혁명수출 방침의 포기를 선언해야 한다며 카피차 교수와 의견을 같이했다. 그는 한국의 노태우 대통령이 미국ㆍ북한간 관계개선에 동의를 표시하면 남북한간의 긴장완화와 북한의 개방ㆍ개혁추진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14일 한국인이 많이 사는 카자흐스탄 공화국의 수도 알마아타를 찾아갔다. 소련 전체에 살고 있는 한국인은 50만명으로, 숫자면에서 유대인 다음이 한국인이다. 카자흐스탄 공화국에는 10만3천명의 한국인이, 알마아타에는 1만6천명이 살고 있다.

 17일 레닌그라드에서 한국인을 몇명 만났다. 모스크바대학 한국고대사 교수인 박 미하일(준호ㆍ72)씨는 현재 재소 고려인협회 회장을 맡고 있으며 김영(50) 박사는 러시아 공화국에서 당선된 소련 최고인민의회 의원이다. 그들은 현재 재소 한국인의 자치문제를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지금까지 각종 보도매체를 통하여 외부세계에 알려진 소련 내부의 사정, 특히 경제적 어려움에 대한 모든 소식이 과장되거나 왜곡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 소련인은 그들의 경제난을 비판하면서 “한국 같으면 이미 폭동이 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련 전체 인구 2억8천5백만 가운데 4천만이 월수입 50루블 이하이고 1억 인구는 1백루블, 그리고 나머지 1억4천만이 2백50루블 정도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모친은 월 38루블(공정환율로 원화 4천5백원)의 연금을 받고 있다고 한다. 모스크바에 머무는 동안 시내에서 목격한 화물운반차는 벽돌트럭 한대와 목재트럭 한대가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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