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년회
  • 이등세 기자 ()
  • 승인 1990.1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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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면 망년회로 사회 전체가 떠들썩하다. 이를 놓고 한해를 정리하는 ‘바람직한 모임’이라는 주장과 ‘망녕회’라는 반론이 팽팽하다.
두 직장인의 양론을 들어본다.

찬성

 / 이후영 금성사 광고부문 전시실 전시부장. 홍익대학 공업디자인학과 졸업

● 망년회를 치러야 할 이유는.

 현대 산업사회가 지니는 또 다른 얼굴은 개인주의로 특징지어지는 삭막함이다. ‘인간소외’라든가 ‘군중 속의 고독’ 같은 용어가 이를 대변한다. 망년회는 한해를 마감하면서 잃어버린 휴머니즘의 불씨를 살려보려는 현대인의 안타까운 시도라고 생각한다. 지나간 한해를 정리?반성하고 새해를 설계하는 기회가 될 수 있으며 동료간의 사귐을 되짚어 돈독한 교제의 바탕으로 삼을 수도 있다. 망년회는 한해를 정리하는 매듭으로, 삶의 활력소로 활용할 수 있는 자리이다.

● 일본식 풍속인 망년회를 여는 것은 문화종속의 한 예가 아닌가.

 외래문화가 범람하는 오늘의 세태를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문제는 외래문화의 유입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고유문화의 전통 속에 새 문화를 수용?소화하지 못하고 도입된 문화에 오히려 종속되는 사대적 의식이 근본적인 문제이다. 일제 식민지와 급격한 산업사회로의 변화를 거치면서 망년회가 유입되었지만 이것이 우리의 ‘얼’까지 일본화했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단어 자체가 일본식 조어이고, 조금 떠들썩하게 보내는 것 등이 일본의 망년회와 유사하다고 해서 문화종속이라고 보는 것은 사고의 비약이다.

● ‘除夕-守歲’와 같은 우리 고유의 세시풍속의 맥을 잇는 것이 더욱 의미있는 일 아닌가.

 외래문화의 홍수 속에서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되살려야 한다는 의견에는 동의한다. 우리의 전통문화는 농경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현대에 들어서면서 우리의 사회구조는 농경사회에서 공업?서비스업 중심의 산업사회로 변모했다. 현재 우리 삶의 형태는 ‘除夕-守歲’와 같은 고유의 세시풍속을 따를 수 없는 상황이다. 문화는 시대라는 그릇에 맞춰 담아야 한다.

● 호화판 망년회가 줄고는 있지만 연말이 되면 유명 호텔 연회장 예약이 어렵다. 망년회가 과소비를 조장하는 것 아닌가.

 망년회 때문에 과소비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과소비가 망년회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어린이 생일까지도 호텔이나 고급 음식점에서 치르는 사람이 많다. 조촐하게 해도 될 ‘식’을 거창하게 치르는 행태는 인간의 무분별한 욕심이 낳은 결과이다. 망년회 역시 좀더 소박하면서도 뜻깊은 자리가 될 수 있다면 과소비는 조장되지 않을 것이다. 분수에 맞게, 따스하게 망년 모임을 갖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

● 회사?동창회 등 동료집단 중심의 망년회 때문에 연말의 가족문화가 파괴되고 있다는데….

 우리나라의 관습 및 사회구조상 동료집단 문화와 가족문화를 동일선상에 놓고 보기는 어렵다. 우리 사회는 직장의 일이 가정의 일보다 우선적이다. 사회에서 뒤쳐지지 않으려면 다양한 인간관계와 빠르고 정확한 정보의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회적 모임은 이를 위한 시발점이다. 가정은 때가 되면 찾아보는 고아원이나 양로원이 아니라 3백65일 함께 어우러져 가꾸어가는 보금자리이다. 연말이라고 가정에 특별히 신경쓴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 새벽까지 술파티를 열거나 고스톱으로 밤을 지새우는 ‘망녕회’ 때문에 건강을 해치고 업무에 지장을 준다는 지적도 많다.

 과음?고스톱에 의한 피해를 시인한다. 그러나 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평상시에도 마시며 고스톱을 즐기는 사람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판을 벌인다. ‘꾼’에게 있어 망년회는 생일?야유회?장례식 등과 다를 바 없는 하나의 ‘판’에 불과하다. 과음?고스톱의 병폐는 망년회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다. 평소의 악습이 망년회까지 이어진 것이며 건강?업무지장 등의 문제 역시 이와 다를 바 없다.

● 망년회가 청소년 탈선 및 범죄를 유도하는 원인이 된다는 주장도 있다.

 나사풀린 듯한 연말의 사회적 분위기가 문제이다. 기성세대가 보여주는 것이 ‘흥청망청 · 곤드레만드레’라면 청소년도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총체적인 국민의식의 변화를 통해 호화 · 퇴폐풍조를 일소하고 우리 모두가 환골탈태의 자세로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 청소년 문제의 근본적인 치유책이다.

● 건전한 망년회를 위한 대안이 있는가.

 망년회에 따른 과소비와 추태가 과대포장돼 큰 문제라도 있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간단한 조?오찬으로 망년회를 대신하거나 다과?음료만으로 건전한 자리를 갖는 사람이 상당수 있다. 춥고 배고픈 사람들이 쓸쓸히 지내는 곳을 방문하는 것도 바람직한 망년모임의 한 방법이 될 것이다. 가능한 한 온 가족이 더불어 참여하는 ‘망년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반대

 / 이규진 ㈜킴즈컴 출판국 부국장. 《문학사상》편집장 역임. 경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 왜 망년회를 반대하는가.

 고물가 시대를 맞아 우리 경제가 91년에도 침체되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전망이다. 우리나라 경제가 그동안 많이 발전한 것은 사실이나 선진국 대열에 동참하려면 아직도 요원하다. 그동안 이룬 경제성장도 분배구조의 왜곡으로 인해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가속화돼 사회의 갈등 요인으로 자리잡은지 오래다. 결론적으로 우리의 현실은 아직 과소비로 흥청거릴 때가 아니다. 망년회를 즐기기는커녕 계획조차 세우지 못하는 소외계층이 얼마나 많은가. 과소비와 계층간의 위화감을 조장하는 망년회는 시급히 청산돼야 할 문화이다.

● 치열한 삶 속에서 동창이나 직장동료가 모여 한해를 정리하고 새해를 설계하는 긍정적 측면도 있지 않은가.

 경험으로 보아 여러 사람이 한자리에 모여 묵은 해를 정리하고 새해를 설계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본래의 의도는 건전한 것이었다 하더라도 먹고 마시고 놀다 보면 자연히 과음하기 마련이고, 뒤에 남는 것은 허탈감뿐이다.

● 망년회가 약간의 경제?신체적 부담을 주지만, 그보다 더 큰 정신적 충족감을 안겨준다는 주장도 있다.

 망년회로 인한 손실은 결코 적지 않다. 호텔 등에서 치러지는 호화판 망년회는 과소비를 조장하고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킨다. 계속되는 망년모임에서 폭음으로 건강을 해치는 일은 일반적인 현상이 돼버렸다. 이에 비하면 스트레스 해소 등의 정신적 측면은 지엽적인 문제다. 이것은 다른 방법을 통해 얼마든지 해소할 수 있다.

● 과소비 등에 대한 비판이 높아지면서 다과?음료만으로 망년회를 여는 사람도 많다.

 그와 같은 조촐한 망년회라면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소수일 뿐 대다수가 그런 방향으로 유도되기는 어렵다고 본다.

● 망년회가 일본식 풍속이라는 것이 반대 이유가 되는가.

 일본의 문화를 포함해 외국문화의 수용 자체를 나쁘다고 하기는 어렵다. 문제는 외래문화가 우리 문화에 끼치는 영향이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에 달려 있다. 망년회는 고스톱과 함께 일본문화 중에서도 가장 부정적인 요소가 강하다는 점에서 당연히 배척돼야 한다.

● 우리 사회의 구조상 ‘모임’이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어느 정도의 부작용을 감수하더라도 망년회에 참석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 아닌가.

 혈연 지연 학연 등이 유난히 강조되는 우리 사회에서 모임이 주는 의미는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일반적인 관념일 뿐이다. 즉 ‘술을 못하는 남자는 사회생활이나 사업을 하기 어렵다’는 통념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술을 못하는 사람 중에도 사업에 성공한 사람이 얼마든지 있듯이, 친분 관계가 망년회와 같은 모임을 통해서만 얻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 자영업자 및 기업인의 경우 1년의 통과의례로 망년회를 치를 수밖에 없다는데….

 망년회가 통과의례 비슷한 연중행사로 굳어진 것은 오래된 일이 아니다. 우리 민족은 망년회 없이도 수천년의 오랜 역사를 유지해왔으며, 세모를 슬기롭게 보내는 방법도 알고 있었다. 전통을 재조명함과 아울러 비록 통과의례화한 현상일지라도 잘못된 것은 바로잡으려는 노력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 망년회를 대체할 만한 대안을 제시해보라.

 우리에게는 忘年 대신 守歲라는 섣달 그믐의 세시풍속이 있었다. 이날은 방 마루 부엌 등 온 집안에 불을 켜놓고 조왕신을 맞을 준비를 했다. 부엌을 지키는 조왕신은 일년 동안 집안 사람의 선악을 지켜본 후 섣달 스무나흗날 하늘로 올라가 옥황상제에게 보고를 한 후 그믐날 내려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섣달 스무나흗날부터 그믐날까지는 일년 동안의 잘잘못을 심판받는 기간이기에 근신하며 경건한 마음으로 보냈다. 이러한 풍송은 한해를 잊자고 흥청거리는 일본의 망년회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서양의 세모 풍속과 일맥상통하는 바가 많다. 유럽에는 크리스마스부터 신년 1월6일까지를 ‘十二夜’라하여 12개의 촛불을 켜놓고 하룻밤에 하나씩 꺼나가며 참회하는 풍속이 있다. 서양풍습 중 특히 눈여겨 볼 것은 철저하게 가족 중심의 세모를 보낸다는 사실이다. 우리도 이제는 조촐한 가족 단위의 행사로 연말을 보내야 한다. 남편은 남편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자녀는 자녀대로 망년회로 흥청거리다 보면 따사롭고 포근해야 할 가정이 더욱 삭막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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