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을 잃어버린 집 없는 사람들
  • 정희상 기자 ()
  • 승인 1995.0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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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대합실 부랑자들의 '벼랑끝 인생' 24시

오가는 인파로 항시 북적대는 서울역 대합실 한켠에는 '만남의 장소'라는 팻말 아래 2백50여 좌석이 마련되어 있다. 지난 1월16일 밤 8시께 이곳에서는 얼핏 열차 출발 시각을 기다리는 여행객으로 보이는 3백여 명이 모여 있다가 한바탕 작은 소동을 벌였다. 중구청 사회과 직원 2명과 철도청 소속 공안요원 5명이 한 조가 되어 맨 가장자리에 앉아 있던 남루한 40대 남자에게 신분증 제시를 요구했다. 순간 그곳에 앉아 있던 3백여 명은 부리나케 사방으로 흩어졌다. 잠에 빠졌다가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남자5명과 여자1명만이 공안원에게 붙들려 서부역 쪽에 대기하고 있던 구청 봉고차에 태워졌다.

 취재반은 부랑인들을 실은 차에 함께 탔다. 단속을 지휘한 중구청 사회복지과 직원 손석희씨는 “요즘에는 얼어 죽는 부랑인이 적지 않다. 얼어 죽을 만큼 병약해 보이는 사람과 술취한 사람만을 골라서 태웠다”고 말했다. 중구청이 1주일에 세 번씩 서울역 만남의 장소를 찾아 강제 격리하는 부랑인은 20~30 선이라고 한다. 신분증을 검사해 주민등록증이 없거나 연고자가 없는 부랑인만을 싣는데, 사실 이같은 단속은 격리와 훈방의 악순환일 뿐이다. 봉고차에 실려간 부랑인들이 다음에 가보면 어김없이 같은 장소에 앉아 있다는 것이 손씨의 말이다.

 30분 후 차는 은평구 구산동 시립갱생원에 도착했다. 차에 탈 때는 순순히 따랐던 남자 부랑인 5명은 갱생원에 도착하자 내릴 수 없다며 차 바닥에 드러누워 버렸다. 심한 악취와 땟국에 전 부랑인들은 결국 구청 직원들에게 1명씩 들려 나왔다.

 밤 10시께 출발지인 서울역 만남의 장소를 찾았다. 언제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부랑인들로 꽉 차 있었다. 자리에 앉아 졸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노인과 40,50대 남자들이었다. 한결같이 남루한 옷차림에 세파에 찌든 얼굴로 병세가 역력했다. 20,30대 젊은층은 좌석 뒷켠 바닥에서 소주판을 벌이고 있었다. 팝콘 한 봉지를 안주 삼아 7~8명이 둘러앉아 있는데 끼여들자 거나하게 취한 부랑인 몇 명이 '당신은 또 뭐야'라며 시비를 걸었다. 신분을 밝히자 그 중 우두머리가 취재에 응했다.

 올해 37세인 부랑인 우두머리 김철민씨는 “여기 나와 있는 수백 명은 이 추위에 갈 데가 없어 모여든 진짜 거지들이다. 일하려고 해도 일 할수 없는 사람들이라 주로 구걸을 한다”라고 말했다. 서울역에 모여드는 부랑인은 세 부류로, 진짜 알거지와 최하층 일용 노동자, 집 나온(쫓겨나거나 버림 받은) 노인들이다. 그러나 추운 겨울에는 진짜 알거지와 중병 걸린 무연고 노인들만 남는다. 최하층 일용 노동자는 근처 심야만화방이나 양동 쪽방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서울역 대합실에서 여행객을 상대로 하루에 구걸하는 돈은 5천~만원이다. 그 돈으로는 밥 사먹고 추위를 녹일 소주 한 병 사면 그만이다. 잘데가 없어 대합실에서 버티는 셈이다. 그것도 막차가 떠나는 밤 12까지뿐이다. 때문에 이들은 가장 추운 시간대에 노숙해야 한다.

 거지 중에서도 상거지라 할 이들 겨울철 노숙자들은 그들이 헤쳐온 세파만큼이나 거지가 된 사연도 다양하다. 이혼한 후 세상을 비관해 뛰쳐 나온 사람, 자식들에게 내쫓긴 할머니 할아버지, 정신이상자와 알코올중독자, 죽을 날만 기다리는 결핵 환자도 있다. 겉은 멀쩡한데 구걸을 일삼는 젊은 부랑인들은 대개 공장이나 막노동판에서도 소외되어 자신감을 잃은 부류이다.

“새벽 4시까지만 버티면 산다”

 만남의 장소 한구석에서 하루 종일 구걸한 동전을 세던 김관진씨(53)는 취재반에게 형을 찾아줄 수 없느냐며 말문을 열었다. “83년에 붙들려가 시립갱생원에서 8년 있다가 91년에 나왔다. 형이 대한석탄공사에 다닌다는데 못 만난지 33년이 됐다. 젊었을 때는 미군부대 양색시와 살림도 차리고, 근처 농장에 나가 돼지똥 치우는 일로 재미나게 살았는데, 양색시가 미군을 따라 도망가 버리는 바람에 동맥을 끊고 자살하려다 병원으로 실려가 살아난 뒤 구걸고 살아왔다.” 그는 자기가 고생하며 살고 있다는 기사를 꼭 써서 '잘사는 형'이 찾으러 오도록 해달라며 형의 이름과 나이를 두 번 세 번 불러주었다.

 밤 11시10분께 도착한 열차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자 젊은 부랑인 백태우씨(38)가 '위협적인'태도로 구걸을 시작했다. 고아원에서 자라다 도망나온 그는 지난 가을까지만 해도 청량리 경동시장에서 리어카를 끌며 배추 부스러기 따위를 수집해 시레기용으로 팔아서 생활했다. 밤에는 오스카 극장 골목에 리어카를 세우고 그 속에서 잤다. 그러다 지난 12월 중순 갑자기 몰아친 한파에 얼어죽기 직전 마침 순찰중이던 경찰에 발견돼 동부 시립병원에 실려가 동상 치료를 받고 나왔다. 동상 걸린 손을 동여맨 두툼한 검은 천쪼가리를 들어올려 보인 그는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누가 살려줍니까”라며 도착 승객들 사이를 바쁘게 비집고 다녔다.

 서울역 대합실이 문을 닫는 밤 12시가 되자 철도청 공안원들과 청소원들이 셔터를 내리려고 여기저기 흩어져 졸고 있는 부랑아들을 내몰았다. 열차 승객과 뒤섞여 쏟아져나온 그들은 강추위 속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10분도 지나지 않아 서울역 광장과 지하도에는 노숙자들만 남았다. 20여 부랑인들이 광장 앞의 재떨이 뚜껑을 열고 종이 상자들을 찢어 불을 피웠다.

 지난 가을 도망간 부인을 찾으러 울산에서 올라와 부랑인 생활을 하고 있다는 이동규씨(46)는 “저 아래 대우빌딩 지하도는 바람이 좀 덜 들지만 경찰들이 상주하기 때문에 할 수없이 여기서 보낸다. 이 추위에 잠들면 그냥 얼어 죽기 때문에 이렇게 여럿이 모여 서로 잠을 못자게 하면서 움직인다. 서울역 대합실이 문을 여는 새벽 4시까지만 버티면 된다”라고 말한다. 그러는 동안 매서운 밤추위 속에 광장을 왔다갔다 하는 노인도 부지기수였다. 모두 얼어죽지 않으려고 몸을 움직이면서 버티고 있었다.

 대우빌딩 지하도는 말대로 추위를 견딜 만했다. 그러나 지하도 곳곳에는 남대문 경찰서 소속 순찰대가 2~3명씩 돌면서 들어오는 부랑인을 내쫓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다리를 심하게 저는 부랑인 1명이 지하도 중앙에 있는 복권 파는 곳 뒤에 숨어 잠을 청했다. 그러나 그도 이내 순찰대에 발각되고 말았다.

 이미 잠과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다시피 한 그는 경찰에게 필사적으로 버텼다. 옷이 벗겨지자 드러난 다리는 어디서 심하게 다쳤는지 붕대로 감겨 있었는데 피가 흐르고 있었다. 좀 심하지 않느냐며 경찰들을 만류하자 지휘자가 부하들에게 “정중하게 모셔”라고 명령한 뒤 경찰이 이럴 수밖에 없다는 사연을 말했다. “이곳은 노숙자 수십 명이 매일 잠을 자던 곳인데 자기들끼리 술 먹고 널부러져 싸우니 통행인들이 느끼는 불안이 여간 아니었다. 얼마 전에는 싸우다가 거지 2명이 죽었다. 그 뒤부터 매일 밤 3교대로 순찰하며 노숙자들을 내쫓고 있다.”

 자정이 넘은 시간대에는 일반 통행인의 발길도 끊기고,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데 굳이 이들을 밖으로 내쫓는 것은 지나친 처사가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우리도 집중 단속 명령을 받아서 어쩔 수 없다. 여기서 쫓아내도 다른 관내 지하도로 몰려간다. 우리 관내에서 노숙자를 없애자는 게 목적이다”라며 부랑인 단속 정책의 허점을 털어놓았다. 이런 가운데 역 광장에서 서성이던 부랑인 20여 명이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대우빌딩 지하도로 몰려왔다. 경찰들은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저들이 무슨 해코지를 할지 모르니 빠져나가라”고 권했다.

아들·며느리는'저승 사자'

 이 날 새벽을 취재반과 지하도에서 같이 보낸 20여 부랑자는 각자 가슴에 품은 사연만큼이나 인적 구성이 다양했다. 또 그들은 범죄를 저지를 정도의 '살아갈 의지'마저 갖지 못한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남을 해치기보다는 남에게 놀림받고 따돌림 당하는 유형의 사람들이었다. 고아원 동기 출신인 30대 초반의 부부 거지는 “가진 기술이라고는 중국 요리 기술밖에 없어 아침마다 중국집에 일용직으로 나가 일하는데, 요새는 일거리가 없어 1주일에 하루 이틀밖에 일하지 못해 할 수 없이 이렇게 보낸다”고 했다. 또 3년간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며 동거하던 '아내'가 어느 유부남과 달아나는 바람에 자포자기에 빠져 부랑인 생활을 하게 됐다는 유아무개씨(32)는 아내만 찾으면 새 사람이 되겠다며, 법적으로 누가 이길 수 있느냐고 묻기도 했다.

 이들 중 절반 정도는 60대 이상 노인들다. 그들은 평생 갱생원과 요양원을 신물 나도록 드나들었지만 삶이 개선될 가망도 없이 징역살이 하듯이 사는 갱생원 생활보다는 노숙자 생활이 훨씬 낫다고 말했다.

 그 중 71세 된 한 노인은 자식들이 있지만 어디에서 사는지 몰라 이렇게 지내노라고 했다. 자녀들 신상을 묻자 연락처를 모르니 소용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주민등록번호와 자녀 이름만 가르쳐 주면 추적해 자녀들에게 알려주겠다고 하니까 그의 태도는 금방 변했다. 반가움이 아니라 두려운 표정이 되어버린 것이다. 아들·며느리가 면목동에 사는데 자기가 거동이 불편한데다 결핵까지 걸리자 전염된다며 못들어오게 내몬다는 것이다. 부랑인 생활을 견디다 못해 몇 번 찾아가 보았지만 그때마다 매질을 당해 이제는 아들 부부를 '저승사자'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서울의 부랑인 중에서도 가장 처참한 상태에 내몰린 한겨울 서울역 지하도 노숙자들과의 하룻밤은 비애와 한심함, 측은함, 우리 사회의 무관심에 대한 절망감이 뒤섞인 감정 속에 지나갔다. 대합실 문이 열리는 새벽 4시가 채 되기도 전에 이들은 앞다투어 서울역의 육중한 셔터 앞에서 웅성거렸다. 어디에서 얼어 죽지 않고 왔는지 부랑인 수십 명이 발을 구르며 '문열어'를 외쳐대면서 반복되는 하루를 '준비'하고 있었다.

 현재 서울 시내에는 서울역 외에도 영등포역에 2백여 명, 청량리역·경동시장 일대에 4백여명이 비슷한 생활을 하고 있다. 요즘처럼 한파가 몰아치는 겨울이면 이들은 추위를 피해 서울역·영등포역·청량리역 등 비교적 따뜻하고 공간이 넓은 대합실로 몰려들어 시간을 보낸다.

 서울시는 지난해 말부터 경찰과 합동으로 부랑인을 집중 단속하고 있다. 그러나 집중 단속이란 소속 관내의 부랑인을 다른 관내로 쫓는 데 불과하기 때문에, 단속반원과 부랑인 사이에는 쫓고 쫓기는 숨바꼭질만 계속될 뿐 변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서울에서 합동 단속에 붙잡힌 부랑인을 수용하는 시설은 은평구 구산동 시립갱생원(18세이상 성인 남자)과 동작구 대방동 부녀보호소(여성), 아동보호소(18세 미만 아동)가 있다. 그러나 이곳들은 모두 수용 정원을 초과한 상태라서 잡아온 부랑인 대부분을 그냥 훈방하는 실정이다. 단속과 훈방의 악순환이 서울시 부랑인 복지 정책의 현주소인 셈이다. 이와 관련해 서울 시립 갱생원의 한 관계자는 “정해진 수용 인원은 없지만 최대 수용 규모가 1천 5백명인 갱생원에는 현재 2천1백여 병이 수용돼 있다. 갱생원은 말 그대로 수용자들이 재활할 길을 찾도록 돕는 곳이야 하는데, 이런 여건 때문에 제대로 운영하기 힘들다. 수용자들이 하는 일도 재활 사업이라고 할 수 없는 봉투 붙이는 일이 고작이다”라며 부랑인 수용과 재활 정책의 한계를 털어놓았다.

“부랑인 피난처 마련돼야”

 이같은 악순환의 고리 속에 해마다 서울 시내 거리에서만 영양 실조로, 혹은 얼어서 죽는 부랑인이 6백명을 오르내리고 있다. 서울시 사회과에 따르면, 지나 한 해 집계된 행려 사망자는 5백88명에 이르렀다. 가장 많은 사망자는 요즘 같은 겨울철에 발생한다. 물론 결핵·알코올중독·영양실조 등의 합병증이 주된 사인이지만, 죽음에 이르는 결정적 계기는 한데서 자다 몸이 얼어붙기 때문이다.

 사망한 부랑인들은 대부분 동부시립병원·보라매병원 등으로 옮겨져 신원 확인을 위한 지문 감식을 받지만, 대부분이 신원 미상으로 무연고 처리된다. 부검 후 관할 구청(또는 시청)으로 넘겨져 일부는 의대생들의 인체 해부용으로 각 대학 병원에 매각되고, 대금은 국고에 귀속된다. 처리가 끝난 시체는 경기도 벽제리 시립공원묘지에 일정 기간 가매장한 후 연고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화장 처리한다.

 선진 복지 국가를 목표로 내건 한국 사회의 한구석에 이처럼 사회의 관심으로부터 밀려난 벼랑끝 인생살이가 널려 있고, 서울시에서만도 한해에 6백여명씩 거리에 쓰러져 죽어가는 실정은 국제적으로도 수치가 아닐 수 없다. 지난6년 동안 거리에서 부랑인들과 동고동락하며 그 절망을 어루만져온 청량이 다일공동체 최일도 목사는 한국 사회 구성원 모두를 향해 호소한다.

 “정부가 예산과 복지 공무원을 늘리는 일로 사회 복지가 잘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당연히 예산을 써서 각 구청마다 부랑인 피난처와 재활 시설을 설치해야 하지만, 그 운영은 '사랑'을 가진 사회 구성원들의 자원 봉사로 이루어져야 한다. 부랑인의 육체적·정신적 절망을 치유할 사람들은 월급받는 만큼 일하는 복지 공무원이 아니라 시민들의 자발적이고 숭고한 사랑과 나눔 정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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