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선거 끝난 뒤 ‘쌀 개방’통보할듯
  • 김방희 기자 ()
  • 승인 2006.05.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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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수산부 11월 ‘월례동향보고회’서 차선책 검토


 

지난해 10월 韓酒鮮 농협중앙회장 일행은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사무국을 방문했다. 이때 던켈 사무총장은 일본처럼 쌀시장만은 개방할 수 없다는 논리를 펴는 한국방문단에 깊은 '우려'를 표시했다. "일본은 지금 코너에 몰려 있다.  일본이 등을 돌리고 나서 한국이 어려운 입장에 처하지 않기를 바란다".

 던켈의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지난 11월20일 미국과 유럽공동체 (EC)가 협상타결을 발표한 후 일본 정부는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을 망쳐 놓았다는 비난을 피할 길이 없게 됐다. 일본 언론들은 고민하던 일본 정부가 사실상 개방쪽으로 입장을 바꾼 것으로 판단한다(68쪽 기사 참조).

 지난해 연말 발표된 던켈최종안의 핵심인 '예외 없는 관세화'에 반대한 나라는 한국 외 에도 6개국이 더 있지만, 시장 개방에 반대한 나라는 한국과 일본 두 나라 뿐이다. 던켈 사무총장은 한국측 인사들과 만날 때마다 한국과 일본 자동차산업의 예를 즐겨 들었다.  한국과 일본이 미국과 유럽에 자동차를 수출 하고, 그 때문에 이 지역에서 실업이 발생하니 농업뿐야에서 어느 정도 실업을 감수하는 것이 당연 하다는 것이다. 

 이 사고는 한국의 자동차 수출량이 일본보다 엄청나게 적다는 사실은 고려하지 않는 것 같다. 쌀은 한국 농가 소득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소득원인 데 반해 일본에서는 5%가 안된다는 사실도, 쌀을 살 때 냄새를 맡아 볼 만큼 소비자의 기호가 까다로운 일본의 쌀시장이 한국에 비해 훨씬 개방에 잘 버티리라는 점도 이해해 주지 않는다. 따라서 일본 정부가 쌀시장 개방 방침을 굳힌 마당에 한국 정부가 쌀시장을 지킬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은 너무 순진한 발상일지 도 모른다. 

정부 내에 ‘개방 불가피론’ 확산

 쌀시장 개방이 불가피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정부 내에서조차 확산되는 것은 이때문이다. 농림수산부의 한 관계자는 "정부 부처 내에서도 쌀시장 개방이 불가피한 것이 아니냐 하는 시각이 대두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런 시각은 쌀시장 계방론자들의 논리와는 다르다. 쌀시장 계방론자들은 비교우위론에 입각해 국내 쌀값보다 훨씬 싼 외국 쌀을 들여 다 먹는 게 낫지 않느냐 하는 주장을 펴왔다. 반면 쌀시장 개방이 불가피하다는 시각은 다자간 교섭에서 한국의 협상력을 근거로 한 것이다. 쌀시장을 절대 열 수 없다고 고집하면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에서 고립되거나 농산물 이외의 다른 분야에서 큰 희생을 치러 야 할지 모른다. 

 한국 쌀의 운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협상 테이블에 놓인 두 개의 카드를 잘 읽어야 한다. 가트의 요구는 작년말 발표된 던켈 최종안에 잘 집약돼 있다. 미국과 농산물 수출국가들인  케언즈그룹의 입장을 주로 수용한 이 안을 쌀에 적용시켜보자. 외국 쌀에 대한 모든 무역장벽은 관세로 바꾸고, 쌀을 수입자유화해야 한다(예외 없는 관세화). 이 관 세상당액은 내년부터 7년간 36% 감축해야 하고, 그래도 수입이 미미한 경우는 국내 소비량의 3%를 수입해야한다 (관세상당액 감축과 최소시장 접근).

 한국 정부는 올해 4월 가트에 제출한 국별 이행계획의 입장에서 조금도 후회하지 않은 상태다. 우루과이라운드 농산물협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인 金漢坤 농수산부 차관은 “가트 측에 한국이 지난 4월에 제출한 이행계획서를 다시 제출할 예정이며, 협상의 마지막 단계까지 기본입장을 유지할 것”임을 분명히했다(인터뷰 기사 참조). 쌀만큼은 비교역적 기능(NTC) 때문에 관세화안의 예외로 인정받겠다는 것이다. 3%의 시장개방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67쪽 아래 표 참조).

 한국 정부의 이같은 입장에 근거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처럼 예외를 인정해달 라는 나라가 여섯 나라나 더 있다. 유럽공동 체 역내 국가 간의 이견도 협상 타결을 가로 막는 요소다. 24개의 수입통제품목(웨버)을 유지하고 있는 미국마저 당장 모든 농산물의 수입 자유화를 수용할 수 없는 형편이다. 

 그러나 관세화 예외를 주장하는 나라들끼리도 관심을 가진 품목이 달라 공동보조를 이루기가 힘들다 던켈 사무총장이나 드쥬이 농산물협상그룹 의장은 각국의 특수한 이해관계가 협상에 반영될 수는 있지만, 예외없는 관세화라는 원칙에 합의한 경우에 한정한다고 못박고 있다. 쌀을 비롯한 모든 농산물시장은 명목상으로라도 개방돼야 한다는 것이다. 타결안은 던켈 최종안과 한국이 제출한 국별 이행계획서 사이에서 결정되겠지만 전자에 훨씬 가까울 것으로 보인다. 농촌경제연구원의 李載玉 국제농업실장은 “관세화안의 예외를 인정받기가 어려울 것” 으로 내다봤다. 예외를 인정해달라는 요구는 관세상당액 감축안과 최소시장 접근방안을 융통성 있게 해주는 수준에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예외가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경우를 대비하지 않았다. 쌀시장 만큼은 못내놓겠다면서도 협상전략 차원에서 차선책을 준비한 일본과는 다르다. 농수산부는 지난 11월27일에야 월례동향보고를 통해 이런 경우에 대비한 시나리오를 검토했다. 이는 지난해말 농촌경제연구원이 낸 (UR 이후의 농산물 무역정책)이라는 연구결과를 토대로 한 것이다. 연구결과는 유예기간 5년을 두고, 관세상당액을 10년간 20%감축하는 방안이 쌀 재배농가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안으로 추정됐다(구체적 시나리오와 예상피해액은 위 표 참조).

정부 ‘유예 5년, 관세상당액 20% 감축’ 검토

 이 연구는 현행 관세율로 직접 들여오는 외국쌀의 영향보다는 관세상당액의 감축 시기와 폭이 더욱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따라서 가장 효과적인 쌀시장 개방안은 가능한 한 긴 유예기간과 관세상당액 감축시기를 얻어내고 감축폭도 줄이는 것이다. 농수산부는 이 회의가 열렸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부인했다. 

 최종적으로 통보할 한국정부의 입장에 이런 검토결과가 반영될지는 미지수이다. 가트의  일정에 따르면 12월18일까지 한국의 입장을 제출해야 한다. 그런데 이 날은 공교롭게도 대통령선거일이다. 정치적 파장을 고려하는 정부로서는 최종입장 통보일을 가능한 한 늦추려한다. 제네바대사관측은 22일까지 늦추는 것은 문제가 없으리라 판단한다. 동향회의에 참석했던 한 관계자는 “그때쯤이면 정치 적 부담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정부가 협상진행 과정을 보아가며 쌀시장 개방을 전제로 한 차선책을 가트에 통보할 가능성도 있다” 고 말했다. 

 유리한 유예기간이나 관세상당액 감축조건을 얻으려면 한국 농업이 한국의 다른 산업과 달리 후진성을 극복 못했다는 사실을 이해시켜야 한다. 추상논리와 통계수치에 둘러싸여 선진국은 한국 농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지난 10월 방한했던 미국농무성 관리 존딕과 아칸소 대학 농업경제학자 에릭 웨일즈 교수가 좋은 예다. 미국인으로서는 드물게 한국 농촌에서 농민들의 생활을 직접 지켜본 웨일즈 교수는 한국 농업전문가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번 여행으로 한국 농민에 닥친 실제상황이 무엇인지 잘 알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쌀시장을 개방하면 농민들은 어떻게 될까. 유리한 조건을 얻어낸다면 쌀농사가 급격히 무너질 위험은 주어든다. 또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은 농민들에게 어느 정도 숨통을 터놓고 있다. 던켈최종안은 농산물 가격과 무관하계 지방자치단체나 생산자단체를 통해 농민에게 지급하는 소득보전은 허용한다. 정부는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에 대한 대책의 하나로 앞으로 10년간 42조원의 재원을 쏟아부을 농촌구조조정사업을 발표했다. 실제로 정부가 농민 들을 위해 얼마나 쓸 각오가 돼 있느냐가 문제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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