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R 2월에 마지막 라운드
  • 장영희 기자 ()
  • 승인 1990.1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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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양보로 농산물협상 ‘합의’ 가능성 높아 … 구조조정 등 경쟁력 길러야

 ‘사상 최대의 흥정’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타결이 불투명하다는 당초의 전망을 깨지 못한 가트(GATT ·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의 우루과이 라운드(UR)는 내년초의 ‘제2라운드’를 기대할 수밖에 없게 됐다. 농산물협상을 둘러싸고 미국 및 케언즈그룹(14개 농산물수출국그룹)과 유럽공동체(EC)가 마지막까지 이견을 좁히지 못한 것이다.

 세계의 이목은 UR이 내년초에 과연 어떻게 되느냐에 쏠려있다. 현재는 1월중순이란 협상시기만 잡혀 있다. 협상자 수준도 각료급인지 실무책임자급인지 결정돼 있지 않다. 협상재개 전까지 주요 나라간 막후협상은 활발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이 막후 거래가 어떤 방향으로 진전되느냐에 따라 내년초의 UR타결 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겠지만 일단 주요국의 심중이 드러났기 때문에 의외로 빨리 ‘악수’할 것으로 예상하는 이들도 있다. UR실패를 원하지 않는다는 공감대를 바탕으로 서로가 이익을 추구하는 강도를 조금씩 떨어뜨리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협상전망의 변수는 우선 페르시아만 사태의 향방이다. 이에 따라 미국은 운신의 폭이 좀더 넓어지거나 좁아질 수 있다. 미국 행정부가 의회로부터 수임받은 이른바 ‘신속처리권한’도 미국을 ‘신속한 타결’로 이끄는 요인이다. 미국 행정부는 내년 2월말까지의 협상결과에 대해서는 의회의 찬반투표를 거치지만 협상내용을 추궁받지는 않는다. 물론 88년에 제정된 통상법에 따르면 2년동안 협상의 연장이 가능하나 미국 현지의 분위기로 봐서 그렇게 될 공산을 적다. 무역대표부로 대표되는 미 행정부가 협상연장에 따르는 이와 같은 정치적 부담을 원치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다. 이는 최소한 농산물협상에 관한 한 미국의 양보가 불가피하다는 뜻이 된다.

 게다가 단단한 ‘요새’인 EC를 몰아붙여 미국이 뜻대로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EC의 안은 12개국의 합의안이고 그들로서는 절박한 사안이라 최종안에서 크게 벗어날 가능성이 적다. EC로서는 농산물협상 결렬은 곧 현행체제의 유지이므로 결코 손해가 아니다. 케언즈그룹이 미국의 양보에 동의하느냐는 아직 낙관할 수 없지만 ‘가트탈퇴’ 외는 방법이 없어 타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결국 미국은 급하고 EC는 세계의 따가운 비난을 의식, 협상테이블에 앉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2월말까지 농산물협상의 합의가 도출될 가능성이 높다. 농산물협상이 타결된다면 나머지 14가지 의제는 비교적 쉽게 풀릴 수 있어 UR은 이후의 실무절충과정을 거쳐 타결로 이를 수 있다고 전망할 수 있다.

 

협상 열쇠는 농산물과 서비스 분야

 협상그룹은 미국과 EC 캐나다 등 선진국 두 그룹과 강경 개발도상국그룹, 우리나라가 포함돼 있는 신흥공업국과 아세안국가 그리고 동유럽그룹 등 크게 5개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 일본이 빠진 것은 시종일관 무정견을 보인데 기인하며 굳이 편가르기를 하자면 미국과 EC의 편에 서 있다고 봐야 한다. 세력을 형성하지 못한 동유럽그룹은 일단 빼놓을 수 있다. 온건 개발도상국그룹은 협상의 향방에 휩쓸릴 공산이 크다. 결국 선진국의 두 그룹과 강경 개발도상국그룹이 남는다. 그러나 강경 개발도상국그룹 역시 농산물 이외의 다른 의제에서 혜택을 주면 선진국 두 그룹과 타협할 가능성이 많다.

 포괄적 타결을 이끌어내야 하므로 농산물 협상에서 불이익을 받은 국가는 다른 의제에서 보상받겠지만 구체적인 ‘짝짓기’는 아직 성급하다. 이른바 ‘트레이드오프’라는 절충은 예단키 어려운 것이다. 협상 진행과정에서 변화무쌍한 거래가 오고갈 소지가 얼마든지 있다. 현재 15개 의제 중 협상의 열쇠는 농산물과 서비스 분야이다.

 그다음 난항을 겪을 의제로는 무역관련투자, 섬유, 보조금?상계관세, 최혜국대우(MFN)협정의 반덤핑, 지적소유권 정도일 것이다. 나머지 의제는 농산물협상의 향방에 따라 타결의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관측하고 있다. 따라서 농산물과 서비스협상을 양 축으로 개발도상국과 선진국이 첨예한 대립을 보이는 섬유?긴급수입규제조치?지적소유권?무역관련투자 등의 의제에 대한 어지러운 상호절충 과정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의 농사물협상안은 EC안에 좀더 근접해야 유리하다. 우리 정부가 비교역적 산품(NTC)임을 강조한 쌀 등 15개 품목에 대한 협상에 있어 우리의 안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극히 적어 대책 강구가 시급하다.

 

시기 늦고 부실한 ‘UR대책’

 무역의존도가 60%를 넘는 우리 경제에 UR의 향방은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 그러나 UR에는 나쁜 영향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분명히 ‘잃는 것’이 있는 반면 ‘얻는 것’도 있다. 섬유 반덤핑협정 긴급수입제한조치상계관세 분쟁해결 가트기능 등에 관한 협상은 수출증대 등 우리에게 ‘호재’로 작용될 수 있다. 이는 과거 선진국이 주로 이 분야에서 가트규정을 왜곡하거나 규제를 남용한 사례가 많은 데서도 입증된다. 특히 내년 7월에 다자간섬유협정이 없어지고 섬유교역이 가트체제내로 들어와 공정경재의 여건이 조성된다면 섬유수출은 활기를 Elf 것이다. 또 선진국의 반덤핑규제가 UR에서 어떤 합리적 덤핑방지협정으로 바뀐다면 우리가 그동안 컬러텔레비전?앨범?VTR 등에서 받아왔던 덤핑혐의나 제소 등을 크게 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역시 UR에 드리워져 있는 어두운 그림자는 심각한 문제이다. 농산물이나 서비스시장의 개방은 우리에게 큰 타격을 안겨줄 것이다. 선진농업국에 비해 우리 농업은 크게 낙후돼 있다. 협소한 시장?과도한 규제?낮은 기술 및 생산성 등 서비스시장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산업연구원 金基洪 책임연구원은 “이런 혜택과 피해를 모두 상정할 수 있다면 유리한 것은 좀더 유리하게, 불리한 것은 덜 불리하게 협상력을 발휘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정부는 농산물협상에서 우리의 시장을 여는 시기를 가급적 늦춰 피해를 줄이고 상대적으로 개발도상국이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분야를 공략한다는 복안을 세우고 있으나 준비과정이 너무 허술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정부 전체가 한 목소리로 ‘UR대책 만들기’에 나선 것은 불과 몇개월 전부터이다. 전문가를 양성하려는 노력도 부족했다.

 UR은 가트의 주관 아래 열리는 여덟번째 다자간 무역협상이다. 자유무역주의에 입각한 포괄적인 세계규범을 만드는 작업이다. ‘자유무역주의’란 단물을 계속 공급받아야 할 우리에게 가트는 매우 중요하다. UR이 실패한다는 것은 가트의 기능상실이며, 이는 번져가고 있는 쌍무주의?지역주의를 한층 더 부추길 것이다. 물론 UR이 타결된다고 해서 이같은 경향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협상이 타결돼야 우리는 그 예봉을 덜 맞을 수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朴泰鎬 연구위원은 “UR실패로 자국의 경제여건에 기초한 각종의 무역장벽이 들어서게 되면 우리는 설 땅을 잃게된다. UR을 적극적으로 활용, UR 속에서 보호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당장 미국의 수퍼3백1조나 또 다른 이름의 통상마찰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즉 UR이 가지고 있는 손익을 잘 계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년 상반기에는 어떤 식으로든 UR이 타결될 것으로 보인다. 서로의 수를 빤히 읽은 상태에서 UR을 좌초시키지 않아야 한다는 절대명제를 풀기 위해 양보하고 타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준비기간 4년, 협상기간 4년 동안 UR에 대해 무엇을 했는지 자문해보아야 한다. 또 UR이 타결된다 해도 시장이 열리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그런 점에서 UR은 시작인 셈이다. 2000년대의 우리 경제는 이 기간에 구조조정 등 경쟁력을 얼마나 기르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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