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통성 훼손시킨 3당 통합”
  • 정리 · 김 당 기자 ()
  • 승인 2006.04.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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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비대로 힘의 정치 다시 시작…‘구국 결단’ 아닌 ‘야합’

 

김광웅(사회) : 노태우 대통령의 임기를 석달 남짓 남겨놓고 6공화국을 평가하는 것은 시기적으로 이른 감이 없지 않지만, 차기 대통령선거에서 우리가 누구를 뽑을 것인가에 대한 참고 자료를 제시해준다고 봅니다. 먼저 6공의 첫 과제로 등장한 5공청산과 관련해 전임 대통령과 지도력을 비교 · 평가하고 노대통령이 내세운 공약들이 얼마나 실현되었는지를 살펴보았으면 합니다.

김호진 : 전임자와 비교할 때 두드러지게 다른 점은 난국을 수습해 나가는 데 매우 소극적인 양상을 보인 것입니다. 특히 직선에 의해 당선된 대통령이라는 점에서 지도력의 정통성을 어느 정도 확보하고 있었는데도, 확보된 정통성의 효율성을 살리지 못했다는 것은 한마디로 지도력의 부재라고 봅니다. 이른바 6 · 29선언 실현 문제는 매우 중요합니다. 6 · 29선 언은 87년 6월항쟁의 산물이지만 노태우 후보가 대통령이 된 것은 6 · 29라는 민주정치에 대한 약속을 국민이 믿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노태우 대통령은 국민과의 약속, 6 · 29선언에 나타난 시대적 요청을 지켜야 할 책임과 의무를 가지고 있었던 셈이죠. 그런데 막상 취임하고 나서 얼마 안있어 국민은 노대통령의 6 · 29정신 이행에 한계가 있다고 느끼기 시작했고, 그러한 우려는 중간평가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과 스스로 강조했던 ‘상식의 시대’를 뛰어넘는 3당합당을 통해 힘에 의한 정치, 공안정치로 대처한 데서 드러났습니다. 그런 점에서 약속을 어긴 대통령으로서 부정적인 평가를 면치 못할 것입니다.

 신명순 : 저는 평가를 하는 데 두가지를 고려해야 한다고 봅니다. 하나는 6공이 과도기라는 점입니다. 안정기 때의 대통령과 과도기 때의 대통령을 평가하는 기준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하나는 민주화 과정이라는 점입니다. 과거의 권위주의 정부 체제에서는 독재냐 아니냐가 가장 중요한 평가 기준이었지만 민주화 시기라는 점에서 정책수행 능력, 지도력, 국민과의 약속 이행 등으로 평가기준을 삼아야 하는데 그런 점에서 보면 상당히 부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김광웅 : 저는 정통성이 선거를 통해 확보되었는데 합당을 하면서 망가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김호진 : 두가지로 볼 수 있죠. 우선 노대통령 개인의 퍼스낼리티라는 특성과 당시의 시대상황적 요인입니다. 우선 노태우 대통령은 과거의 정치 지도자들이 받았던 국민으로부터의 비판을 자신은 받지 않겠다는 생각이 상당히 강한 것 같습니다. 대통령으로서의 사명감이나 책임 의식보다는 그 역할이 끝났을 때의 평가를 의식하는, 즉 나쁘게 말하면 퇴임후를 연연해 몸을 사리는 개인적인 특성이 지배한 거죠. 사오항적인 특성으로는 취임 후 나타난 야대여소 정국과 민주화 이행기에서 분출하는 각계각층의 욕구에 휘말려 허우적거리다 함몰된 측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두가지를 모두 상쇄할 수 있는 것이 정통성이라고 봅니다. 과거 지도자들은 정통성이 없어서 힘을 가지고도 힘을 민주적으로 행사하지 못하는 한계에 부딪혔지만, 노태우 대통령은 정통성을 어느 정도 확보하고 있었기에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지도자로서의 힘을 효율적으로 행사할 수 있었는데도 그렇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노대통령이 가진 정통성이라는 것도 36.7%라는 소수 지지로 인해 처음부터 대표성이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3당합당이라는 무리수를 둠으로써 결과적으로 얼마 안되는 그 정통성마저 잃어버린 결과를 낳았습니다.

신명순 : 제가 보기에는 36.7%가 비록 낮은 지지율이기는 했지만 우리가 선택한 제도 아래 당선된 것이기 때문에 낮은 지지율과 정통성은 무관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낮은 지지율로나마 정통성은 확보했는데 그 정통성을 훼손한 것이 3당통합입니다.

김광웅 : 3당통합으로 정통성을 상실했다는 점에서는 의견 일치를 보는 것 같은데 문제는 3당합당을 통해 인위적으로 거대여당을 만들었지만 의회정치를 안정시키지 못했습니다.

김호진 : 여야 간의 대립이 오히려 3당합당 뒤에 더 격화되었습니다. 3당합당으로 여당이 비대해짐으로써 다시 힘의 정치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3당합당의 의도가 무엇이었느냐를 따지는 것도 중요합니다. 다시 말해 노대통령 말대로 여소야대로 무력해진 자신의 기반을 강화하고 국정운영의 효율성을 살리기 위해 합당을 했느냐, 아니면 정권 재창출을 꾀하는 세력과 합당에 찬성한 옛 야권 세력의 이해가 맞아 떨어져 합당을 했느냐인데, 그 결과를 볼 때 국정운영의 효율성을 살리기 위한 그야말로 구국 충정의 결단으로 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합당 뒤에 노대통령이 자신의 약속과 6 · 29선언 실현을 위해 더 노력하고 정국 안정을 꾀했어야 하는데 오히려 합당 이후 내각제 개헌 문제, 후계자 갈등이 불거져나와 노대통령은 무력증에 빠져 국정이 표류하고 정국 위기만 조성돼 급기야 탈당에까지 이른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구국의 결단이라기 보다는 정권 재창출을 꾀하는 세력과 정권을 노리는 세력의 3당야합이라는 비난이 나온다고 봅니다.

 

대통령중심제에서 대통령 탈당은 책임 포기한 것

김광웅 : 정당정치라는 측면에서 보면 합당도 문제지만 탈당, 즉 스스로 만든 민자당을 노대통령이 떠났다는 사실 그 자체만 보더라도 6공의 정당정치는 실패한 것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합니다.

김호진 : 정당정치를 책임지고 이끌어갈 여당이 이질적인 요소를 봉합한 탓이 크지만, 내분에 휩싸임으로써 제1당으로서의 역할을 못했고 그로 인해 의회정치가 표류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합당 이후 오히려 의회정치가 후퇴했고 3 · 24총선 뒤에도 6개월 간이나 국회가 열리지 못하는 등 결국 과거와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다는 점입니다.

신명순 : 노대통령의 탈당이야 말로 3당통합의 실패를 명백하게 보여준 것이고 정당정치의 무책임성을 드러낸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어떤 목표를 가지고 만든 당을 자기 목표대로 안되자 떠났다는 것은 정당정치의 틀을 저버린 무책임한 짓이죠. 3당 통합을 실질적으로 주도했던 박철언 · 김용환 의원 등이 민자당을 떠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습니다.

김광웅 : 탈당을 부정적으로 평가했지만 그래도 선거를 공정하게 관리하려는 자세를 보여줌으로써 탈당이 다음 정권의 정통성을 확보해주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봅니다.

신명순 : 그렇지만 다른 모든 정치 선진국에서는 대통령이 탈당하지 않고서도 공정선거를 관리하고 있습니다. 탈당을 해야만 공정선거를 보장할 수 있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김호진 : 탈당과 중립내각 구성으로 관권선거를 막으려는 취지는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중심제 아래에서의 대통령 탈당은 그 순간부터 책임정치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신명순 : 한국정치의 근본적인 문제점 중 하나가 인물 중심의 정당정치였습니다. 그런데 인물 중심의 정당정치의 작폐를 대통령이 탈당으로써 몸으로 실천해 보인것입니다. 자기가 만든 정당임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밀리니까 탈당했고 그 밑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사람들도 다 자기가 만든 정당을 버리고 새 정당을 만들었습니다. 결국 대통령이 인물 정심의 정당정치에 솔선수범을 한 나쁜 영향이 큽니다.김광웅 : 그렇지만 막강한 권력을 가진 대통령으로서 그 권한을 스스로 극대화시키지 않은 점은 문민정치 시대를 여는 데 긍정적으로 기여한 것 아닐까요.

김호진 : 책임정치라는 측면에서 보면, 저는 작은정부와 무능정부는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책임지지 않는 대통령과 민주주의를 추진하는 대통령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저는 책임정치를 외면한 데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신명순 : 저는 지도력이라는 것이 해야 할 것은 하고 안해야 할 것은 안하는 데서 나타나는 것인데, 이를테면 민생치안이라든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국민이 단호한 조처를 기대하고 있는데 그마저 안했습니다. 그래서 책임정치를 못한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김광웅 : 의회정치라는 측면에서 볼 때 지방의회를 구성한 것만은 그래도 수확으로 볼 수 있다고 봅니다.

김호진 : 지방자치도 노대통령을 평가하는 데 양면성이 있지요. 자치단체장선거만 해도 그 연기의 명분이야 어떻든 국회가 만든 법을 일방적으로 어김으로써 위법을 했고 의회를 유린한 대통령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민자당 경선은 긍정적 평가

김광웅 : 민주화와 관련해서는 자료를 제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얼마나 민주화되었느냐 하는 점인데 지난해 11월 전국에서 1천1백85명을 표본으로 조사한 것인데 10점 만점에서 5공 말의 민주화 수준은 4.0점인데 견주어 6공은 5.7점으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민주화에 대한 만족도는 5공 말이 4.0, 6공이 4.8로 나타났습니다. 5공 때와는 차이가 있지만 여전히 국민의 절반 가량만이 민주화 수준에 만족을 느끼고 있을 뿐입니다. 민주화에 대한 평가를 해보기로 합시다.

김호진 : 만족도 조사가 매우 정확한 것 같습니다. 그것을 현실 문제와 결부시켜 보면 지방자치나 언론 자유 등에서는 상당히 민주화된 것으로 보이는데 아직도 안기부라든가 하는 권력 기관이 한국정치의 실세로 엄존하고 있다는 점 등으로 국민이 체감하는 민주화 만족도가 평균 이하로 나오지 않았나 보입니다. 그밖에 노동운동에 대한 공권력 만능주의 등도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신명순 : 정당정치와 관련해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은 민자당의 경선입니다. 경선은 노태우 총재의 결단이 없으면 어려운 것이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여당에서 경선이 한번 이뤄짐으로써 앞으로도 경선이 정착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당내 민주화에 기여할 것으로 보입니다.

김광웅 : 노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정직한 정부를 강조했지만 일반인은 정부가 과거보다 더 부패했다는 평가도 합니다. 아까 말한 5, 6공 비교 조사를 보면 정부의 국정수행 능력 평가를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같은 조사에서 생활수준 향상 정도와 법 · 질서 유지에서는 5공이 5.0점, 6공이 4.4점으로 나타났는데 공정한 분배 여부에서는 5공이 3.9점, 6공은 4.1점으로 나타났고 국민의사 반영에서는 5공이 3.6점, 6공이 4.6점으로 나타났습니다. 분배와 의사 반영에서는 5공보다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생활수준과 법 · 질서 유지에서는 5공보다 낮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전체를 평균해 보면 5공은 4.2점, 6공은 4.3점으로 나타나 커다란 차이는 없습니다.

신명순 : 5공 때는 친인척 비리가 주종이었는데 비해서 공무원사회 등의 비리는 권위주의 체제 분위기 속에서 어느 정도 규제된 측면이 있습니다. 반면에 6공 들어서는 대통령과 관련된 비리는 없어졌는데, 문제는 법과 질서가 무시되고 공무원사회 비리도 통제되지 않은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김호진 : 특히 갈등해소 부문에서는 초기에 민화위 발족 등으로 성의를 보였지만 결국 실패했습니다. 오히려 5공 때보다 지역 · 노사 · 계층간 갈등이 더 커진 것 같습니다. 김대중 총재가 이번 대선에서 대화합의 기치를 들고 나설 만큼 6공은 사회 통합에서 실패했습니다.

김광웅 : 지역갈등 문제를 자료로 접근해 보면 더 분명하게 드러나는 통계가 있습니다. 중립내각이 들어설때까지의 6공 각료는 모두 1백1명이고 자리수로는 1백14석입니다. 한 사람이 두세번 한 적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영호남 비율을 보면 영남이 36.7%이고 호남이 10.9%로 나타나 인구 비례로 보더라도 과거와는 현격한 차이가 납니다. 이는 인사라는 기본적인 정책에서도 편파성을 극복하지 못하고 갈등을 더 증폭시킨 측면이 큽니다.

김호진 : 국정수행 능력에서 나타난 평가는 막스 베버가 지적한 직업 정치인으로서 훈련이 안된 결과가 아닌가 합니다.

김광웅 : 좀더 직접적으로 말하면 대통령으로서 수업을 쌓지 못한 사람이 대통령이 된 데서 온 결과로 보입니다. 좋은 측면에서의 직업 정치인, 전문 정치인으로서의 학습이 없었던 거죠.

김호진 : 물론입니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는 대통령으로서 수업을 쌓고 자질을 가진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시대가 와야 합니다.

김광웅 : 저는 ‘가는’ 대통령에 대해서는 좀 후한 점수가 나올 줄 알았는데 의외로 신랄한 비판이 많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런 비판은 ‘오는’ 대통령에 대한 평가의 지표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6공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의 책임을 노대통령 한사람에게만 미룰 수 없는 일입니다. 어떻게 보면 국민의 잘못된 선택의 결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6공에 대한 최종 평가는 오는 대선에서 표로 나타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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