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연극 숨통 트는 기획공연
  • 성우제 기자 ()
  • 승인 2006.04.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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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단체, 공연 외 사무 도맡아…연출가 · 배우 무대에 전념, 완성도 높여


한국 연극계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 작품을 무대에 올려도 관객이 별로 들지 않는다. 극장을 외면하는 관객을 끌기 위해 저질 코미디와 벗기는 연극이 무대에 오르기도 하고, 할인권을 뿌리는 제 살 깎아먹기가 계속 벌어지기도 한다. 배고픔 때문에 벌어지는 이런 일에다 극단 단원들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은 고달픔이다. 연출가가 포스터를 제작하는 데 정신을 쏟기도 하고, 배우들은 포스터를 붙이고 언론사를 돌며 보도자료를 배포하기도 한다. 심지어 아침엔 전단을 뿌리고 점심 무렵엔 연습, 그리고 저녁에 공연하는 배우들도 있다.

 기나 긴 불황의 터널 한가운데 있는 연극계에 기획공연을 표방하는 몇몇 단체가 등장해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배우 · 연출가 출신이거나 현역 연출가들이 설립한 이 단체들은 기획극단을 창단해 작품을 올리거나, 기존 동인극단의 작품을 맡아 기획을 대신하고 있다. 극단 무천(대표 金亞羅 <숨은 물>) 환 퍼포먼스(대표 宋承桓 <LUV>) 예술기획 IMG(대표 설상영 · <코러스라인>) 정프로젝트(대표 許 楨  <굿 닥터>)등은 극단을 표방하거나 하나의 극단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곳이며, 서울커넥션(대표 禹鍾泰 · <피비의 로멘틱 코메디>) 다운기획(대표 金炳浩<카사블랑카여 다시 한번>) 등은 동인극단의 기획을 전문적으로 대행해주는 단체다.

 

“전문적으로 객석 채우는 게 우리 일”

 “좋은 연극을 널리 알리고, 동시에 영리를 추구한다”고 서울커넥션 대표 우종태씨는 말했다. 극장 밖의 모든 일을 기획자가 맡아, 연출가와 연기자로 하여금 작품에만 전념케 한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으로 연결된다는 설명이다. 서울커넥션 직원 6명은 포스터 디자인과 인쇄에서부터 입장권 관리 · 공연장 안내에 이르기까지 공연 외적인 일을 모두 처리한다. 우씨는 “지난 5월 극단을 기획팀 체제로 바꾼 이후 6개 작품을 무대에 올렸는데, 한 작품을 제외하고는 흥행에 성공했다”고 말했다.

 서울커넥션과 비슷한 형태의 다운기획은 89년부터 50여편의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동인극단이 제작자 입장에 서고 다운기획은 기획자로 참여해왔는데, 작품 선정에서부터 극단과 함께 일을 한다. 포스터 제작 등은 물론 연기자 · 스태프를 섭외하고 극장 대관까지 맡는다. 다운기획 대표 김병호씨는 “전문적으로 객석을 채우는 것이 우리 일이다. 좋은 작품이라도 기존 대표 중신 체제의 주먹구구식으로는 흥행에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며 전문 기획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극단과의 계약에 따라서 이같은 기획사는 수익금의 15~30%를 받는다.

 동인극단의 기획을 맡아 전문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앞의 두 기획사가 나아가고자 하는 지점은 바로 기획극단이다. 기획극단의 대표적인 곳으로는 극단 무천과 환 퍼포먼스가 꼽힌다. 이 두 곳은 극단 이름으로 막을 올리지만 기획실 직원 외에는 단원이 한명도 없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연기자와 스태프는 기획된 연극의 성격에 맞춰 그때그때 캐스팅하면 되기 때문이다.

 현재 <LUV>를 공연하는 환 퍼포먼스는 작품을 직접 선정하고, 연출가와 연기자 및 스태프를 모았다. <LUV>에 참여한 연극 실무자 모두는 개런티를 책정받고 극단과 계약서를 작성했다. 환 퍼포먼스 대표 송승환씨는 “우리 연극계는 다양성이 결여된 게 문제다. 작품 연출가 배우 스태프 극장 시기 등 모든 것을 기획팀에서 전담하는 만큼 기획은 연극이 성공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라고 말했다. 뜻을 같이하면서 후배를 양성하는 동인극단도 있어야겠지만, 일을 세분화 · 과학화하는 작업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지적이다.

 

서울 무대 10% 장악…상업성 우려도

 미국이나 유럽에서 당연시되는 기획공연에 대해 젊은 연극인들은 “한국 연극의 숨통을 트는 것이 될 수 있다”고 평가한다. 연극 배우 尹汝晟씨(극단 로얄씨어터 대표)는 “작품 자체와 그 외적인 일을 분리하고 싶어도 여력이 없어 하지 못했다”면서 “연기에만 몰두할 수 있으므로 많은 연극인들이 기획공연을 환영한다”고 전했다.

 작품의 질적 향상과 흥행 성공 등 기획극단 제도가 가질 수 있는 장점에는 공감하지만 상업성으로 흐를 가능성을 우려하는 의견도 나온다. 지난 10년간 기획극단에 관심을 가지고, 기획극단의 창립을 주도한 예술 기획 IMG 예술감독 文錫泰씨(연출가)는 “기획이 우리 공연 예술문화를 이끌어나갈 큰 힘이 될 수 있다”면서도 “예술적 안목을 가지지 못한다면 문화를 왜곡시킬 수도 있다”고 말했다.

 기획극단 제도는 문씨의 전망처럼 “하나의 큰 힘”으로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서울 무대의 10%를 ‘장악’할 만큼 힘을 키운 것이다. 연극평론가 한상철씨(한림대 교수 · 영문학)는 “기획극단은 동인체제의 결속력과 정신적 지주가 사라지면서 나타난 자연스러운 발전형태”라면서 “상업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만큼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드는 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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