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포엔 자금, 백인엔 표” 주효
  • 로스앤젤레스·윤여춘(<한국일보> 로스앤젤레스 지사 ()
  • 승인 2006.04.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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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방하원 · 시의원 진출한 미주 한인 5명, 제 목소리 내려면 난관 많아


 

 미국선거를 휩쓴 ‘변화’의 바람 속에 재미교포 사회는 한인정치인 5명이 시의회는 물론 연방하원까지 진출하는 경사를 맞았다. 최근 몇 년간 각급 선거에 도전한 한인들의 잇단 패배로 좌절했던 한인사회는 이로써 ‘목소리 없는 소수민족’이라는 정치력 부재의 한을 어느 정도 풀수 있게 됐다.

 이번에 당선된 교포후보는 한인 최초로 ‘US 콜그레스맨’이 된 김창준 다이아몬드바시장(53 · 공화당)을 비롯해 오리건주 상원읜원에 당성된 임용근씨(54 · 공화당), 워싱턴주 하원의원에 당선된 신호범씨(57 · 공하당), 로스엔젤레스 남쪽 오렌지카운티의 가든그로브 시의원에 선출된 정호영씨(55) 및 하와이주 하원의원에 재선된 재키 양씨 등 5명이다.

3명은 낙선 … 당선자 중 4명 이민 1세

 미국이민 30년 만에 ‘아메리칸 드림’을 성취한 김창준씨는 접시닦이 유학생 출신의 건설회사 사장이다. 그는 90년 로스앤젤레스 동쪽의 보수 백인지역인 다이아몬드바 시의원 선거에 처음 나가 최다득표로 당선됨으로써 연방하원선거 승리의 교두보를 마련했다. 작년 12월 김씨는 시의원들이 돌아가며 맡게 돼 있는 다이아몬드바 시장직에 취임해 미국내 최초의 한인시장이 됐었다.

 오리건주 최초의 한인 상원의원이 된 임용근씨도 자수성가한 사업가이다. 이민 온 지 24년째인 임씨는 오리건주 한인회장, 미주한 인상공인총연합회장 등을 역임하며 한인사회를 바탕으로 정치입신의 꿈을 키워왔다. 90년에는 무소속으로 오리건주지사 선거에 나섰다가 예선탈락의 고배를 마시기도 했다.

 시애틀 교외의 쇼어라인대학에서 20년째 역사학교수로 재직해온 신호범씨는 이른바 ‘하우스보이’ 출신. 어렵던 6 · 25동란 시절 미군부대에서 잔심부름하며 자란 신씨는 18세때 미군 군의관의 양자가 돼 미국에 건너와 박사가 된 사람이다. 이미 18년 전에 시애틀 한인회장을 지낸 바 있다.

 미국에서 로스앤젤레스 다음으로 큰 코리아타운이 형성돼 있는 오렌지카운터 가든그로브의 시의원에 당선된 정호영씨는 “2년 후에 다시 나올 각오로 미리 얼굴을 알리기 위해” 2명만 뽑는 이번 선거에 출마했다가 12명의 후보 중 1위로 당선했다.

 이민 1세인 다른 4명과 달리 유일하게 이민 3세인 재키 양씨는 87~89년 하와이여성 정치위원회 초대 부회장을 지낸 후 90년 주하원의원에 선출됐으며 이번 선거에서도 여성유권자들의 성원으로 별 어려움 없이 재선됐다. 독립운동단체인 국민회의 부회장을 지낸 조병요씨가 외조부이지만 1세 중심의 현 하와이 한인사회와는 별 접촉이 없다.

 당선은 안됐지만 금년선거에 나선 한인 정치지망생이 3명 더 있다. 오렌지카운티 세리토스지역 교육위원으로 당선이 유력했던 찰리 정씨(50). 뉴저지주의 한 지방교육위선거에서 차점낙선한 조셉 한씨(21), 오렌지카운티 스탠튼시의회에서 역시 차점낙선한 로버트 현씨(25) 등이다.

 또 88년 이후 금년까지 로스앤젤레스 불쪽의 백인지역에서 3년 연속 연방하원에 도전한 집념의 서상록씨와 버지니아주에서 연방하원에 출마한 김재욱씨, 캘리포니아주 하원에 도전한 패사디나의 최태호씨 및 매사추세츠주 하원에 출마한 최승훈씨 등은 지난 6월의 예비선거 과정에서 모두 탈락했다.

“한인사회에서부터 발판 쌓아야”

 지난 3일의 본선에 올라온 한인후보가 8명이나 돼다는 것 자체가 큰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미주한인 이민사가 1세기를 넘는다지만 60년대 후반 본격적으로 이민이 시작된 이후 고작 1세대밖에 지나지 않아 한인, 특히 1세 한인의 미국정계 진출은 지금까지 시기상조로 여겨져왔다. 이들 한인당선자의 특징은 모두 민주당 우세지역인 캘리포니아 오리건 워싱턴 하와이 등 서부 4주 출신이라는 점이다. 특히 김창준 임용은 신호범씨는 공화당 소속으로 민주당 클리턴 후보의 ‘변화바람’이 오히려 역풍으로 작용해 당선됐다.

 이번 선거에서 한인후보들이 승리한 것은 바람 덕도 없지 않지만 각 후보가 벌인 피나는 노력 때문이었다고 봐야 한다. 재키 양씨를 제외한 4명은 영어 의사소통조차 미숙한 이민 1세들이다. 더구나 소수 중의 소수인 한국계 유색인으로서 기득권을 내세우는 백인 주도의 미국사회에서 정치적으로 두각을 나타내기까지 넘어야 할 난관은 많다. 김창준씨의 경우 최초의 한인 연방하원의원일 뿐 아니라 미 공화당 소속 첫 동양계 의원이며 미연방 상 · 하원을 통틀어 이민 1세로 당선된 첫 동양계의원이다. 그가 얼마나 좁은 문을 들어갔는가 짐작할 수 있다.

 이번 선거를 계기로 “1세가 돈을 대고 2세 또는 1.5세가 출마한다”는 한인 사회 내 세대간의 묵시적 양해는 자리를 잃게 됐다. 1세의 정계진출이 2세보다 더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2세인 아더 송씨(변호사)는 87년 한인으로는 최초로 로스앤젤레스 시의회에 나섰다가 실패했고 90년엔 1.5세인 찰스 김씨(정치상담가)가 세리토스시의원 선거에서 낙선했으며 91년엔 1.5세인 정도수씨(변호사)가 주하원 보궐선거에 나섰다 낙선했었다.

 정의식 로스앤젤레스 한인노인회장은 “정계진출을 꿈꾸는 2세와 1.5세는 영어구사 능력과 미국문화에 대한 이해와 감각만을 내세울 것이 아니라 1세의 장점인 성실과 끈기, 희생과 봉사정신을 터득한 뒤 우선 한인사회에서부터 발판을 쌓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2세 이하로 미정계에 진출한 한인은 1962년 로스앤젤레스 근교 몬트레이팍에서 동양인으로는 최초로 캘리포니아주 하원의원에 당선돼 2차례 재선된 뒤 1966년 주상원의원에 진출, 다시 3차례 재선된 알프레드 송씨(2세 · 한국이름 송호윤), 하와이의 재키 양씨(3세) 및 역시 하와이에서 90년 호놀루루시의원에 재선된 대나 김씨(3세), 작년 시애틀시의원에 당선된 마사 최씨(2세), 70년대 로스앤젤레스 근교 몬테벨로와 라푸엔테에서 각각 교육위원을 역임한 김정숙(엘레나 차우)-김종문(케네스 김) 남매가 있다.

 이들 2~3세 한인 정치인이나 김창준씨 모두 한인사회에 의지하기보다는 선거구 백인 주민을 철저하게 공략하여 승리했다. 한인 유권자가 수적으로 열세인 데다 주거지역이 분산돼 있기 때문에 한인사회에 표보다 자금을 기대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김창준씨는 이번 선거에서 30만달러가 훨씬 넘는 선거자금 중 절반 이상을 재미한인사회에서 모았다. 김씨는 지난 7일 로스앤젤레스의 한인타운에서 가진 당선축하모임에서 “만일 한인사회의 전폭적인 후원과 지지가 없었더라면 오늘의 이 기쁨을 가질 수 없었을 것”이라고 감사를 표했다.

 그러나 김씨의 선거운동 과정에서는 동포사회의 지원과 관심표현의 방법을 둘러싸고 색다른 문제점이 제기됐다. 한인사회가 선거자금을 지원해주는 것까지는 좋았으나 투표일이 임박해지자 선거구역도 아닌 교포사회의 눈과 귀까지 온통 김후보에 쏠렸던 것이다. 김씨의 선거본구와 자택은 교포언론사 기자들로 북새통을 이뤄 마치 서울의 국회의원 선거사무실을 옮겨놓은 듯했다. 김씨는 백인 선거참모들의 눈치를 보며 “나를 도와주려면 제발 내버려둬 달라”고 교포지원자와 기자들에게 통사정하기 일쑤였다.

 김씨는 앞으로 연방하원 내의 공공위원회나 중소기업위원회에 배정되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처음부터 아시아-태평양위원회에 들어갔다가는 선거구민들로부터 지탄받기 쉽기 때문이란다. 김씨는 국회의원이 선거구민 무서워하기는 한국이나 미국이나 마찬가지라며 “그래도 재미한인사회와 한국에 대한 의회의 대화창구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것”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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