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기 로비스트의 ‘표적’ 클린턴
  • 워싱턴·김승웅 특파원 ()
  • 승인 2006.04.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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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턴 무기구입규제법 입법화 공언…미총기협 저지 나서


 

 미국에서 권총 한자루를 구입하기란, 조금 과장하면 담배 한보루 사는 것만큼이나 쉽다. 맘에 드는 권총의 종류를 찾아 현장에서 돈만 내면 그 시각부터 내 총이 된다.

 총기상 길버츠 건스(Gilbert's Guns)는 기자가 사는 워싱턴 교외 록빌 파이크 1020번지에 있다. 가게 안에는 두명의 백인 점원이 허리춤에 권총을 꽂은 채 손님을 맞는다. 손님을 가장한 강도를 대비해서 여차하면 총을 뽑아 발사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

 진열대에는 영화에서나 봤음직한 각종 권총이 진열돼 있다. 우리나라 형사나 장교가 즐겨 휴대하는 ㄱ자 모양의 45구경 권총은 한자루에 4백90달러(39만원)다. 역시 우리나라 교통경찰들이 차고 다니는 38구경은 3백70달러(29만원)면 살 수 있다.

 진열대 앞에서 값을 흥정하던 한 노파는 장난감처럼 생긴 1백25달러(10만원)짜리 권총을 고른 후 핸드백에 몇번 넣었다 뺐다를 거듭하더니 비자카드로 대금을 치른다.

외국인도 운전면허증 제시로 구입 가능

 손님은 평균 2~3분에 한명 꼴로 가게에 발을 들이고 있다. 탄약을 사러 온 고객에서부터, 총을 수리하려는 손님, 다른 종류의 권총으로 교환하려는 손님 등 1시간 가량 머무는 동안 20여명의 손님이 가게를 들렀다.

 외국인도 총을 살 수 있냐고 물었더니 운전면허증이 있느냐고 되묻는다. 있냐며 지갑에서 꺼내주자 찬찬히 들여다 보더니 “좋다 아무 총이나 고르라”한다.

 점원 마이크(31)의 말을 그대로 옮기면 이 가게에 있는 소총과 공기총은 돈만 내면 지금 당장 가지고 나갈 수 있는 것들이다. 다만 같은 총이라도 연발이나 자동총, 그리고 권총을 포함한 핸드건은 간략한 서식을 갖춰 주정부에 등록을 해야 하는데, 이 등록 기간이 1주일이다. 앞서 1백25달러짜리 미니 권총을 산 노파의 경우 등록을 마치고 날짜를 잡아 물건을 찾으러 온 경우라고 한다. 등록을 연발이나 자동총, 그리고 권총으로 제한하는 이유는 이런 무기가 정당방위용이 아닌 공격용으로 쓰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단발의 소총이나 공기총은 방어용 또는 사냥용이기 때문에 등록이나 신고가 필요없이 당장 사서 소지할 수 있다.

 메릴랜드주는 이같은 연발 또는 권총류의 등록 기간이 1주일이지만 이웃 버지니아주는 3일이다. 따라서 워싱턴 일대의 경우 무기상은 대부분 버지니아주에 몰려 있다. 미국 국회의사당을 배후에서 움직이는 강력한 로비스트 단체 가운데 가장 악명을 떨치는 단체가 총기와 담배 로비스트 단체다. 두 단체 모두 1백년 이상의 전통이 있고, 그 중에서도 특히 총기 로비스트(대부분이 변호사)들은 법조인 시절의 관록이 일급에 속해야 한다.

 총기 로비스트들의 돈줄은 미국총기협회(National Rifle Association of America)가 대고 있다. 이 협회의 공보실 직원 메라니여사가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총기를 구입하려면 등록 서식을 제출한 후 소정 기간을 기다려야 하는 주는 50개주 가운데 메릴랜드나 버지니아주 등 21개주에 불과하다. 아칸소주를 비롯해 콜로라도 조지아 켄터키 루이지애나 뉴멕시코 텍사스 웨스트버지니아주 등 과거 ‘서부활극’의 무대가 돼왔던 미국 서남부주에서는 돈만 내면 그 자리에서 총을 사거나 휴대할 수 있다. 이 가운데 주정부에 총기등록을 의무화한 주도 없지 않지만, 일단 총을 고객에게 판 다음 신고하는 간편한 절차를 밟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미 전역 어디에서나 쉽게 구할 수 잇는 무기가 클린턴 대통령으로 들어서고 나서부터는 꽤 까다롭게 될 것 같다.

부시는 거부권 행사

 무기 시판을 엄격한 사전 허가제로 바꾸고 ‘위험 인물’로 간주되는 구매자의 무기 매입을 엄격히 통제하는 ‘페론 핸드건구입규제법’(일명 브래디법안)이 빠르면 내년 1월 클린턴 행정부의 출범과 함께 의회에서 성안, 통과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지난 81년 레이건 대통령을 수행하다가 워싱턴호텔 앞에서 피격당한 백악관 대변인 브래디의 이름을 붙여 브래디법안으로 명명된 이 법안은 지난해 5월 하원을 2백39대 1백86, 또 상원을 67대32로 각각 통과했으나 부시가 거부권을 행사해 무산됐다.

 브래디 대변인의 부인 사라 브래디 여사가 회장인 핸드건규제의원회는 지난번 대통령선거 유세기간 중 클린턴 후보로부터 당선되면 기필코 입법화하겠다는 다짐을 받았다.

 브래디법안의 통과를 가장 두려워한 단체가 바로 미총기협회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무기 구매자는 1주일 이상 법무부의 엄밀한 심사를 거쳐야 하며 만의 하나 위험요소가 발견될 경우 무기 구입을 포기해야 한다. 말이 1주일이지 법무장관이 전국의 무기상 앞으로 일일이 구입 허가를 통보하고 무기상이 이를 다시 구매자에게 알리는 데 또 1주일이 소요될 것을 감안하면 총기 판매가 어찌 될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이 법안의 통과를 저지하기 위해 미총기협회는 이번 선거 때 1백80만달러(14억4천만원)의 거금을 들여 브래다법안을 반대할 하원의원을 뽑기 위한 정치자금으로 썼다. 현재 미총기협회의 책임 로비스트로 일하는 제임스 베이커의 주장에 따르면 돈의 효과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02회 국회 때 브래디법안을 반대한 하원의원이 1백47명에 불과했으나 이번 선거 결과 1백99명으로 늘어났다. 새로 뽑힌 의원이 과연 이 법안에 반대할지를 어떻게 보장하느냐 하는 질문에 대해 베이커는 “그걸 알아내는 일이 바로 우리 로비스트가 하는 일 아니냐”하며 자체 조사결과 1백99명 모두가 법안에 반대표를 던질 게 확실한 ‘A급’으로 판명났다고 밝힌다.

미총기협회, 하원통과 저지 장담

 전체 하원 의석(4백35석)의 과반수에는 아직 미치지 못하나 의원 가운데 부동표가 적잖아, 지난번처럼 대통령의 거부권을 빌리지 않고서도 아예 하원에서 법안 통과를 저지시킬 수 있다고 장담한다.

 브래디법안의 통과를 사력을 다해 저지하는 미총기협회는 회원만 2백52만명이 넘는, 1년 예산 6천6백만달러의 대규모 단체다(1871년 창설). 총기 제작자는 물론 사냥인, 무기 골동품 수집인, 경찰관, 무기 휴대자들이 주요 회원이고 이 협회에서 발간하는 월간지 《아메리칸 라이플맨》은 발행 부수만 1백40만부에 이른다. 미총기협회는 이 잡지를 통해 “클린턴 입김이 안닿는 의회를 뽑자”(Elect a Clinton-proof Congress)는 구호를 표방해 클린턴 당선을 저지하는 한편, 이 협회에 비우호적인 의원을 낙선시키기 위한 대규모 캠페인을 벌여왔다. 그 결과 일리노이주의 콕스 의원(민주), 오하이오주의 와르 의원(민주) 등 2명의 하원의원을 낙선 시켰고, 새로 뽑힌 11명의 상원의원 가운데 민주당의 페어크로드(노스캐롤라이나) 더건(노스캐롤라이나) 캠벨(콜로라도) 등 3명의 친미총기협회 상원의원을 당선시키는데 성공했다.

 또 오는 24일 실시하는 조지아주의 상원의원 재선거에서는 당선이 유력한 민주당의 파울러 후보가 브래디법안 지지자라는 이유로 배격, 공화당 커버델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물량 공세를 펴고 있다. 최근 무기 휴대 자유론자인 영화배우 찰톤 헤스톤을 조지아주에 급파한 것도 이같은 브래디법안에 찬성하는 후보의 낙선을 겨냥해서였다.

 브래디법안의 재상정은 결국 그 시기만이 밝혀지지 않을 뿐, 클린턴 신임 대통령이 취임 초에 기필코 건너야 할 강이다. 클린턴은 미총기협회보다는 무기에 관한 한 “모든 미국 시민은 자신과 국가의 방위를 위해 무기를 소유할 권리를 갖는다”(코네티컷주 헌법 1조)는 미국사회의 뿌리깊은 통념과 대결을 벌이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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