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 종일방송
  • 우정제 기자 ()
  • 승인 1991.01.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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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빠르면 91년초부터 KBS1 텔레비전의 종일방송을 허용할 방침이다.
전파의 효율적인 활용을 위해 바람직하다는 주장과 프로그램 저질화를 가속시킨다는 반론이 팽팽하다.

찬성 / 김유룡 한국외국어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고대. 서울대. 미국 콜럼비아대학 졸업. 언론학 박사

● 텔레비전의 종일방송 실시를 찬성하는 이유는?

 텔레비전의 전파는 주요 국가자원이다. 소중한 자원을 ‘공한지’처럼 놀려서는 안된다. 세계 어떤나라에 아침 4시간, 저녁 6시간반만을 방송하고 나머지 시간의 전파를 ‘낮잠’ 재우는 텔레비전 방송이 있는가. 컴퓨터의 보급과 시간제 근무 등으로 생활여건이 변화하면서,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진 계층에게 정보와 오락을 제공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우루과이라운드로 인한 시장개방에 대비해 국제경쟁력을 강화하고, 일본 위성방송의 전파 越境에 대응하며, 또 독립제작사의 판로 개척을 위해서도 낮방송은 필요하다.

● 경기침체가 심각한 현 시점에서 종일방송은 에너지 낭비와 과소비를 부채질하리라는 비판이 있잖은가.

 모든 일은 양면적이다. 에너지 절약을 이유로 방송 활동을 위축시키는 것은 전근대적 발상이다. 과소비 문제도 마찬가지다. 프로그램에 과소비를 조장하는 내용이 있다면 그것을 문제 삼아야지 언론?정보?문화매체인 방송 자체를 과소비로 보는 것은 넌센스이다.

● 제작여건이 미비된 채로 종일방송을 허용하면 프로그램의 저질화를 초래하리라는 우려가 크다.

 그같은 지적에는 동감이다. 현재도 프로그램의 질과 윤리적 측면에서 문제가 많은데, 갑자기 방송시간이 늘어나면 재방송이나 저급한 연속극, 외화 등이 범람할 가능성이 있다. 시간 메우기 식의 ‘땜질’ 프로그램이 판치게 될지도 모른다. 오전에는 주부, 오후에는 귀가한 국민학생이나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직업인이 주요 시청 대상일 것이다. 이들을 위한 교양 프로그램, 교과 보완 프로그램, 민주시민교육 프로그램, 고급 문화예술 프로그램 등을 중심으로 방송 내용을 편성한다면 프로그램 저질화를 막을 수 있다.

● 미국이 국내시장을 겨냥, 광고 기회를 확장하려는 시점에서 종일방송을 허용하는 것은 시장침탈을 조장하는 격이 아닌지.

 주한 미 상공회의소 측이 광고 기회를 확대해달라고 요청한 직후 낮방송 문제가 거론돼 그런 오해를 사게 되었다. 하지만 어차피 낮방송 실시 여부와 관계없이 국내 방송은 자칫 다국적 미디어산업의 시장으로 전락할 위험성을 안고 있다. 개방과 국제화의 문제를 우리들의 정보복지 실현과 어떻게 조화시켜 나갈지가 당면 과제라 하겠다. 낮ㅂ장송 실시로 미국 광고가 얼마나 늘어날 것이냐를 쟁점으로 삼을 것이 아니라 외제를 선호하는 사치풍조와 사대주의를 지양해나가는 노력이 우선돼야 한다고 본다. 아울러 국산품의 품질향상도 병행해야 할 과제이다.

● 경쟁사인 MBC 텔레비전도 현재 종일방송 허용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KBS1 텔레비전에만 낮방송이 허용된 것은 형평성에 원칙에 어극나지 않는가.

 한 방송국에 낮방송이 허용되었다고 해서 다른 방송국에도 허용되어야 한다는 논리는 성립되지 않는다. 프로그램 편성과 방송시간은 정부가 좌지우지할 것이 아니라 방송사 자율에 맡겨야 한다. 방송법 제3조 1항을 보면 ‘방송편성의 자유는 보장된다’고 엄연히 명시되어 있다. 무슨근거로 정부가 방송시간을 ‘허가’하는지 알 수 없다. 이는 조속히 철폐되어야 할 구시대의 유물이다.

● KBS가 만약 재원 염출을 고려해 낮방송을 계획했다면 시청료 폐지 문제가 우선적으로 검토되어야 순서가 아니겠는가.

 돈을 버는 것이 방송의 주목적이 될 수는 없으나 좋은 방송을 하려면 재정이 먼저 안정되어야 한다. 현재 KBS는 재원의 72%를 광고료에 의존하고 있다. 이것은 공영방송으로서의 정체성과 존립에 중대한 문제가 있음을 시사한다. 시청료 징수제는 조세의 형평원칙에도 위배된다. 이 기회에 시청료 징수를 계속할 것인지 폐지할 것인지 여부를 국민에게 물어 결단을 내려야 한다.

● 원칙적으로는 찬성하나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많은데.

 KBS와 MBC는 오래 전부터 이에 대비해온 것으로 안다. 방송은 일단 부딪쳐야 해내는 생리를 갖고 있다. 비디오?영화?유선방송 등 텔레비전 관련 영상산업을 진흥시키고, 제작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도 낮방송은 조속히 단행돼야 한다.

● 종일방송과 관련, 프로그램의 저질화를 막을 수 있는 제도적 대안을 제시해달라.

 방송의 질을 높이는 첩경은 프로듀서의 질을 높이는 것이다. 그러나 하루 아침에 프로듀서의 자질을 향상시킬 수는 없으므로 국민의 감시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일례로 소비자보호운동의 차원에서 모니터 등을 동원, 사회적 압력을 강화하는 방법이 있다. 저질 프로그램을 선정, 공개하고 그 프로그램의 광고주가 만드는 상품에 대해 불매운동을 벌이는 것도 한 방법이다.

 

반대

 / 전재수 방송평론가. 전 국제신문 기자. <방송 ‘90> <월간조선> 방송칼럼 담당.
● 종일방송 실시를 반대하는 이유는?

 민방을 졸속 도입하는 등 정부가 일방적으로 방송구조 개편을 강행하여 온 방송계가 술렁이는 판국에 이번엔 종일방송 허용인가. 정부가 왜 서둘러 종일방송을 허용하려는지 그 속셈부터가 의문이다. 종일방송은 낮시간 시청자들의 정보욕구를 채워주는 데 의의가 있으나 현실적으로 그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렵고, 외국 위성 텔레비전 등의 안방 침투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방패막이도 될 수 있다.

● 종일방송은 방송 선진국의 추세다. 우리도 시청자들의 정보욕구 충족을 위해 실시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그럴 법한 얘기이나 현재 우리 방송의 제작능력에 비추어볼 때 동의할 수 없다. 제작이 힘에 부쳐 휴일 방송마저 재탕 등 시간 메우기에 급급한 실정이 아닌가. 근무양태가 바뀌면서 낮시간을 집에서 보내는 시청자의 정보욕구가 크게 증가하여 종일방송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으나 사실은 허구다. 낮방송의 주시청자는 어린이나 주부 또는 노인으로 종일방송 수용 인구의 저변이 극히 좁기 때문이다.

● 일본 위성 텔레비전의 안방침투를 막고 유선방송을 실용화하는 등 방송의 환경병화에 대응하며 시청자가 저질 비디오에 노출되는 것을 차단하는 효과도 기대되는데….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종일방송 실시가 근원적인 대응책이 될 수는 없다. 종일방송 프로그램의 품질 향상이 전제돼야 하고, 시청자의 취향도 고급 지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렇지 못할 때, 종일방송은 시청자를 저질 프로그램에 이중으로 노출시키는 역효과를 내게 될 것이다.

● 그래서 KBS는 문화예술 프로그램이나 시사보도물 등 양질의 프로그램을 내보내겠다고 다짐하고 있지 않은가.

 믿기 어려운 다짐이다. 온 식구가 어울려 보는 가족 시간대에도 교양?교육 프로그램은 뒷전인 채 저급한 연속극과 오락물 방영을 일삼아온 KBS가 낮시간대라고 새얼굴을 보일 수 있을까. 오래 전부터 별러온 MBC까지 종일방송에 가세할 경우 시청률 경쟁은 불가피해질 것이고,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시청자들의 저급한 기호에 영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낮방송을 해온 미국이나 일본에서도 오래전부터 프로그램의 저질화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또 향후 정치 일정을 앞두고 정부와 여당의 홍보성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유포?확산시키는 수단으로 KBS가 종일방송을 이용할 우려도 있다.

● 종일방송은 광고수입을 통해 KBS의 재정 압박을 덜어주고 중소기업의 광고 기회를 넓힐 것으로 기대되는데….

 KBS에 종일방송을 허용, 광고수입으로 공영방송의 재원을 보존한다는 발상부터가 넌센스라고 본다. 방송이 광고수입에 의한 돈벌이 수단이 돼선 안될 것이다. 더욱이 종일방송 허용이 국내 광고시장 개방을 요구하는 미국측의 압력에 굴복한 결과라면, 이는 나라의 주권에 관련된 중대 문제라 할 것이다.

● 정부의 종일방송 허용은 자유를 제한하는 전근대적 발상이며, 방송사 자의로 종일방송을 실시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언론통제의 극소화란 측면에선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사회책임론이나 공익적 차원에서 정부가 종일방송 허용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방송정책의 문제라고 본다. 그러한 결정이 정부의 정치적 계산의 산물이어서는 안 될 것이다.

● 방송 발전을 위한 ‘허용’이라면 색안경 끼고 볼 일은 아니지 않는가.

 물론 그렇다. 문제는, 정부가 민방 허가 등 방송구조 개편때 전문가 집단과 시청자의 여론을 제대로 수렴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결정을 내려 의혹을 샀던 양상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점이다. 무엇 때문에 정부가 KBS와 서로 짜듯 그토록 서둘러 종일방송을 허용하려드는가. 허용에 앞서 종일방송에 따른 기본 방송정책과 편성 방향을 확실히 마련하는 게 순서 아닌가. 예의 졸속 허용으로 부작용과 시행착오를 낳게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 그렇다면 정부는 종일방송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종일방송 실시해도 나름대로 가치는 있다. 다만 서둘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종일방송이 끼칠 이익과 불이익의 절대치를 신중히 비교해 허용 여부를 결정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KBS에 이어 MBC에도 차례로 종일방송을 허용한다면 정부는 방송사들의 이기주의와 영합해 방송의 영향력을 증폭시키려 한다는 국민의 의혹을 사게 될 것이다. 지금의 종일방송을 실시하기보다 현대 방영되는 프로그램의 내실화에 더욱 주력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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