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천 검은 구름 막 몰려온다”
  • 강원 양구·성우제 기자 ()
  • 승인 2006.05.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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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부 失政 비판한 강원도 아라리…한림대 구비문학조사단 발굴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 휴전선으로 ‘훼손’된 가칠봉 바로 밑에서 구성진 강원도 아리랑이 울려 퍼졌다. 눈발이 휘날리던 지난 12월9일 노인 7명이 한 사랑방에 모여 소리를 주거니 받거니 하고, 어릴 적 들은 설화도 신명나게 털어놓았다.

 민통선 북방 면으로는 유일한 해안면을 찾아든 젊은이들은 춘천 한림대 국문학과 학생들이다. 지난 12월8일부터 11일까지 작년에 이어 두번째로 양구군을 찾은 이들은 남면과 해안면에서 노인이 있는 집을 샅샅이 훑고 다녔다. 교수 2명과 조교 3명, 학부생 23명으로 구성된 구비문학 학술조사단은 녹음기와 공책을 손에 들고 노인들이 들려주는 소리와 설화들을 꼼꼼하게 채록해 나갔다. 한림대 국문학과에서 아라리(강원도에서는 아리랑을 이렇게 부른다)와 설화를 찾아 나선 지는 올해로 7년째이다. 86년부터 3년간 홍천군을 답사했고, 인제군을 거쳐 양구군에 이르렀다.

 口碑文學은 口中碑文學의 준말이다. 말 그대로 풀이하면 입 속에 비석을 세운다는 뜻이다. 지배계층의 정서를 반영한 기록문학과는 달리 구비문학은 입과 입을 통해 민중 속에 비석처럼 단단하게 새겨져 왔지만 농촌사회의 해체와 계층의 다양한 분화로 지금은 급속하게 사라져가고 있다. 지금 살아남은 구비문학은 ‘보편성’을 갖추고 있는 것들이다. 구비문학이 없어진다는 것은 곧 보편정서가 없어진다는 말과 같다.

 구비문학 채록의 의미는 단순히 ‘지킨다’는 소극적인 차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한림대 金信宰 교수는 “이 작업은 진정한 우리의 것을 창조하는 밑거름이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을 예로 들면서 “창작하는 사람들이 구비문학에 관심을 둔다면 우리 민족 정서에 잘 와 닿는 작품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강원도 구비문학, 보존 비해 조사 안돼

 강원도 영서지역에는 두메가 많아 다른 곳에 비해 구비문학이 원형대로 잘 보존되어 있는 편이다. 그러나 그에 대한 조사는 가장 안되어 있는 지역 중의 하나이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이 80년대에 펴낸 《한국구비문학대계》에서도 강원도 영서지역은 빠져 있다”고 전신재 교수는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 연구자의 발길이 전혀 닿지 않은 지역을 대상으로 조사하고 있다면서 강원도 구비문학에서 특히 많이 발견되는 것은 ‘홍수설화류’의 전설과 ‘아기장수 전설’, 그리고 ‘아라리’라고 소개했다. 이 중에서도 아기장수 전설은 풍수지리의 모티브와 강하게 결합되어 증거물을 가지고 전승되고 있다. 이번 답사에서는 ‘용소’와 ‘용마 발자국’ 이 있는 해안면의 전설과 관련된 설화가 채록되었다.

 아리랑은 정선·밀양·진도 세 갈래로 나뉜다. 각각의 아리랑은 그 지역의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는데, 강원도 아라리는 소박하고 느리고 처량하여 산악지방의 특성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아라리의 내용은 자아와 님, 자아와 가정, 자아와 사회, 자아와 자연의 관계를 노래하는 것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 주에서 자아와 님의 관계를 노래하는 것이 가장 많다. 그 내용들은 현실적 고통을 토로하고 그것을 풀어 버리려는 것으로 집약된다. 현실을 버리고 다른 세계를 찾아갈 수도 없는 폐쇄된 상황에서 삶을 이어가는 방법은 현실을 현실로 인정하고 자기 자신을 굳게 다져나가는 길밖에 없다. “아라리가 공감력이 강한 것은 그것이, 대상에 대한 솔직한 원망과 증오가, 어쩔 수 없이 갇히고 묶여진 삶의 공간에서 끈끈한 정으로 이어지는 깊은 체험에서 우러난 노래이기 때문이다”라고 전교수는 설명했다.

 아라리는 복잡하거나 세련된 수사적 기교는 사용하지 않는다. 단순한 비유 비교 대조 수법이 자주 쓰이고, 대상에 대하나 원망의 감정을 다른 사물에 투사하는 기법이 사용되기도 한다. 이러한 기법을 위해 동원되는 것은 주로 자연이다. 자연은 세속적 삶의 불완전성에 대조되는 완전성과 영원성을 지닌 존재로 나타난다. 고추는 늙을수록 예뻐지는 반면 인간은 늙을수록 추해진다는 식으로 나타나는데 한림대 조사반은 “자연 중에서도 동물성보다는 식물성이 월등하게 많은 것으로 조사되었다”고 밝혔다.

 아라리 이외에 이번 답사에서 채록된 민요는 노동요인 ‘소모는 소리’와 ‘미나리’. 인접 도인 함경 경기 경상도 민요 '어랑타령‘ ’창부타령‘ ’노랫가락‘ ’베틀노래‘ ’담바구타령‘ 등도 많이 채록되었다. 그러나 양구에서만 전승되는 各篇(version)이 어떤 것이 있는지는 녹음을 풀어 세심하게 따져봐야 한다고 전교수는 말했다. 각편이란 같은 형식을 가진 노래가 그 내용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을 말한다. 한림대 학술조사반이 채록한 아라리에서는 요즘 생활이 반영된 것이 몇 수 있다. “눈이 올려나 비가 올려나 만수산 먹구름이 막 몰려온다”는 아라리는 고려 유민들이 불렀던 노래인데, 최근 두 번째 행이 “과천 관악산 검은 구름이 막 몰려온다”로 된 아라리가 발견됐다. 현 정부의 실정을 강원도 농민들은 아라리로 엮어 비판한 것이다.

 양구에서만 유일하게 전승되는 소리는 ‘선질꾼노래’이다. 해안면 박중금 할머니(71)가 들려준 이 노래는 교통이 불편한 양구에서 큰 지게로 짐을 져 나르던 행상꾼이 부르던 소리이다. “돌산령 달산령 선질꾼이 있더구나 꽁지 갈보야 술 걸러라…”

민요·설화 340여편 채록

 한림대 조사반의 요청에 응한 노인들은 신식 교육을 받은 젊은 사람 그 누구도 소리에 관심이 없어 노래 부르는 것 자체를 부끄럽게 여기고 있었다. 구비문학 답사에 3년째 참여했다는 한림대 安商鐵 조교(대학원 석사 과정 2학기)는 “일단 입이 트이면 소리가 줄줄 나온다. 인제군에서는 밤새워 설화를 들은 적도 있다”고 말했다. 시집살이의 고통 등을 들려주던 한 할머니는 노래를 부르다가 눈물을 쏟더라고 했다.

 이 지역 노인 1백50여명을 만나면서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것도 문학임을 직접 체험했다는 한림대 학생들이 이번에 채록한 민요 및 설화는 각각 3백여수와 40여편. 이렇게 채록한 소리들은 책에 다시 기록된다. 현재 나와 있는 책자는 홍천군에서 채록한 1백24편의 설화와 7백6수의 민요를 담아 89년에 펴낸 《강원구비문학전집1》이다. 이 책자에 이어 내년에는 인제군편이 나올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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