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의 ‘남녀칠세부동석’ 논란
  • 허광준 기자 ()
  • 승인 2006.05.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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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 “우선은 효과 있다” 반 “모든 남성을 치한 취급”…시차제·운행시간 단축 필요


 

 하루 1백50만명 시민이 이용하는 서울의 전철에 여성 전용칸이 생겼다는 소식은 외신을 타고 나라밖에까지 화제가 되었다. 지옥철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의 서울 전철과 지하철에서 시달리는 여성들에게 전용칸은 설치 효과를 낼 것인가.

 지난 9일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은 오전 6시50분. 수도권 전철의 북쪽 종점인 의정부북부역에서는 서울에 직장을 둔 회사원들이 채 물기가 가시지 않은 머리를 새벽 바람에 날리며 모여든다.  승강대 앞의 줄은 곧 길어지고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신경전도 시작된다. 전철이 도착하자 서둘러 올라탄 승객들은 이내 눈을 감고 부족한 새벽잠에 빠져든다. 미처 자리를 잡지 못한 이들은 한 시간쯤 서서 갈 일보다 또 엄청난 인파에 부대낄 일을 먼저 걱정한다.

 그러나 이 전동차의 맨 앞과 맨 뒤 차량에는 아직 여유가 있다. 54명이 정원인 좌석에는 여성만이 앉았다. 빈자리도 눈에 띈다. 이 칸은 지난 12월1일부터 서울과 수도권을 연결하는 전철에 설치된 여성·노약자 전용칸이다.

간혹 ‘용감한’ 남성 눈에 띄어

 전철이 도심에 도착할 때까지 이 칸 출입문에 붙은 ‘여성·노약자 전용’ 팻말은 위력을 발휘한다. 전철 내의 안내방송은 수시로 전체 10량 중 2량이 전용으로 지정되어 있음을 일깨우며 남성의 양보를 촉구한다. 간혹 따가운 시선을 무시하고 금남의 영역을 침범하는 남성도 있다. 전용칸 구석에 서서 졸던 한 회사원은 “당장 몸이 피곤해 어쩔 수 없다. 아직 법으로 지정된 것도 아니지 않은가”라고 말한다.

 혼잡한 전철에서 여성이 겪는 곤혹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힘이 약해 떠밀릴 수밖에 없고 일부 치한에 의해 ‘아름답지 못한 일’을 당하기도 한다. 역곡에서 종각까지 출퇴근하는 권모양(23·회사원)은 “아침마다 전철에서 겪는 일은 끔찍하기만 하다. 여성칸이 생기고 나서 몸이 피곤한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적어도 마음 고생은 많이 덜었다”라고 말한다.

 철도청은 작년과 올해 전철 운행과 관련한 교통불편 민원에 따라 이 제도를 시행하게 됐다고 밝혔다. 철도청 전철운영과 박재명 사무관은 “장기적으로는 선로를 늘리고 차량을 더 투입해야 해결될 문제이지만 우선 복잡한 전철에서 체력이 약한 여성이 겪는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출근시간인 6시30분부터 9시까지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철도청 집계에 따르면 전용칸 제도가 시작된 지 나흘만에 이 시간대에 전용칸을 이용하는 승객 중 여성·노약자의 비율은 97%에 이르렀으며 그후 이 비율이 계속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용칸 제도에 대해서는 반론도 많다. 우선 남성 승객 전체가 성추행의 잠재적 피의자로 간주된다는 데서 오는 거부감이다. 한 남성 승객은 “출근길에 시달리는 남성을 치한으로 만드는 것은 흑심이 아니라 대책 없는 교통정책이다”라고 비꼬았다. 여성만의 공간을 열어줌으로써 형평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있다. 또 전용칸 제도가 의정부-인천과 의정부-수원 구간에만 시행되는 서울지하철공사가 관리하는 지하철 2, 3, 4호선 구간과 연결되는 신도림역이나 시청역 등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는다는 점도 제기된다. 지하철공사측은 근본적으로 교통문제를 해결하려면 결국 차량을 늘리고 운행시간을 단축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전용칸 제도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공사측은 국철과 노선이 겹치는 1호선 구간에서는 철도청과 함께 전용칸을 운영하고 있다.

 도시교통연구소 박영훈 소장은 “철도청의 좋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인 효과를 거두기는 어려울 것이다. 건전한 지하철문화를 가꾸는 일이 더 중요하며 시차제 출근 제도를 도입해 출근시간을 다양화하는 등 혼잡을 더는 것이 시급하다”라고 말했다.

 전철의 여성·노약자 전용칸 논란은 서울의 두통거리인 교통문제의 심각성을 잘 보여준다. 여성과 남성이 서로 소 닭 보듯 어색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男女七歲不同車’의 새로운 규범 속에 쑥스러워하는 것은 대도시의 교통난이 빚은 웃지 못할 풍속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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