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류의 폭과 방법 합의해야
  • 조희문 (영화평론가) ()
  • 승인 1990.1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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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영화를 올바로 이해하고 남북 영화의 교류를 위해서는 북한영화의 실체에 대한 파악이 전제돼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국토통일원에 의해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북한영화가 정기적으로 공개되고 지난 10월 미국 뉴욕에서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북한영화제가 열렸다. 하지만 여전히 북한영화나 영화계에 대한 실상은 거의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정부 당국은 북한영화의 일반공개를 추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영화에 대해 “계급적 혁명논리를 앞세우며 북한 공산당의 정통성을 강조하고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이적 표현물”이란 시각을 갖고 있다. 최근 대학가에서 북한영화가 상영되었을 때 당국이 공권력을 투입해 적극적으로 저지한 것은 그같은 시각을 구체적으로 보여준 경우이다.

 남북한간 교류의 확대가 일과적인 작업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면 이같은 시각의 교정과 함께 북한영화에 대한 올바른 평가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우선 학계와 영화인에게 북한영화를 공개해 분석적인 평가나 연구과정을 거칠 필요가 있다. 현재 정부 당국이 보여주고 있는 북한영화에 대한 평가는 이념적 선전매체라는 쪽으로 편향돼 있는 듯하다. 전문가들이 폭넓게 참여하는 평가작업이 이루어지고 여론이 형성된다면 이를 바탕으로 정부 당국과의 토론회나 공청회 등을 통해 개방의 범위나 과정에 대한 합리적인 기준을 마련할 수 있으며, 현재와 같은 모순이나 논란도 여과될 수 있다.

 이와 함께 정부내에 북한영화에 대한 자료의 수집?분석?평가작업을 할 수 있는 전문 부서나 기구를 설치하는 문제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영화가 지니고 있는 사회?문화적 영향력이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거나 전문적 안목이 배제된 채 북한영화의 개방문제를 단순히 행정적 차원에서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이같은 과정이 전제된다면 남북한간 영화자료의 교환이나 영화인 상호방문 등의 교류도 기대할 수 있다. 분단 후 처음 열린 뉴욕남북영화제가 ‘남북한 영화와 영화인의 만남’ 이상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채 끝난 것은 실질적인 교류의 범위나 방법이 마련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영화제 기간 동안 남북영화인의 상호초청이나 합작영화제작, 상대방 영화의 수입 같은 문제가 거론됐다. 그러나 구체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은 남북한이 영화교류에 대한 구체적인 준비가 돼 있지 않음을 반증한다.

 남북영화의 전면적이며 직접적인 교류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우리라도 북한영화의 실체를 인정하고 대승적으로 수용하려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남북한 영화의 이해에 도움이 될 만한 자료나 필름의 교환, 영화인의 교환방문, 기술적인 협력 등 실현이 가능한 문제부터 교류를 확대해나가겠다는 의지가 필요하다. 남북한은 모두 국제필름보관소연맹 회원이다. 우선 남한의 한국필름보관소나 북한의 영화문헌고가 소장하고 있는 영화관련 자료의 교환, 해방 이전의 영화를 중심으로 한 교환상영, 남북한 영화전문가가 참석하는 학술세미나 개최 같은 문제도 검토해볼 만하다.

 어떤 형태로든 남북한 영화의 상호이해와 평가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추진하는 개방이나 교류는 실질적 성과보다는 편향된 시각으로 흐르거나 구호적 수사에 그칠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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