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클린턴 ‘악수 교대’할까
  • 워싱턴 · 김승웅 특파원 ()
  • 승인 2006.05.01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백악관 만남에서 불편한 심기 드러내…역대 이취임식 대부분 어색


 

 미국인에게 부시는 이미 잊혀져가는 인물이 됐다. 내년 1월20일 클린턴이 공식으로 새 대통령에 취임하기까지는 부시가 법적으로 백악관 주인이지만 지금 그를 대통령으로 생각하는 미국 국민은 드물다. 모든 일이 클린턴 중심으로 바뀔 것이다. 지난 1주일 동안 텔레비전 화면에 비친 부시의 모습은 단 한차례. 추수감사절 휴가를 마친 후 부인 바버라, 그리고 두마리의 애견과 함께 전용 헬리콥터에서 내려 백악관 뜰로 걸어가는 코트 차림 모습이 고작 이었다. 반면 클린턴의 일거수 일투족은 매 시간의 주요 뉴스다. 펜츠 차림의 조깅 장면은 선거 전이나 당선 후나 마찬가지로 텔레비전 뉴스에 비친다. 추수감사절 휴가 기간에는 고향 리틀록을 떠나 캘리포니아 해변에서 보낸 클린턴 부부를 취재하기 위해 1백여명의 기자가 따라붙는 법석을 치쳤다. 파리 날리는 백악관 기자실과 대조를 이룬 북새통이다. 세태는 이렇다. 당선된 지 한달 만에 이렇게 바뀌는 게 정치세태다. 

 이런 세태를 그대로 반영이라도 하듯 부시와 클린턴의 사이가 틀어져 있다. 부시나 클린턴 어느 쪽도 상대를 비방하는 것을 자제 하고 있지만, 두 사람 사이의 불편한 관계는 미 정가에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 

기자들에 화풀이한 바버라 여사

 전임 대통령과 후임자 간의 불편한 관계는 두 사람의 개성 때문이라기보다는 서로 사이 가 벌어질 수밖에 없는 제도적 불편 때문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같은 당 출신끼리의 임무 교대도 아니고 1년 남짓한 유세기간에 모든 비방을 남김없이 퍼부은 두 경쟁자가 화목한 관계로 돌아선다는 것은 무리일 수밖에 없다. 두 사람은 지난 반년 동안 텔레비젼토론때 외에는 만난 적이 없다. 두 사람의 대면은 열흘 전에 겨우 이뤄졌다. 

 두 사람이 백악관에서 만난 시간은 1백5분에 달했으나 대화 내용이 알려진 바는 거의 없다. 부시는 클린턴에게 백악관 수영장을 보여주고 말 편자를 갈아끼우는 헛간에 안내했다. 또 부시 혼자서 고민하다 툭하면 외국 원수를 전화로 불러내던 대통령 서재에 클린턴을 데리고 들어갔다. 두 사람은 애써 화목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 장면을 지켜본 부시 측근의 한 고위 인사가 던진 말에는 꽤 가시 가 돋혀 있었다. 그는 “백악관에 짐을 부려야 물정을 깨우칠 인물”로 클린턴을 평했다.

 《유에스 뉴스 앤 월드 리포트》는 클린턴의 '백악관 예비 입성'에 관한 특집기사를 통해 “3백10만명이 넘는 관리의 총수인 부시한테 주민이 겨우 2백40만명에 불과한 아칸소의 주지사가 배워야 할 것이 많을 것”으로 백악관의 뒤틀린 시각을 전했다. 

 두 사람 사이의 한차례 회동은 그래도 자제를 잃지 않은 편이다. 같은 날 백악관에서 이뤄진 바버라와 힐라리의 대화는 뭔가 뒤틀리는 심기가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그 불똥은 엉뚱하게 취재기자들에게 튀었다. 

 평소 전형적인 미국 주부상을 상징해온 후덕한 이미지의 바버라 부시 여사가 백악관 뜰에 운집한 기자들을 가리키며 힐라리 여사에게 들으라는 듯 말했다. 

 “전염병을 조심하듯 저 사람들을 조심하세요.” 평소 영부인답지 않은 격앙된 어조였다. 바버라의 혹평에 놀란 기자들이 의례적인 질문으로 “백악관을 떠난 후 어디에 살 예정이냐”고 묻자 그는 “당신들과 상관없는 일”이라고 대꾸하며 쌀쌀맞은 표정을 풀지 않았다. 

 역대 대통령의 임무 교대는 같은 당 출신끼리의 임무 교대가 아닌 한 노상 껄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몇몇 예외는 있다. 넘겨받는 쪽 또는 넘겨주는 쪽이 출중한 인물이거나, 적어도 출중하려고 노력한 경우에는 외관상 멋있는 악수 교대의 모습을 보였다. 

 내년 1월20일, 미국 제42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클린턴은 상대 당의 대통령으로부터 정권을 인수받는 사람으로는 스무번째가 된다. 내년은 2백년이 넘는 미국의 헌정을 통해 공화당과 민주당 사이에 스무번째 정권교체가 이뤄지는 해이다. 그런 경험이 없는 우리에게는 그로부터 정확히 달포 후면 치뤄질 제7공의 출범을 더욱 의미있게 되새겨주는 해이기도 하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은 상대 당 소속 후임자에게 노골적인 유감을 표시하기 일쑤였고 흡사 쫓겨나는 기분으로 백악관을 나서는게 보통이었다. 

 초기의 연방주의자인 존 애덤스 대통령은 후임자인 민주공화계 토머스 제퍼슨의 대통령 취임 장면을 보기 싫어 취임 당일 아예 수도를 떠나버렸다(1801년) 그의 아들 존 천시 애덤스 대통령도 아버지의 행동을 그대 로 답습해 자신을 이기고 대통령에 취임한 앤드루 잭슨 대통령을 미워한 나머지 취임식 날 워싱턴에 있는 것을 피했다(1829년).

후버 · 루스벨트는 ‘낙제점’

 허버트 후버 대통령과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이 · 취임도 화제로 남아 있다. 후 버는 유세기간 루스벨트 후보의 경제정책을 맹공한 데 그치지 않고, 루스벨트가 대통령이 되자 전임자인 자신의 경제정책을 그대로 답습해야 한다고 국가차원의 중대사임을 들먹여가며 강조했다. 

 전임자의 주착에 발끈한 루스벨트는 취임 후 의례적으로 갖게 되어 있는 후버 전임 대통령과의 회동마저 피하려 했고 억지로 마련된 두사람의 대좌 분위기는 시종 “서릿발이 돋고 살얼음을 않는 듯한 분위기”였다는 것 이 당시의 기록으로 남아 있다.

 후버 전임 대통령의 경제정책은 루스벨트 취임 첫날부터 뒤집히기 시작했다. 의회 내에 서는 반후버 로비활동이 극성을 떨었다. 

 해리 트루먼은 명대통령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한국전을 발판으로 권좌에 오른 공화당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후임 대통령의 행각을 사사건건 미워했다. 아이젠하워가 유세기간 준공약으로 내건 "한국에 가겠다"는 언질이 실제로는 빈 약속으로 끝났음을 상기시키기 위해 "아직도 당신이 한국에 가고 싶다면 내 대통령 전용기를 흔쾌히 제공하겠다"는 비아냥대는 전문을 당선의 기음에 열광해 있는 아이젠하워에게 타전했다. 

 그 둘의 임무 교대야말로 미국 역사학자 스티븐 앰브로스의 표현대로 “경직되고 공식적이었으며 당황스럽고 아무런 교훈을 남 기지 못한 것”이 되고 말았다. 

 케네디와 아이젠하워의 임무 교대는 예외에 속한다. 43세의 나이에 대통령이 된 케네디는 당시 70세의 아이젠하워를 백악관으로 정중히 예방해 전임 대통령 이 건네는 의해적인 한마디 한마디의 '넋두리'를 밀도있게 경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경청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성적인 질문을 던져 아이젠하워를 감동시킨 것으로 전해진다. 

존슨 · 닉슨은 화기애애

 1968년 민주당 린든 존슨과 공화당 리처드 닉슨 사이에 치뤄진 정권 인수는 두 사람이 서로 당은 다르지만 상원의원 시절의 막역한 동료였기 때문에 상당히 수월하고 화기애애한 인수 · 인계가 이뤄졌다고 얘기된다. 

76년의 카터는 정권 인수팀을 너무 비만하게 구성했던 이유로 공화당은 물론 자당인 민주당으로부터도 비난을 받았다. 더구나 카터는 민주당쪽의 이야기만을 듣고 정권 인수에 임한 탓에 비교적 당파성이 희박한 백악관의 하급 관료로부터 '대통령감'이 되는가 의심을 받기도 했다. 

 부시와 클린턴의 경우 한달 후면 인수 · 인계자가 되는데 지금의 불편한 관계가 과연 어떻게 기록될지 궁금하다. 이번 인수 ·인계는 미국 대통령 사상 부통령 출신으로 당선됐다 가 낙선한 두번째 대통령(첫번째는 벤 버렌 대통령)과 12년이라는 최장수 주지사 경험을 가진 신임 대통령 사이의 교대라는 기록을 세우게 된다. 이런 인수 · 인계는 워싱턴의 얘기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보름 후면 서울에서 군 출신 대통령과 민간인 대통령 간의 인수 · 인계를 최초로 실현하는 역사적 사건의 전조가 된다는 점에서 각별한 관심을 끈다. ■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