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후보냐 독자후보냐
  • 허광준 기자 ()
  • 승인 2006.04.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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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가 선거에도 대선 열기…NL계 우세하나 연합 가능성도


 

 11월부터 본격화된 각 대학 총학생회장 선거는 대통령선거를 한달 남짓 남겨둔 시기에서 치러져 예년보다 높은 관심과 열기 속에 진행되었다. 11월16일 현재 전국 121개 대학 중 78개교에서 선거가 마무리됐고 총학생회를 구성하지 않는 대진대 등 세 학교를 제외한 나머지 학교도 12월 초까지 모두 끝낼 예정이다.

 이번 선거에서 관심을 모은 것은 작년처럼 비운동권 출신 후보가 상당수 당선되는가의 여부와 운동권 후보 중 NL(민족해방)계·PD(민중민주)계가 각각 얼마나 세를 형성할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특히 선거 결과 그려질 NL과 PD의 세력 분포도는 바로 대통령선거에 임하는 학생운동의 방향과 직결되어 있어 관심을 모았다.

 11월16일까지 선거를 끝낸 78개교 중 대부분이 운동권에서 낸 후보가 총학생회장으로 당선되었고 비운동권 후보가 당선된 곳은 순천대 울산대 여수공대 등 17개 학교로 22$에 불과했다. 이는 90년 전체 1백26개 대학 중 33개교(26%), 91년 전체 1백6개 대학 중 39개교(37%)에서 비운동권 후보가 당선된 것과 비교하면 눈에 띄게 줄어든 숫자이다. 그러나 교육부의 한 관계자는 “지금까지 선거를 마친 학교들이 대부분ㅇ 학생운동이 활발한 학교들이어서 선거가 거의 끝나는 11월말경에는 비운동권 학생회의 비율도 높아질 것이다”라고 전망한다.

 운동권 후보가 당선된 61개교 중 NL 계열이 50개 학교, PD 계열은 11개 학교로 전체적으로 NL계가 우세를 차지했다. NL계는 서울대 고대 연대 이대 등 주요 대학을 휩쓸었으며 PD계가 당선된 학교는 성균관대 동덕여대 등 전통적으로 PD세가 강한 곳이다. 이러한 결과는 93년도 학생운동이 전국대학생 대표자협의회(전대협)를 중심으로 진행되어온 지금까지의 양상과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낳는다.

 이번 총학생회장 선거에서 NL계 후보들은 대통령 선거에 대한 정치적 입장으로 ‘범민주단일후보론’을 내세웠다. 이같은 입장은 지난 10월10일 재야운동단체의 연합체인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전국연합)의 대의원 대회에서 복잡한 토론과 의견조정을 거친 후 표결로 결정된 것으로, 전국연합 소속 단체인 전대협의 입장으로 연결된다. 이같은 결정에는 ‘부정할 것은 많은데 선택할 것이 없는 국민들에게 희망을 제시하는 길은 민족민주운동 세력의 독자적 정치세력화에 기초해 야당과 대등한 정치연합을 실현함으로써 개혁적인 대안을 제시하는것’이라는 근거가 배경이 되고 있다.

 이에 반해 PD계 후보들은 대통령선거에 임하는 입장으로 ‘민중 독자후보론’을 주장했다. 이들은 “야당을 포함한 보수정치권은 결코 민중들의 정치적 이해를 대변해주지 않는다. 민중운동세력은 이번 대통령선거에서 책임있는 정책 공약을 제시해 새로운 국민 정치 세력으로 나서야 하며 이에 기반해 진보정당을 창당하는 작업으로 연결해야 한다”는 견해를 갖고 있다.

학내 관련 공약 부쩍 늘어

 NL계 학생들은 ‘범민주 단일후보론’이 특정 후보자를 지지하자는 것이 아니라‘민주정부 수립과 민주 대개혁’을 위해 범민주진영의 정치연합을 통해 후보단일화를 이루는 것이라 주장한다. 이들은 전국연합에서 표결로 내린 결정이 대중적 합의에 근거했다는 점을 강조하며 전국연합으로 힘을 집중하는 것이 대통령선거를 앞둔 민중진영의 효과적인 대응이라고 말한 것이다.

 이에 대해 PD계 학생들은 ‘범민주 단일후보’라는 개념의 모호성을 지적하며 결국 이는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의문을 제기한다. 이들은 현재 야당의 보수성을 강조하고 결국 중요한 것은 독자적 정치세력화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현재 ‘민중후보’로 백기완씨(59·통일문제연구소 소장)를 추대하고 선거 운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양측은 이같은 입장 차이에도 불구하고 상대에 대한 전면적 비판을 자제하며 연합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이는 지난 87년 대통령선거에서 겪은 ‘뼈저린 실패’를 다시 반복하지 않겠다는 공감대가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당시 학생운동 세력은 김대중 후보에 대한 비판적 지지론, 민중 독자 후보론, 후보 단일화론으로 분열된 바 있다.

 숫자로는 각 대학 총학생회장이 NL계가 압도적이지만 실제로 그 표차이는 크지 않았다는 점도 이같은 조심스러운 대응을 하게 만든 요인이다. 서울대의 경우 NL계의 조두현 후보9경제학과 4)는 전체 투표자 1만2천33명 중 6천1백59표를 얻어 PD계의 최선호 후보(정치학과 4)를 3백78표 차이로 물리쳤다. 숙명여대에서 당선된 NL계열 이은화 후보(정치외교학과 3)와 PD계열 김경희 후보(국문학과 3)의 차이는 불과 28표이다. 지난 여름 서울대에서 이루어진 ‘의견개진운동’(설문조사) 결과에서도 민중후보를 내야 한다고 답한 것이 63%에 달했다.

 이번 총학생회 선거에서 두드러진 것은 각 후보가 공통적으로 학생들의 실생활에 관련되는 공약에 중심을 두었다는 것이다. 네 후보가 나온 명지대 선거에서 각 후보는 강의평가제, 취업간담회 개최, 장학금 문제, 학업 환경 조성, 도서관 기는 활성화 등 학생들이 학교에서 직접 부딪치는 문제에 대한 내용을 공통적인 공약으로 걸고 나왔다. 다른 학교에서도 후보들은 학원 대개혁, 교육 대개혁, 복지학원 건설, 삶터권리 확보, 생활진보 등 다양한 이름으로 학교 생활 주변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이런 모습은 70·80년대 학생운동이 정치쟁점에 몰두했던 것과 비교하면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이는 6공 이후 변화된 정치·사회적 환경 탓으로 정치문제만으로 더 이상 일반 학생과 함께하기가 어렵다는 인식이 자리하기 때문이다. 70년대 산업화의 단물을 먹고 자란 ‘9자 학번’(대입 90학번 이후)들이 중심이 된 지금의 대학은 끊임없는 탄압과 부조리가 눈에 보이게 이루어졌던 70~80년대와는 분명히 다르다는 것이다.

 학생운동권은 이같은 변화를 긍정적으로 수용한다. 서울대 차기학생회장으로 당선된 조두현군은 학생운동의 관심이 생활 주변문제로 확대되는 것에 대해 “한쪽 눈만 밝아 다른쪽 시력을 잃은 기형적 모습이 아니라 양쪽 눈 모두 밝은 시력을 유지하도록 하는 변화로 본다”라고 설명한다. 학생 생활 주변에도 얼마든지 ‘진보의 싹’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PD계열의 다른 학생은 “이전처럼 학생운동이 전체 운동을 이끌어 나가는 ‘선도적 정치투쟁’ 역할에서 벗어나 학생운동의 대중은 학생 그 자체라는 사실을 자각해 나가고 있다”고 말한다.

“백만학도가 5백만표 움직인다”

 전대협은 이번 대통령 선거에 대응해 지난 11월14일 집회를 갖고 ‘민자당 재집권 저지와 민주정부 수립을 위한 전대협운동본부’를 발족시켰다. 이 자리에서 전대협 의장 권한대행 박흥근군(23·경희대 총학생회장)은 “정권 교체 없이는 어떤 민주 민권도 민생문제도 해결될 수 없다. ‘낙선 민자당, 당선 범민주후보’의 기치로 정권 교체를 실현하고 민주 정부를 수립하자”고 강조했다. 학생들은 공정 선거 감시단을 조직해 금권·관권 선거를 감시하고 투표 참여 캠페인, 부재자투표 적극 참여, 언론 모니터링, 지방 귀향 활동 등 다양한 선거활동을 준비하고 있다.

 학생운동은 흔히 스스로의 잠재력을 ‘백만학도’라는 말로 표현한다. 이번 선거에서 학생운동권은 5백만의 표를 움직일 자신감을 표명하고 있다. 변화하는 정세와 주변환경에서 1백만, 5백만의 잠재력이 현실로 나타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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