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영화 개방 ‘찬반’ 팽팽
  • 이성남 문화부 차장대우 ()
  • 승인 1990.1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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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북의 이념에 감염될 가능성 높다” … 학생 “동질성 회복, 통일 앞당긴다”

분단 이후 남북 영화인의 실질적 첫 만남이었던 뉴욕영화제 이후 북한영화 수용 문제를 둘러싸고 논란이 거듭되고 있다. 일부 영화인은 ‘북한영화 수입’ ‘남북영화 합작’ 등 현행 영화법을 추월하는 발걸음을 서두르고 있다. 대학가에서는 제3국을 통해 반입?복제된 북한영화의 상영을 강행해 정부?학생간에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지고 있다.

 통일원은 90년 3월부터 북한자료전시관에서 매월 1회씩 총 9편의 북한영화를 일반에 공개 상영했고 8백여명이 관람했다(도표참조). 또 문예진흥원 부설 한국문화발전연구소가 89년 3월부터 ‘연구를 목적으로 한’북한영화 감상을 허용, 2백60여명의 문화예술인이 관람했다. 그런가 하면 “북한영화를 보기 위해 뉴욕영화제에 다녀왔다”는 영화인도 많다. 따라서 최근 일고 있는 논란은 북한영화를 관람하는 것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상영작품에 대한 해석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대학가의 북한영화 상영에 대해 국가보안법을 적용하는 것을 놓고 검찰과 법조계의 해석이 엇갈리는 데서 이같은 사실은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뿐만 아니라 북한영화 수용에 대한 보혁간 의견도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북한영화를 관람한 이들로부터 북한영화 수용에 대한 견해를 들어본다.

 학생들은 남북음악인이 한 무대에서 노래하며 통일원에서 북한영화를 일반에게 공개하는 마당에 대학가에서 필름을 압수하는 것은 “소가 웃을 일”이라고 단정한다. ‘정치?군사 문제의 우선 해결’을 주장하는 북한에 맞서 ‘자유로운 교류 우선’을 통일에 접근하는 방안으로 내세우는 당국이 국가보안법을 들먹이며 북한영화 상영을 규제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라는 것이다.

 이화여대 경영학과 이정은씨는 “같은 겨레인 북한 주민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고 싶다”고 전제하고, 이를 위해서는 “주민의 구체적 삶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는 영화가 최적의 매체”라고 말한다. 연세대 수학과의 한 학생은 남한영화와는 달리 북한영화는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사람의 생활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고 말하면서 북한영화는 “박진감이 없고 지루한 느낌이 들지만 척박한 일제하에서 생활하는 농민?노동자의 생활상을 통해 좀더 나은 생활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정신력을 높일 수 있다”고 말한다. 또 “항일투쟁 과정을 그린 《소금》《탈출기》등에서는 선조들이 싸웠던 소중한 경험을 엿볼 수 있었다”고 소감을 밝힌 한 학생은 “당국의 지나친 경계심은 외세에 영향받고 있는 우리 사회가 일제하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학생들이 항일투쟁 모습을 보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주장한다.

 

대학생 93%가 개방 원해

 서울대 총학생회가 11월30일 발표한 ‘북한영화 상영에 대한 학생들의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북한영화 상영에 대한 대학가의 욕구가 매우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8백20명을 대상으로 한 이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93%가 대학에서의 북한영화 상영을 희망하고 있다. 이들 중 71%가 상영을 희망하는 이유에 대해 “통일운동의 대중화에 기여하기 때문”이라고 답했으며 “단순한 호기심”이라고 답한 학생은 28%였다. 이들은 가장 보고 싶은 북한영화로 4백29명이《꽃파는 처녀》를, 4백5명이《피바다》를, 2백86명이《소금》을 꼽았다.

 북한영화 상영을 반대한 학생은 59명으로 7%에 지나지 않았다. “현 정세와 동떨어진 돌출적 행사이기 때문”에 반대한다고 대답한 학생이 가장 많았다. 그밖에 “북한을 이해하는 데 부작용” “경찰 침탈의 우려”등을 꼽았다.

 학생들은 북한영화 상영의 당위성에 대해 “갈라져 살아온 반쪽 동포의 삶과 생활 정서를 이해함으로써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 통일을 앞당기는 데 매우 중요한 계기가 된다”고 말한다.

 학생들의 이같은 주장과는 달리 “남북이 상호호혜적 원칙에 입각한 개방”을 주장하는 소리도 만만치 않다. 종로구 평창동에 사는 50대 주부는 “북한에서도 우리 영화나 드라마를 수용할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져야 한다. 일방적인 북한영화 개방은 곤란하다”고 말한다. 그는 북한 사람이 일상생활에서 보는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의 개방은 괜찮으나 서정성을 강조, 은연중에 북한을 미화한 선전용 영화는 자칫 북한을 인간주의적 사회로 오해하게 할 소지가 있다고 말한다. 그는 최근 대학가에서 상영된 신상옥 감독의 영화에 대해 “북한체제에 순응해서 만든 것이므로 영화제작의 배경 및 취지등에 대한 그의 해명을 들으며 영화를 감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꽃파는 처녀》와 《도라지꽃》을 보았다는 한 작가는 “《꽃파는 처녀》가 계급투쟁을 그리고 있는 고도의 선전영화인데 반해 《도라지꽃》은 웃음거리”라면서 “상호교환을 전제로 한 선별개방”을 주장한다. 자본주의 발전과정에 있는 우리나라는 중상층이 두텁게 형성돼 있지 않고 빈부의 차가 심하므로 세뇌를 목적으로 만든 영화를 수용하는 것은 문제라는 것이다.

 이같은 의견은 통일원이나 문화부의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문화부 영화과 서정배 과장은 “이념성을 내포하고 있고 대중성이 강한 영화는 선전성이 있기 때문에 문화교류에 있어 마지막 단계의 사업”이라고 주장한다. 바람직한 영화교류 형태는 상호주의원칙을 전제로 한 단계적 개방이라는 것이다.

 북한영화에 대한 의견대립이 극명하게 드러난 곳은 법조계와 검찰이다. 지난 10월 북한영화 《소금》《탈출기》상영 문제로 검찰이 대학내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하자 서울 형사지법 북부지원 이홍철 판사는 이를 기각하면서 “국토통일원은 ‘《소금》이 공산주의를 찬양한 내용이지만 현재로서는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고 평가했다. 따라서 이 작품이 단지 북한에서 제작됐다는 이유만으로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또 이판사는 “법률은 시대상황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 특히 국가보안법의 경우 ‘명백하고 현존하는 이유’라고 적시하고 있으나 이 역시 상황변화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치안본부는 ‘북한영화《소금》은 왜 대학가에서 상영될 수 없는가’라는 홍보책자를 통해 《소금》등 북한영화가 “사회를 이분법적인 계급대립 구조로 설정, 무산계급이 철저히 수탈?억압당하는 상황을 사실적으로 묘사해 계급적 저항의식을 강하게 자극하고 이를 혁명으로 유도하고 있는 이적표현물이다”라고 규정했다.

 박용일 변호사는 “국가보안법은 북한을 찬양하는 내용을 ‘이적표현물’로 규정하지만 국가보안법 자체가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학문?예술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헌적 요소”라고 주장한다.

 

법의 탄력적 운용이 필요한 때

 영화인 중에는 북한영화를 전면 개방한다해도 정부의 우려와는 달리 오히려 반공의식이 강화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다. 영화평론가 강환섭씨는 “노동당 전당대회를 다룬 북한의 기록영화를 통해 김일성주석의 모습만 보이면 벌떡 일어나 박수치는 장면을 보면 오히려 반공의식이 강화될 것”이라고 말한다. 심지어 한 예술인은 정부가 걱정하는 ‘이념상의 감염’에 대해 “우리 국민의 의식은 김정일이 서울에 와 연설해도 끄떡없을 만큼 높아졌다”고 장담한다. 많은 영화인이 북한영화를 공개상영해도 우리 관객들은 그것을 즐기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들은 ‘보는 재미’에 길들여져 있는 우리 관객들이 오락적 기능이 결여된 계도적 내용의 북한영화에 재미를 느끼기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북한영화 상영이 남한사회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겠지만 일방적 유입은 재고해야 한다고 신중론을 펴는 영화인도 있다. 영화평론가 정용탁 교수는 “북한영화가 갖고 있는 정치적 메시지가 일부 관객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도 있다”고 말한다. 북한의 모든 영화는 사상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교류할 때 작품 수나 관객동원 등에서 동일한 조건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영화를 배급하고 상영하는 방식의 차이를 환기시키면서 남한은 작품의 선택에 있어 거의 전적으로 극장 소유주의 결정에 따르는 시장경제의 원리에 의존하지만 “북한은 국가관할의 중앙집중식 배급구조인 점을 인식, 제도적 고찰을 병행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기본적으로 문호는 개방돼야 한다”고 밝힌 한 언론인은 독일이 방송과 예술의 문호를 일찍 개방했음에도 불구하고 심각한 ‘통일후유증’을 앓고 있는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북한영화의 조속한 개방을 촉구한다. 그는 또 “북한영화 개방으로 인한 피해가 미국영화 개방으로 인한 역기능보다 적을 것”이라고 말한다. 근로의식을 고양시키는 북한영화가 과소비 현상에 만연된 우리나라 사회에 노동하는 가치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측면도 있다는 것이다.

 “반공만이 살 길”이라던 서울 하늘 아래 소련의 붉은 국기가 태극기와 나란히 나부끼고 있다. 단지 소련기 그림을 소지했다는 이유 때문에 ‘사상이 불온한 자’로 낙인 찍혔던 것이 불과 얼마전의 일이다. 북한영화 상영으로 최루탄을 쏘아올리기에는 나라 안팎의 정세가 너무 빨리 변하고 있다. 법의 탄력적 운용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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