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입김 강한 제주 비행기 탈 일 줄어든다
  • 제주 서명숙 기자 ()
  • 승인 1991.01.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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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행정에 ‘작은 정치’ 큰 영향…지역주민 이해 반영될 듯

반도의 끝 제주도. 그 어느 지역보다 멀면서도 ‘중앙정부의 입김’을 정통으로 쐬어온 이 지역에 지자제 원년은 어떤 변화의 바람을 몰고올 것이가.

 제주시 신시가지에 자리한 북제주군청 안에는 88년 12월에 완공된 북제주군 의회청사가 들어서 있다. 얼핏 보기에 소극장 무대를 닮은 ‘본회의장’은 수십석의 방청석까지 갖추고 있지만 평소에는 자물쇠로 굳게 잠겨져 있다. 그러나 올 상반기 지방의회 선거가 치러지면 9명의 의원이 주인으로 입주해 이 무대에서 ‘작은정치’를 펴게 된다. 비단 북제주군만이 아니다. 인구 52만의 제주도는 이제 5개의 작은 정치의 장을 갖게 된다. 광역자치단체인 도의회(의원 17명)를 비롯, 기초자치단체인 제주시 의회(22명), 서귀포시 의회(12명), 남제주군 의회(7명)가 그것이다.

 30년 전에 사라졌다가 다시 등장한 이 작은 무대를 통해 이 지역사회가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를 가름할 가장 큰 변수는 아무래도 무대 주인공인 의원들의 성향이다.

 전국 대부분의 지역이 그렇듯 이곳도 현재 자천타천으로 거론되는 후보의 80% 이상이 지방 재력가, 통일주체대의원 등을 거친 친여권 인사들이다. <제민일보> 송상일 편집국장은 이 이유를 “지방정치의 오랜 부재로 지도력을 확인할 기회가 없었는 데다, 재력이 유일한 능력의 척도로 간주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한다. 더욱이 인구 2만 이상의 읍?면이 거의 없는 완벽한 소선거구인 만큼 집중적인 자금살포가 더 위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벌써부터 여당 중진의원 ㄱ의원, 재력가인 ㅇ의원 등이 ‘밀어줄’ 후보를 은밀히 물색하는가 하면 구체적인 지원을 약속했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나돌고 있다.

 지방자치의 이상에 부합하는 인물의 진출에 비관적인 인사들도 지방의회가 가져올 일정한 변화에는 동의한다. 그것은 최소한 ‘제2의 탑동사태는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제주지역은 어느 지역보다도 중앙정부의 마스터 플랜에 의한 일방적인 개발을 ‘당요’받으면서 도민들의 이해와 충돌하는 일이 잦았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88년 건설부의 ‘공유수면 매립허가’를 받은 범양건영이 제주시 탑동 일대의 공동어장을 매립, 택지로 개발하면서 2천3백억원에 이르는 막대한 개발이익을 챙긴 소위 ‘탑동사건’이다. 뒤늦게 탑동주민과 이 지역 각 사회단체가 연대해서 택지개발의 막대한 이익이 한 기업에만 흘러간 것이 부당하다며 일부의 지역환원을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지만, 이 ‘장외싸움’은 아직도 해결리 요원하다.

 물론 지방자치제하에서도 댐건설, 대단위 택지개발, 관광단지 조성 등 대규모 사회간접자본의 투자를 계획?집행하는 일은 여전히 국가의 고유업무로 남는다. 그러나 지방의회는 자기 지역과 관련된 계획을 사전심의하는 과정에서 지역주민의 이해를 반영할 수 있고, 그 계획이 주민 이해와 상충될 때는 압력을 가할 수 있게 된다. 제주상공회의소 任汶鎬 사무국장은 “대규모 개발은 여전히 자금능력과 공사능역을 가진 ‘육지’의 대기업 등이 맡겠지만 중소규모의 공사에는 제주도 공영개발단 등 지역기업의 참여가 확대될 것”으로 내다본다.

 지방의회가 가져올 변화는 비단 중앙정부와의 관계만이 아니다. 예산규모 5백억원으로 농업과 관광이 주산업인 북제주군의 경우, 이제까지는 도청의 승인을 받아 예산을 집행해왔다. 그러나 지자제하에서는 군 의회의 승인을 받게 되므로 ‘행정의 일방적 판단’이 아닌 ‘지역주미의 요구’가 있는 쪽으로 사업의 우선순위가 달라지게 된다. 애월면 주민 金用哲씨는 “관광객들이 버리고 간 오물, 농업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는데도 관광용 낚시터나 서둘러 개발하는 거꾸로 된 행정이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지방의회의 새로운 등장에 따라 그동안 지역민원의 유일한 ‘해결사’로 군림했던 이 지역 국회의원들의 위상변화도 예상된다. 지방의원의 진출은 자금?공천으로 도돠준 의원들은 여전히 영향력을 가지겠지만, ‘별볼일 없는’ 국회의원들은 그 위상이 현격히 낮아질 것이다. 도의원?시의원을 거쳐 중앙무대로 진출하려는 지방의 원들과의 견제와 갈등이 생길 소지도 있다.

 도?시?군 등 행정기관은 더 엄청난 변화를 겪게 된다. 중앙에 예속돼 있으면서도 지방민들에게는 유일한 권력기관으로 군림하던 행정관청은 ‘시어머니’ 역할을 할 지방의회의 견제를 받게 된다. 행정의 비능률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고, 92년 민선 자치단체장 선거와 관련, 일부 고위직 공무원층에선 “공무원의 유일한 희망인 자치단체장의 꿈이 사라졌다”며 동요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그러나 젊은 공무원들 사이에는 지자제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파악하는 목소리도 많다. 제주도청의 한 사무관은 “지방의회가 제 목소리를 낸다면 기존의 지방자치단체가 엄두도 못내던 일을 추진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지방정부의 역할도 커진다. 실제로 90년 말을 기해 중앙 사무 9백3건이 제주도로, 도 사무 1백88건이 각 시?군에 넘겨졌다. 각종 인?허가 업무가 제주도 안에서 치리된다는 것은 서류나 행정실무자가 서울까지 번거롭게 오가는 일이 줄어듬을 뜻한다. 공항에 나갈 필요가 없어지는 건 서류뿐만이 아니다. 그동안 ‘여름 바캉스기간엔 결재받기 어렵다’는 우스갯 소리가 나올 정도로 제주도지사?시장들은 제주를 방문하는 정계?재계인사들의 접대에 시간을 뺏겨왔다. 그러나 민선 도지사는 ‘표’가 지역 안에 있는 만큼 공할 출영에 열을 덜 올리게 될 것이다.

 

지방재정 위한 ‘입도세’ 거론도

 지방자치는 권리 확대와 함께 의무를 요구한다. 지자제가 실시된다고 해서 사회간접자본의 투자에 할당되는 지방교부금?보조금?이양금이 없어지는 건 아니지만 지방독자업무가 늘어나는 만큼의 재정부담을 져야 한다. 제주도의 평균 지방재정자립도는 60%선이지만, 북제주군은 26%에 불과하다.

 지역사회 일각에서는 88년에 KDI에서 제안했던 입도세 신설을 검토하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인 의견은 ‘지역간의 형평과 감정에 맞지 않는 일방적인 세신설은 무리’라는 쪽으로 모아지고 있다. 북제주군의 蔡萬甲 내무과장은 “담배세처럼 어느 지역에서나 고루 걷힐 수 있는 보편적인 세목을 지방세로 전환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새로운 세원 발굴은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지역사회의 변화는 느리고, 간혹 부작용이 더 도드라져보이기도 하고, 부담도 동반할 것이다. 그러나 그 변화의 궁극적인 결과는 “말은 낳아 제주도로, 사람은 낳아 서울로 보내라”는 속담 하나가 사라지는 쪽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지역 안에도 정치?경제?사회적 기회가 열려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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