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베트남연락대표부 구엔 푸 빈 대사
  • 김 훈 편집위원 ()
  • 승인 2006.05.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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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전 기억보다 경협이 더 소중”



 


한국과 베트남간의 공식 수교가 연말깨로 임박했다. 지난 11월10일 연락대표부 책임자로 서울에 부임한 구엔 푸 빈 대사는 서울 한남동의 옛 베트남 대사관 건물을 인수해 통일된 베트남의 깃발을 게양하고 사무실을 차렸다. 한 시대의 고통스런 역사가 새롭게 바뀌고 있는 것이다. 구엔 푸 빈 대사를 만나 수교를 앞둔 베트남 정부의 입장과 정책을 들어보았다.

빈 대사는 평양에서 대학교육을 받았고 외교관 초년시절도 보내셨는데 북한에서의 교육내용과 외교활동의 사명을 밝힐 수 있습니까.

저의 고향은 하노이 북쪽 빈후성 (省) 입니다. 저의 아버지는 성의 교통을 담당하는 관청의 부책임자였습니다. 저는 고향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65년부터 70년까지 평양 김일성종합대학 조선어 문학부에서 공부했습니다. 저는 한국문학과 한국어에 큰 매력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춘향전 심청전 흥부전 같은 중서문학도 배웠고, 최서해 이기영 김소월 윤동주 같은 현대작가의 문학도 배웠습니다. 평양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귀국해서 외교관이 되었습니다. 그때 베트남은 전쟁의 절정에 있었습니다. 72년에는 미군기 들이 하노이를 공습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고향마을 청년들과 함께 민병대로 편입되어 전투에 참가했습니다. 우리는 소총으로 미군폭격기들을 쏘았고, 무너진 건물더미를 뒤져 부상자들을 구해 내기도 했습니다. 저는 73년에 하급 외교관으로서 평양에 부임하여 77년까지 평양에서 근무했습니다. 그때 베트남은 통일전쟁 중 이었으므로, 평양에서의 내 임무는 조국의 전쟁을 외교적으로 수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 나라의 지원과 지지를 끌어내고 연대를 굳게 하는 것이 저의 사명이었고, 외교활동의 방향이었습니다. 

전쟁중인데 어떻게 젊은 청년으로서 평양유학이 가능했습니까?

존경받는 지도자 호지명은 전쟁을 치루는 한편으로 승리 후의 전후복구에 대한 대비책을 강구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쟁의 와중에서도 우수한 젊은이들을 선발해 국비장학생으로 외국에 내보내 이들을 전후복구의 주축으로 삼도록 했습니다. 저는 그같은 국가미래경영전략에 따라서 전쟁중에 해외유학을 했고, 통일된 조국 에서 외교관으로 활동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베트남을 대표하는 대사로서 서울에 부임하신 감회는 어떻습니까?

저는 평양에서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외교활동을 벌였고, 서울에 서는 그 전쟁의 전후 복구를 위해 외교활동을 벌이는 것입니다.  이해와 친선 속에서 경제협력을 유치하기 위해 저는 일하고 있습니다. 시간과 세계의 환경, 그리고 국가의 이해관계는 전환되는 것 입니다. 세계 속에서의 한국의 환경도 또한 바뀌는 것입니다.

한국과 베트남의 공식수교를 앞두고, 베트남 정부와 국민은 한국군의 월남 참전에 따른 역사적 도덕적 문제를 어떻게 정리하고 있습니까?

사실 한국군의 월남 참전은 우리 인민들에게 견디기 어려운 피해와 상처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인민의 감정으로 볼 때 과거를 잊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미래입니다. 우리는 한국군의 참전만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경제적 성공 또한 눈여겨 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친선의 시대, 대화의 시대에 살고 있으므로 국가의 정책방향도 회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베트남에서 한국과의 수교에 반대하는 여론의 저항은 없습니까?

지식인이나 민족주의자로부터 큰 저항은 없습니다. 다만 한국군이 주둔하고 있던 지역의 인민들 사이에 반대여론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정부는 그 지역 인민들을 설득하기 위해 애썼습니다.  인간이나 국가에게 과거보다는 항상 미래가 소중한 것이라고, 우리 정부는 그 지역 인민들에게 호소했습니다. 

한국과의 수교를 앞두고 베트남 정부는 과거의 전쟁피해와 관련해 한국측에 요구할 것들이 있습니까? 또 그런 문제들이 지금 수교협상 과정에서 양국 간에 구체적으로 거론되고 있습니까?

거듭 말하지만, 우리 정부의 입장은 미래가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수교협상 과정에서 과거와 관련된 문제가 제기되었던 것은 사실 입니다. 그러나 한국과 베트남 두나라는 수교를 이루어내야 한다 는 원칙에 매우 적극적입니다. 과거 문제를 청산하고 정리해야 한 다는 것이 지금 수교협상의 장애가 되고 있지는 않습니다. 아직 과거 청산에 관한 요구가 구체적으로 제기되지는 않았지만, 그런 문제는 수교협상 과정에서 해결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한국과 수교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베트남의 오랜 우방인 북한으로부터 어떤 외교적 저항이 없었습니까?

북한으로부터의 저항은 없었습니다. 지금 베트남은 평양에서도 외교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남북한은 동시에 유엔에 가입하고 대화를 통한 통일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베트남이 한국과 수교하는 것은 남북한 관계개선에 유익하리라고 봅니다. 또 북한은 베트남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베트남전쟁에서 실종된 미군, 생존한 미군포로 문제, 그리고 베트남의 캄보디아 개입문제를 놓고 미국측은 한국이 베트남과 수교를 서두르는 것을 어느 정도 못마땅히 여기고 있다는 외교적 입장을 표명했습니타. 또 이런 문제들은 한국과 베트남과의 수교에 어느 정도 장애가 될 뿐 아니라 베트남의 국제적 지위를 약화시키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미군 포로 문제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미군 포로 문제는 미국과 베트남 사이에 이미 청산되었다는 것이 베트남 정부의 입장입니다. 실종 미군 문제는 전쟁이 끝난 이 후 계속 존재해 왔습니다. 베트남전쟁에서 실종된 미군은 수천명에 달합니다. 이들의 생사를 확인하고, 사망자의 유해를 송환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지난 88년 이후 베트남 정부는 미국에 협력해서 베트남 전역에 대해 18차례 공동조사를 벌였고, 많은 성과가 있었습니다. 이 점은 미국측도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베트남 정부 가 인도주의적 입장을 견지하는 한 앞으로도 진전이 있을 것입니다. 또 캄보디아 문제는 89년 9월의 파리협정으로 일단락되었습니다. 베트남 정부는 이 협정에 따라 캄보디아로부터 손을 테기 위해 성실한 노력을 다 했고, 미국 정부도 그 점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캄보디아 문제가 한국 ·베트남 수교에 장애가 된다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베트남이 지난 86년 당대회에서 국가경영의 기본전략으로 채택한 '도이모이'(쇄신) 정책은 베트남이 자본주의 국가들과 국교를 수립 하겠다는 외교정책 차원입니까, 아니면 국내 경제를 자본주의화하는 것까지를 포함하는 것 입니까?

베트남은 가난한 나라입니다. 오랜 전쟁으로 막대한 타격을 입었고 그 후유증은 계속 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기획경제정책으로 전후복구에 임해왔습니다. 그러나 성과는 매우 낮았습니다. 그래서 시장경제를 도입 하려는 것입니다. 시장경제는 인류의 자연스런 지혜의 축적입니다. 그것은 자본주의 사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우리는 사회주의와 시장경제를 접목시켜 사회주의체제 안에서 시장경제로 이행하려 합니다. 이것은 인민의 내부 요구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외정책을 전환해야 합니다. 모든 나라 인민들에게 문호를 개방 하자는 것입니다. '도이모이'는 경제와 외교가 긴밀히 맞물려 있습니다. 그 정책에 따라 베트남은 세계 1백20여개국과 외교관계를 맺었습니다. 대만 이스라엘 남아프리카연방과는 외교관계가 없지만 미국과 관계가 좋지 않은 쿠바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베트남이 캄란만에 옛 소련 해군의 주둔을 허용하고 있는 것은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매우 위협적인 사태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지금 캄란만에 대한 베트남의 주권은 유효한 것입니까?

캄란만에 대한 베트남의 주권은 추호도 훼손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캄란만을 옛 소련 해군에게 내어준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다만 캄란만의 항만시설을 옛 소련 해군이 이용할 수 있도록 허가 해 준 것입니다. 지금은 러시아 해군이 이 항만시설을 이용해 선박을 수리하고 재급유하고 식량을 조달받고 있습니다. 이것은 많은 나라의 선박에게 우리나라의 항만시설 이용을 허가하는 국가 기본정책에 따른 것입니다. 또 러시아 선박이 캄란만을 이용하고 있는 실정은, 미군이 세계 여기저기의 요충지역에 기지를 건설하고 항구적으로 주둔하고 있는 실정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캄란은 베트남의 주권 아래 있는 베트남의 영토입니다. 

베트남의 빅베어 유전 개발에 한국 기업들이 진출하려 하고 있고, 일본 기업들도 이 지역에 관심이 않습니다. 빅베어 유전에 외국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한 베트남 정부의 기본구상은 어띤 것입니까?

베트남은 기술이 뒤떨어진 나라입니다. 인민의 자주적인 힘은 넘치나 자본 기술 경험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외국자본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지난 11월 초 일본 정부가 베트남에 원조 및 차관을 제공키로 해 협정에 서명했습니다. 이에 따라 일본 기업도 빅베어에 진출하려 할 것입니다. 베트남 정부는 어떤 방식으로 외국자본을 유치하는 것이 우리 인민의 이익에 부합되는 것인지 따져보고 이 원칙에 의해서만 외자를 유치할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한우리 정부의 입장과 선택은 이달 말께 확정 발표될 예정입니다. 

지금 베트남에서 자라나고 있는 한국인 2세 문제는 한국민의 큰 관심사입니다. 이들에 대한 베트남 정부의 정책은 어떤 것입니까?

한국뿐 아니라 호주나 미국도 똑같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베트남에서도 큰 사회문제가 되어 있습니다. 미국인 2세의 문제가 가장 크고 심각합니다. 한국인 2세는 베트남 청소년들과 인종적으로 유사하기 때문에 별 차별 없이 지내지만, 인종적 특징이 두드러지는 미국인 2세는 베트남에서 잘 동화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국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해 정부차원의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래서 베트남 정부는 미국인 아버지와 베트남계 자녀의 상봉 및 채결함 기회를 마련해 주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는 이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만일 한국 정부가 이 문제를 제기해 오면 우리는 미국에 했던 것처럼 인도적 차원에서 대처하겠습니다. 

베트남은 지금 중국이나 러시아와 어떤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종전 후 13년 이상 중국과의 관계가 험악했습니다. 지금도 중국과 국경선 및 영해에 대한 영토분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 난 91년 양국 최고지도자들이 상봉했지만, 영토 문제는 해결하기 힘든 문제입니다. 이 문제가 협상으로 해결되지 않더라도 새로운 문제가 추가로 발생하지 않도록 우리 정부는 노력하고 있습니다. 소비에트연방의 붕괴 이후 우리와 러시아와의 관계는 한동안 중단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경제 통상 및 인적교류가 다시 회복되었습니다. 러시아와 베트남은 시장 구조가 유사하므로 우리는 러시아와 매우 좋은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다는 전망을 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미국이 경제봉쇄를 계속중인데, 이 봉쇄가 언제 어떤 조건에서 풀릴 것으로 전망하십니까?

지금 베트남에 대한 미국의 경제봉쇄는 거의 형식적입니다. 경제봉쇄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주요 국가들은 베트남과 교역하고 있고, 투자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 당선자도 이 문제에 대해 매우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으므로, 형해만 남은 경제봉쇄는 머지않아 풀릴 것입니다. 베트남 역시 미국이 이 봉쇄조치를 해제하는 데 협조하고 있습니다. 

옛 월남대사관을 인수해서 대표부 사무실을 차리셨는데, 이것은 양국 간에 합의된 사항입니까?

그렇습니다. 그 대가로 지금 호지명시에 있는 옛 한국대사관 건물을 한국측에 이양키로 했습니다. 우리 사무실은 좁지만 호지명시 의 및 한국대사관은 거대한 건물입니다. 우리는 이 사무실 뿐 아니라 서울 삼청동에 있는 및 월남 대사관저까지 이양받기를 원합니다. 이 문제는 수교협상 과정에서 해결될 것으로 믿습니다.

지금 베트남 대표부의 인적 구성은 어떻게 되어 있습니까?

우리는 아직도 인적구성의 제한을 받고 있습니다. 대사를 포함해서 외교관 4명,사무원 3명 뿐입니다. 이 인원으로는 정상적인 조직이 될 수 없습니다. 최소한 10명의 외교관이 있어야 합니다. 이 문제도 남은 수교협상 과정에서 해결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앞으로 남북한에 미묘한 등거리 외교를 펼칠 것으로 보이는데….

베트남 종전 이후 세계의 환경은 크게 바뀌었습니다. 한반도에서도 평화통일과 대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습니다. 베트남이 서울과 평양에 대해 동시에 외교활동을 전개하는 것은 한반도의 이같은 평화분위기 조성에 기여할 것입니다. 베트남의 남북한 수교는 한반도의 이익에 부합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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