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바로 우리 곁에 와 있다
  • 정희상 기자 ()
  • 승인 2006.04.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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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33세인 김세옹씨의 인생목표가 ‘그것’으로 바뀌기 시작한 것은 3년 전 봄이었다. 78년 시골에서 고교를 졸업한 후 가정형편상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상경한 그는 그야말로 안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악착같이 뛰어 10년 만에 빌딩 한채를 사는 등 일찌감치 기반을 잡았다.

 그날 사업상 강남의 한 단골술집을 찾은 그는 거나하게 취한 상태에서 차를 몰고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귀가 걱정을 하던 참이었다. 사정을 눈치챈 웨이터가 다가와 귀엣말로 ‘화끈하게’ 술깨는 약을 권했다. 그것을 술에 타 마시니 거짓말같이 술이 확 깼다. 그뿐이 아니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달콤한 기분과 함께 순간적으로 인생이 싹 달라지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그때부터 김씨의 새로운 인생목표가 되어버린 ‘그것’은 바로 히로뽕이었다. 전형적인 히로뽕 고객이 된 김씨는 단속이 심해지면서 한번에 수백만원을 주고 1백회분을 받아 투약하기에 이르렀다.

 그만큼 후유증도 심각해졌다. 평소 다정다감한 가장이었던 그는 중독이 돼갈수록 성격이 포악해지고 의처증, 환청, 피해망상증을 보였다. 견디다 못한 부인은 김씨를 경찰에 신고했다. 정신분열증이 심해 서울시립정신병원에 수용된 김씨는 몇 달간 치료를 받았으나 퇴원 후에도 단속을 피해 이른바 ‘합법마약’을 찾아 약국·병원을 전전하고 있다.

80년대 중반 이후 우리 사회에 급속도로 번지기 시작한 마약은 이제 더 이상 신종 사회악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30만~40만명에 이르는 마약 상습복용 인구를 거느리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우리나라 지하 마약시장은 당국의 집요한 단속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판로를 찾아 끊임없이 꿈틀거리고 있다.

 마약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던 89년부터 정부는 ‘마약과의 전쟁’까지 선포해가며 적극적인 단속에 나섰다. 물론 표적은 히로뽕이었다. 그 결과 국내 히로뽕 사범은 감소 추세를 보이게 됐으나 대신 코카인, 아편 LSD등 다른 마약이 국내 시장을 파고들었다.

중국산 생아편 한약재로 위장 반입

 마약 밀수의 심각성은 올 한해 동안 적발된 마약 밀수액을 보면 금방 드러난다. 올해 상반기 동안 코카인을 중심으로 총 1천1백10억4천2백만원어치의 마약이 적발됐는데 이는 지난 한해동안의 75억 8천만원에 비해 무려 15배나 늘어난 액수이다.

 당국이 히로뽕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자 이번에는 중국산 생아편 밀반입이 급속히 늘어나고 70년대 기승을 부렸던 대마초 사범이 다시 고개를 드는 현상이 나타났다. 대검 마약과가 지난 7월1일부터 9월30일까지 3개월동안 적발한 마약류 사범 실태를 보면 변화해가는 국내 마약시장의 동향을 쉽게 알 수 있다. 이 기간 동안 검거된 마약 사범은 총 1천2백10명인데 그중 코카인 생아편 등을 사용한 마약 사범이 5백67명, 대마초 사범이 4백9명, 히로뽕 등 향정신성 의약품 사범이 2백34명이었다. 최근 7년 동안의 마약류 사범 적발 현황을 살펴보면 히로뽕 사범만 올해도 감소 추세를 보였을 뿐 마약 사범과 대마초 사범은 연간 10~5%의 꾸준한 증가를 보여 올해 최고치를 나타냈다. 아편(60년대)·대마초(70년대)·히로뽕(80년대)·코카인(90년대)으로 이어지는 마약의 ‘고급화 추세가 우리나라 마약시장의 한 특징으로 자리잡아가는 것이다.

 이같은 마약시장의 판도변화는 일본의 경우와 여러 면에서 유사점을 보인다. 전후 일본 사회를 강타했던 히로뽕 문제는 50년~60년대에 일본 정부의 강력한 단속을 거치면서 히로뽕을 비롯한 코카인·헤로인 류의 밀수입 증대라는 시장판도 변화로 이어졌다. 일본의 히로뽕 제조 사범들은 처벌이 강화되자 형량이 가장 무거운 히로뽕 밀조를 포기하고 대신 해외에서 히로뽕과 다른 마약류를 조달받아 유통과정에만 개입함으로써 위험을 피하고 이득을 챙기는 수법을 쓰게 되었다. 특히 히로뽕 해외 밀조에는 야쿠자에 가입한 재일동포들이 많이 관여했다.

비싼 히로뽕 대신 코카인 대마 급속 확산

 일본 마약조직의 하수인인 재일동포 조직원과 밀조자 들이 부산으로 건너와 히로뽕을 밀조해서 싼값에 일본으로 공급했다. 이 과정에서 조수로 일하던 한국인들이 제조기술자가 되었고, 그 숫자는 2백여명으로 늘어났다. 이들은 지난 60년~70년대에 일본 히로뽕 시장의 최대 공급원이었으나 80년대에 들어 한·일 관계당국의 철저한 공조수사로 밀수출 길이 막히자 국내에 싼값으로 풀어 80년대 중반 이후 우리나라에서 엄청난 히로뽕 중독자를 양산하게  된것이다(88년~92년 연평균 3천5백명 적발).

 이들 밀조직은 국내 히로뽕 고객확보를 위해 주무대인 부산에서 서해안을 따라 서서히 북상, 최근 몇 년 사이에 서울 경기 일원에서 세력을 크게 늘렸다. 과거 일부 연예인과 유흥가 주변에나 나돌던 히로뽕이 회사원, 주부, 학생, 농민 등 각계각층으로 급속히 번지자 정부도 마약전쟁을 선포하는 등 뒤늦게 강력한 단속에 나섰다.

 이 단속은 오히려 히로뽕 거래단가를 폭등시키는 역효과를 불러 89년만 해도 5천원이면 구입할 수 있었던 1회 투약분이 요즘은 10만~15만원으로 껑충 뛰었다. 이 때문에 경제능력이 없는 히로뽕 상습 복용자들은 대용마약을 찾아나서기 시작했다. 대용마약은 최근 급증하는 코카인, 생아편 외에도 대마초와 일반 병원 및 약국에서 손쉽게 구입할 수 있는 향정신성 의약품이 꼽힌다. 특히 생아편은 일부 중국교포가 한약재로 위장 반입해 국내에 널리 퍼졌다. 이 신종 마약은 중독자를 상대로 한 비밀판매 외에도 경동시장 한약재상가, 건강식품점 등으로 흘러들어 ‘약효 좋기로 소문난 집’만들기에 이용되고 있다.

 현재 관련학계에서는 우리나라의 마약 복용자를 35만명 내외로 추산하고 있는데 이는 범죄 암수의 논리에 따른 수치다. 마약범의 경우 연간 1백명에 1명 꼴로 붙잡힌다는 세계 각국의 통계에 의한 것으로 우리나라는 지난 수년 동안 연간 3천5백~4천여명씩의 마약사범이 적발돼왔다.

 30여만명으로 추정되는 마약중독자의 전모는 알기 어려우나 적발된 마약 사범 실태를 통해 그 확산 범위의 심각성을 쉽게 알수 있다. 올해 3/4분기에 적발된 마약 사범 1천2백여명을 직업별로 나누어 보면 농업 상업 노동 회사원 의료인 운전사 주부 학생 유흥업종사자 등이 주를 이뤄 마약이 각계각층에 파고들었음을 실감케 한다. 연령별로는 20~30대가 40.6%로 주 사용층이다.

 특히 이들 마약 인구 중 경제능력이 없는 경우 최근 당국의 ㅣ단속으로 마약 거래가격이 오르자 병원과 약국을 터는 등 범죄적으로 대용마약을 조달하는 수법을 쓴다. 지난해부터 올 상반기까지 당직근무자가 적은 의원급의료기관을 대상으로 한 마약류 도난사건이 80여건이나 발생했다.

 국립서울정신병원 정신위생과 김경빈 과장은 “어느 약품이 환각성이 있다고 알려지면 수십만명의 마약 예비군단은 그 약물에 벌떼처럼 몰려든다. 누바인이라는 주사약이 대표적인 경우로 약국에서 2천원 선이면 구입할 수 있는 이 약품이 요즘 품귀현상을 빚을 정도로 귀해져 시중에서 2만원에 암거래 되고 있다”고 밝혔다.

 마약조직은 당국의 단속을 피하는 방법으로 사용자가 밀매자 역할을 하도록 유도한다. 마약 밀매는 생명을 걸고 하는 사업이기 때문에 설득의 귀재인 밀매자에게 한번 점찍히면 빠져나오기가 힘들다. 마약조직원들이 주요 공략대상으로 삼는 것은 청소년 시절에 본드나 가스를 불어본 경험이 있는 경우, 신경통 등 지병이 있어 항상 무언가 신기한 약을 기대하는 경우, 오락이나 도박에 깊이 빠져든 경우, 유달리 호기심이 많고 마음이 약한 경우 등이다.

 일단 고객으로 포섭된 사람도 몇단계의 보이지 않는 심사를 거친다. 맨먼저 여관이나 승용차 등에서 마약을 투약, ‘공범’임을 각인 시킨 후 본격적인 거래는 제3의 장소에서 실시한다. 서울지검 마약전담 손기호 검사는 수사 결과 파악해낸 밀매자와 고객 간의 거래의 철저함을 이렇게 설명한다.

 “그들은 모든 연락수단은 삐삐로 하고 끝에 암호번호를 약정한다. 일단 확인된 거래선은 약속을 정하는데 밀매자는 대개 30분~1시간 일찍 약속장소 근처에 나타나 고객의 동태를 감시한다. 만약 둘 이상이 나오면 그대로 종적을 감춰버린 후 보복을 시도한다. 최근에는 단속을 피하기 위해 직접 만나는 대신 공중전화 밑부분과 같은 지정 장소에 마약을 붙여놓고 온라인을 통해서 거래하는 수법인 늘고 있다.”

 당국의 단속망을 피해 새로운 시장을 꾸준히 개척해 나가고 있는 우리나라 마약 시장 실태는 마약정책의 획기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현재 잠복해 있는 엄청난 마약복용자들이 마약에서 손을 떼게 하는 데는 현재의 무조건적 처벌 위주 정책만으로는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처벌보다 치료 우선의 정책 필요

 현재 보사부는 전국 22개 병원을 마약중독자 치료기관으로 지정해두고 있다. 그러나 이곳을 거치는 마약투약자는 올해 50명 선에 불과했다. 전체 마약투약자는 고사하고 연간 체포되는 마약사범 3천5백여명에 견주어봐도 턱없이 작은 수치이다.

 미국과 유럽각국의 경우 마약중독자가 자진해서 치료를 요청해올 경우 처벌대신 치료를 앞세우는 정책을 쓰고 있다. 동남아시아 각국도 정부에서 마약센터를 운영, 일단 적발된 마약사범은 무조건 강제 입원시켜 무료 치료를 실시하고 형사처벌 대상자도 치료기간을 형량에 산입해준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공식적인 치료 자체가 불법시되고 있는 법체계 때문에 마약에 손을 댄 개인은 물론 이를 지켜보는 가족이 그 소굴에서 벗어나고자 해도 하소연할 곳조차 찾을 수 없는 형편이다. 마약치료 전문의인 국립서울 정신병원 김경빈 정신위생과장는 “마약투약자 1명은 계속적인 확산을 생리로 하는 병원균과 같은 역할을 하므로 그 사회적 심각성에 비춰 예방과 치료를 위한 제도가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이어 “지금 이 시간에 마약에 손을 댄 가족을 두고 있는 사람은 보호자가 가명을 써서라도 정신과 전문의들을 찾아 치료방법을 상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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