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는 불편한 이웃”
  • 문정우 기자 ()
  • 승인 2006.05.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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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규제로 개발 묶여…주민들 “다음 주인 땐 달라져야”



 영화감독이나 텔레비전연출자들이 60년대나 70년대의 장면을 찍을 때 가장 즐겨 찾는 곳이 바로 청와대 근처이다. 그곳에 가면 납작납작한 한옥을 비롯해 허름한 구식 가옥을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 시내의 다른 곳은 눈부시게 변모했지만 이곳만은 시간이 멈춰버린 듯 옛모습 그대로이다.

 삼청동 가회동 효자동 청운동 등 청와대를 에워싸고 있는 4개동이 이렇듯 개발의 뒷전으로 밀려나게 된 까닭은 “단지 대통령집 옆에서 산다는 이유” 때문이다. 따라서 이곳 주민들이 청와대의 새 주인에게 거는 기대는 남다르다.

 삼청동 토박이인 김성배씨(삼청동 새마을금고 감사)는 “큰사람 곁에 있으면 덕을 보게 마련이라는데 이곳 주민들은 손해만 보고 살아왔다. 누가 청와대의 주인이 될지 모르지만 주민들이 그동안 겪어온 고통을 헤아려 불필요한 규제를 대폭 완화해주길 바란다”고 얘기했다.

 이곳 주민들은 사실상 그린벨트 지역에서 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 신세이다. 삼청동 가회동 등은 제4종 미관지역(한옥보존지구)과 풍치지구로 묶여 3층(고도 10m) 이상의 집은 지을 수 없고 기존의 집도 증개축이 거의 불가능한 형편이다. 또 효자동 궁정동 쪽은 법적으로 개발제한 구역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삼청동 쪽과 똑같은 제약을 받고 있다.

 이같은 제약을 받다보니 땅값도 형편없이 떨어졌다. 70년대만 해도 이곳이 땅 1평 값이면 강남쪽 땅을 10평은 너끈히 살 수 있었으나 이제는 완전히 거꾸로 돼버렸다. 이곳 땅 10평을 팔아야 겨우 강남쪽 땅 1평을 살 수 있는 실정이다. 집이나 땅을 팔려고 내놔도 사는 사람이 없다.

대문만 고쳐도 경찰서 불려가 혼쭐

 주민들은 견디다 못해 지난 80년대 말부터 서울시에 땅을 팔아버리고 하나둘씩 수대에 걸쳐 살아온 고향을 등지고 있다. 청와대와 시청 등에 규제를 완화해달라는 요구를 하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그럴 바에는 아예 집을 사달라”고 진정을 했는데 서울시가 청와대 인접지역에 한해 사들이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 때문에 삼청동의 경우 78년에는 인구가 1만2천명이었으나 지금은 7천8백명으로 줄어들었다. 궁정동은 1백여채에 달하던 민가가 거의 모두 서울시에 팔려 동네 자체가 지도상에서 사라지게 생겼다.

 그나마 집을 팔고 나간 사람들은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서울시의 매각 예정지에 포함돼 있지 않은 사람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저 속만 태우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시는 지난 2~3년간 청와대 주변지역의 땅을 1만여평 정도 사들여 청와대 경호실의 체육관도 짓고 직원 주차장도 만들었다. 앞으로도 계속 땅을 사들여 청와대 주변에 녹지를 조성할 계획인데 토지매입비만 수백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효자동에서 부동산업을 하는 ㅁ씨는 “조상대대로 살아온 주민들을 못살게 만들어 떠나보내고 그 자리에 청와대 부대시설을 짓고 녹지를 꼭 조성해야만 하는지 새로 청와대의 주인이 될 사람은 다시 한번 생각해줬으면 좋겠다”고 얘기했다.

 청와대 주변의 주민이 예전부터 이렇게 살기가 어려웠던 것은 아니다. 3공화국 말기까지만 해도 별다른 규제를 받지 않았다고 한다. 간혹 이 지역에서 볼 수 있는 5층짜리 건물은 모두 3공화국 시절에 지은 것들이다.

 상황이 악화된 것은 공화당 정권이 박정희 대통령의 우상화에 부쩍 열을 올리기 시작한 70년대 말부터이다. 주민들의 표현을 빌리면 “이때부터 청와대 주인은 딴나라 사람이 돼버렸다”고 한다. 당시 보안사령관이었던 전두환씨의 지휘 아래 대통령집에 대한 경호가 눈에 띄게 삼엄해졌다. 청와대를 향해서는 집도 짓지 못하게 했으며 청와대로 난 창문은 모두 봉쇄했다. 청와대 주변지역에 대한 통제가 강화된 것은 물론이다.

 80년대 들어와 전두환씨가 새로 청와대 주인이 되지 사정은 더욱 악화됐다. 대문만 고쳐도 경찰서에 불려가 혼이 나곤 했다. 경찰관이 입회하지 않으면 아궁이나 하수도도 뜯어고칠 수 없었다. 6공화국에 들어와서 분위기가 많이 부드러워지긴 했으나 주민들은 “근본적으로는 변한 게 하나도 없다”고 얘기한다.

 주민들은 이승만 대통령 시절 경무대 담을 넘어들어가 밤을 따먹던 유년기의 추억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또 육영수 여사가 살아 있을 때 주민들과 함께 동네청소를 하던 그 시절이 좋았다고 한다. 그들은 “이웃과 담을 쌓고 이웃에게 고통을 주는 사람이 어떻게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잇겠느냐. 민주화란 별 게 아니라 대통령의 이웃이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세상일 것”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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