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서울 독재’ 마감
  • 이흥환 기자 ()
  • 승인 1991.01.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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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 시대 활짝 열려…시민의식 흔들리면 대혼란 올 수도

시사저널 독자를 지금보다 반년 뒤인 1991년 여름의 정치상황으로 안내한다. 서울도 이제는 하나의 ‘지방도시’에 불과해졌다. 지방은 더 이상 서울의 아류가 아니다. 도지사나 직할시장이 ‘서울’만 바라보던 시대도 지났다. 30년만에 이 나라에 지방의회가 다시 구성되고, 이미 두달 전에 5천1백53명의 지방의회 의원들의 자리도 마련됐다. 모든 것이 새로 태어났다. 지자제는 한국 정치사상 ‘혁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방자치제는 사회의 대변혁이자, 정치의식의 전환을 뜻한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것이 새롭게 자리잡고 제대로 평가되며 역사적 의미와 더불어 기록된다. 한 학자는 “국민에 대한 금치산 선고가 이제야 해제되었다”라고 말한다. 국민은 이제 비로소 독립적으로 법률행위를 할 수 있게 되었고, 더 이상 미성년자 취급을 받지 않게 된 것이다.

 지방자치는 지방정부의 탄생을 의미한다. 중앙집권을 통해 비대해진 정치권력이 지방행정조직을 통치와 지배의 도구로만 이용하던 시대는 이제 종말을 고했다.

 중앙정부가 지금까지 해온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통제와 감독?감시는 이제 지원과 지도 또는 조언으로 바뀌었다. 지방공무원이 중앙에서 파견된 외교관쯤으로 간주되고, 또 그렇게 대접받던 상황은 구시대의 유물이 됐다.

 

밑에서 치고 올라갈 정당정치 민주화

 중앙 정치무대를 독과점하던 한두 사람의 정치지도자만 바라보며 선택의 여지없이 정치불신감만 키워가던 국민의 눈앞에 지금 곳곳에서 ‘작은 거인’들이 출현하고 있다. 지방의회를 통해 능력을 인정받고 나타난 이 새 인물들은 지방분권화 시대가 탄생시킨 차세대 정치인들이다.

 정당 정치가 제자리를 잡아가는 것도 지자제 실시 이후 변화될 모습 중의 하나다. 시?도의회 의원은 지역주민의 심판을 받아 주민 이익을 대변하게 된 사람들이다. 각 정당의 지구당위원장이나 시?도지부위원장은 의회 의원의 도전을 받게 되고 결과에 따라서는 지구당위원장 경선제의 파급효과는 예상외로 크다. 하부조직인 지구당의 제도적 민주화는 중앙당의 민주화를 요구하고 장기적으로는 정당중심의 정치풍토가 자리잡는 터전을 마련하는 셈이다.

 국회의원과 지방의회 의원의 관계가 새삼스레 관심의 대상이 된다. 평민당의 蔡映錫 의원은 “국회의원의 권위가 떨어질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면서 “지구당의 부위원장급이 도의원이 될 경우 협조체제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내다본다. 군산 지역구를 맡고 있는 채의원은 벌써 ‘27동지회’ 결성을 구상하고 있다. 군산에서 뽑힐 시의원 23명과 도의원 3명에 자신을 포함해 27명으로 동지회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현 정치풍토에서라면 의회 의원이 국회의원의 심부름꾼 정도로 전락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대부분의 학자들도 그 점을 우려하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서로 경쟁상대가 되고, 지역주민이 정치역량있는 의회 의원의 자생력을 키워주어야 한다”고 예방책을 제시한다.

 단체장인 직할시장이나 도지사가 정당공천으로 뽑혔다는 이유 때문에 중앙당 총재등 공천권자 눈치를 보지 않겠느냐는 우려도 없지 않다. 심지어는 호남지역 직할시장이나 도지사는 동교동으로 결재받으러 가고, 경남?부산지역의 단체장들은 상도동으로 결재받으러 갈지도 모른다는 추측마저 나돈다. 이에 대해 한 학자는 “지방자치의 원리가 뭔지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일축하면서 “자기를 뽑아준 사람이 바로 주민이라는 것은 상식이다. 이 정도 상식을 안다면 위보다는 아래(주민)의 눈치를 더 봐야 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권한 얼마나 떼어받느냐가 문제

 지자제의 두가지 핵심은 민주화와 능률화다. 주민자치의 원리가 지켜지는 한도에서 지방행정이 효과적으로 수행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사무에는 분명한 구분이 있다. △국방 외교 국세 전매사업 등 국가의 존립 유지나 권력행정에서 나온 사무 △물가 수출입정책 금융통제 국토종합개발 양곡수급조절 도량형기 각종 자격시험 등 △항공관리 원자력개발 및 이용 기상 등 지방자치단체의 기술로 처리하기 어려운 사무 등은 중앙정부가 맡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역내 토목건설사업 도시계획 등 주민의 공공복리에 관한 사무 △자치재정 자치조직 자치입법 등 지방자치단체의 존립유지에 관한 사무는 당연히 지방자치단체가 해야 할 일에 속한다.

 중앙정부가 지방의회에 얼마만큼 권한을 넘겨줄 것인지도 숙제이다. 조례의 제정과 개정 등 지방의회의 권한이 지방자치의 범위를 결정짓기 때문이다. 지난번 건설부의 국정감사에서 민자당의 李致浩 의원이 이미 이 점을 지적한 바 있다. 이의원은 “최근 들어 내무부가 지방의회에 이관해야 할 조례 제?개정권을 마구 남발해 행정편의 위주가 나가고 있다”고 꼬집은 것이다.

 

정부는 지방공무원 통제 말아야

 지방자치를 정착시키기 위해 필요한 제도적 장치 중의 하나가 지방공무원제도의 확립이다. 현행 지자제법에는 지방공무원의 임명?해임?퇴직 등 인사권에 대한 명확한 언급이 없다. 지방공무원의 인사권은 자치단체가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학자들의 주장만이 무성할 뿐, 내무부에서는 이 문제가 거론되기만 하면 인물난을 내세워 난색을 표한다.

 한양대 지방자치연구소장인 趙昌鉉 교수는 “지자제를 실시하는 나라 치고 지방공무원 인사권을 중앙정부가 가지고 있는 나라는 없다. 지방에 인물이 모이지 않을 것이라는 반론이 있는데 논리에 맞지 않는다. 중앙집권 체제하에서는 인물이 중앙에만 몰릴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그는 또 “내무부가 지방공무원을 통제하면 지자제는 겉돈다”면서 “각 지방자치단체가 스스로 만든 공무원 임용규정에 의거하여 충원?승진?전보?임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본이나 서독처럼 대륙법 전통이 강한 나라에서는 지방공무원법 같은 것을 중앙정부나 주정부가 만들어서 모든 지방자치단체에 적용시키고 있으나 그때에도 인사행정의 주체는 각 지방자치단체가 된다. 지방공무원이 한 지방자치단체에 소속되었을 경우 그는 그 지방자치단체내에서 승진하고 그곳에서 은퇴할 각오를 가져야 한다. 지방자치단체의 보직을 다른 곳으로 ‘승진’하기 위한 징검다리로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현재 지방공무원의 직급이 중앙부처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것도 문제다. 예를 들어 충청남도의 경우 총 1조원이나 되는 막대한 예산을 서기관급인 도 국장 혼자서 관장하고 있다. 지방행정학자 사이에서는 물론 내무부내에서조차도 도 국장은 최소한 이사관이나 아니면 장관 정도의 직급이 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울대 행정대학원 朴東緖 교수는 지방공무원들이 지방의회에 진출하기 위해 임시 휴직하고, 낙선할 경우에는 다시 공무원으로 복귀하는 외국의 예를 들면서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은 적극적인 정당활동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30년만에 실시되는 지자제의 부작용은 여러 각도에서 예견되고 있다. 중앙정치가 불안하고 시끄러운 판에 지방정치마저 그것에 물들어버리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그 첫째다. 이런 진단에 대해 학자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이탈리아를 예로 든다. 이탈리아는 거의 1년이 멀다하고 연립내각이 붕괴하는 등 중앙정치가 진통을 겪었다. 2차대전 후 지금까지 50번이나 내각이 바뀌었을 정도다. 그러나 정착된 지방자치를 통해 정치권력을 분권화시켜놓은 이탈리아는 중앙정치의 혼돈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높은 경제성장률을 보였고, 지방주민의 생활 역시 거의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았다.

 

자치단체 계층화 여전히 논란

 자치단체의 계층화도 보완되어야 할 문제점의 하나로 지적된다. 현재의 헌법과 법률에 따르면 서울특별시의회와 5개 직할시의회, 그리고 각 도의회가 광역의회로, 시?군?구의회가 기초의회로 나뉨으로써 2계층화되어 있다. 일부에서는 읍?면?동의회까지 구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지역주민과 가장 밀접한 읍?면?동 단위까지 자치단체를 세분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 사이에서는 시의 하부행정 단위인 구의 경우, 과연 구의회가 얼마나 지역적인 특수성을 유지할 수 있겠느냐 하는 반론도 나온다. 내무부의 일부 행정관료들도 지방의 군 단위가 우리에게 익숙한 자치단체의 최소단위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구의회는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서울대 박동서 교수는 “동회에서는 증빙서류 발급의 기능만 하고 있을 뿐이다. 구청에서 모든 행정절차가 끝나야 한다”는 의견이다. 동사무소 제도는 주민통제를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박교수는 또 의회 의원의 성격규정에 있어서도 광역의회 의원과 기초의회 의원간에는 구별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즉 도의회나 직할시의회의 의원은 국회의원처럼 전임제로 해서 수당을 지급하는 대신, 1년중 한정된 기간만 의회가 소집될 수밖에 없는 기초의회 의원들은 명예제를 채택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재정자립 위해 운용의 묘 살려야

 지자제 실시 자체를 회의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이들은 공통적으로 지방의 재정자립 상태가 허약하다는 점을 내세운다. 15% 내외의 재정자립도를 보이는 군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전라남도의 경우 34%의 자립도를 보이고 있다. 전남 강진?완도군 지역구의 평민당 金泳鎭 의원은 지역구 구강포의 골재채취 사업과 대불공단에 인접한 배후공단 조성계획을 예로 들어 재정자립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건설부에서 주관하려던 구강포 골재채취 사업을 “지자제 실시후에 지역사업으로 실시하기 위해 중단시켰다”는 김의원은 “이 사업을 지방자치단체가 실시할 경우 그 개발이익으로 수십년간의 재원을 마련할 수 있게 된다”면서 재정자립과 관련, 지역 특산품을 개발하는 일본의 1품1촌운동도 본받을 만하다고 주장한다.

 조창현 교수는 주와 주 사이의 재정형평 이론에 근거해서 일정 세수 이상은 주(州) 간 형평기금에 이체시켜 세수가 부족한 다른 주에 넘겨주는 독일의 주간 조정제도를 예로 들면서 “그러나 중앙부처에서 내려오는 공짜 돈으로 지역사회를 발전시키겠다는 얄팍한 잔꾀는 통하지 않는 것이 지방자치”라고 재정자립의 중요성을 상기시킨다. 지역에 부과되는 세수의 증가를 회피하려 한다면 자치권을 가지고 있는 주민으로서는 극히 무책임한 행동이 된다는 것이다.

 교육자치와 지방경찰제도의 확립도 지자제의 성패를 좌우하는 열쇠가 아닐 수 없다. 교육자치의 최종단계에서는 교원인사권이나 교과과목 선택권이 주민의 손에 돌아가야 할 것이다. 서울 치안본부의 호루라기 소리 하나에 전국의 13만 경찰이 일제히 움직이는 중앙집권적 경찰제도하에서는 민생치안 위주의 경찰행정을 수행하기 힘들다.

 

지방언론 활성화도 시급한 과제

 지방분권은 곧 지역언론의 활성화를 뜻하기도 한다. 인구 43만명에 도청소재지가 있고 4년제 대학이 10개나 되는 수원시에 라디오방송국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지자제 시대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한국외국어 대학의 金寓龍 교수(방송학)는 “네트워크란 ‘서울지방국’을 포함한 전체 로컬국이 공동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라디오나 텔레비전 같은 ‘다리미문화’는 더 이상 발붙이지 못한다”는 것이 김교수의 주장이다. 텔레비전과 라디오 프로그램의 99%가 중앙국 편성으로 되어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문화의 사막지대’는 하루빨리 청산되어야 할 유물 중의 하나다.

지자제는 이처럼 대변혁인 동시에 대혼란을 예고한다. 의회의원의 자질론이 그 첫째로 꼽힌다. 권력지향적인 해바라기성 인물이나 지역발전보다는 자신의 입지를 우선시하는 구태의현한 지역 유지가 의회를 독차지할 경우 지방자치는 차라리 안하느니만 못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제도상의 미비점도 문제다. 지방행정학자들은 “완전한 지자제를 위해서는 법률?제도적인 보완이 필수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민자당 金潤煥 원내총무도 “원칙은 마련되어 있지만 세부적인 사항은 구상중이다”라고 말한다. 단계적 실시론인 셈이다. “당분간은 중앙정부의 통제가 필요하다. 재정자립도가 고르게 될 때까지 중앙정부가 개입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10년 안에 지자제가 정착될 것이라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한 세대 동안은 진통이 계속될 것이라며 장기적인 안목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견해도 있다. 결국 지방자치의 사활은 제도나 인물보다는 주민의 손에 달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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