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러경협은 장기전
  • 이창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 ()
  • 승인 2006.04.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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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 축적·인맥 형성·거점 확보가 우선


 

 고르바초프가 88년 9월 동시베리아의 크라스노야르스크 연설에서 한국과 소련간 경제협력의 가능성을 처음으로 시사한지 2년 만인 90년 9월30일 한·소 양국은 국교를 정상화했다. 다시2년여가 지난 시점에서 옐친 대통령이 방한하고 한·러 기본관계 조약이 체결됨으로써 양국관계는 이제 가까운 동반자관계로 발전하게 됐다.

2년새 교역량 81% 증가

 이같은 단기간에 이룩한 정치·외교적 성과는 양국간 경제협력에서도 잘 반영되고 있다. 러시아와의 교역은 89년부터 91년사이에 연평균 80.5%의 빠른 속도로 증가했고 89년 모스크바에 첫 합작기업이 설립된 이래 우리기업의 대러시아 투자는 14건으로 늘었다. 또한 16곳의 우리 기업 지사와 두곳의 대한무역진흥공사(KOTRA) 사무소가 러시아에 설치되었다.

 그러나 양국 경제협력 수준은 아직 기대에 못미치고 있다. 91년의 한·러 교역량은 한국 전체 교역량은 0.78%에 불과했으며, 대러시아 투자도 현대의 연해주 스베틀라야 삼림 개발사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40만달러 정도의 소규모 사업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양국간 경제협력은 아직 초기 탐색단계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루어진 옐친 대통령의 방한은 한·러경협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옐친 대통령의 이번 방한은 정치·외교 분야뿐 아니라 경제면에서도 많은 결실을 보게 했다. 첫째, 양국은 이중과세 방지협정 및 세관간 협력협정을 체결하고 경제·과학기술협력 공동위원회의 정기적 개최에도 합의함으로써 경제협력에 필요한 기반을 강화했다. 둘째, 나훗카 한국기업공단 설립, 사할린 유전·가스전 개발 및 러시아 군수사업의 민수화 작업 등 현재 추진중에 있는 양국간 공동사업을 촉진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고 양국간 과학 기술 협력을 활성화하기 위한 방안이 강구되었다.

 그리고 러시아정부는 한국이 이미 지급한 경협자금을 책임진다는 법률문서를 제출했고 소비재 차관에 대한 연체이자를 지불했으며 현금차관에 대한 이자도 알루미늄으로 상환하기로 하였다. 이에 따라 작년 한국이 지불할 예정이었다가 소련연방 해체로 중단했던 3억3천만달러 규모의 소비재 차관을 재개하기로 양국 정부가 합의한 것은 우리 기업의 대러시아 수출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러나 이번 옐친 대통령의 방한으로 한·러경협이 초기단계에서 벗어나 본격적으로 도약하는 발판이 마련됐다고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지금까지 양국 경제협력을 가로막아온 최대 장애물인 러시아의 어려운 경제사정과 불안한 정세는 앞으로도 상당 기간 지속될 전망이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소연방 붕괴에 따른 혼란 말고도 계획경제체제로부터 시장경제체제로 급격히 전환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시련을 겪게될 것이다. 작년에 11% 하락한 러시아의 경제 성장률은 금년에 22%나 더 떨어질 전망이다. 러시아 정부조차 경제가 내년에 5~8% 하락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러시아 사회불안 심화될 듯

 러시아의 경제는 빨라도 94년부터나 회복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러시아의 올해 인플레율은 2천%를 상회할 것으로 예상되며, 이를 억제키 위해 긴축재정을 펼 경우 실업 급증으로 내년에는 사회불안이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이같이 어두운 전망에도 불구하고 우리 기업들이 한·러경협에 적극 나서는 것은 러시아의 막대한 부존자원과 첨단과학기술, 거대한 시장으로서의 잠재력 때문이다. 현재 대부분의 서방기업은 경협 여건이 어려워 관망상태에 있으나 러시아 경제가 회복되기 시작하면 발빠르게 러시아 시장에 뛰어들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조정자 노릇 중요

 따라서 우리 정부와 기업은 자원과 과학기술의 공급원 및 시장이라는 장기적 안목에서 러시아를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단기적으로는 본격적인 러시아 투자에 필요한 경험 축적과 인맥 형성, 확실한 거점 확보에 주력하여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한·러경협의 기본방향이 제시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첫째, 경험축적을 위해서는 소수의 대규모 프로젝트보다 다수의 소규모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둘째, 확실한 거점을 확보하기 위해 각 기업 특정분야 혹은 특정지역에 경협 노력을 집중해야 할 것이며 정부 차원에서도 선택된 지역 및 분야의 경협을 우선 지원해야 할 것이다. 정부는 또 기업간 특화가 이루어질수 있도록 조정자 역할을 담당해야 할 것이다. 셋째, 한국과 러시아의 관계가 긴밀해지고 양국 경제협력의 기반도 어느 정도 이루어졌으므로 우리 정부와 기업은 전시효과 위주로 이루어져온 이제까지의 한·러관계를 지양하고 보다 실속있는 경제협력 관계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비판의 표적이 돼 있는 러시아 경협차관 문제도 앞으로는 위와 같은 경협논리에 연계해 집행함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경제협력차관 구실을 하게 만들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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