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 시기 원칙없이 허송”
  • 정리 · 김방희 기자 ()
  • 승인 2006.04.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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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과 분배 사이서 표류…관료 기용 등 일관성 결여


 

홍원탁(사회) : 노태우 대통령의 경제관부터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렇게 얘기해놓고 보니까 난감하기 그지 없습니다. 노대통령이 경제관이 무엇이었는지 알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도자가 확고한 문제의식이나 신념이 결여된 것처럼 보이게 되면 경제에 상당한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김광두 : 노대통령이 상대적으로 경제에 관한 특별한 신념이 없었다는 것은 틀림 없는 것 같습니다. 한 예로 문희갑 청와대 경제수석이 있을 당시 노대통령이 말씀하시던 기본방향과 그 뒤 김종인 청와대 경제수석이 재임할 당시의 말씀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대표적인 게 금융실명제입니다. 문희갑씨가 경제수석을 맡았을 때는 금융실명제를 반드시 실시해야 한다고 하다가, 김종인씨로 바뀌니까 갑자기 바뀐 겁니다. 좋게 보면 유연성이 있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만은 보좌관들을 따라가는 거 아니냐 하는 느낌을 계속 주었습니다.

이한구 : 6공 경제가 정권 인수받을 때에 비해 나빠진 것은 우선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경제팀이 지나친 낙관론에 입각해서 경제를 끌어왔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개혁론자들에게도 일부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뭘 개혁하겠다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6공 초기에 개혁을 시도할 때 주변여건 형성에 좀더 신경을 써가면서 끌고 나가도록 요구를 했더라면 좋지 않았겠느냐 하는 겁니다. 또 한가지, 5공화국 때부터 쭉 이어지는 용인술도 문제였습니다.

홍원탁 : 용인술에 관해서라면 평가가 제일 나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뚜렷한 문제의식이 없고, 방향감각이 없는 상태에서는 사람을 쓸 때 일관성이 없게 되는 겁니다. 예를 들자면 조 순 교수를 부총리로 기용했다가 전혀 다른 이승윤 의원을 부총리로 쓴 겁니다. 경제에 관한 인사는 참 일관성이 없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광두 : 그러면 그것이 민주화와 상충관계가 있는 것이냐 하는 문제를 살펴봐야 할 겁니다. 저는 경제에 관한 신념을 가지고 이에 맞게 사람을 쓰는 문제와 민주화와는 별로 관계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노대통령의 경우 민주화라는 분제를 굉장히 신경썼다면 행정규제에 관해 많은 것을 이룰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행정규제라는 것을 오히려 더 복잡하게 만들어서 정치적인 민주화와는 반대로 경제적으로는 일관성 없는 규제들을 만들었습니다.

이한구 : 제일 치명적이었던 것은 어떤 사람을 썼건 그 사람이 일을 할 수 있도록 정치적으로 밀워줘야 하는데 조금만 못하면 갈아치우고 갈아치우고 했다는 것입니다.

김광두 : 도덕성 문제도 제기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수서사건과 정보사터 사기매각사건, 최근의 건영특혜사건 같은 것들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이 사건들은 아무리 봐도 납득하기가 어렵게 흐지부지 넘어가 버렸거든요. 이런 것은 우리에게 뭔가 원칙이 없는 사회다, 재주 잘 부리고 로비도 잘하는 사람만 잘되고, 안 그러면 별볼 일 없게 된다는 느낌을 많이 줬습니다.

홍원탁 : 하여튼 80년대 후반은 우리나라 산업구조나 수출구조로 보아서 상당히 중요한 전환기였습니다. 왜냐하면 60 · 70년대에는 저임금에 바탕을 둔 단순노동집약적인 구조를 가지고 엄청난 물량적 팽창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80년대 후반에는 임금이 높아지고 산업부문에서 한계에 이르러 고부가가치산업, 즉 좀더 기술집약적인 숙련기술 노동이나 고급기술이 필요한 산업으로 바꾸어야만 우리나라가 계속해서 고도성장을 할 수 있고, 국제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해갈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새로운 신흥 공업국인 말레이시아 태국 인도네시아가 단순노동집약적인 수출품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해갈 때 일본이 했던 것처럼 그 나라에 필요한 중간재 · 부품 · 소재 · 시설재를 공급해주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했습니다. 그 전환은 8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돼야 했습니다. 그러한 전환점의 중요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많은 무역흑자와 3저호황의 기회를 낭비해버린 것 같습니다.

 

경쟁력 너무 낙관…우선순위 개념도 정립 안돼

김광두 : 우리 경쟁력을 너무 낙관적으로 본데다 개방의 스케줄도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조금 빨리 진행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낙관적인 현실진단의 연장선상에서 흑자가 예상보다 크게 나니까 개방을 빨리 해도 문제가 없다는 생각이 확산된 것 같습니다. 임금이 생산성 향상 수준보다 빠른 속도로 올랐는데 이는 민주화와 관계가 있다고 봅니다. 5공 때 물가안정을 위해 임금임상을 억누른 데 대한 반작용이 많이 나타난 것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그런 여건 때문에 6공 경제팀을 이해해줄 여지가 있다고 봅니다. 단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마찬가지로 우선순위 개념이 없었다고 생각됩니다. 산업구조를 조정한다거나 경쟁력을 강화한다고 할 때 우선순위 개념이 있어야 하는데 그동안에 몇차례 경쟁력 강화 대책이라고 해서 나온 것을 보면 거의 모든 것을 한꺼번에 하겠다는 욕심만 앞서서 두가지 정책이 모순되는 경우마저 있었습니다. 가령 외화대출규모를 대폭 늘리고 동시에 국내 기계를 많이 사도록 해서 기계산업을 육성하겠다는 것은 분명히 모순되거든요. 산업경쟁력이라는 것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지난번 청와대 제조업경쟁력 강화대책회의에서 중소기업의 어음을 무제한 할인해주라고 지시했다는 보도가 나온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경제에서 그런 말이 성립할 수 있습니까.

이한구 : 우리가 우리 경제를 과대평가했다는 얘기를 했습니다만 88 ·89년까지는 그렇다고 이해합니다. 제가 결정적으로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승윤 부총리가 들어서는 시기에 우리 경제가 한때 주춤했던 적이 있는데 이때 정말로 반성해서 산업구조도 개편하고 수출에 대한 인식도 올리고, 수입도 재검토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경제성장률이 좀 떨어진다고 해서 돈을 확 풀어버리고 경기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돌아섰습니다. 그 당시는 마침 선진국들이 아주 허리띠를 졸라매던 때였습니다. 외국에서는 허리띠를 졸라매는데 여기서는 확 풀어놓으니까 국제수지가 악화되지 않을 수 없었던 거죠.

홍원탁 : 우리나라의 산업경쟁력 수준을 고려할 때 연구개발과 수출 · 제조 분야에 상당한 투자가 있어야 하는데, 누구든지 다 느끼지만 어쩐지 투자가 제대로 잘 안된다고 합니다. 왜 그런가. 시장경제 시스템에서는 인적 자원이나 투자재원이 어느 분야로 흐를 때는 수익률에 영향을 참 많이 받는 거란 말이예요. 우리나라에서 기업하는 사람들이나 경제 돌아가는 것을 좀 안다는 사람들한테 물어보면 알 겁니다. 어느 분야가 가장 손쉽게 돈벌 수 있는 데냐 하면 부동산과 재테크입니다. 정부가 제도적으로 가용한 인적 · 물적 자원을 생산적인 방향으로 몰고 가고 싶으면 투기소득을 제도적으로 봉쇄해줘야 사람들이 수출제조업도 하고, 기술개발도하는 거 아닙니까. 땅투기 불로소득 문제가 악화돼 유난히 땅값이 많이 오르고 정부에서 여론이 너무 악화되니까 뭔가 해야겠다 하면서도 결국 뭘 했습니까. 토지공개념이라는 미명 아래 입법화한 것이 종합토지세제 택지소유상한제 개발부담금제 등등 해서 10여가지 됩니다. 그 내용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땅투기 불로소득을 억제할 만한 내용은 거의 없고, 부작용만 극대화하도록 한 것입니다. 제가 보기엔 간단하게, 보유세를 정당히 올리고 자본이득에 대해 적정하게 과세하고, 용도변경 같은 거 해서 땅값이 열배, 백배로 오를 때 환수하는 장치를 좀 만들어놓고 나면 그 이외의 것은 전혀 필요가 없는 제도들입니다. 산업경쟁력과 관련해서 기술문제도 한번 짚어봐야 한다고 봅니다. 5공에 비해 6공 때에 기술투자에 대한 정부측 예산은 상대적으로 줄어들었습니다. 5공보다 6공에 들어와서 기술이 더욱 중요하게 됐는데 상대적으로 정부재정 지출에서 기술지원 지출자금이 줄어들었다는 것은 우선순위 면에서 크게 잘못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한구 : 6공 초기 3년 정도는 최소한 제조업 하는 사람들이 여유를 가졌던 시기이기도 했지만 여유자금을 다시 회사에 투자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된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노동운동에도 일부 있다고 생각합니다. 상화관념이 무너진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인간관계라는 것이 완전히 무너졌던 거죠. 또 그 당시는 분배문제도 상당히 활발하게 논의됐습니다. 기업하는 사람, 특히 오너를 당혹하게 만드는 측면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국민들의 기업관이 상당히 고약하게 바뀌었으니까 이 때문에도 더 이상 못해먹겠다는 생각을 갖기 시작한 거죠. 때마침 89년부터 돈이 풀리기 시작한 겁니다. 투자할 생각은 없어졌는데 경기부양 한다고 돈을 풀어놓으니까 그 돈이 부동산으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나마 몇몇 사람은 기술개발을 한다고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신기술 개발도 많이 했고, 정부정책이 부품산업을 육성한다 해서 지원해준 것도 제법 있습니다. 부품산업의 예를 들어 봅시다. 기껏 2년~3년 구하기 어려운 사람들 끌어모아 개발을 해놓으면 국내 기업이 안사가는 것도 문제였지만 정부가 수입개방을 생각보다 빨리 해버렸습니다. 예전의 정책적배려가 줄어드는 것은 고사하고 수입까지 개방해버리니까 못견디고 자꾸 넘어지는 기업이 늘어난 겁니다.

 

경제구조 다양성 커졌지만 즉흥적 정책결정 잘못

홍원탁 : 노대통령은 분배에 관해서도 이해가 약한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성장과 분배를 상충된 것이라고 자꾸 얘기하더란 말입니다. 분배를 하기 위해서 근로소득이나 기업소득 같은 것을 그냥 빼앗아다가 나누어 준다고 한다면 성장과 분배는 상충되는 거죠. 그러나 우리나라와 같은 발전단계에서 얘기되는 분배정책이라는 것은 성장을 시킬 수 있는 분배정책이거든요. 그런데 분배문제를 잘못 이해했기 때문에 그분 밑에서 보좌하는 사람들이 분배문제만 나오면 ‘성장토끼’를 잡아야 하느냐 ‘분배토끼’를 잡아야 하느냐 하면서 상충되는 것으로 이해하고 접근하려 했습니다. 그러니까 분배건 성장이건 무엇 하나 된 게 없잖습니까.

김광두 : 어차피 단임이니까 자신이 옳다고 보기 때문에 이런저런 것은 곤란하다고 분명히 얘기했으면 될텐데 정부가 왔다갔다 했다 이겁니다. 조 순 부총리 때는 분배 얘기를 하다가 부총리가 이승윤씨로 바뀌니까 확 바뀌어버렸단 말이예요. 6공 전체를 통틀어서 분배 얘기는 많이 했지만 실제로 경제력 집중은 더 심화됐을 겁니다. 분배정의에 관련된 제도는 초반에는 분위기를 만들고, 후반에는 부작용만 늘렸으니까요. 6공은 한 나라의 리더가 경제를 모를 때 경제가 얼마나 나빠질 수 있나를 보여준 역사적 경험으로 남을 겁니다.

이한구 : 이제 6공 기간중 잘된 일도 얘기해볼까요. 우선 경제구조의 안정성이랄까 다양성이 커졌다는 겁니다. 수출입 구조를 유심히 살펴보면 상품별 · 지역별로 다변화했습니다. 각 경제주체의 자립심이 강해졌다는 것도 지적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부를 더 이상 믿어서는 안된다는 인식이 높아졌다는 겁니다.

김광두 : 5 · 8 비업무용 부동산 강제매각 조치도 기본취지는 옳았다고 봅니다. 물론 시행과정에서 법률적인 뒷받침이 없이 무리하게 밀어붙였지만 시작은 잘하지 않았느냐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와중에 재벌이 정부에 맞대응하게 되니 것도 어느 정도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봅니다. 재벌이 정부가 하라면 못하겠다, 돈 못낸다 하는 것은 정부가 모든 경제사안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수 없게 된 것이 아니냐 하는 점에서 일부 긍정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이한구 : 즉흥적인 정책도 많았습니다. 앞뒤 안따지고 한 거죠. 신도시 건설 계획도 경제적 부작용을 깊이 고려하지 않은 예입니다.

김광두 : 즉흥적인 정책은 경제정책 결정 메커니즘과도 관련이 깊은 것 같습니다. 노대통령은 측근에게 얘기를 듣고 경제정책을 구상한다고 들었습니다. 가까운 사람에게 기발한 아이디어를 듣더라도 신중하게 걸러야 하는데, 그냥 지시를 내려버리거든요. ‘3불문 현상’ (금액 · 기간 · 금리를 불문하고 돈을 빌리려고 한 자금 초과수요 현상)이 벌어진 올해 초 대통령이 금리를 좀 내려보라는 지시를 해서 재부부가 억지로 금리를 0.5% 내렸던 적이 있습니다. 측근 가운데 한 사람이 금리를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만성적인 자금 초과수요 상태에서 억지로 금리를 내리자니 그 부작용이 어떠했겠습니까. 12 · 12 증시안정화 대책도 수수께끼입니다. 경제팀의 총수라고 할 수 있는 부총리도 사후에야 보고를 받았다지 않습니까.

이한구 : 옛 소련과의 경제협력 문제도 아주 장기적으로 본다면 몰라도 지금 시점에서는 잘했다고 하기 힘들겁니다.

김광두 : 도시환경이나 환경 문제에서도 질서개념이 사라진 것 같습니다. 대형 경제범죄가 깨끗이 해결되지 않는데 질서가 설 수 있겠습니까. 질서가 사라지니까 부도내고 사기치고도 큰소리 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 모든 것이 최고지도자에게 원칙에 대한 집착이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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