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하는 ‘지킴이’ 전통무예
  • 이문재 기자 ()
  • 승인 1991.01.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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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쓰레기’ 냉대 벗고 ‘민족문화’ 재평가받는 십팔기 24반무예 수벽 택견

 “지킴이의 법은 그렇지 않소. 나를 지키고 이웃을 지키며 적마저 지켜서 살리는 活法이니, 풀어서 춤추면 살풀이요, 신명을 돋구면 사당놀이며, 경건함을 돋구면 정재요, 치료에 임하면 의술이요, 뜻을 풀어보면 역사며 제의이니 어찌 활법이 아니겠소?”

 지난 87년 봄, 극단 미추가 창단기념으로 공연한 <지킴이>의 한 대목이다. 조선조 권력의 압력에 의해 음지로 숨을 수밖에 없었던 무예(인)가 관리 앞에서 전통무예의 탁월함을 설명하는 장면이다. 그러나 전통무예는, 한 젊은 무예인의 표현처럼, 조선조 이후 최근까지 줄곧 ‘문화의 쓰레기’로 취급당해왔다.

 그 ‘지킴이’가 陽地로 나서고 있다. 유구한 전통무예의 맥을 이으며, 살아있는 모든 생명들을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지키던 조선시대 ‘隱流의 무사’(무예) 즉 지킴이들이 20세기말 현대산업사회의 한가운데, 머리만 비대해지고 있는 현대인들, 그리고 뿌리와 주체성을 잃어가고 있는 한민족 속에서 마침내 부활하고 있는 것이다.

 

“무예는 그 민족의 가치질서”

 90년에 林東圭씨의 <한국의 전통무예>를 비롯, 陸泰安씨의 <우리 무예 이야기-다시 찾은 수벽치기>가 나왔고 91년1월에는 김광석씨의 <한국무예 권법요결>이 출간될 예정이다. 이에 앞서 지난 9월 金容沃씨가 펴낸 <태권도철학의 구성원리>는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무예계는 물론 일반독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처럼 전에 없이 전통무예 관계 서적들이 줄을 잇는 것과 아울러 공연예술계와 대학가 그리고 젊은 직장인들이 전통무예를 연마하고 있다.

 전통무예에 눈을 돌리지 못하는 기성세대의 몽매함을 지적하는 대한십팔기협회 김광석 회장은 “무예는 그 민족의 역사이며 가치질서”라고 강조한다. 광주에서 민족무예도장 ‘경당’을 운영하면서 ‘24반무예’를 대중화하고 있는 임동규씨의 안타까움도 이에 못지 않다. “현대 서구문명은 반자연?반인간적이며 모든 스포츠는 선수들만의 것”이라고 비판하면서 전통무예는 ‘건강한 신체와 명석한 두뇌’를 이상으로 삼는 현대인을 충분히 만족시킨다고 말한다.

 ‘수벽치기’ 전수자인 육태안씨는 “전통무예를 국민체조 형식으로 보급시켜야 한다”면서 통일 이후의 신세대들에게 민족동질성을 심어주는 매개체로서도 전통무예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전통무예를 찾아내고 그 ‘희미한 맥’을 이어놓은 이들 무예인들은 전통무예의 어제에서 민족적 자부심을 발견하며, 전통무예의 오늘에서는 자부심에 바탕하는 민족의 건강함을, 그리고 다가오는 통일과 국제화사회 속에서의 당당한 韓民族像을 일으켜 세우려 하고 있다.

 서양이나 중국 일본 등에서 들어온 무술이나 운동에 비해 전통무예는 氣?내공?외공?정신수양 등 그 용어부터 신비화되어 문화의 중심에서 제외되어왔다. 비교적 널리 알려진 18기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중국 것으로 알고 있으며, 택견?수벽치기 같은 무예는 일반에게 매우 생소하다.

 

전통무예는 ‘사람 살리는’ 예도

무예인들에 따르면, 조선조 개국 이래 무예는 문신들에 의해 줄곧 업신여겨졌고 ‘사무라이 정신’으로 무장한 일제의 민족문화 말살정책은 특히 전통무예를 극심하게 탄압했다. 그러나 8?15후에도 전통무예는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다. 무예경시 풍토는 뿌리깊은 것이었고, 각 분야에 뻗어있던 식민지의 잔재는 ‘우리 것을 찾자’는 움직임을 오랫동안 봉쇄해왔다.

 하지만 전통무예의 수난기에 비해 전통무예의 역사는 장구하다. 옛 문헌에 의하면 한민족은 뛰어난 무예인들이었다. 한(漢)족의 기록인 <위지>에는 東夷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 夷자는 大弓을 합성한 글자이다. 곧 “동쪽의 활 잘 다루는 민족”을 뜻하는 것이다. 고구려의 무용총?삼보총의 벽화에서 택견의 원형을 찾는 시각도 있고 보면 전통무예의 출발점은 삼국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임동규씨는 “우리 역사상 무예를 숭상했던 부족국가 시대에는 외침을 넉넉히 견뎌냈지만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이 분화되고 농경사회가 정착되면서 무예가 퇴화했다”고 파악한다. 무예가 퇴화하자 통치계급은 사치 향락에 젖어들었고 사회 전반은 활력을 잃었으며 이때에 주변 종족으로부터 정복당했다고 밝히고 있다.

 육태안씨는 전통무예의 특징을 “氣를 바탕으로 부드러운 동작 속에 무서운 위력을 담는 것”으로 규정한다. 택견?수벽치기 같은 전통무예는 살풀이춤과 같은 圓의 몸짓(陽剛)이 하나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택견이나 수벽치기의 몸짓들은 그래서 춤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이 음유양강(임동규씨는 動中靜이라고 말한다) 속에 天地人, 즉 한민족 최고의 경전으로 알려진 ‘천부경’ 사상의 핵심이 녹아들어 있다고 육씨는 전한다.

 그러나 ‘전통무예’ 개념은 혼동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천부경을 뿌리로 삼고 있는 택견?수벽치기?기천?원화도 같은 전통무예 쪽에서는, <무예도보통지>를 바탕으로 삼고 있는 18기(18반무예)와 24반무예를 “전통이 아닌 고전무예”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택견과 같은 전통무예를 ‘민속놀이’라고 규정하는 시각도 공존하고 있어서 ‘난맥상’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검도?합기도처럼 민족무도라고 주장하는 또 다른 차원의 견해가 있고, 김용옥씨가 최근 주장한 태권도와 전통무예 택견과의 무관함도 논쟁으로 떠올라 있다.)

 전자와 후자가 갈라지는 분기점이 <무예도보통지>이다. 이 문헌은 조선 정조의 명에 의해 이덕무 박제가 백동수 등이 1790년 편찬한 것이다. 민속연구가 沈雨晟씨는 이 문헌을 “이 땅을 지키기 위한 한 의지”이며 당시까지 존재했던 국내외 무예들을 주체적으로 집대성한 예도라고 높이 평가하고 있다. 물론 택견?수벽치기 쪽에서도 이 문헌의 귀중함은 인정하지만 이 문헌이 수용하지 못한 무예의 맥을 더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 것 같다. <무예도보통지>는 임진란 이후 ‘숭문억무’ 정책이 얼마나 엄청난 역기능을 가져왔는가에 대한 반성의 결과였다.

 거칠지만, 18기?24반무예와 택견?수벽치기가 무엇인지를 살펴보자. 18기와 24반 무예는 같은 것이다. <무예도보통지>가 정리한 24반 무예 가운데 말(馬)과 관련된 무예 여섯가지를 제외시킨 것이 18기이다. 18기는 검법과 권법 등을 망라하고 있다. 이 가운데 본국검?예도?권법 등은 고려시대까지 이 땅에 존재했으나, 명맥이 끊어지면서 중국으로 건너가 정조 때 다시 들어온 무예이다. 중국의 <무비지>에 명백한 근거가 있다. 임동규씨의 견해에 따르면 전통무예(24반무예)의 요체는 기의 운용이며. 이 運氣의 목적은 모든 신체부위의 통제이다. 나아가 무예는 “(공격) 대상의 천변 만화에 대한 응변인 동시에 고차원적 심적 평형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는 국가에도 적용된다고 그는 주장한다.

 육태안씨에 따르면, 호흡과 천지인이 몸짓과 결합되어 있는 택견?수벽치기는 “殺法이 아닌 活法, 즉 사랑이며 護心術?護神術”이다. 일본무술이 일격필살을 강조한다면, 전통무예는 ‘혼내주기’가 목적이라는 것이다. 택견과 수벽치기는 차이보다는 공통점이 더 많다. 옛 문헌이 수박 수벽 수박희 등으로 적고 있는 수벽치기는, 택견이 발 위주의 무예인 데 비해 손 중심의 무예라는 차이점이 있을 뿐이다.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택견은 공격성을 제거한 민속의 차원”이라고 말하는 육태안씨는 “그러나 결연(혹은 ‘자연’) 택견은 무서운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한다.

 시간과 공간을 무서운 속도로 단축시키는 현대사회는 인간 본래의 野性을 퇴화시키고 있다. 자동화?편리화 현상은 인간으로 하여금 ‘땀 흘리는 신성한 노동’의 의미를 앗아가고 있다. 지식인 노동계층은 ‘충전하기가 쉽지 않은 에너지의 일방통행적인 소모’를 가요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첨단산업 사회 속에서 개인이 ‘본디 인가’으로서의 자연성을 훼손당하고 있는 반면, 그 개인들이 구성원인 민족은 외세의 팽팽한 압력과 마주하고 있다. 여기서 전통무술이 아닌 전통무예의 현재적 의미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전통무예의 대중화 절실하다”

 수벽치기가 문화예술계와 삼투하고 18기?24반무예가 대학문화와 만나고 있는 현실은 중요한 징후로 보인다.

 문화재 전문위원인 예용해씨는 “택견과 더불어 전통무예의 쌍벽인 수벽치기가 그늘에서 그늘로 이어져와 세속의 때가 안묻었기 때문에” 민족문화적인 가치가 있다고 평하고 있다. 연극 무용 등 공연예술계가 전통무예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배경이 여기에 있다. 84년경부터 육태안씨는 사물놀이 춤 연극과의 접목을 시도해왔다. 그는 무용가 이애주, 연극인 손진책 윤석화 기주봉씨등과 교류하고 있으며 현재 강좌를 맡고 있는 중앙문화센터에는 연극인을 비롯, 尹九炳교수(충북대 철학과)등 지식인층이 참여하고 있다. 한편, 18기?24반무예는 대학문화가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우리것찾기’ 운동의 구체적 실천인 대학가의 전통무예 붐은, 지금은 비록 미미한 단계이지만 사회로까지 번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문화예술계와 대학사회의 활발한 움직임에 비해 전통무예에 대한 학문적인 탐구는 아직 성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전통무예의 가치와 역할이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에 비해 학계의 행보는 ‘지나치게’ 느린 것 같다. 이제 학계와 지식인들이 전통무예를 이론화하고 대중화하는 ‘펼침이’의 몫을 실행해야 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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