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해에 속살 썩는 문화재
  • 글 김현숙 차장대우·사진 나명석 기자 ()
  • 승인 2006.04.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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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문 · 동대문, 지하철 진동에 무방비…보존과학 육성 절실


 

문화재들도 공해도시 서울살이는 고달프다.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자동차의 배기가스와 진동, 먼지, 그리고 산성비에 노출되어 있는 대도시 옥이 문화재의 훼손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지난 수백년간 겪어온 풍상보다 최근 십수년의 환경오염이 훨씬 더 견뎌내기 힘든 것이다.

 문화재연구소의 金炳虎 화공기사는 “한번 단청을 하면 자연상태에서 30~50년을 버티는데 서울 도심의 건축물을 10년을 유지하기도 힘들다”면서 전통적으로 공해에 견디는 힘이 약한 무기안료를 단청에 사용해온 것도 훼손의 한 요인이라고 지적한다. 특히 무기안료인 岩彩는 자동차 배기가스를 쐬면 시커멓게 변색해버린다. 그을음과 분진을 제거하다보면 단청까지 벗겨질 위험이 커서 거의 손을 대지 못하고 있는 것도 퇴락을 가속화하는 원인이다.

 그보다 남대문과 동대문을 더욱 크게 위협하는 것은 진동이다. 지상에서 이동하는 자동차에서 발생하는 미진과 두 문 밑에 파놓은 지하철에 의한 진동은 직접 체감하기는 어렵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는 가장 큰 위해 요인이다. 지난 84년 지하철4호선 건설을 앞두고 <암석발파에 의한 진동이 동대문의 가라앉음에, 그리고 지하수 수몰이 동대문의 地耐力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가>를 실측조사한 바 있는 한양대 한웅교 교수(정밀기계과)는 이렇게 경고한다.

  “지하철이 지나갈 때마다 동대문 석조간격의 틈새가 벌어진다. 또 당시 지반공사를 하며 동대문 주변의 지하수맥을 끊어 동대문의 지내력이 매우 약화된 상태이다. 지하철 운행이 시작된 지 십수년이 지난 지금, 당시 문제점으로 제기됐던 진동과 지내력의 실측조사를 다시 하여 대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는 특히 지하수가 복귀했는지 확인하는 것은 인체의 피돌기가 제대로 되어 있는지를 파악하는 일만큼이나 중요하다고 말한다. 동대문의 경우 기둥과 서까래의 틈새가 벌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6㎜ 두께의 철판을 붙이고 못을 박아 고정시켜놓았으나 건물 자체가 조금씩 기울어지고 주저앉는 바람에 철판이 모두 부서져나간 상태이다.

 

원각사 탑 산성비 피해 심각

 전문가들은 동대문보다 남대문이 더 심하게 훼손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남대문 밑 지하철 공사는 동대문 쪽보다 앞서 이루어진데다 박정희 정권 특유의 밀어붙이기식으로 방진 대책이 전혀 없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한교수는 “남대문에 서 있으면 1호선 전철이 지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정도”라며 정부와 학자들이 언제까지 쉬쉬하며 외면 할 것이 아니라 문제를 노출시켜 대비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보 2호인 원각사지 10층석탑은 산성비에 무릎을 꿇어버렸다. 경천사지 석탑(국보 제86호)과 함께 우리나라에는 단 두개뿐인 대리석탑인 원각사 탑은 탑 표면의 무늬가 형체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녹아내렸다. 문화재관리국은 원각사지 석탑이 완전히 훼손 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지난 봄부터 실측조사에 착수했으나 탑의 미세한 장식은 이미 그 원형을 잃어버린 상태이다.

 탑골 공원에 있는 원각사비(보물 3호)도 마찬가지이다. 대리석으로 된 윗부분의 비문과 쌍룡의 훼손상태는 화강암으로 되어 있는 아랫부분의 귀부(龜趺)가 대체로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것과 비교해보면 바로 드러난다.

 산성비는 외부의 문양을 부식할 뿐 아니라 내부로 스며든 상태에서 얼었다 녹았다 함으로써 석조재나 목조재의 균열을 초래한다. 문화재연구소 보존과학실의 姜大一 박사는 침투한 산성비를 ‘암’에 비유하면서 불상, 탑, 석등, 당간지주 등 전국에 산재한 1천여점의 석조물을 모두 암환자로 진단하고 있다. 산성비뿐 아니라 대기 중의 이상화탄소, 황산화물, 염화물은 목재와 석재의 물질과 화학적으로 결합하여 문화재를 부식을 가속화한다.

 보존과학자들은 지상문화재, 특히 옥외 문화재에는 보호각을 씌어주는 것이 가장 좋은 보존방법이라고 입을 모은다. 경주 남산의 마애석불, 경복궁 자경전에 있는 십장생꽃담과 굴뚝, 보신각종등은 보호각을 덮어 산성비를 피하고 있다. 그러나 산성비에 특히 약한 ?, 기와문양을 비롯해 전국에 산재한 문화재 중 시급히 보호각을 씌워야 할 곳은 약 2천여군데에 이른다.

 지난 3월 환경오염으로 붕괴하고 있는 대리석조각 스핑크스를 구하기 위해 이집트 카로이에 모인 고고학자와 보존과학자 70여명은 이집트 당국에 주변 교통량을 제한하고 있는 카이로 국립박물관을 도시공해로부터 탈출시키기 위해 교외로 옮길 것을 결의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도굴 방지나 밀반출 단속등의 물리적 보존대책뿐 아니라 환경오염으로부터 문화재를 지키고 보존과학을 육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고 있다. 다음 세대가 고민하도록 미루기에는 우리 문화재의 수명이 너무 빠른 속도로 단축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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