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계》에서《경마장 가는 길》까지
  • 오민수 기자 ()
  • 승인 2006.05.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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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권 대학생 독서 경향 / 시대 변화 따라 생산·노동 중심서 소비 중심으로


 

 연세대 79학번 문모씨(34)의 인생이 망가진 것은 분명 5공화국 초기의 폭압 때문이었지만, 발단은 책이었다. 기관에서 시위혐의로 조사를 받던 친구 입에서 그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문씨는 바로 끌려갔다. 몇 차례의 고문과 위협에도 수사관들은 문씨의 혐의를 밝혀내지 못했다. 그런데 당시 수사기관에서는 이 ‘위험 인물’을 그냥 내보낼 수 없었던 모양이다.

 수사관들이 문씨의 집을 샅샅이 뒤져, 당시 학생들이 읽던 마르쿠제의 《이성과 혁명》과 미우라 츠도무의《변증법이란 어떠한 과학인가》등 몇 권의 원서들을 찾아냈다. 문씨는 단지 이 책을 소지·탐독했다는 이유로 2년을 감방에서 지내야 했다. 하지만 문씨의 고통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심한 고문으로 인한 후유증 때문에 출옥해서도 정신병원을 들락거리는 신세가 됐다. 그의 한 친구는 “그 이후 《이성과 혁명》이란 책을 보면 문씨가 떠오르는 버릇이 생겼다”고 말한다.

 쉽사리 세계를 도모하기 마련인 대학 시절, 학생들이 주로 읽던 책들은 바로 그 시절 운동권의 문화와 대학 풍경을 담은 ‘스냅사진’이다. 주인석의 소설《희극적인 너무나 희극적인》에는 이런 표현이 나온다. “나는 식민지반봉건 사회에 태어나서, 제3세계 개발독재 사회에서 교육받고, 예속적 국가독점자본주의 사회에서 젊은 날을 보냈으며, 이제 포스트모던 사회로 이민 가고 있다.” 이것은 80년대 세대의 자기고백이면서 그 시절 학생운동권이 많이 보던 책의 내용과 이론의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

 학생운동 역사가 4·19에 뿌리를 대고 있듯이 책의 역사 또한 60년대에서 비롯된다. 60년대 초에는 4·19라는 사회분위기에 힘입어 사회과학 출판물이 쏟아져 나왔다. 4·19에서 5·16까지 언론출판의 자유는 거의 무제한으로 보장되었다. 해방후 출판돼 1공화국 때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 마르크스의《자본론》과《공산당 선언》은 나중에 60년~70년대 학번들 자취방에서 몰래 읽혀지기도 했다.

 그러나 60년대 한국 지성사에 절대적 영향을 끼쳤던 것은 잡지《사상계》였다. 그리고 《사상계》 독자는 한국의 젊은 지성인이었으며 또한 학생운동권과 겹쳐 있었다. 이런 현상은 70년대 초반에도 계속됐다. 70년대의 ‘사상계’는《창작과 비평》 단행본이었다.

광주 이후 체계적인 의식화 시작

 70년대 대학생들은 김지하의《오적》《황토》의 필사본이나 이영희 교수의《8억인과의 대화》《전환시대의 논리》, 고려대 조용범 교수의《후진국 경제론》을 읽으며 세상을 걱정했다.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도 빠뜨릴 수 없다.

 물론 이 때에도 마르크스 레닌 저작을 영어 원서로 보던 ‘선진 운동권’이 있기는 했지만 대다수 운동권들은 기껏해야 일본 좌익계열의 난해한 원서를 보던 시절이었다. 차라리 김민기 양희은의 노래가 더 70년대적이었다.

 ‘사회과학의 르네상스 시대’라 불리는 80년대는 광주항쟁과 함께 시작됐다. 광주와 서울의 봄을 경험한 70년대 후반 학번들의 지성의 밑바닥에 흐르던 종속이론은 서서히 운동권의 쟁점으로 떠올랐다. 안드레 군더 프랭크나 사미르 아민의 책들을 원서로 읽었다. 79년에 나온《해방전후사의 인식》과 당시 서울대 교수 김학준씨(현 청와대 대변인)의 《러시아 혁명사》가 역사에 대한 학생들의 갈증을 어느 정도 풀어줬다.

 80년대 들어 팜플렛도 운동권의 필독서로 자리 잡았다. 학생운동의 첫 논쟁으로 기록되는 서울대 무림·학림의 논쟁서 〈야학비판〉과〈학생운동의 전망〉이 대표적이다. 운동권이란 용어도 이때 등장했다. 특기할 것은 ‘광주’이후 운동권 독서 문화에 체계가 잡히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학생운동의 상승세를 타고 금서로 낙인찍힌 책들이 하나둘씩 나왔고 ‘커리’(의식화 도서목록)에 대한 논의도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80년대 중반까지 운동권 학습은 주로 이런 식이었다. 일단 신입생 때 고등학교 때까지 기성 교육제도 아래서 배운 이데올로기를 씻어낸다. 이른바 ‘시작 교정’ 작업이다. 이때《자주고름 입에 물고 옥색치마 휘날리며》(백기완) 《민중과 지식인》(한완상) 《태백산맥》(조정래) 《장길산》(황석영)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 등을 주로 읽는다.

 그 다음에는 변증법적 유물론을 중심으로 한 철학과정을 공부했는데 《철학에세이》가 베스트셀러였다. 그리고 《경제사총론》이나 연세대 최종식 교수의 《서양경제사론》으로 경제사를 공부한다. 이렇게 해서 1학년을 마치면 각 동아리에 따라 정치경제학, 러시아혁명사, 한국 근현대사 등을 학습한다. 공개된 학회나 동아리 말고도 이른바 ‘언더’(지하 이념써클)라는 게 있어서 여기에 든 학생들은 한층 강화된 훈련을 받는다.

대학가에도 포스트모더니즘

 마르크스류 서적에 치우친 편식이기는 했지만, 대충 공부를 마치면 거의 모든 학생들이 학생운동의 쟁점을 어느 정도 이해하는 수준에 도달했다.

 80년대 들어 학생운동의 자원이 양적으로 풍부해진 것이다. 이런 풍토에서 80년대 학생운동권에는 사회 변혁의 방향에 대한 열띤 논쟁이 벌어졌다. 80년대 초반에는 종속이론, 중반에는 사회구성체론, 후반에는 주체사상에 대한 사상논쟁으로 논의가 진행됐다. 무림 대 학림, 자민투 대 민민투, NL 대 PD의 사상투쟁이 계속 전개된 것이다. 학술운동이란 말도 생겼다. 그래서 운동권 출신이 대거 대학원에 진학하기도 했다.

 그러나 동유럽 사회주의 권의 몰락으로 “모순은 그대로 있으나 모델이 사라진” 90년대의 상황은 딴판이다. 서울대 경제학과 89학번 나영철군은 “이제 저학년들에게 정통 마르크스·레닌주의 서적은 먹혀들지 않는다. 그들은 소설이나 가벼운 에세이류를 통해 사회를 읽는다. 학습에 열을 올리는 소수 학생들도 포스트 마르크스주의 책을 본다“고 말한다. 그래서 요즘 학생들이 많이 보는 책은 알튀세의 《마르크스주의의 위기》나 그람시의 《옥중수고》처럼 포스트 마르크스주의를 소개한 것이다. 연세대 89학번 최광민군도 ”요즘 신입생은 도통 책을 읽으려 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서울대 앞 전야서점 주인 정현곤씨(서울대 83학번)는 “전에는 학습진행 순서에 따라 철학, 정치경제학, 한국 근현대사 책들이 순서대로 뭉텅뭉텅 나갔다. 그런데 요즘은 안 그렇다. 그래도 꾸준히 나가는 게 있다면 포스트모던 계열의 소설이다. 그건 학습에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냥 개인적으로 보는 책이다“ 라고 말한다. 대표적인 게 박일문의《살아남은 자의 슬픔》, 이인화의《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주인석의《경마장 가는 길》등이다. 정현곤씨는 ”90학번 이후 학생들이 찾는 책을 보면 우리 때와는 확연히 달라진 정서를 느낀다“고 말한다.

 그 달라진 정서와 독서 풍토는 대학가도 변화 시켰다. 80년대 서울대생들이 즐겨 찾던 서울대 앞 녹두거리의 대명사 ‘녹두집’은 사라졌고 그 자리에 ‘따봉 노래방’이 들어섰다. 그리고 서울대 앞에 있던 ‘전야’ ‘그날이 오면’ ‘열린 글방’등 세 서점 중에 PD계열 학생들이 자주 드나들던 ‘열린 글방’이 지난해 9월 적자를 못이겨 문을 닫았다. 학생들의 독서 성향과 정서도 점차 생산·노동 중심에서 소비 중심으로 옮겨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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